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빨간책’ – 정보와 데이터의 ‘장치론’으로의 초대
이제 일상적으로 다수의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접하는 광대무변한 네트워크의 바다에서, 수많은 정보와 관점, 설득과 주장들, 그리고 의견과 이야기들을 걷어 올리고, 소비한다. 세계적으로도 정보 인프라가 ‘선진화’되고, 높은 수준의 ‘정보의 지식화’와 인터넷과 SNS의 상용화가 진전된 우리의 상황에서도, 인터넷과 포털, 빅 데이터와 구글, 스마트폰과 앱 등으로 대표되는 정보 과잉의 시대에 일상을 넘나들고 재편하는 엄청난 정보의 축적과 포획, 그리고 확산성과 속도가 결합되면서, 정보가 힘이자 권력이라는 관행적인 표현은 이미 낯익지만 종종 심화된 방식으로 실행되고 있다.
사람들 간의 잡담과 속삭임을 담아내며, 관련 주체들 간의 관계망과 감정선을 이어주고 유지하는 SNS와 온라인상의 흐름에서, 특정 주제와 사안 혹은 논란과 사건들에 관한 대중의 집중된 관심과 종종 분출하는 감정적인 대응을 단시간에 끌어내며 소위 ‘여론’과 ‘의제’라는 것을 상황적으로 혹은 특정 국면에서 선도하는 검색엔진과 크고 작은 인터넷상의 매(개)체들의 흐름에 이르기까지, 앞서 언급한 정보와 데이터의 확산과 팽창된 사회적인 활용은 우리의 생활세계와 사적공간에서 공공영역으로 간주되는 공간들을 맹렬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혹자는 이 지점에서 네트워크화한 지식과 정보, 그리고 말들의 풍경이 발휘하는 확장된 기회와 환경이 가져오는 순기능이나, 정보와 데이터 그리고 지식이 결합되면서 등장하는 새로운 유형의 지식기반경제와 지식정보화의 성취에 주목해야한다고 말할 런지 모른다. 또한 이러한 정보와 데이터의 축적과 활용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혁신이나 영토성, 혹은 확장된 디지털 환경의 공고함과 같은 다기한 흐름으로 구현되는 매체 정경이 가져온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의 함의를 먼저 강조할 지도 모른다. 기실 그러한 주제를 다루는 저널리즘과 지식담론들 그리고 공적인 담화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 정보자본주의의 역할과 역량을 새로운 사회상의 도래 및 지식 패러다임의 변화와 부가가치의 증식, 그리고 사회적 영역의 변환을 중심으로 풀어내거나 프레임하면서, 변주되는 기술결정론과 같은 상당히 선형적인 발상이나 다분히 기능적인 관점으로 현재의 변화상을 설파하는 지식인과 정치인, 언론인과 기업가들의 목소리는 매우 흔하며, 외견상으로도 다수의 사회적인 논의와 발상 그리고 담론들을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소개하는 백욱인의 작업은 그러한 이미 익숙한 진단과 톤 그리고 상당부분 예상되는 주장들로 제시되는 인터넷과 SNS에 관한 전도서나 ‘정보사회론’이나 ‘정보혁명론’ 등의 표제어를 표출하는 교양책자나 해설서들과는 매우 다른 방향성인 것과 더불어 급진적이라 할 만큼 비판적인 인식과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수많은 흐름과 마디, 연결망들로 이어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트”를 보유하는 이 정보와 앎, 저장과 축적, 그리고 놀이와 소비의 바다는, 저자의 말을 변주하면 다양한 유형의 권력작용, 반지성과 순응, 모순과 역설, 놀이와 소비, 쉰 소리와 어리석음, 검열과 조작, 그리고 객기와 광기어린 잉여짓들이 생성되고 분출하는 일종의 “똥바다”이다.
