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을 현실로 만드는 우리 삶의 체계, 전환적 과학을 기대하며

지아 통의 책은 무엇보다 먼저 레이첼 카슨을 생각나게 했다. 60년 전 카슨은 처음으로 과학이 개발주의에만 의존할 때의 심각성을 제기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람들은 대량 농업을 위해서 살충제와 제초제를 저렴하게 생산하고 ‘아낌없이’ 살포했다. 마치 살충제는 해충만을 제거하고 제초제는 잡초만을 골라서 없앨 것이라고 믿었다.

살충제는 눈이 없다!

모든 생명의 형태는 공통의 원리를 내장하고 있다. 그래서 곤충을 죽일 수 있다면 다른 생명체도 위험하다. 살충제의 작동 원리는 주로 신경계를 공격한다. 살충제의 공격은 신경계를 가진 모든 생명체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살충제는 해충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없다. 살충제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DDT는 곤충만이 아니라, 새도 다람쥐도 인간 아이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정작 DDT는 말라리아 모기를 통제하지도 못했다. 말라리아 모기는 처음 DDT 살포로 대부분 죽었지만, 일부는 DDT에 내성을 가진 개체도 있었다. 그 개체들은 DDT에 내성을 가진 다음 세대를 남김으로써 말라리아 모기는 다시 이전 규모로 회복되었다. 결국 DDT는 소용없는 것이 되었고 더 강한 살충제를 생산해야 했다.

1962년 침묵의 봄이 출간된 후 사람들은 크게 놀라면서 행동을 바꾸기 시작했지만, 자연을 쉽게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인간은 마땅히 자연의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는 세계관은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을 바꾸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었고, 화학산업의 공격도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곤충들을 박멸하려는 욕망에 눈이 멀어 지금도 여전히 “매년 200만톤이 넘는 살충제를 식물과 토양에 퍼붓고 있다(35)”. 살충제는 먹이 사슬에 곧바로 타격을 준다. 곤충을 먹고 사는 새들도 많이 사라졌다. 유럽에서는 지난 30년 동안 새들의 수가 4억 마리나 줄었고 특히 풀밭종다리 개체수는 70퍼센트나 급감했다. 자연을 화학적으로 통제하려는 시도는 아직도 계속 진행 중이다.

리얼리티 버블, 우리를 지배하다

리얼리티 버블(Reality Bubble)은 상충하는 두 단어의 합성어이다. 리얼리티란 실체적인 것을 가리키는 반면에, 버블은 곧 사라질 환상을 상징한다. 우리가 리얼리티라고 믿고 있던 것이 사실은 그다지 신뢰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단어다. 우리의 믿음이 너무도 강한 나머지, 실체가 없는 거품이 실체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의외로 그런 일은 아주 일상적인 현상이다.

우리의 맹점이 그런 잘못된 믿음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원천적으로 시각적 맹점을 가지고 태어난다. 뇌신경이 맹점 영역을 외삽해서 시야를 구성하기 때문에 우리는 맹점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시각은 개체만의 감각이 아니라 사회와 연관된 감각이다(114). 우리는 인간 집단 차원의 맹점과 오랫동안 전승된 문화적 맹점도 가지고 있다. 시각적 맹점이 그러하듯이 우리는 사회문화적으로 만들어진 맹점도 잘 의식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거짓 현상을 현실로 믿으며 우리의 열정과 삶을 소비하곤 한다.

모든 맹점은 불가피하게 외삽되어야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외삽할 것인가이다. 맹점을 외삽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태도, 가치, 윤리, 세계관이 작동한다. 이것은 우리의 인식에 관한 문제이며 동시에 우리의 존재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와 세계의 존재 방식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 삶을 떠받치는 익숙한 체계

인간은 그토록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데는 큰 맹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 맹점을 극복하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사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맹점이 만든 거품을 조금도 의심하려 하지 않고 있다.

“인간은….. 과학과 기술의 도움으로 우주의 먼 거리를 내다보고, 가장 작은 미생물을 보고, 인간의 몸을 꿰뚫어 보고, 물질 세계를 구성하는 원자들을 본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한 가지 기본적인 것이 있다. 우리 종이 어떻게 생존하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완전히 까막눈이다(128).”

무엇보다 우리는 인간을 우리의 환경(타자)과 분리된 존재로 간주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인간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존재도 아니고, 사랑하거나 아름다움을 이해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도 아니다(96). 우리는 자연의 다른 종들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지만 그런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은 우리의 삶을 떠받치는 시스템(체계)들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삶을 떠받치는 3개의 주요 체계가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1) 우리의 식량 체계는 “생명의 순환을 멋대로 이용하고 공장식 사육으로 동물을 생산한 결과, 가축의 수가 야생에서 살아가는 포유동물보다 15배나 많다”. (2) 우리의 에너지 체계는 “화석 연료를 마구 끌어내서 쓴 결과,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보다 45퍼센트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방출했다. (3) 우리의 쓰레기 체계는 “재생의 순환을 무시했고 기계에 의지하여 공기에서 질소를 인위적으로 뽑아내고”(247) 있다.

변화의 흐름도 일어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도 나름의 지능이 있다는 것을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했다”(391). 2018년 콜롬비아 대법원은 아마존 분지의 지위를 ‘독립적인 권리 주체’로 인정했고, 2017년 뉴질랜드 왕가누이강도 인간과 같은 법적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우리가 동물의 관점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리 익숙해진 것은 아니다.

시스템이 리얼리티를 구성할 때

우리가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에 부합하고자 한다면, 늦기 전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리얼리티를 구성할 힘이 있다. 시스템은 리얼리티를 구성함으로써 우리의 인식에 관여하며 우리의 존재를 구축한다. 우리의 시스템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려서 그것이 있다는 것조차 느낄 수 없다. 시스템은 우리의 삶을 유지해주는 일종의 ‘자연’이 되어 버렸다.

시스템은 우리를 순종하는 존재로 길들이고 있다. 시스템이 우리의 삶을 지원하기 위해서 일상적인 감시를 수행한 파생 효과이다. 결과적으로 “감시는 우리를 부추긴다. 평소처럼 그냥 살도록, 눈을 감고 못 본 척 외면하도록 강제한다”(379).

우리는 시스템이 만드는 리얼리티 버블에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도 어렵고 극복하기도 어렵다. 맹점을 인식하는 것도 어렵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고려하는 것이 그렇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안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특히 이 문제는 개별 인간 차원이 아니라 집단 인간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개인의 뛰어남만으로 해소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인간집단 인식적 전환, 사고의 전환, 패러다임의 전환 문제이다. 리얼리티 버블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시스템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시스템 설계 차원에서의 전환을 고려하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시스템에게 윤리를 학습시키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내장하는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설득할 수 있을까?

저자 : 김지연

고려대 과학기술학 박사 / 고려대 연구교수 / 한국과학기술학회 편집위원 / [머신러닝 기술의 이해: 기술사회학과 공학적 측면을 중심으로] 공동저자 / [기술 거버넌스를 위한 질문 파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