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故人)이 남긴 디지털 유산은 누구의 것인가?
– 애플의 ‘디지털 유산 관리자’ 도입을 계기로 살펴본 디지털 유산의 민사법적 쟁점 –
1. 서론
기원전 3,000년 전 수메르(Sumer)에서 쐐기문자(cuneiform)가 발명된 이래 인류는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문자를 사용하여 기록함으로써 후세에 전승할 수 있었다. 사실 인류의 문명은 이러한 ‘기록 문화’에 터잡아 성립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자가 기록ㆍ유통되는 매체는 점토판에서부터 파피루스, 죽간(竹竿), 양피지, 종이 등으로 발전되어 왔으나, 그 종류를 불문하고 유체물이라는 특성상 매체가 소멸되면 그 매체에 담긴 기록도 결국 소멸된다는 본질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인터넷과 컴퓨터가 출현하면서 ‘기록 소멸 시대’는 사실상 종말을 고하였다. 복제 및 전송의 한계비용이 사실상 제로(zero)라는 데이터의1 특성상 인터넷상에 데이터 형태로 기록된 정보는 인류 문명이 파괴되는 대재앙(apocalypse)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인터넷을 통하여 무한히 복제, 유통됨으로써 영구 보존되기 때문이다.2
인터넷상에 기록되어 유통되는 각종 정보의 관리ㆍ처분권한이 기본적으로 해당 정보를 생성한 당사자에게 있다는 점에는 별다른 의문이 없다. 그러나 정보를 생성한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 고인(故人)이 생성하여 인터넷에 기록ㆍ보관하고 있었던 정보를 누가 관리ㆍ처분할 수 있는지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오프라인 환경에서 고인(피상속인)이 남긴 물건, 재산권 등 유산(遺産)은3 민법의 규정에 따른 상속재산으로서 상속인(배우자, 부모, 자녀 등)에게 상속되며, 따라서 상속인이 해당 유산에 대하여 권리를 행사한다. 하지만 고인이 인터넷에 남긴 각종 기록은 민법상 물건이라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4 고인이 상속인에게도 공개하고 싶지 않은 사생활이나 내면의 의견과 같이 재산적 가치보다는 인격적 가치를 가진 정보도 포함하고 있으므로, 오프라인 환경에서의 유산과 동등하게 취급하기 어려운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고인이 인터넷상에 남긴 데이터 형태의 각종 정보(이하 논의의 편의를 위하여 ‘디지털 유산’이라고 한다)는5 누구의 것이며,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는가?
위 질문에 관하여는 2010년대 초반에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졌고,6 별도의 입법안이 발의되기도 하였지만,7 여러 사정으로 입법이 무산되면서 법률이 아닌 약관이나 정책 등을 통하여 시장에서 사업자별로 자율적으로 해결하고 있었고, 학계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2021. 11. 애플(Apple)이 iOS에 고인이 생전에 지정한 유산 관리자가 사망 후 고인의 애플 아이디(ID)와 데이터에 접근하도록 허용하는 ‘디지털 유산 관리자’ 기능을 도입하면서 디지털 유산의 상속 및 관리 문제에 관하여 사회적 관심이 다시 대두되는 상황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배경하에 현행 법률 및 약관상 디지털 유산의 상속 및 관리에 관한 현황 및 문제점을 살펴보고 해결 방안을 제언하고자 한다.
2. 현황
가. 국내
1) 법제
현재 디지털 유산을 다른 유산과 구별하여 별도로 규율하는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디지털 유산의 상속 및 관리에 관하여는 기본적으로 상속에 관한 일반법인 민법 상속편이 적용된다. 이에 따르면 상속은 사망으로 인하여 개시되며(제997조), 민법에 정해진 순서에 따라 상속인이 정해지며(제1000조~제1004조), 상속인은 상속개시된 때로부터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를 승계하나, 피상속인의 일신에 전속한 것은 그러하지 아니하다(제1005조).
따라서 법리적으로는 디지털 유산이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 즉 재산권적 성격을 띄고 있다면 상속인에게 상속되나, 그렇지 않고 일신(一身)에 전속(專屬)한 것, 즉 본인에게만 귀속되며 제3자에게 양도나 승계가 불가능한 것이라면 상속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인격권(명예권, 초상권, 음성권, 프라이버시권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문제는 디지털 유산이 과연 재산권적 성격을 띄고 있는지 아니면 일신전속적 성격을 띄고 있는지의 판단 자체가 어렵다는 점에 있는데, 이에 관하여는 민법뿐 아니라 실정법상 아무런 규정이 없다.
