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화폐의 현황과 미래

매년 5월 22일이 되면 가상화폐 커뮤니티 참가자들은 피자를 떠올린다. 2010년 5월 22일, 미국 플로리다주의 라스즐로 핸예츠(Laszlo Hanyecz)라는 청년이 파파존스(Papa John’s)에서 10,000개의 비트코인을 지불하고 피자 두 판을 샀다.1 10,000개의 비트코인과 파파존스 피자 두 판을 바꾼 이 거래가 인류 역사상 가상화폐가 상업용 거래에 사용된 시초였으며, 이후 가상화폐 커뮤니티에서는 매년 5월 22일을 비트코인 피자의 날(Bitcoin Pizza Day)로 정해 이를 기념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가상화폐의 기반인 디지털 원장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가상화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면서, 가상화폐의 교환 가치가 급속하게 증대되었다. 예컨대, 2010년 피자 두 판과 바꾼 10,000개의 비트코인의 가격은 당시에 개당 0.0040달러, 총 40달러(현재 환율로 원화 4만 8천 원가량)에 불과했으나, 2022년 1월 31일 종가 기준으로는 개당 38,483.13달러, 총 384,831,300달러(현재 환율로 원화 4천 6백억 원가량)에 달한다.2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가상화폐의 부상은 19세기 미국의 자유은행주의 (Free Banking) 사조3, 1930년대 시카고 계획 (Chicago Plan)4 등을 상기시키며 최근 다양한 논의를 낳고 있다. 이 글에서는 통화로서의 비트코인의 가능성과 한계, 탈중앙화 철학으로 탄생한 가상화폐가 역설적으로 일부 소유주 및 채굴 기관에 집중된 현상, 투자 수단으로서의 가상화폐의 가치, 디지털 화폐의 미래 등을 간략하게 살펴본다.

통상적인 화폐는 거래의 매개 수단, 가치 계산의 단위, 가치의 저장 수단의 역할을 한다. 일부 소비자들과 공급자들이 비트코인을 거래의 매개 수단으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비트코인을 다른 재화의 가치를 계산하거나 저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에는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이 지나치게 크다. 달러화, 유로화, 엔화 등 주요 기축 통화의 경우 외환시장에서 통상적인 가격 변동성은 연율 10%가량이며, 금(gold)은 20~30%, 가격 변동이 심한 정보기술 기업 등의 성장주도 높아야 50~100% 정도이다. 이에 반해 비트코인은 통상 연율로 200%가 넘는 가격 변동성을 보인다. 또한 비트스탬프(Bitstamp), 크라켄(Kraken) 등의 적격 거래소의 비트코인 거래 체결 가격 데이터에서도 비연속적인 가격 변동(jump)이 매일 관찰된다. 이 밖에도 디지털 지갑을 통해서만 비트코인을 입출금할 수 있다는 점과 거의 모든 나라에서 비트코인이 예금 보호의 대상의 아니라는 점도 비트코인의 화폐 기능을 제약하는 요인들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비트코인은 탈중앙화 철학으로 탄생했다. 중앙화된 발행 주체가 없고, 사용자들이 익명화되어 있다는 점은 가상화폐의 주요 장점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 논리의 이면에는 전체 블록체인의 위험의 정도를 시의적절하게 진단할 수 있는 주체가 없다는 점이 간과되어 있다. Makarov and Schoar (2021)는 1) 비트코인 거래가 대부분 투자와 투기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2) 탈중앙화/익명화된 비트코인 프로토콜이 자금 세탁(money laundering)에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고, 3) 50여 명의 채굴자가 전체 채굴 용량의 50%를 차지하여 이른바 “51% 공격 (51% attack)”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비트코인 생태계에 존재하는 채굴과 소유의 집중화는 비트코인을 체계적 위험(systematic risk)에 노출하고, 앞으로 비트코인 등의 가상화폐가 광범위하게 실제 경제생활에서 활용될 때 발생하는 사회적 후생을 일부의 블록체인 참여자들이 독점할 수 있다는 점을 함의한다.