앞서 거론한 복합적인 정경을 대하며 작가는 지식담론이나 대중적인 저작 속에서 종종 접하게 되는 과도한 정보예찬론이나 현실순응적인 논의들, 그리고 정보의 소비와 활용을 생산성과 효율성 그리고 자본증식 등의 기회로 주로 풀어내고 설파하는 다수의 입장에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그는 일견 공고하게 보이는 인터넷에 관한 지배적인 인식에 도전하는 – 일종의 금서인 ‘빨간책’을 자인하는 – 이 책의 서두에서 “현재의 인터넷 세상은 세계를 바꾸려하기는커녕 세계를 설명하는 것도 포기한 채 단지 받아들이고 즐기는 ‘’가축의 왕국‘이 되고 있다는” 자못 신랄하며 도발적인, 그리고 독자의 입장에서는 일견 눈살을 찌푸리거나 심히 불편할 수 있는 강한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10쪽).
백욱인은 이러한 거친 톤의 동시에 강건한 문제의식에 천착하는 그의 작업이 마치 “’꿀단지‘에 빠진 파리처럼 – 혹은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들 마냥 – 끈적끈적한 인터넷 꿀통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애가이자 비판”이라는 입장을 밝힌다. 그는 “인터넷 데이터베이스에 길든 가축들은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되며, “그들의 반지성을 비판하지만 무책임한 지성숭배를 추종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입장을, 그가 장고 끝에 전술적으로 선택했을 자극적인 비유와 함께 드러내면서 (10쪽), 이 일종의 의도적으로 “21세기 인터넷 매도론”으로 기획된 책은 “낙관을 향한 회의주의”를 표출하며, 현 상황에 대한 ’반(反)행동‘을 촉발하기 위한 ’비판의 무기‘를 벼리고 성찰하는 작업이라는 측면을 강조한다.
이 결코 두껍지 않지만 만만치 않은 내공과 기민한 지식의 조합과 사유를 녹여내는 저술은 가깝게는 인터넷상에서 ‘정신승리’를 외치면서 타자를 집요하게 헐뜯고 공박하는 가련한 부유하는 주체들의 존재에서 정보유통과 매개의 플랫폼과 생산의 채널들을 장악하면서, 개인들이 생산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와 자원들을 수취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부와 영향력을 축적하는 거대기업들의 종종 추앙받지만 문제적인 행태에 이르기까지, 디지털세상과 네트워크화 된 삶에 대한 다수의 날카롭고 울림이 있는 관찰과 다면적인 진단을 일종의 콜라주로 그리고 변화무쌍한 파노라마로 담아낸다. 다분히 전문가연한 건조한 기술이나 진중한 듯하지만 다루는 사안이나 쟁점에 진단과 비판의 이빨을 충분히 박아 넣지 못하는, 밋밋하고 특정 단면에만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는 그런 성격의 글이 아닌, 저자의 글쓰기는 매우 강한 현실 환기력과 생동감 그리고 자유자재로 풍자와 조롱, 패러디를 단단한 비평의 힘과 조합시키는 예외적인 능력으로 독자를 압도하며, 그 과정에서 종종 현기증까지도 불러일으킨다.
그는 모든 대상을 ‘교환 가능한 것으로’ 전환시켜버리며 초상업화된 논리가 횡행하고, 국가의 감시 기구들과 접합되기도 하는 이 빅데이터와 ‘정보 니르바나’ 그리고 ‘디지털 신자유주의’의 세계 속에서, ‘디지털 네이티브’ 혹은 인간이라는 주체가 자신의 존재를 저당 잡히고, 무력감을 드러내며, 자신의 활동까지도 인터넷상의 장치들에 의해 포획당하고 흡수·전유되는 현 상황에, 분석의 촉수를 집요하게 그리고 다방면으로 갖다 댄다. 즉 다수가 여전히 간과하거나 발휘되는 비가시성으로 인해, 현실에서 종종 은폐되고 주목받지 못하는 거대 서비스 플랫폼과 정보생산의 ’이면‘에 주목하는 것이다. 저자가 날렵하게 정련된 비판의 날을 적용하면서 집요하게 풀어내는 인터넷과 SNS 공간의 지배적인 현상들과 정보자본주의를 구조화하는 동학들에 관한 냉철하면서 매우 복합적인 진단은 적지 않은 반향과 울림 그리고 앎과 경고음을 생성해낸다.