2) 실무
디지털 유산의 상속 및 관리 문제에 관하여는 통일된 표준약관이나 정책이 존재하지 않으며, 사업자별로 개별 사정에 따라 각기 다른 약관 또는 정책을 적용하고 있다.8 논의의 간명함을 위하여 국내 대표적인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Naver)와 카카오(Kakao)만을 살펴본다.
2022. 2. 기준으로 네이버는 ① 회원의 계정 정보(아이디, 비밀번호)는 일신전속적 정보로 보아 유족에게 제공하지 않고, ② 유족의 요청이 있으면 회원탈퇴 처리 및 계정 중 공개된 정보(예를 들어 블로그 공개글)의 백업 제공은 지원하며, ③ 고인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하여 비공개 정보(예를 들어 블로그 비공개글, 이메일 등)은 유족에게 제공하지 않는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9) 카카오의 경우에는 약관이나 정책상 디지털 유산에 관한 사항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는 않으며, 고객센터의 공통질문(FAQ)의 답변 형태로 “고인의 카카오계정 및 데이터를 유족에게 제공하지 않으며, 유족이 요청하면 사망자 계정의 삭제 처리는 가능하다.”는 내용만 안내하고 있다.10) 이처럼 디지털 유산에 관한 양사의 정책은 상이하나 계정 자체(즉 이용계약 자체)의 승계는 허용하지 않으며, 디지털 유산을 백업 데이터 형태로 유족에게 제공하는 것 또한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디지털 유산 자체에 관한 약관 또는 정책은 아니지만, 양사 모두 공통적으로 본인의 계정을 타인에게 판매, 양도, 대여, 담보제공, 사용허락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한편 인터넷 사업자들이 결성한 자율규제기구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서는 2014. 10. ‘사망자의 계정 및 게시물 관련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위 정책은 ① 원칙적으로 사업자는 상속인에게 고인의 계정 접속권 등을 제공하지 않으나, 경제적 가치가 있는 디지털 정보의 경우 관계 법령 및 약관에 따라 상속인에게 제공할 수 있고, ② 상속인은 피상속인의 계정 폐쇄를 요청할 수 있으며, ③ 사업자는 상속인의 요청이 있으면 기술적ㆍ경제적 현실을 고려하여 공개된 콘텐츠를 별도 매체에 복사하는 백업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11 KISO는 위 정책의 적용을 회원사에게 권장하고 있으나 이는 강제력이 없으며 실제로 회원사별로 각기 다른 약관이나 정책을 운영하고 있음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
나. 해외
1) 법제
국내외 달리 해외 주요국의 경우에는 디지털 유산의 상속 및 관리에 관한 별도의 법률을 제정, 시행중인 곳이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2004년 엘스워스(Ellsworth) 사건을12 계기로 디지털 유산에 관한 법률이 주 단위로 제정되기 시작하였고, 연방 차원에서도 통일주법위원회가 ‘디지털 유산에 관한 수탁자 접속 통일법’(Uniform Fiduciary Access to Digital Assets, 이하 ‘UFADA’)을 제정하여 주법으로 입법을 권장하였는바, 2022. 2. 현재 총 47개 주에서 UFADA를 채택해 입법했다.13) 유럽의 경우 유럽연합 차원의 법규범은 제정되지 않았지만 개별 회원국 중에는 해석론 또는 판례를 통하여 디지털 유산의 상속을 인정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경우 고인의 상속인이 디지털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통설적인 견해라고 알려졌으며,14 특히 2018년 독일 연방대법원은 페이스북(Facebook) 이용 계약상의 지위 자체가 상속인에게 승계된다고(즉 계정 자체가 승계된다고) 판시함으로써15 결과적으로 디지털 유산의 상속을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이 선례로 자리매김했다.