대체 투자자산으로서의 비트코인의 장단점에 관한 연구도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학계에서는 비트코인이 세계 경제의 불활실성 (Bouri et al., 2017), 금과 미국 달러화 (Baur et al., 2018), 경제정책의 불확실성 (Demir et al., 2018) 등을 헷지(hedge)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실증증거가 보고되었다. 이에 반해 대체 투자 및 헷지 수단으로서의 비트코인의 장점이 과대평가 되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비트코인 거래 시장은 과도한 변동성(excessive volatility)과 붕괴 위험(crash risk)에 노출되어 있으며 (Kalyvas et al., 2020),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과 시장 참가자들의 감정(emotion)적인 요인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도 존재한다 (Ahn and Kim, 2021). 필자가 미국 주식 시장과 가상화폐 시장 사이에 비대칭적 꼬리 위험이 존재하는지 실증 분석한 결과,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모두 미국 주식 시장이 약세일 때의 꼬리상관관계(tail dependece)가 비대칭적으로 컸다. 이는 자산 가격 하락기에 대체 투자 자산으로서의 비트코인의 매력이 크지 않음을 함의한다. 최근에는 비트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매우 큰 위험거래자산일 뿐, 화폐로서의 효용성은 제한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예컨대, Yermack (2015)는 비트코인의 일별 가격 변동이 기타의 법정 통화들의 가치와 거의 상관이 없는 점을 지적했다. 이 경우 달러, 유로화 등의 통화에 대한 위험 관리 목적으로 비트코인을 활용할 수 없으며, 나아가 비트코인 자체의 가격 변동 위험을 헷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만(Paul Krugman)도 최근 “가상화폐는 어떻게 새로운 서브프라임이 되었나 (How Crypto Became the New Subprime)” 제하의 뉴욕 타임즈 기고에서 시카고 대학의 NORC (the nonpartisan and objective research organization NORC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이하 NORC) 자료를 인용하여 미국의 가상화폐 투자자의 55%가량은 대학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5 가상화폐의 급격한 가격 변동이 금융 시스템 전체를 위협하지는 않겠지만, 그 위험이 일부 저학력/저소득 계층에만 오롯이 전이될 가능성은 상존한다.

비트코인과 유사하게 탈중앙화 철학 기반으로 발행되는 민간 디지털 화폐는 어떨까? 2019년 6월 18일, 페이스북은 송금이나 결제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화폐 리브라(Libra)를 발행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페이스북은 자체 플랫폼의 힘과 스테이블 코인6 유행을 결합하여 민간 디지털 화폐 사업에서 주류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국가가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화폐 권력에 반기를 든 리브라 프로젝트는 규제 당국의 반발로 결국 좌초되었다. 리브라의 실패는 카노사의 굴욕(Road to Canossa)을 상기시킨다. 1077년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민간 디지털 화폐)는 교황 그레고리오 7세(≈화폐 권력)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결국 굴복했다. 민간 디지털 화폐가 널리 사용되면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효과가 크게 제약된다. 따라서 각국 규제 당국이 민간 디지털 화폐를 용인하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일상적인 경제생활에서 민간 디지털 화폐 제도가 자리 잡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여겨진다.