저자는 광장에서 출발한 인터넷이 장사꾼의 장터로 전락했으며 권력자들에게 훼손되면서, 이제 인터넷은 “그들의 영토가 되고, 인터넷 이용자들은 그들의 신민이 되었다”고 단적으로 논한다. (222쪽). 그는 동시에 편리성과 관성에 의존하며 “픽셀과 비트에 홀리는” 대다수의 이용자 주체들이 이러한 상황과 구조적인 동학에 관한 필요한 ‘경외와 불안’을 충분히 체화하지 못하거나 그러한 문제점들을 자각하고 있지 못한 측면을 날카롭게 그리고 세밀하게 짚어낸다.
이러한 백욱인의 작업은 기존의 대중문화나 온라인을 대상으로 하는 유연하고 예리한 문화비평적인 작업의 역량과 감식력을 일상 속에서 깊숙하게 작동하는 네트워크의 권력이라는 문제로 확장시키면서, 사회적인 영역을 심대하게 변화시키고 있는 ‘스마트 권력’의 작동과 데이터와 정보 생산의 이면까지도 중층적으로 조명한다. 동시에 이러한 심화된 ‘디지털 사회학’을 숙성시켜 제공하는 기획은 기계-인간-노동-통제-포획 등의 구성요소들을 접합하는 ‘장치론’이 발현할 수 있는 개념적 그리고 구성적인 난해함에 빠지는 대신에, 조금만 관심과 호흡을 가다듬으면 이해의 폭과 사유의 힘을 넓힐 수 있는 대안적인 그리고 대중과의 소통과 접속을 체화해내는 – 조금 다르게는 현실과 가상을 섞어내는 실험적인 발상이 유기적으로 발현되는 – 글쓰기와 진단의 방식들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면서 수행된다.
이 책을 읽게 된 광의의 비판적인 지식생산의 전통에 속하는 문화연구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당대 인터넷 문화의 변화상에 상당한 관심을 가진 한명의 독자로, <인터넷 빨간책: 디지털 시대, 가축이 된 사람들을 위한 지적 반동>이 그러한 일견 세밀한 분석을 결여한 과부하된 문제의식과 통상적인 학문적 진단의 관성적인 톤과 건조한 학제적인 관행과 진단의 용어들로 기술되었다면, 앞서 인용한 이 책 속에 주창된 내용들과 관련하여, 일정한 냉소를 보내거나, 부분적인 혹은 인정치 않을 수 없는 공감이나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작업이 여전히 과장되고 편파적이거나 현란한 지적인 유희의 징후들을 내보인다는 느낌을 적지 않게 맛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에 이 책을 쥐고 저자가 신랄하고 날카롭게 제기하는 일련의 관찰점과 진단들을 충분히 곱씹어 본 독자라면, 종횡무진으로 인터넷 세상을 주무르며 재구성해내는 힘들과 현실에 예리하게 착종된 일련의 관찰들이 녹아든 지면을 대면하면서, 부인하기 어려운 깨달음과 더불어 그가 제기한 문제의식을 방기하기 어렵다는 판단과 함께, 현 상황에 관한 진전된 이해가 불러오는 자성과 근거 있는 불안감을 상당부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23편의 조각과 파편들 혹은 매듭과 링크로 넷과 SNS의 공간들이 발현하는 복잡다기한 면모와 구성, 온라인과 전자화된 담론작용의 흐름 속에서 끊이지 않는 사건과 도발적인 현상의 전개상을 예리하고 기발하게 조명하는 이 책의 주요 내용들은 우선 흥미진진하며, 제시되는 사례와 녹여낸 관점의 측면에서 경이로울 만큼 조밀하고 예시적이며, 논조와 관찰의 방식은 감각적이다. 저자는 지면에서 만만치 않은 내공과 관찰을 재기발랄하게 그리고 예리하게 풀어놓는다.