2) 실무
논의의 간명함을 위하여 주요 글로벌 기업의 사례에 한정해 간략히 살펴본다. ①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경우 유족이라 하더라도 법원의 명령이나 관련 법률의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계정에 대한 접근 권한을 부여하고 있으며, 다만 독일의 경우에는 상속 증명서 및 신분증 등의 문서가 있는 경우 상속인에게 계정 접근권을 부여하고 있다. ② 구글(Google)은 일정 기간 동안 계정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계정의 휴면 사실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알리고 그 사람이 계정 데이터를 다운받을 수 있도록 하는 ‘휴면 계정 관리자’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생전에 휴면 계정 관리자 정책을 설정해 두지 않은 채 휴면 계정 상태에 들어가면 일정 기간 이후 계정이 삭제되며, 계정이 삭제되면 계정과 연계된 모든 데이터(구글드라이브, 유튜브 등)이 삭제된다. ③ 페이스북(Facebook)은 이용자가 사망시 계정을 추모 계정으로 전환할 것인지 아니면 삭제할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하며, 전자의 경우 추모 계정 관리자를 지정할 수 있도록 한다. 추모 계정에는 아무도 로그인할 수 없으며(즉 고인의 계정 승계는 허용하지 않음),16 추모 계정 관리자만이 추모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해당 계정을 일정 부분 관리할 수 있을 뿐이다. ④ 애플(Apple)은 애초 이용자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강조하며 계정의 승계나 디지털 유산의 제공 등을 일체 허용하지 않았으나, 2021. 11. iOS 15.2.를 공개하면서 ‘디지털 유산 관리자’ 제도를 도입해 이용자가 생전에 디지털 유산 관리자를 지정하면 이용자가 사망한 후 해당 관리자가 이용자의 계정에 로그인해 애플의 클라우드 서비스(iCloud)에 저장된 사진, 메모, 이메일, 연락처, 캘린더, 메시지, 통화기록, 파일, 건강 데이터, 음성 메모 등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계정 자체를 승계받는 것은 아니며, 사용권이 부여된 미디어(영화, 음악, 도서 등), 결제 정보, 인터넷 계정 정보 등에는 접근할 수 없다.17)
3. 디지털 유산의 상속 관련 검토
가. 계정 자체의 상속 여부
2.가.항에서 살펴보았듯이 현행 민법상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는 상속인에게 당연승계된다(민법 제1005조 본문). 이를 당연승계ㆍ포괄승계의 원칙이라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우리 민법은 당연승계ㆍ포괄승계의 객체를 ‘물건’이나 ‘재산’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의 개념에 관하여 통설은 물권, 채권, 채무 등 현실적인 권리의무에 한정되지 않고 계약상의 지위도 포함하는 폭넓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18 따라서 만약 고인이 생전에 이용하던 인터넷 서비스 이용계약상의 지위, 즉 계정 자체가 위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에 해당한다면 상속인은 그 계약상의 지위(즉 계정 자체의 이용권한)을 상속받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그 계정에 속한 디지털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 독일 연방대법원 판결의 취지 또한 이와 같음은 2.나.항에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모든 인터넷 서비스 이용계약상의 지위가 민법상 상속재산인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사견(私見)으로는 상당수의 인터넷 서비스 이용계약은 이용자가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을 제공하는 서비스 계약이라고 볼 수 있고, 이러한 점에서 재산적 성격보다는 인격적 성격이 강한 계약이라고 생각한다.19 일례로 소셜미디어 상에서 이용자는 현실에서의 자신과는 다른 가상의 새로운 자아(自我)를 창조하고 이를 통하여 현실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인격을 형성하고 이에 기반하여 타인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바, 이런 상황에서 이용자가 아닌 제3자가 이용자의 계정에 접근하여 마치 이용자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이용자의 인격적 가치에 심대한 위협을 야기한다. 이는 제3자가 이용자의 상속인이라고 하더라도 다르지 않다. 특히 인터넷 서비스 이용계약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이메일이나 채팅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일 경우에는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나 통신의 자유 보장 차원에서도 이용자 본인이 아닌 제3자가 계약상 지위를 승계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독일 연방대법원 판결의 취지와 달리 인터넷 서비스 이용계약상 지위는 원칙적으로 상속인에게 당연승계되지 않는 일신전속적 권리(민법 제1005조 단서)이며, 다만 구체적 사정 별로 해당 계약의 특성상 그 계약상 지위가 인격적 성격보다는 재산적 성격이 월등히 큰 경우에 예외적으로 당연승계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 쇼핑몰에 입점하여 영업하는 내용의 이용계약의 경우 통상적으로 이용자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고, 고인이 생전에 축적한 거래상의 신용과 명성(이러한 무형의 가치는 사실 그 자체로 재산권의 대상이다) 상속인이 계승할 필요성이 긍정되므로, 이런 경우에는 계약상 지위 자체가 상속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나. 데이터의 상속 여부
인터넷 서비스 이용계약상 지위의 상속 여부와 해당 계약에 따라 이용자가 생성하여 사업자의 서버에 저장한 데이터(글, 사진, 동영상, 음악, 기타 파일 등)의 상속 여부는 결을 달리하는 문제이다. 다만 앞서 언급하였듯이 데이터 자체는 민법상 물건이 아니라는 견해가 통설이고, 필자 또한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므로, 본 항에서 데이터 자체의 물건성 및 그에 따른 상속 여부는 검토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다. 이러한 전제하에 논의의 편의를 위하여 고인의 데이터가 생전에 공개되었는지 여부, 즉 ‘공개된 데이터’와 ‘비공개된 데이터’를 구분해 살펴본다.
