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정부 만들기의 선행조건
제 목: 열린 정부 만들기-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투명한 정부2.0 프로젝트
원 제: Open Government-Collaboration, Transparency, and Participation in Practice
저 자: 팀 오라일리 등저 / 다니엘 래드롭, 로렐 루마 공편
역 자: CC KOREA 자원활동가
출판사: 에이콘출판사
출간일: 2012년 2월 29일
1. 21세기의 새로운 인프라, 열린 정부
1) 21세기의 새로운 인프라 열린 정부
새로운 인프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든다. 철도는 교통만 편리하게 만든 것이 아니다. 철도는 거리의 개념을 바꿨다. 미국을 횡단하는 철도가 건설되기 이전에는 미국 동부와 중부보다 동부와 유럽 사이의 거리가 더 가까웠다. 미국은 사실상 척박한 개척이 이뤄지던 중부와 유럽과의 교역으로 상대적 풍요를 누리던 동부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 상황에서 철도 건설은 미국 동부와 중부를 통합시켰고, 국가 단위의 통일된 시장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정보통신 인프라는 어떻게 우리 삶을 바꿀 것인가? 닷컴 버블 이후 개방, 공유, 참여의 기치를 내건 ‘웹 2.0’을 새로운 IT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로 제시한 것으로 유명한 디지털 사상가 오라일리 등이 편집한 『열린 정부 만들기』는 이 질문에 관련해 새로운 질문을 제시한다. 기존의 관련 서적들이 21세기의 정보통신혁명이 어떻게 비즈니스 영역을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 제시하는 데 반면해 이 책은 해당 기술적 변화가 어떻게 관료제를, 정부 영역을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열린 정부를 말한다. 개방된 인터넷 기술을 바탕으로 하여 정부와 시민이 함께 정부의 투명성, 책임성, 효율성을 높이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가능함을 역설한다.
2) 사이트 방문자가 아니라 변화된 사람의 숫자가 열린 정부를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들이 택한 논리 전개의 방식은 연역이 아니라 귀납이다. 기술적 조건이 어떻게 변화했고 이에 따라 거래비용이 어떻게 감소했으며 따라서 어떠한 사회적 변화가 가능함을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지 않는다. 이것은 현장을 전혀 보지 않고 책상에 앉아서 자료 분석으로만 현실을 이해하려는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대신에 오라일리를 비롯한 이 책의 편집자들은 다양한 분야의 이론가, 활동가들을 저자로 초빙해 그들이 직접 실행하고, 참여했던 열린 정부 프로젝트들에 대해 설명하게 한다. 그 중에는 학술 영역의 개방성 확대를 위해 해킹을 사용했다가 미국 정부와 마찰이 있었고, 그 와중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다 2013년 1월 11일 자살로 세상을 떠난 인터넷 기업가, 개발자, 그리고 활동가 아론 슈와츠를 포함한다.
슈와츠는 자신이 기술한 투명성의 효용 증대에 관련된 25장의 결론부에서 인터넷이 위대한 까닭은 단순히 정보의 공급이 늘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이전보다 비교가 안 될만큼 적은 비용으로 공동의 목적을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을 행동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라 주장한다. 슈와츠는 위키가 인기를 끄니까 위키를 정치에 적용하고, 소셜 네트워크가 유행을 타니까 정치 소셜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그러한 기술 자체가 어떠한 마법적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중요한 문제에 적절하게 적용이 됐을 때 임팩트가 나오는 것이라 강조한다. 월드와이드웹(WWW)을 창시한 팀 버너스 리는 그저 해당 기술을 인터넷상에서 공개한 것만으로 세상을 바꿨지만, 슈와츠는 정치는, 정부는 그렇게 바뀌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열린 정부를 위한 개발자의 성공은 자신의 사이트에 방문한 사람들의 숫자가 아니라 자신을 통해서 변화된 사람의 숫자로 측정된다.
기실 이러한 실용적 기조는 총34장에 달하는 책의 다른 장도 다르지 않다. 이 책의 모든 장의 사례 분석은 의회(15장, 16장)가 됐든, 정부 예산(17장, 18장, 19장, 20장)이 됐든 특정한 변화 대상을 주제로 한다. 그리고 해당 변화 대상이 어떻게, 얼마나 변화됐는 지가 성과의 기준이 된다. 열린 정부 만들기는 정부뿐 아니라 그 정부를 바꾸는 개혁의 투명성, 책임성, 효율성 제고도 요구한다.
