디지털에서 왜 문해력이 핵심능력이 되는가

15세기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기술 덕분에 인류는 지식의 시대를 만나기 시작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자를 읽고 쓰는 능력은 오랫동안 소수 특권층의 영역이었다. 서양에서는 라틴어를, 동양 한자 문화권에서는 한자를 배운 사람들만 리터러시 능력이 있었다. 라틴어와 한자는 말하는 모국어가 아니어서, 적어도 10~20년은 배워야 능통할 수 있는 문자 언어다.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자유로운 특권층이 문해력을 지닐 수 있던 시절이었다. 인쇄기술의 보급은 모국어로 읽고 쓸 수 있는 세상을 불러왔고 근대 시민사회와 산업사회를 가능하게 했다.

디지털과 인터넷은 지식과 정보의 세계에 또 한 번의 혁명을 가져왔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누구나 손안에서 거의 공짜로 언제나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선물했다. 정보사회는 앨빈 토플러가 말한 대로 지식과 정보가 가장 큰 권력이 되는 사회다. 문맹률은 제로에 가깝고, 누구나 스마트폰이라는 강력하고 편리한 정보 단말기를 이용해 쉼 없이 읽고 쓰는 행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정보 이용과 생산이 어느 때보다 활발해진 오늘날 문해력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도 처연한 계급 우화” 2019년 개봉한 <기생충>에 대한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한 줄 평이 내용과 별개로 어휘의 적절성 논란으로 이어진 일이 있다. 2020년 광복절 즈음엔 대체 공휴일로 ‘사흘 연휴’가 생겼다는 보도에 “왜 3일 연휴인데 사(4)흘이라고 보도하냐”는 댓글과 함께 ‘사흘’이 포털 검색어 1위에 올랐다. ‘고지식한 사람’은 지식이 높은 사람으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을 서 있는 무당으로 이해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게 교사들의 말이다. 말과 글을 다루는 게 직업인 기자들도 단어의 뜻을 몰라, 황당한 보도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21년 11월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에게 “무운을 빈다”고 말하자, ‘운이 없기를 바란다’고 해석한 언론 보도가 잇따랐다.

공식 통계에서도 문해력 저하는 확인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1년 5월 발표한 <피사(PISA)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의 문해력 개발> 보고서에서 한국의 만 15살 학생(중3, 고1)들의 디지털 문해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중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한국 학생들은 사기성 전자우편(피싱 메일)을 식별하는 역량 평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중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피싱 메일 여부 식별을 통해 정보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테스트에서 덴마크·캐나다·일본·네덜란드·영국 학생들은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지만, 한국은 멕시코·브라질·콜롬비아·헝가리 등과 함께 최하위 집단으로 분류됐다. 국민의 정보화 욕구가 높은 ‘디지털 강국’이자 문맹률이 최저 수준인 높은 교육열의 국가 한국에서 왜 문해력이 문제 되는 것일까?

2021년 3월 교육 방송(EBS)이 방영한 <당신의 문해력>은 특정 세대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세대가 긴 글 읽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태를 알려줬다. <당신의 문해력> 패널로 출연한 조병영 한양대 교수(국어 교육학)는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로 10년 넘게 문해 교육을 연구해온 전문가로, 최근 교양서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를 펴냈다. 디지털 세대의 문해력에 관심 있는 사람에겐 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 김성우 엄기호의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 이은 또 하나의 필독서다.

디지털 세대의 문해력 저하 현상을 얘기하려면 먼저 디지털 환경에서 요구되는 문해력이 전통적 문해력과 무엇이 같고, 다른가를 짚어봐야 한다. 리터러시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고대엔 ‘학식 있는 사람’, 중세엔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근대국가 시기엔 ‘모국어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리터러시를 갖춘 사람이었다. 리터러시는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말해왔는데, 책의 그림과 글자보다 스마트폰이나 패드로 동영상을 먼저 접한 디지털 네이티브가 늘어나고 있다.

저자는 문해력이 문제가 되는 배경에 디지털 환경과 동영상 위주의 정보 수용 문화가 있다고 본다. 대다수 이용자는 영상 형태로 돌아다니는 정보를 즐기는데 이는 외부에서 만들어진 정보가 나한테 이전되는 경험이다. 지식과는 거리가 상당히 있다.

이런 소극적 정보 수용 과정에서 정보 이용자는 인지를 최소한으로 작동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인지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적 구두쇠’ 현상이다. 동영상 시청은 글자를 읽고 숨겨진 의미를 이해하고 앞서 맥락을 기억하는 등의 노력 없이도 정보를 실감 나게 얻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수단이다.