1) 공개된 데이터
(가) 저작물
데이터가 저작물이라면,20 저작물을 창작한 저작자에게 원시적으로 귀속되는 재산적 권리, 즉 저작권(엄밀히 말하여 저작재산권)은 당연히 상속 대상이다. 더욱이 인터넷 서비스 이용계약 약관의 상당수는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여 창작된 저작물의 저작권은 이용자에게 있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어 사업자가 아닌 이용자가 저작권자임을 이미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용자의 사망으로 인하여 상속인이 상속받은 저작재산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저작물 자체에 대한 접근이 보장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상속인이 저작재산권 중 복제권을 행사하려면 저작물 자체를 상속인이 복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업자는 비록 상속인이 인터넷 서비스 이용계약상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저작재산권 행사를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상속인이 고인의 저작물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일례로 국내외 사례에서 살펴보았듯이 계정 내 데이터를 별도 매체에 복제하여 제공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이는 설령 약관에 특별한 규정이 없더라도 고인인 이용자와 체결하였던 이용계약에 따른 부수적 의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 비저작물
만약 데이터가 저작물이 아니라면, 저작재산권의 상속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작물이 아니라고 하여 데이터의 재산적 가치가 항상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고인이 영업상 수집하여 클라우드에 저장한 고객 관련 정보는 인간의 창작적 개성의 발현이 없어 저작물에는 해당되지 않을 수 있으나 그 자체로 재산적 가치가 있다. 재산적 가치가 있는 데이터의 경우 민법의 원칙상 상속재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반면 데이터 중에는 인격적 가치가 상당한 것도 있다. 일례로 고인이 생전에 타인에게 비밀로 한 사생활에 관한 정보(이메일, 채팅 메시지, 일정 등)은 재산적 가치는 거의 없지만 고인이 아닌 제3자에게 알려질 경우 고인의 인격권을 심대히 침해하게 된다. 이러한 데이터의 경우에는 우리 민법상 상속재산에서 제외되는 ‘일신전속적 권리’의 대상이라고 보아 상속이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
2) 비공개 데이터
비공개 데이터라도 만약 해당 데이터가 저작물이라면, 저작권은 공개 여부와 관계없이 저작물이 창작되는 시점에 창작자에게 원시적으로 귀속되는 것이므로 비공개 데이터에 대한 저작권(정확하게는 저작재산권)은 상속 대상이다. 다만 이 경우 고인의 저작인격권은 상속되지 않으며, 고인이 생전에 공개하지 않은 저작물에 관하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속인이 공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통설적인 견해이므로,21 이 점에서 비공개 데이터에 관한 상속인의 저작재산권 행사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하여 상당히 제한될 수는 있으나, 이는 상속제도와 결이 다른 저작권제도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다.