또한 인터넷 상의 핵심적인 사건과 일련의 사례들을 독자의 기억 속에서 날렵하게 복기하게 해주며, 디지털 공간을 압도하며 정보자본주의의 핵심으로 기능하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트위터와 같은 “왕국”들의 행태와 이들이 추구하는 영토 확장에 관한 해학적이며 동시에 예리하고 비판적인 관찰을 풀어내는 저자의 결코 얕지 않은 진단의 방식들을 따라가다 보면, 적지 않은 배경지식과 더불어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점들을 돌아보고 체득하게도 된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 책은 인터넷과 디지털문화에 관한 다양하고 박식한 지식과 긴 호흡으로 개진되는 관찰을 녹여낸 백과사전 식의 구성과 콘텐츠들을 부분적으로 드러내기는 하지만, 저자가 발굴하고 세밀하게 풀어내는 다양한 징후와 사례 그리고 트렌드들을 단순히 병렬적으로 조합해내면서 지적인 해박함과 기민함을 표출하는 수준에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대상들에 관해 조금 더 논의해보자: 인터넷 상에 출몰하는 타자들에게 잔인하지만 강자에게 굴종하는 현대판 “아큐”들의 행태에서 취업난에 시달리며 현실에서 겪게 되는 열패감과 좌절을 온라인 공간에서 감정적으로 배설하는 일베현상 등의 비뚤어진 초상들, 디지털 질서와 관성에 어느덧 순응하게 된 이들을 향해 일갈하는 “지식 고릴라” 미시마 유끼오를 화자로 불러들여 위악적으로 논점을 제기하는 도발적인 장면들, 그리고 ‘창의적인’ 동시에 본질은 바꾸지 않은 사기술과 교언영색을 발하는 “인터넷 봉이 김건달들”이나 “SNS 삐끼들”과 같은 디지털 세상 속에서 상당한 전형성을 발휘하는 주체들에 관한 날렵한 비꼬기와 진단들이 저자의 예리하고 매서운 글 솜씨를 매개로 속속 등장한다.
바꾸어 말하면 디지털 세상에 출몰하는 몰입과 나르시시즘 그리고 ‘잉여짓’에서, 정보와 물질의 영역을 가로지르며 새로운 지배와 통제를 발휘하며 사회현상을 주도하는 거대 행위자들에 관한 예리하고 심화된 과학기술학적인 성찰에 이르기까지, 이 책이 도래한 인터넷 세상의 주요 단면과 정세들을 진단하는 방식은 매우 다층적이며, 포괄적이되, 결코 가볍거나 선정적이지 않다.
나아가서 보다 범주와 문제의식을 확대한, 디지털의 세계를 자신들의 영토와 이익을 위한 통치의 영역으로 변모시키는 독점력과 더불어 ‘부드러운 통제’를 실행하는 거대서비스 플랫폼과 기업들과 같은 핵심적인 행위자들에 관한 노련하고 냉소적인 톤의 관찰들이 보다 정교한 담론적인 구성물이라 할 ‘장치론’을 통해서 설파되기도 한다. 특히 저자는 ‘SNS 플랫폼 장치토론’으로 명명된 꼭지에서, 지식생산의 영역에서 강한 간학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거장들인 푸코와 들뢰즈, 그리고 아감벤을 등장시켜 상상적인 토론의 자리를 마련하면서,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노동과 관심, 그리고 활동상이 거대 플랫폼 기업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수집, 추적, 그리고 전유되는 과정에 관해 심도 있는 관찰과 진단을 날렵하게 제시한다. 이러한 거시적이되 기민한 진단의 힘이 발현되는 ‘실천적 장치 정치학’의 추구 혹은 ‘장치의 세속화’ 과정에 관한 꼼꼼한 탐구를 통해서, 저자는 현 단계 정보자본주의가 정보와 데이터를 축적하고 자본을 증식하는 과정을 – 즉 생산에서 지식과 권력관계로 이어지는 통합적인 과정을 – 접근 가능한 기술의 방식과 유려한 진단법으로 독자들에게 풀어낸다.
