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진보 :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 서평 (Power and Progress : Our Thousand-Year Struggle Over Technology and Prosperity.)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역작으로 글로벌 경제 석학으로 등극한 대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는 IMF(국제통화기금)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 사이먼 존슨(Simon Johnson)과 함께 이번 공저에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당연히 번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사회가 내리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단순히 기술, 진보, 권력, 번영 등 제목에서 보여주는 키워드(Key Words)로 그 내용을 제한하고 있지 않다. 물론 이러한 키워드조차 엄청난 함의를 담고 있지만 이 책의 저변에 흐르는 핵심은 결국 ‘인간’이다. 기술의 진보가 인류의 번영을 초래했건 그렇지 않았건간에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이 초래한 방대한 역사적 사실과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이러한 방향성과 일치되도록 설명, 설득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관리하고 통제해 왔는가, 또 앞으로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 “테크놀로지는 경제, 사회의 문제를 뛰어넘어 어떻게 권력에 영향을 미쳤으며, 미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전제로 심오한 질문과 답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디지털 혁명과 인공지능(AI)이라는 최첨단 기술혁신 속에서 편리함과 윤택함 그리고 성장과 번영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갈등과 혐오, 승자독식, 쏠림, 감시사회에 대한 불안을 함께 마주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난제들을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통해 ‘인간’에게 유익하게 나아가야 할지를 제시하고 있다. 기술과 법을 공부해온 필자에게 꼭 기억하고 싶은 몇 개의 함의를 뽑으라 한다면 다음과 같다.

1. 테크놀로지가 초래한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이 만든 편향이다.

저자는 “테크놀로지가 모든 이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전진하기만 할 뿐이라고 믿어서는 안된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즉 기술이 가진 본연의 기능을 어떠한 방식으로 구현하고 실천할지는 오롯이 인간의 몫인 것이다.

우리는 테크놀로지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며 강력한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하곤 한다. 그러나 사실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며 그러한 기술이 초래한 부정적 효과는 인간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저자 역시 “결론적으로 테크놀로지의 편향은 아주 많이 (인간의) ”선택“의 문제였고 (기술 자체의 본연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었다”라고 밝히고 있다.1

AI를 둘러싼 갈등과 불안, 두려움은 결국 인간이 AI를 어떠한 방향으로 설계하고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AI가 노동감시에 사용될지, 업무효율성에 기여할지 혹은 AI가 창작자의 직업을 빼앗아 갈지, 아니면 인간의 창작을 풍성하게 하는 획기적 도구로 사용될지, 또는 AI가 개인의 식별추적을 통해 프라이버시를 침해할지, 아니면 맞춤형 서비스로 편리함과 효율성을 극대화할지는 결국 인간의 “선택”이다.

2. 테크놀로지는 권력과 민주주의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갖거나 아니면 부가 소수의 손에 집중된 사회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둘 다 가질 수는 없다”라는 연방대법관 루이스 브랜다이스(Louis Brandeis)의 언급을 인용한 것이 인상 깊다.2 결국 부가 소수의 손에 집중되는 것을 막아야 민주주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테크놀로지에 대한 우리의 방향성은 마땅히 ‘부의 다양성과 분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기술 발전의 방향을 정하는 집단은 소수 엘리트층 및 권력가들이며, 진보로 인한 풍요는 그들의 주머니를 불린다”라며 기술 천년의 역사를 분석한다. 결국 이를 막기 위해 민주주의 시민의 대표들로 구성된 ‘의회’는 강력한 규제를 주창한다.

지난 12월 8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은 인공지능(AI) 법안에 합의했다. 그간 AI기술을 선도하는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이견이 있었으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와 유럽의회, EU 27개 회원국 대표는 결국‘AI 법(AI Act)’ 법안에 합의했다. 아직 세부안에 대해 최종적으로 완전 합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나, GPT-4는 가장 강력한 제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강력한 규제가 부의 집중을 막아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을까? 규제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이미 ‘이미 부를 집중한 기업’은 철저한 규제관리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오히려 강력한 규제는 이들의 집중력을 보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3 반면 이러한 규제는 새로운 혁신기술이 시장에 진입하는데 장벽으로 작용하면서 오히려 기술독점을 심화시킬 수 있다. 결국 그 효과가 검증되지 못한 기대감만으로 만들어진 규제는 이미 AI기술을 보유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에 또 다른 “사다리 걷어차기”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테크놀로지와 권력과 민주주의” 간 “정(正)”의 효과를 위한 우리의 ‘선택’은 ‘강력한 규제’보다는 더 나은 ‘혁신 창출 환경의 마련’이 돼야 할 것이다.