이와 달리 비공개 데이터가 저작물이 아니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산적 가치보다는 고인의 인격적 가치가 큰 데이터로서 고인에게 일신전속하며 상속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또한 고인이 생전에 비공개처리한 의사를 존중한다는 취지에서도 저작물이 아닌 비공개 데이터는 상속재산에서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상속제도는 본질적으로 권리자가 가졌던 권리 자체 또는 그의 연장을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22
4. 결론: 이론과 현실의 괴리, 그리고 입법의 필요성
지금까지 디지털 유산의 상속 문제에 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사견(私見)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디지털 유산과 관련된 고인의 인터넷 서비스 이용계약상 지위, 즉 계정 자체는 원칙적으로 상속될 수 없다. ② 디지털 유산 자체(즉 데이터)의 상속성에 관하여는 해당 데이터의 공개 여부를 불문하고 저작물인지 아닌지, 또 인격적 가치가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그러나 위 견해 중 적어도 ②는 법 이론과 현실간의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데이터가 저작물인지, 또 인격적 가치가 있는지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결국 누군가는 해당 데이터를 직접 보고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을 받는 대상은 공개된 데이터뿐 아니라 비공개된 데이터도 포함돼야 한다. 그 이유는 비공개된 데이터 중에서도 저작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고인이 비공개처리한 데이터 전부가 고인이 아닌 제3자에게 공개돼야 함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비공개’되어야 할 데이터가 ‘공개’되어야 하는 모순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론과 현실의 괴리 또는 모순이 발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민법 상속편의 규정만으로는 디지털 유산의 상속 문제를 이론적ㆍ현실적 양 측면에서 합리적이면서도 타당하게 규율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디지털 유산의 개념, 상속 여부, 디지털 유산의 관리에 필요한 절차, 디지털 유산과 관련된 당사자들간의 권리의무 등 디지털 유산의 처리를 규율할 수 있는 입법에 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될 필요가 있다.23
디지털 유산에 관하여는 사자(死者)의 인격권, 유언과의 관계, 현행 약관의 유효성, 구체적 입법론 등 추가로 논의해야 할 쟁점이 상당수 있으나 지면의 제약과 필자의 능력 부족으로 본고는 여기에서 마무리하며 후속 연구에서 다루고자 한다.
- 데이터의 정의에 관하여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여 왔으나, 최근에는 ‘기계에 의한 판독 가능성’이라는 속성이 주목받는 추세이다(일례로 데이터기반행정법 제2조 제1호의 데이터 정의 참조). 본고에서는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여 데이터를 “정보처리능력을 갖춘 기계에 의하여 판독이 가능한 형태로 존재하는 정형 또는 비정형의 정보”로 정의한다. [본문으로]
- 오병철, “인격적 가치 있는 온라인 디지털정보의 상속성”, 가족법연구 제27권 제1호 (2013. 3.), 164쪽. [본문으로]
- 유산의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이 남겨 놓은 재산’이다. 엄밀히 말하여 유산은 민법상 용어는 아니지만, 상속인이 피상속인으로부터 물려 받는 재산을 칭하는 단어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현실을 감안하여 본고에서는 유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본문으로]
- 정보는 민법상 물건(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가능한 자연력. 제98조)이 아니고 물건의 본질적 속성인 배타성과 경합성이 없으므로 물건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가 통설이며, 필자도 이에 찬성한다. 물론 반대 견해도 존재한다. [본문으로]
- 학계에서는 ‘디지털 유산’이라는 용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디지털 유품’, ‘디지털 정보’라는 용어도 혼용되고 있다(양 단어간 띄어쓰기 유무 불문). 윤주희, “디지털유품의 상속성에 관한 민사법적 고찰”, 법학연구 제14권 제1호(2011. 4.), 183-228쪽, 오병철, 앞의 논문(각주 2) 등 참고. 사견(私見)으로는 유산이나 유품(遺品)은 재산 또는 물건을 전제로 한 용어인데, ‘고인이 인터넷상에 남긴 정보’가 재산 또는 물건인지부터 다툼이 있으므로(각주 5), ‘디지털 유산’ 또는 ‘디지털 유품’이라는 용어보다는 ‘디지털 정보’와 같은 용어가 보다 적절하다고 생각한다(한편 표준맞춤법상 양 단어간 띄어쓰기를 하는 것이 정확한 표기법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 전반적으로 ‘디지털 유산’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다른 용어를 사용할 경우 독자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으므로, 본고에서도 ‘디지털 유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본문으로]