백욱인은 앞서 언급한 장치론과 스마트 권력에 관한 탐구와 분석을 지식생산의 영역에서 꾸준히 수행해 온 전문연구자이지만, 이 책을 매개로 그는 학술담론의 영역을 벗어나서 보다 소통 지향적이며 독자와의 상호작용을 확연하게 염두에 둔 대중적인 글쓰기와 문제의식의 공유를 위한 도전과 실험을 능동적으로 시도한다. 이 책은 저자 스스로 직면하고 있는 강건한 현실과 “기괴한 우울”에 대한 ‘반동’을 촉발하고 스스로 체감하며, 전문가이자 비평가로서 학계가 노출하는 “답답한 설명의 형식”을 경계를 가로지르는 글쓰기와 패러디라는 우회로의 전술로 주체적으로 벗어나려는 집약적인 노동의 결과이기도 하다.
동시에 저자의 작업은 서구 지성들의 작업이나 이론틀에만 몰두해서 한국의 상황이 포함되지 않은 일반론이나 서구가 생성한 지적자원의 수용에만 머물고 있지 않다. 일례로 저자가 김지하의 담시 ‘분씨물어(糞氏物語)’의 판소리판을 변주시켜 재구성한 “인터넷 똥바다가”의 구절들 속에서 “애국 세력 결집하여 불철주야 댓글 달아 종북 세력 몰아내자”와 같은 최근에 한국사회를 강타한 사건도 희화적으로 담아내고 있으며, “비트똥을 실컷 내깔기는” 일베나 한일애국동맹단 같은 현실과 가상을 오가며 떠올릴 수 있는 기괴한 그리고 후지지만 위험하고 반동적인 온라인상의 흐름들도 소환된다. 또한 저자가 변주해내는 “인터넷 십계명”이나 신채호의 글을 개작한 “인터넷 이용자 혁명 선언”과 같은 실험적인 격문을 통해서, 그는 해학적으로 인터넷 문화와 정보와 데이터로 구현되는 확장된 매체정경 속의 문제적인 흐름들이나 과도한 상업적인 추구와 역기능들 그리고 이용자집단이 발현하는 한계와 퇴행을 신랄하게 꼬집고, 기발한 발상과 풍자의 변주를 통해서 자신이 제기하는 쟁점과 문제의식을 독자들에게 압축적으로 환기시킨다.
이 책은 네트워크의 공간들을 ‘의도적으로 헤매는’ 만보객(flaneur)이나 혹은 이동하는 관찰자와 스토리텔러가 되는 체험과 진중한 사유의 작업이 축적된, 그리고 짐짓 근엄한 척 하지 않으며 대안으로 설정한 조롱과 패러디 그리고 ‘낯설게 하기’의 정련됨이 두껍게 배어나는 한 편의 기민하고 창의적인 여행기이기도 하다. 그는 때로는 베냐민과 보들레르 그리고 T. S. 엘리엇의 후예로 자신을 설정하거나, 대중문화공간과 지성사 속에서 조우했던 주인공들을 – 김지하, 보르헤스, 모어, 마키아벨리, 매클루언, 푸코, 들뢰즈, 아감벤, 잡스, 루쉰, 오웰, 신채호 등 – 자신이 기술하는 텍스트 속으로 호명하면서, 이들에게 ‘빙의’된 목소리들을 자유롭게 펼쳐낸다. 그럼으로써 먼지 낀 서가에나 박혀 있었을 과거의 지성들의 목소리를 가져와서 급진적으로 변화된 인터넷과 정보 중심의 질서와 정세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유용한 자원과 지적-비판적 자극을 제공한다.