돌파구는 없을까? 비트코인이 지향하는 탈중앙화 철학에 매우 역설적이지만, 각 국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이하 CBDC)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금융생태계가 활발하게 형성되면서, 각 국의 중앙은행들도 CBDC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인민은행이 발행하고 중국의 6대 국유상업은행 등의 지정운영기관이 태환을 보장하는 디지털 위안화가 선전, 베이징, 청두 등에서 이미 시범 운영 중이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기술 실험을 진행 중이다.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BIS)은 미국, 유럽 등의 주요국과 CBDC 연구그룹을 결성하여 CBDC가 기본적으로 충족해야 할 3대 원칙을 구체화했다. 1) CBDC 발행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및 금융안정 정책 수행을 저해하지 말아야 하고, 2) 현행 본원통화와 상호보완적 관계를 가지면서 동시에 시중은행 계좌 등의 민간통화와 공존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3) 지급결제 부문의 경쟁과 혁신을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CBDC는 크게 거액결제용과 소액결제용으로 나눌 수 있다. 거액결제용 CBDC는 주로 금융기관 간 지급 및 결제 거래에 활용되는데, 독일 중앙은행, 싱가포르 통화청, 프랑스 중앙은행, 남아프리카공화국 중앙은행 등에서 시험/개발 중이다. 소액결제용 CBDC는 중앙은행 내 예금 계좌와 전자 발행 토큰 등의 형태로 일반인에게 제공될 수 있으며, 중국과 스웨덴 등에서 모의시험 중이다.

본 글에서는 지급 결제 및 투자 수단으로서의 비트코인의 가능성과 한계, 민간 디지털 화폐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의 현황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디지털 화폐가 미래의 경제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행여 5월 22일 즈음에 피자를 드시게 되면 디지털 화폐의 미래를 한 번쯤 생각해 보시기를 권한다.


참고문헌

Ahn, Y., & Kim, D. (2021). Emotional trading in the cryptocurrency market. 『Finance Research Letters』, 42, 101912.

Baur, D. G., Dimpfl, T., & Kuck, K. (2018). Bitcoin, gold and the US dollar–A replication and extension. 『Finance Research Letters』, 25, 103-110.

Bouri, E., Gupta, R., Tiwari, A. K., & Roubaud, D. (2017). Does Bitcoin hedge global uncertainty? Evidence from wavelet-based quantile-in-quantile regressions. 『Finance Research Letters』, 23, 87-95.

Demir, E., Gozgor, G., Lau, C. K. M., & Vigne, S. A. (2018). Does economic policy uncertainty predict the Bitcoin returns? An empirical investigation. 『Finance Research Letters』, 26, 145-149.

Kalyvas, A., Papakyriakou, P., Sakkas, A., & Urquhart, A. (2020). What drives Bitcoin’s price crash risk?. 『Economics Letters』, 191, 108777.

Makarov, I., & Schoar, A. (2021). Blockchain analysis of the bitcoin market (No. w29396).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Yermack, D. (2015). Is Bitcoin a real currency? An economic appraisal. 『Handbook of digital currency』, Academic Press, pp. 31-43.

  1. 라스즐로 핸예츠의 인터뷰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jNMgeqUgks [본문으로]
  2. 참고로 비트코인의 시가총액(market capitalization)은 2021년 11월 8일 기준 USD 1,274,831,490,851에 달했으며, 이는 2021년 12월 31일 기준 한국 유가증권 (KOSPI) 시장 전체의 시가총액인 2,203조 원의 7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본문으로]
  3. 미국의 7대 대통령인 앤드루 잭슨은 중앙은행 설립을 반대하고, 아무 은행이나 화폐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유은행제도를 주장했다. 자유은행제도에서는 정부가 발행하는 법정화폐보다 개별 은행이 발행한 사적인 화폐가 더 큰 경제적 역할을 수행한다. [본문으로]
  4.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중앙은행의 본원통화와 민간은행의 신용화폐가 공존한다. 1930년대 미국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자들이 민간은행의 화폐 창출 기능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신용 팽창과 수축 순환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문으로]
  5. NORC의 서베이 결과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norc.org/NewsEventsPublications/PressReleases/Pages/more-than-one-in-ten-americans-surveyed-invest-in-cryptocurrencies.aspx [본문으로]
  6. 달러화 등의 기존 자산과 가치가 연동되는 가상화폐를 일컫는다. 가상화폐를 발행하려면 달러화로 준비금을 보유해야 한다. 대표적인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 달러화와 1대 1로 교환되는, JP Morgan의 JPM 코인이다. [본문으로]
저자 : 안용길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