3. “AI 환상”, “AI드림”에 대하여

저자는 “AI가 노동자들에게 적대적인 편향을 띠면서 발전하고 있고 일부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4 하지만 기술수용의 적정성에 대해 제안하기도 한다. 특히 다음과 같이 우리나라를 긍정적 사례로 제시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 타이완, 중국 같은 곳에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빈곤이 감소한 것은 단지 서구의 생산 방식을 수입해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이들 나라의 인적자원이 더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 모두에서 테크놀로지는 노동 인구 대부분에게 새로운 고용 기회를 창출했고, 국가 자체도 테크놀로지가 요구하는 바와 국내 인구의 실제 숙련도 사이의 불일치를 줄이기 위해 교육 투자를 늘렸다”5

저자는 “AI테크놀로지가 꼭 노동의 자동화와 노동자 감시에 초첨을 맞춰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또 꼭 정부의 감시 역량을 강화하는 쪽으로 발달해야 한다는 법도 없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딱히 내재적으로 반민주적인 속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셜미디어가 꼭 분노, 극단주의, 선동을 극대화하는 데 초첨을 맞춰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를 현재의 곤경으로 데려온 것은 선택이었고 특히 테크기업, AI연구자, 정부들이 내린 선택이었다”6 며 테크놀로지의 중립적 속성에서 인간이 선택해야 하는 AI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보완하고 돕는 방향으로 가면 그 결과를 훨씬 좋을 것이고 이제까지의 사례에서도 그런 경우에 결과가 훨씬 더 좋았다”7 는 언급은 기술이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보완하고 돕는 방향”에 대한 해석과 집행이 각 국가마다 혹은 정책 입안자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이 당연한 명제를 실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독재자는 디지털 도구를 정보의 유통과 저항을 억누르는 검열도구로 사용하면서 자국의 안정에 기여한다고 판단, 정당화할 것이고 이러한 경우 AI는 엄청난 감시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자의적 오판을 막기 위해 “테크놀로지의 방향을 다시 잡기 위한 정책들”을 제안하고 있다. 주요 제안내용은 ①유익한 테크놀로지에 대한 보조금 등 시장 인센티브 부여, ② 거대 테크 기업의 분할, ③ 자동화에 대한 과도한 인센티브 줄이는 등 조세 개혁, ④노동자에 대한 투자, ⑤ 정부의 리더십, ⑥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소유권 ⑦ 플랫폼 면책하는 통신품위법 230조 철폐 ⑧ 디지털 광고세 등이다. 그러나 잘못된 보조금 정책은 시장의 경쟁을 왜곡시킬 수 있으며, 기업의 분할을 위해서는 정확한 시장의 획정을 통한 독점의 폐해가 입증돼야 한다. 자동화에 대한 인센티브는 궁극적으로 혁신의 원동력이 될 수 있으며, 데이터 소유권은 자칫 데이터의 유통·이동·이용을 막아 중소데이터 기업의 좌멸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들이 저자가 의도한 대로 ‘인간을 보완하고 인간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신중하고 철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저자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공유된 번영의 무덤이 되었다”8 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선택에 의해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공유된 번영의 촉매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1. 괄호 부분은 필자 작성. 423 [본문으로]
  2. 이 책, 395쪽 [본문으로]
  3.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581쪽) 유럽의 대표적 개인정보 규제법인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GDPR의 효과에 대한 실증근거들을 보면 작은 회사들은 더 불리해지고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큰 회사들의 사용자 모니터링과 데이터 수집은 효과적으로 제한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기술하고 있다. [본문으로]
  4. 이 책, 436쪽 [본문으로]
  5. 이 책, 478쪽 [본문으로]
  6. 이 책, 537쪽 [본문으로]
  7. 이 책, 463쪽 [본문으로]
  8. 이 책, 369쪽 [본문으로]
저자 :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 / KISO저널 편집위원장 / 개인정보보호법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