최근에 발간되었으며 빅데이터와 ‘친절한 빅 브라더’ 등의 주제를 짚어가며 문제의식의 투사에 있어서는 상당한 공통분모를 드러내는 한병철의 <심리정치: 신자유주의의 통치술>과 비교해도, 이 책이 제시하고 강조하는 소셜 네트워킹의 함의와 통제사회(society of control)의 기반으로 작동하는 거대 정보플랫폼 기업의 확장된 역할과 면모에 관한 해독은 훨씬 더 집요하고, 분석적인 세밀함을 드러내며, 날이 서있고, 다면적이다.
구사되는 도발적이고 빼어난 상상력과 기발하게 발산되는 조롱과 패러디에서, 다수의 유명인과 지성들이 출몰하는 가상 인터뷰와 문제적인 현 상황에 맞추어진 재기발랄한 선언문의 제시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행보는 거침이 없고 날렵하되 다루는 사안들에 관한 매우 조밀하고 예리한 이해와 관찰의 역량을 발휘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소설, 무용극, 희곡, 논문, 평론, 담시, 인터뷰 등의 서사양식을 자유롭게 전유하면서, 파격적이고, 때로는 유희와 탐닉의 단면을 엿보이기는 하지만, 냉소나 희화화하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분석적 엄정함과 치열하게 개진되는 관찰을 결합시켜 기술한다. 이 노작은 농익은 비판적 지성의 힘을 발산하는 정련된 글쓰기의 구체적인 사례와 더불어 이러한 창의적인 기획이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과 반향을 크게 체화해낸다.
심도와 예리함을 동반하며 다루어진 핵심 주제와 관찰력 못지않게 독자의 시선을 끄는 것은 이 책의 기술방식이다. 백욱인은 복잡다기한 ‘인터넷 세상’ 속의 복합적인 현상과 징후들을 다양한 문학과 글쓰기 장르에 속할 다층적이며 실험적인 글쓰기를 통해서 풀어놓는다. ‘답답하고’ 짐짓 점잖은 체 하며 지식을 뽐내지만, 충분히 감각적이거나 체화된 관찰과 논점을 제기하지 못하며, ‘지루하고,’ 나아가서 확립된 관성을 깨뜨리는 발상을 주는데 다분히 무력한 아카데믹한 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비판과 대안을 향한 모색은 이 책의 곳곳에서 통렬하게 감지된다. 저자는 말한다: “틀에 박힌 논문은 지루하고 발상을 가로막으며 상상력을 닫아버린다. 나는 ‘여러 겹으로 접힌 책’, 책의 안과 밖·책과 인터넷·과거와 연결하고 현실과 상상을 접합하며 서양과 동양·이야기와 논문을 섞어 새로운 책을 만들고 싶었다.” (12쪽).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은, 21세기 사회상을 인터넷 세상의 구조와 함의를 중심으로 전방위적으로 진단하는 동태적인 지형도를 제공한다. 그러한 결과, ‘속물과 잉여,’ ‘분노와 갈등들,’ ‘재잘거림과 소소한’ 이야기들의 타래들, ‘정신승리’와 ‘자족감’ 그리고 ‘해갈되지’ 않는 욕망들이 뒤섞이고 빚어내는 인터넷 세상의 단면들이 – 그리고 우리를 스쳐갔던 수많은 사건의 편린들이 – 매우 조밀한 방식으로 개진되며 복기된다. 조금 다르게 이 책 자체가 무수한 링크와 네트워크로 구성되었으며, “앞뒤가 없는” 이 저작은 저자가 개진하는 글쓰기의 전술과 독법을 헤아린 독자들이 보다 능동적으로 “링크를 따라, 장을 옮겨가며” 추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숱한 생산적인 자원을 구축한 유용한 ‘교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어가며, 경직되고 현실에서 유리된 지식생산과 고답적인 학술 글쓰기에 관한 공통된 문제의식을 지닌 한 명의 동료 연구자이자, 저자의 작업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온 독자로 많은 공감과 공명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가 수행한 이 시대 정보유통과 생산 그리고 정보와 데이터를 매개로 한 권력작용을 촘촘하게 진단하고 창의적으로 논하는 방식은, 앞서 여러 차례 개진했듯이, 인터넷과 정보사회를 관통하는 동학과 관련된 비판적 사유와 성찰성이 깃든 고민을 점화하는데 매우 유용해 보인다. 필자는 이 책을 읽어가며 책 속의 내용을 일상 속에서 상당부분 겪고 있을 디지털 네이티브들인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게도 되었다.