저자는 인식을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이라고 강조한다. 지성과 진실은 외부의 정보를 갖고 자기 안에서 구성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뭔가 안다는 것을 단지 정보를 아는 것으로 취급하는 일이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전문가와 지식에 대한 권위가 추락하고 있다. 전문가의 식견에 대한 존중은 사라지고, 그 지식과 노하우를 30초 인터넷 검색을 하면 누구든지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값싼 공유물로 인식하는 현상이 생겨났다. ‘나도 너만큼 알아’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전문가와 강적들>의 저자 톰 니콜스는 이에 대해 “지식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 것이 아니라, 모두의 지적 수준이 동등하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이 확산되는 상황을 맞게 됐다”고 말한다.

저자는 손쉽게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지식과 정보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그 능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경고한다. 정보의 맥락과 상황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데 인터넷 환경에서는 정보가 개별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검색을 통한 정보 이용과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정보 공유가 대표적이다. 인터넷은 배경과 맥락을 찾아보기도 편리하지만, 실제로 적극적 정보 이용은 많지 않다. 세상 모든 것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는 많은 것을 찾아보고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스스로 구성해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저자는 디지털에서 잘 읽는 방법은 연결해서 맥락과 상황을 함께 읽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리터러시(literacy)에 대한 유엔 교육사회문화기구(UNESCO)의 정의에도 부합한다. 유네스코는 리터러시를 “다양한 맥락과 연관된 인쇄 및 필기 자료를 활용해 정보를 찾아내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만들어내고, 소통하고, 계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종이에 쓰인 글의 내용을 읽는 것을 넘어 종합적인 사회적 능력을 말한다.

정보가 원래 출처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정보의 오염도는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나중에는 원래 정보는 오간 데 없고 완전히 새로운, 왜곡된 정보만 남기도 한다. 그래서 읽는다는 행위는 기호로 표현된 정보만이 아니라 그 정보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출처를 다루는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저자는 대중이 전문가의 도움 없이 특정 분야의 원천정보와 텍스트를 다루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전문영역에서는 특별한 지식과 원리가 있고 그런 지식과 원리를 활용하는 기술적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선 어떤 정보의 출처를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인터넷의 측정할 수 없는 확장성과 복잡성 때문에 원천정보를 식별하거나 출처를 밝히는 일이 거의 불가능할 때도 많다.

글을 읽는 것은 의미를 구성하는 차원 높은 정신적 일이다. 저자는 “의미를 구성하는 일은 정보를 가져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층위에서 작동하는 인지적, 메타인지적, 인식론적 사고행위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기술은 가장 자연스럽고 쉬운 방향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결국 사람이 가장 쉽게 정보를 취득하는 방식인 이미지와 음성을 더 많이 보고 듣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본다. 갈수록 유튜브, 넷플릭스, 틱톡 등 동영상 플랫폼이 인기를 끄는 현상을 설명해준다. 문자를 읽고 이해하는 방식은 몇백 년 전에야 보급된 정보 취득 방법이다. 추상적 기호를 통해서 의미를 이해하고 논리적 사고를 하는 일은 매우 비자연적 경로다.

정보 홍수의 디지털 상황에 대한 인식에서 저자의 관점은 독특하다. 저자는 요즘 사람들이 정보 홍수 아닌 정보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고 본다. 그는 “디지털 이전에 필요한 정보는 생존과 성공에 중요한 정보였다. 디지털에서는 생존과 관련 없는 많은 정보가 넘쳐난다. 지금은 즐거움과 웰빙을 위한 정보를 찾는 경향이 있다”며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라는 측면에서는 정보 결핍이다. 그런데 대부분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넘쳐나게 들어오는 정보의 유해성, 유익성을 판별하기 어렵다. 있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고, 제 일은 그걸 찾아내는 것이라고 여긴다”고 말한다.

문해력은 디지털 세상에서 더 중요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대중들의 문해력 저하 현상이 말해주듯 갈수록 희소해지는 능력인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디지털 기술은 더 높은 리터러시 능력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정보사회는 갈수록 정보량이 많아지고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상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딥페이크와 메타버스처럼 가상과 현실의 뒤섞임이 불가피한 미래다. 단순한 정보 접근과 수용으로는 점점 복잡해질 현실의 문제를 풀 수 없다. 저자는 그래서 정보를 연결하고 선택하고 분석하고 적용하는 능력은 예전보다 훨씬 복잡해질 것이라고 본다. 디지털 기술이 우리에게 손쉬운 정보 접근과 이용법을 알려주는 편리함이 거꾸로 이용자들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리터러시 능력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디지털 환경에서 집중해서 읽고 생각하는 능력을 더 소중히 여기고 가르쳐야 한다.

저자 : 구본권

KISO저널 편집위원 / 한겨레신문사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