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신이라는 착각

미디어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허위정보나 음모론 등은 등한시하기 어려운 주제다. 다만 이런 문제에 대한 접근은 늘 제한적이었다. 즉, 극단적이고 갈등적인 콘텐츠에 가시성을 부여하고 편향적 정보 소비로 우리를 안내하는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 개인 맞춤형 콘텐츠로 인해 발생하는 필터버블, 혹은 사회 통합보다는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언론 등으로 인해 자신의 기존 신념에 반대되거나 부합하지 않는 정보나 사고는 배척하는 현상이 심각해진다고 판단하고, 이를 우려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는 뇌과학이나 신경과학, 인지심리학 등 미디어 분야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는 허위정보나 음모론, 혹은 극단적인 사고에 이끌리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건 아마도 점점 양극단으로 치닫는 사회의 근본적인 원인과 이에 대한 해법을 찾지 않으면 공동체의 분열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필리프 슈테르처의 저서, <제정신이라는 착각>을 접하게 되었다.

그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인간의 비합리성

독일 출신의 신경과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확신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기능은 무엇인지, 비합리적인 확신이 만연해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 등을 철학, 사회심리학, 인지심리학, 진화생물학, 신경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면서 분석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자신의 확신이 합리적이고 사실에 토대한다고 여기고 있지만, 그건 단지 환상에 불과하다. 인지 왜곡을 보지 못하는 맹점 편향으로 인해 대부분은 자신의 합리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 자체가 자신의 비합리성을 증명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망상적인’ 확신과 ‘정상적인’ 확신의 형성 과정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망상은 인식적으로 비합리적이지만 그 외에도 인식적 비합리성은 도처에 퍼져있다. 정상인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종교적 믿음, 음모론, 인종적 편견, 미신 등이 그런 사례다.

그렇다면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 것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신경과학적으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의 뇌가 확신을 형성하는 방식이 건강한 사람의 뇌와 본질적 차이가 없다고 해서 거기서 생겨난 확신이 ‘정상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주관적인 고통을 수반하거나, 현실에서 동떨어져 있거나, 삶에 커다란 제한이 초래되는 경우, 그런 확신은 질병으로 간주할 수 있다. 망상의 핵심 기준인 인식적 비합리성이 만연해 있다 하더라도, 망상 자체를 경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사실, 확신은 그 정의 자체에 비합리성이 내재되어 있다. 독일어 사전인 두덴(Duden)은 확신을 ‘흔들리지 않는 굳은 의견’이라 정의하고 있는데, 상반되는 증거가 있는데도 흔들리지 않고 확신을 고수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비합리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비합리성이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익할 때도 있다. 먼저, 비합리적 확신은 사회적 소속감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 사회집단은 관심사와 세계관을 공유하므로 신념과 확신은 집단 소속감을 느끼는데 중요할 수 있다. 나아가 자신의 확신을 표방하고 주장하는 능력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또한 오류관리 이론에 따르면, 비합리적 확인은 실수의 비용을 최소화함으로써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즉, 위험에 대한 과도한 대응으로 중대한 실수를 피하게 만든다. 아울러 확신은 빠른 결정이 요구될 때 쓸데없이 진실을 찾느라 힘을 낭비하지 않도록 돕기도 하고, 막막한 현실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도 하고, 세상에 대한 긍정적 환상을 제공함으로써 정신건강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왜 비합리적 확신에 빠지는가?

인간의 비합리성은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 책에서 제시된 원인들 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지적 편향이 확신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지적 편향은 지각과 사고에서 일관된 패턴의 오류를 범하는 경향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확증편향으로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주목하고, 반대 증거는 무시하는 편향성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확신을 되도록 고수하고자 하며, 확신에 위배되는 정보를 맞닥뜨리더라도 기존 확신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똑똑한 사람들이 확증 편향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자신의 명제를 그럴 듯한 논지로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빠르고 간소한 휴리스틱’ 아이디어로도 비합리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의 뇌는 계속해서 지각과 행동의 결정을 내리느라 바쁜데, 뇌의 제한된 처리 능력 탓에 간단한 규칙에 의존하다 보니 비합리적 결정에 다다른다는 것이다. ‘재인식 휴리스틱’ 이론도 존재한다. 이는 인간이 여러 대상 중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할 때 익숙함에 기반해 선택한다는 이론이다. 이런 식의 휴리스틱은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가용성 휴리스틱 또는 WYSIATI1라고 부른 의사결정 원칙과도 유사하다.

