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의 신우익, 그 비동시성의 동시성
제 목: 거리로 나온 넷우익-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보수가 되었는가
원 제: ネットと愛國 – 在特會の「闇」を追いかけて
저 자: 야스다 고이치
역 자: 김현욱
출판사: 후마니타스
출간일: 2013년 5월 27일
프리랜서 르포라이터인 야스다 고이치의 <인터넷과 애국: 재특회의 어둠을 좇아서>는 2012년 4월 출간 즉시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이하 재특회)’을 1년 반 넘게 추적해 기록한 르포르타주이다. 한국에는 <거리로 나온 넷우익>이란 제목으로 2013년 5월 27일 번역출간되었다. 마침 5.18 광주민주화항쟁 기념일 직후였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라는 사이트가 광주항쟁 희생자의 당시 관 사진을 두고 “홍어택배” 운운하는 발언을 해 큰 사회적 파장이 일어났던 무렵이다. ‘일베현상’과 맞물려, 일본의 재특회도 담론의 중심으로 단숨에 빨려들어왔다.
일베라는 한국의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거리로 나온 넷우익>은 하나의 완성도 높은 르포로서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가장 큰 장점은 저자 야스다 고이치의 글이 지닌 흡인력이다. 그야말로 박진감이 넘친다. 읽기 전에는 정치적·이념적 맥락에 관한 설명이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좀 따분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졌다. 기우였다. 저자는 그런 사회적 맥락을 최대한 살려내면서도 관념적이거나 현학적인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고 군데군데 자신의 날카로운 통찰을 덧붙이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인간군상을 묘사하는 데에서 드러나는 ‘발자크적 집념’이다. 그는 재특회의 극단적 인물들을 만나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듣고, 언쟁을 벌이고, 때로 멱살잡이까지 하는 상황에 이르면서도 구체적 인간의 냉철한 기록자라는 본분을 결코 잊지 않는다. 그래서 재특회와 그 주변 인물 하나하나는 나름의 곡절과 사연을 지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우선 재특회가 어떤 단체인지부터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이 단체는 2007년 1월 설립됐다. 회장은 사쿠라이 마코토(본명 다카다 마코토)이다. 원래 사쿠라이 마코토는 2ch이라는 일본최대 인터넷 게시판에서 활동해온 ‘인터넷 논객’이다. 특히 극우 성향의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명인이었다. 그는 역사 교과서에 적힌 종군위안부의 비참한 처지가 모두 엉터리이고,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이 허구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재일코리안(한국계와 총련계를 통칭)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면서 “반도로 돌아가라”라고 말한다. 또 오늘날 일본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저소득층에게 제대로 국가가 지원금을 주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재일코리안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복지에 무임승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그의 선동적인 발언들이 인터넷과 극우성향의 케이블방송 ‘채널사쿠라’를 통해 알려지자 지지자들과 팬들이 급속히 불어났다. 사쿠라이 마코토를 위시한 넷우익들은 인터넷 스터디그룹인 동아시아문제연구회를 만들었다. 이것이 사실상 재특회의 전신이다.
재특회는 단지 인터넷에 글을 쓰는 활동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머리띠를 두르고 확성기를 들고 직접 거리로 나갔다. “바퀴벌레 조선인, 반도로 돌아가라!” “짱개들을 도쿄 만에 쳐넣어라!” “극좌세력을 바다에 빠뜨려라!” “한국인이 보이면 돌을 던져라!” 험악한 말투와 적나라한 욕설을 사용하는 이들은 순식간에 일본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리더와 활동가 조직을 갖춘 넷우익의 등장은 야스다 고이치의 말을 빌자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때까지 넷우익이란 과격한 발언을 하기는 해도 그저 인터넷이라는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었다. 현실세계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다들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재특회는 그런 선입견을 산산조각내며 어마어마한 활동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재특회의 오프라인 활동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회원 수는 물론이고 단체 후원금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한류 연예인의 공항입국을 막으면서 한국언론의 취재대상이 되기도 했다. 재특회는 순식간에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우익단체 중 하나로 올라섰다.