동시에 이러한 흔치 않은 성취와 더불어 책을 덮고서도 찾아드는 기시감과 문제의식의 공명을 접하며, 일정한 아쉬움도 느끼게 된다. 먼저 저자가 천착하는 작업 속에서, 젠더나 인종 그리고 계급과 관계된 보다 상세하고 특화된 논의들이 크게 주목받거나 조금 더 상술되고 있지 못한 측면은 부분적으로 아쉽다. 정보자본주의와 젠더정치나 몸의 정치 혹은 디지털 노동과의 접합을 다양한 방식으로 진단해 온 도너 해러웨이나 셰리 터클 혹은 로지 브리아도티 등의 작업의 함의나, 정보생산의 이면에 방치되고 정보의 자본화과정에서 소외되는 노동자군의 상황과 노동의 재조직화를 매개로 등장하는 주체성에 관한 진단들이 보다 긴 지면을 할애하면서 논의되거나 긴 호흡의 논쟁의 양식을 빌려 다루어지지 못한 측면은 일정부분 아쉽다. 이른바 ‘사이보그 선언’에서 노매디즘이나 포스트포디즘의 활용 등과 같은 급진적인 상상과 더불어 거시적인 해석틀을 주창하고 지속적으로 고안해 온 이들의 작업이, 적절한 맥락성의 추구나 보다 조율된 비판과 맞물릴 때, 보완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통찰성과 기여가 여전히 결코 작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편 인터넷과 디지털의 영역이 여전히 세상을 바꿀 힘이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가라는 중요한 질문과 관련하여, 온라인과 SNS를 통해서 일군의 저항과 비순응의 움직임들이 사회적으로 가시화되었던 적지 않은, 지역적인, 그리고 국면적인 사례들을 기억할 수 있다: 반 FTA 투쟁에서, “아랍의 봄”, 미국의 “점거 운동,” 한국의 “촛불집회,” 그리고 홍콩의 “우산시위” 등에 이르기까지, 이들 현상들이 복합적인 성휘와 한계를 드러내기는 하지만, 다양한 주체들에 의한 긴밀한 네트워크화된 투쟁과 연대 그리고 상상력과 차이들을 능동적으로 표출하는 이러한 대안적인 사회운동들이 주기적으로 등장해왔다는 측면에서, 주로 디지털세상의 이면과 지배적인 훈육과 권력작용에 주로 집중하는 저자의 작업 속에, 대안과 차이를 추구하는 목소리나 저항과 탈주 그리고 비순응의 문제와 명암이, 보다 많은 지면을 통해서 충분히 조명되지 않은 측면은 아쉽다.