2. 열린 정부 만들기의 선행조건
1) 열린 정부는 단기적 혁명이 아니라 점진적 개혁을 목표로 한다
이렇게 『열린 정부 만들기』가 내포하는 결과와 과정 모두에서의 실용주의는 현재 열린 정부의 바람이 불고 있는 한국 정부도 생각해볼만한 주제다. 정부 데이터가 얼마나 공개됐는지, 혹은 열린 정부 관련 프로젝트가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그러한 단순 실적 위주 평가 기준만으로는 사이트 방문자수를 넘어서 실제 변화된 사람이 얼마인지 알기는 어렵다. 중앙 정부, 지방 정부가 당면한 문제들을 정리하고, 그 문제들이 열린 정부 프로젝트들을 통해서 일례로 각 분기별, 연별 얼마나 해결되고 있는지를 평가해야한다. 흔히 정보통신혁명을 통한 사회적 변화는 ‘파괴적 혁신’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슈와츠가 말한 것처럼 정치, 정부 영역은 특수성이 있다. 다양한 사회 이익 집단의 의사 조율을 통해서 사회 갈등을 순화하고 공익을 추구하는 공공 행정은 단기적 혁명이 아니라 점진적 개혁을 목표로 한다. 그러한 철칙은 열린 정부 만들기도 마찬가지다. 2012년 개최됐던 서울 디지털 포럼의 정부 2.0 심화세션에서도 팀 오라일리가 “정부가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전부 다 하거나 아예 안 하거나”를 택하는 극단주의라고 지적하며 “작은 것부터 실천하라”고 조언한 바 있다. 작은 것이 위대한 것이다.
2) 한국은 얼마나 인터넷으로 열린 정부하기 좋은 나라인가
그러한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다시 이 책을 보면 미국 사회의 문제와 그 해결책을 중점으로 한 해당 책의 국내 현실 적용상 약점은 한국 활동가들이 처한 현실이 미국 활동가들과 다르다는 점이다. 여기서 활동가를 중점으로 논하는 까닭은 열린 정부 만들기의 대상은 정부일지라도 그 주체는 시민이고, 그 시민 중에서도 해당 활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활동가(activist)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열린 정부 만들기』에 소개된 정부 데이터 공개 프로젝트의 상당수가 선라이트 재단(Sunlight Foundation)의 후원을 받는다. 나이트 재단(Knight Foundation)은 언론 개혁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코프만 재단(Kauffman Foundation)은 기업가 정신에 관련된 프로젝트에 지원을 한다. 책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않았으나 뉴 아메리카 재단(New American Foundation)도 최근 인터넷을 통한 미국 정치 개혁 프로젝트 지원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미국 현실에 비해 한국에서 시민들이 특정 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열린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어떠한 재정적 지원을 통해서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국내 현실적으로는 그러한 재정 지원은 대부분 정부 예산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이 역설인 것은 개혁의 대상이 정부이기 때문이다. 그런 정부를 대상으로 정부에 비판적으로 보일 수 있는 예산 감시와 같은 프로젝트를 실시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기업은 어떨까? 미국에서는 자동차왕 헨리 포드의 아들인 에드셀 포드가 1936년에 설립한 포드 재단(Ford Foundation)이 미국 사회의 학술적, 예술적 발전에 크게 기여한 바 있으며, 국내에서도 SK가 설립한 고등교육재단이 한국의 고급 학술 인력 육성에 공헌했다. 따라서 아직은 열린 정부 만들기에 크게 관심을 갖는 민간 재단은 거의 없으나 그러한 재단이 등장한다면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바는 크다. 그러나 물론 그러한 재단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한 기본 조건은 운영이 비영리, 비당파성이다. 열린 정부는 개혁은 물론, 그 개혁의 자금원 역시 투명성, 책임성, 효율성 제고를 요구한다.
달리 말하면 열린 정부 만들기는 정부가 여는 것이 아니다. 정치와 정부를 바꾸는 그 과정과 결과와 원인의 총체적 변화를 뜻한다. 새로운 인프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든다.
>> 참고문헌
– 단행본 : 팀 오라일리, 다니엘 래드롭, 로렐 루마편, CC KOREA 자원활동가역(2012). 『열린 정부 만들기』. 서울: 에이콘출판.
-인터넷자료 : CC KOREA(2012). 2012 서울디지털포럼 정부 2.0 심화세션,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