재특회의 특징은 특유의 저열한 언어와 시위방식 탓에 기존의 우익세력들로부터도 강하게 비판받는다는 점이다. 재특회가 만들어지는데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신우익의 “어른들”은 재특회가 조직으로 성장할수록 거리를 두거나 떠나갔다. 1960·70년대 학생운동을 경험한 세대가 자신이 몸 담았던 좌익은 물론, 전통적인 우익세력까지 비판하며 새로운 우파 블록을 형성했는데 이들을 통칭해 일본에서는 신우익이라 부른다. 재특회 역시 크게는 신우익의 흐름에 속한다(다만 인터넷 활동을 활발하게 하기 때문에 신우익과 구별해서 보통 ‘넷우익’이라고 지칭한다). 신우익의 어른들이 떠나가는 이유는 한결같다. “재특회에는 사상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재특회를 두고 욕설과 감정의 표출만 있을 뿐 운동의 이상이랄까 목표라는 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재특회측은 “우익세력이 듣기좋은 말만 하지 도대체 한 게 뭐냐”고 받아친다. 확실히 정치나 사회문제에 아무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광범위하게 끌어들인 재특회의 대중동원력은 어떤 일본의 우익도 못해낸 일이긴 했다. 달리 생각해보면 오히려 사상과 철학 같은 게 전혀 없기 때문에 그토록 사람들이 쉽게 재특회의 문턱을 넘어 회원이 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경향에 대해 내부에서도 불만이 없지는 않다. 초기에 재특회의 주장에 공감해서 가입해 활동하던 고참회원들과 지부장급 간부들 중 상당수는 최근 조직의 반민주성과 운영방향에 실망해서 떠나가기도 하고 같이 활동하고는 있지만 이미 열정이 많이 식어버린 상황이라고 야스다 고이치는 쓰고 있다.
‘재특회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야스다 고이치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의 이웃입니다”. 한국의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 상당수는 일베를 ‘루저(낙오자)들의 집합소’로 또는 ‘인간말종의 소굴’로 규정하면서 이들이 마치 외계에서 떨어진 괴물인 것처럼 예외화 시키려든다. 하지만 일베는 몇몇 사이코패스의 모임이 아니라 동시접속자 수가 2만 명이 넘는 거대 사이트다. 그곳의 저열한 차별적 언어들, 극단적 인종주의를 그저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 규탄하거나 재갈을 물리거나 ‘루저’라 딱지 붙인다고 해서 일베라는 현상, 극우 멘탈리티의 폭발적 분출이 사라지진 않는다.
재특회와는 달리 일베는 아직 거리로 나오지 않았지만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시민교육의 부재라는 조건 하에서는 언제든 재특회와 같은 조직이 한국에서도 튀어나올 수 있다. 야스다 고이치는 얼마 전 한국에서 열린 출간기념대담에서 “한국의 일베도 재특회처럼 거리로 나올 것이라 생각하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한국사회의 대응에 달려있다. 재특회가 처음 나왔을 때 일본 언론이나 지식인들은 마치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주변화하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틀렸다. 정면에서 대응해야 한다. 형사처벌 같은 것보다 시민의 힘으로 제어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은 전혀 다른 사회이지만 다른 어떤 사회들보다 유사한 면도 많다. 특히 불황 이후의 일본사회에서 보이는 불안의 징후들과 최근 한국사회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겹치는 지점들이 있다. 반이주노동자 담론, 내부의 타자(일본에서는 재일 코리안, 한국에선 전라도 사람)를 향하는 혐오와 적개심들은 자신의 몫을 무능력자와 무자격자들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식의, 이를테면 ‘상상된 착취’의 심리적 산출물이다. 결국, 재특회건 일베건 그 사회의 핵심적인 일면을 드러내는 신호이다. 책의 말미, 야스다 고이치의 다음과 같은 말이 섬뜩하면서도 절절하게 와 닿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사람 좋은 아저씨나 착해 보이는 아줌마, 예의바른 젊은이의 마음 속에 숨어있는 작은 분노가 재특회를 만들고 키운다. 거리에서 소리치는 녀석들은 그 위에 고인 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저변에는 복잡하게 얽힌 증오의 지하수맥이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