- 일례로 KISO 저널 제3호 (2010. 11.)에서 위 주제를 특집으로 다룬 바 있다. 당시 게재된 글은 다음과 같다. 김기중, “사자(死者)의 ‘디지털 유품’의 법률문제”(발제문), 심영섭, “유럽에서의 사자(死者)의 디지털유품 상속”(토론문), 권헌영, “‘죽을 이’의 자기결정권이 먼저 보장되어야”(토론문), 조인혜, “이미 ‘DEATH 2.0’의 시대… ‘디지털 유품’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토론문), 김광수, “우선 ISP의 자율적인 절차 마련이 필요하다”(토론문), 김유향,“‘디지털 유품’ 관련 쟁점과 국내 입법현황”(토론문), 윤주희, “‘디지털 유품을 상속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상속인이 판단한다”(토론문). 지면 관계상 그 외 학계에서 발표되었던 연구 성과들에 관한 소개는 생략한다. [본문으로]
- 지면 관계상 입법안에 대한 소개는 생략한다. 상세한 내용은 윤주희, “디지털유산의 승계에 대한 법규정 제정 필요성 고찰”, 법제처 2013년 입법연구 보고서(2013. 11.), 118-120쪽, 양종찬, “디지털유산 중 비공개 정보의 상속성”, 중앙법학 제22집 제4호(2020. 12.), 58-60쪽 각 참조. [본문으로]
- 양종찬, 앞의 논문(각주 8), 57-58쪽. [본문으로]
- 네이버 프라이버시 센터(https://privacy.naver.com/) 중 ‘디지털 유산 관련 정책’ 참조. (최종접근일: 2022. 2. 28. [본문으로]
- 카카오 고객센터(https://cs.kakao.com/) 중 ‘계정-탈퇴’ 부분 공통 질문 참조. (최종접근일: 2022. 2. 28. [본문으로]
- KISO 정책규정 제27조~제29조. [본문으로]
- 존 엘스워스(John Ellsworth)는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으로 2004년 21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엘스워스의 아버지는 그가 주고받은 야후(Yahoo) 계정의 이메일을 수집하기를 원하였으나 야후는 프라이버시 정책을 이유로 거절하였다. 엘스워스의 아버지는 소송을 제기하여 미시간주 법원으로부터 이메일계정 정보 상속 판결을 받았다. Jonathan J. Darrow & Gerald R. Ferrera, Who owns a decedent’s e-mails: Inheritable probate assets or property of the network, 10 NEW YORK UNIVERSITY JOURNAL OF LEGISLATION AND PUBLIC POLICY 281, 281-283 (2007). [본문으로]
- https://www.ncsl.org/research/telecommunications-and-information-technology/access-to-digital-assets-of-decedents.aspx (최종접근일: 2022. 2. 28. [본문으로]
- 윤주희, 앞의 보고서(각주 8), 121쪽. [본문으로]
- BGH, Urteil vom 12.07.2018 – Ⅲ ZR 183/17. 위 판결을 분석한 연구로는 이성범, “상속법상 포괄승계원칙과 디지털 유산”, 가족법연구 제34권 제3호(2020. 11.), 251-296쪽. [본문으로]
- 독일 연방대법원 판결(각주 16)에도 불구하고 2022. 2. 28. 기준으로 홈페이지에 공개된 약관상으로는 계정 승계 불가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https://www.facebook.com/legal/terms/update (최종접근일: 2022. 2. 28.) 참조. 참고로 독일 연방대법원 판결(각주 16)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은 계정 자체의 승계 및 열람을 거부하고 계정에 저장된 데이터를 별도 매체에 백업하여 제공했을 뿐이라고 알려졌다. 이성범, 앞의 논문(각주 17), 283쪽 각주 70. [본문으로]
- https://support.apple.com/ko-kr/HT212362 (최종접근일: 2022. 2. 28. [본문으로]
- 김상용, “디지털 유산의 상속성 – 상속법의 관점에서 – ”, 법학논문집 제39집 제1호(2015. 3.), 75쪽. [본문으로]
- 유사한 취지로 계약상 지위가 재산권적 성격을 띄더라도 해당 지위가 재산권적 성격보다는 인격권적 성격이 큰 ‘우세적 인적관계’인 경우에는 상속성을 부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김세준, “디지털유산에 대한 상속인의 정보청구권”, 가족법연구 제31권 제3호(2017. 9.), 324-325쪽. [본문으로]
- 판례와 통설은 저작물의 성립 요건인 창조적 개성 및 창작성을 폭넓게 인정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디지털 유산의 상당수는 저작물에 해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본문으로]
- 오승종, 저작권법(2020), 502쪽. 서울민사지방법원 1995. 6. 23.자 94카합9230 결정도 동일한 취지이다. [본문으로]
- 이진기, “상속의 이념과 방향”, 비교사법 제26권 제1호(2019. 3.), 293쪽. [본문으로]
- 오병철, 앞의 논문(각주 3), 166-167쪽.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