물론 저자가 짚어내듯이, 한때는 소통과 저항 그리고 대안적인 담론생산의 근거지로 추앙받고 정당화되던 인터넷 공간은 단지 세상의 변화상을 수용하고 즐기는 “가축의 왕국”이자 “감각이 마비된 군상이 음울한 구글, 페이스북과 트위터, 애플, 아마존, 네이버와 일베의 플랫폼을 휩쓰는 바람에 불려 나뒹구는” 곳일 수 있으며, 이러한 관찰의 힘을 무시하기도 어렵다. (247-248쪽). 저자가 현실론의 일부로 논하듯이, 당대의 ‘다중’(the multitude)이건 ‘정보대중’이건 간에 이들 다양한 이질성과 차이들을 발현하는 사회적 주체들이 보여주는 항의와 저항이 우발적으로 혹은 특정 국면에서 예기치 않게 강하게 분출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집합행동을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주체들이 상당부분 파편화되고 있거나, 이들이 네트워크를 생성하는데 주요한 근거와 자원을 마련할 수 있는 공공영역 자체가 비활성화되고 균열되고 있는 상황도 부인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매우 새로운 발상과 상상력, 그리고 강렬한 참여의 열기를 보였던 2008년의 촛불집회와 ‘광장의 정치’ 그리고 일련의 네트워크화된 참여문화의 열기가 분출한 이후, 거세진 통제와 물리력의 발휘 그리고 강화된 감시와 훈육에 직면하면서 네트워크화된 집합행동은 상당부분 억눌려 있고 표면 아래서는 부글거리고 있지만 또 다른 촉발과 결집된 흐름을 당장은 생성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도 목격된다.
정보자본주의 아래서 전개되는 부드럽지만 강한 포섭과 영리하고 집요한 배제의 체계를 위협하고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인 전술이나 대안행동과 관련하여 저자는 그가 제시했던 한 학술작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안타깝게도 이용자가 인터페이스 수준이나 데이터 활용 영역에 개입하고 참여할 방법이나 도구도 별로 없다. 다만 플랫폼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해킹이나 ‘물러서기(이용거부)’정도가 그나마 실행 가능한 대안이다.” 그러한 측면이 적지 않으며, 분출하는 깨어있는 주체들의 결합과 응전이 다시 어디에서 오게 될지 현실의 조건들은 완강하고, 낙관적이거나 희망적인 사유를 품기엔 많은 걸림돌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강한 물적, 제도적인 힘을 발휘했던 철권통치와 훈육이 지배적이었던 과거의 엄혹한 상황에서도, 축적된 이유 있는 분노와 변화에 대한 사회적 주체들의 갈망과 욕망은 뚜렷하고 가시적인 도전의 흐름들로, 다양한 결과 대응의 전술을 발현하는 크고 작은 움직임들을 불러왔던 선례들을 이 대목에서 기억하고 곱씹을 필요도 상당하다.
결어로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을 패러디한 격문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용자는 우리 혁명의 저수지이다.. 우리는 이용자 속에 가서 그들과 손잡고 끊임없는 폭력 – 사보타지, 이용거부, 시위, 해킹, 폭로로써 강도 통치를 타도하고, 인터넷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침탈치 못하는 이상적 신인터넷을 건설할지니라.” (225쪽). 수사적으로 그리고 도발적인 선언문의 양식을 빌려 저자가 행한 이 말 속에 녹아든 깨달음과 희구가 어떤 형태로건 실현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집합행동의 모색과 더불어 기성관념에 일격을 가할 수 있는 도전과 대응 그리고 전복적인 실험과 발칙한 상상력의 발휘가 여전히 그리고 반드시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던 다양한 로컬에서 분출된 행동들은 그러한 대응과 응전이 그리고 대안적인 실천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반증이자 예시들이며, 이 책 속에서 저자가 매우 예리하고 엄정한 방식들로 진단한 ‘지성의 비관주의’와 함께, ‘의지의 낙관주의’가 여전히 추구되고 끈기 있게 상상되어야함을 다시금 환기시켜준다.
‘늙어가는 연구자는 겁 없이 행동하고, 제한 없이 연구하고, 주저 없이 말해야 한다.’는 저자의 고언에 십분 공감하면서, 그의 노작이 계속해서 결실을 낳고, 동료와 후학들 그리고 독자들과 만나게 되기를, 그럼으로써 변화를 추구하는 일련의 접속들이 이루어지는데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필자 또한 그러한 작업에 동참하며, 그리고 화답으로의 접속을 시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