셋째, 오류 관리 이론 역시 이를 설명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진화심리학자 마티 헤이즐턴(Martie Haselton)과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가 제시한 이 이론은 잠재적으로 위험한 오류를 피하려는 진화적 선택에서 비합리성이 발생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예컨대, 남성과 여성이 상대방의 이성적 관심을 평가하는 데 서로 차이를 보이는 현상(남성은 여성에 비해 이성의 호감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이나, 실제로는 없던 위협을 느끼고 대처하는 행위 등을 인류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해석한다.

넷째,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집단 소속감 형성을 위해 진실보다 신념과 가치의 공유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는 비합리적 확신으로 이어진다. 사회학자인 댄 카한(Dan Kahan) 교수에 따르면 확신은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보여주기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즉, 중요한 것은 어떤 확신이 인식론적 의미에서 진실한가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정치 진영이 표방하는 가치와 맞아 떨어지느냐의 여부다. 카한에 따르면, 확신은 그 자체로 독립된 산물이 아니라 늘 배경에 좌우된다.

다섯째,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예측처리 이론’ 또한 비합리성의 요인이다. 예측처리 이론은 뇌가 생성 모델로 일하며 감각 데이터를 근거로 자신의 예측에 부합되는 데이터를 만들어낸다고 가정하는 뇌 기능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뇌는 ‘예측 기계’로서 내적 세계 모델을 바탕으로 세상에 대한 예측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감각 기관으로부터 입력되는 실제 감각 데이터와 이 예측을 비교하여 차이를 수정한다. 즉, 뇌가 하는 일은 기존 지식과 경험에 기초한 내적 모델로 세상을 예측하고, 실제 입력과의 차이에서 오는 예측 오류를 줄이는 것이다. 예측과 감각 데이터 사이의 균형 정도에 따라 비합리적 확신 경향이 달라진다. 이 이론에 따르면, 감각 데이터에 더욱 높은 비중을 줄 경우 확신을 더 쉽게 받아들이고 포기하기 어려워지므로 비합리적 확신이 증가한다.

비합리적 확신에 대처하는 방법

이처럼 비합리적 확신은 진화적 관점에서 본다면 생존을 위한 하나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비합리적 확신이 위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합리성으로 굳은 확신은 무엇보다 인류가 공동체 구성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런 확신으로 말미암아 분열이 생겨나,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을 거부하고 배제하면 서로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일이 어려워지거나 불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합리적 확신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확신이 원칙적으로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가설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능동적으로 이를 검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울러 우리 스스로 자신과 타인의 비합리성을 인정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소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이런 시도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모순되는 증거를 여간해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특성을 보이는 망상적 확신조차 완전히 요지부동은 아닌데. 하물며 건강한 사람의 비합리적 확신은 더욱 그럴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이런 시도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독일이 말한다’라는 프로젝트가 그런 사례다. ‘독일이 말한다’는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가 양극단으로만 향하는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만나는 대화하는 장을 마련했는데, 이를 일컫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를 분석한 연구자는 정치적으로 입장이 완전히 다르더라도 대화를 통해 편견이 흔들리고 극단적인 생각이 누그러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2.

음모론이나 잘못된 확신이 극단적인 분열을 초래하기 전에 우리도 건설적인 대화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많은 이들이 ‘제정신’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난다면 대화의 가능성은 훨씬 커지지 않을까 싶다.

  1. ‘What You See is All There Is(네게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다)’의 약자로 결정을 할 때 힘들게 다른 정보를 찾기보다 지금 주어진 정보를 신뢰하는 경향을 의미한다(p.146). [본문으로]
  2. 한겨레 (2022.05.19.). ‘한국이 말한다’를 시작할 때, Available: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43538.html [본문으로]
저자 : 진민정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