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사가 바라본 KISO] ③-2 네이버 홍태화 매니저
-편집자주- <KISO, 자율규제를 말하다> 특집호에서는 KISO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사들의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회원사의 목소리는 KISO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자율규제의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KISO는 앞으로도 회원사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건강한 자율규제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데 앞장설 것입니다. |
<사진=네이버 홍태화 매니저>
–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네이버 Papago dictionary 팀에서 일하고 있는 홍태화입니다. Papago Dictionary라는 팀 이름이 조금 생소하게 느껴 지실 것 같은데요. 쉽게 말해 저는 Papago라는 조직 안에서 사전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파파고 번역기는 다들 한 번쯤 써 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언어의 장벽 없이 대화하는 세상을 꿈꾸는 파파고 조직은 거대한 언어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똑똑한 번역기를 만들고 있고, 그 중에서도 저는 규범화된 어휘를 다루는 어학사전 팀에서 서비스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 KISO의 다양한 위원회와 활동에 직접 참여하신 적이 있다면 그 경험을 알려주세요.
“국어사전, 영어사전, 한자사전… 47개 언어, 60종의 사전, 2,587만여 건의 표제어를 서비스하고 있는 어학사전이지만 저희에게도 여러 고민이 있습니다. 정확한 언어의 사용법을 알기 위해 찾은 사전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차별적 단어나 비하의 의미를 담은 예문을 보여준다는 문제점은 그 중 대표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이용자 불편 신고를 받거나 언론에 비슷한 기사가 보도되는 날이면 서비스를 담당하는 저희 역시 재빠르게 문제가 되는 부분을 뜯어고치고 싶었지만, 어디까지나 사전의 모든 내용은 원작자가 작성한 저작물이기 때문에 원작자의 확인과 동의 없이는 어떠한 수정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중 KISO를 만나 저희의 고민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어학사전 자문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KISO와 네이버 어학사전의 동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어학사전 자문위원회’는 언어를 다루는 국어학자, 아나운서뿐만 아니라 인권위원, 법학자 등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할 수 있는 6명의 전문가로 구성되었습니다. 자문위원 분들께서는 언어를 사용하는 환경의 변화와 흐름에 맞추어 어학사전이 담고 있는 많은 표제어와 예문 중에서 차별∙비하적 표현을 찾아내고, 이를 개선하고자 각자의 분야에서 숙련된 관점으로 다양한 의견을 주셨습니다.
저 역시 매달 진행되는 자문위원회의 정례회의에 참석하였는데, 하나의 단어를 두고 각 분야의 전문가인 자문위원님들께서 첨예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례로 ‘바보’라는 표제어는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혹은 ‘어리석고 멍청하거나 못난 사람을 욕하거나 비난하여 이르는 말’이라는 뜻풀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 역시 당연히 차별∙비하적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문위원 중 한 분께서는 최근 들어 ‘딸 바보’나 ‘조카 바보’와 같은 신조어를 많이 쓰는데, 이런 말들 속에서의 ‘바보’는 ‘바보가 될 정도로 대상을 지극히 사랑하는’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부정적 의미로만 쓰이지 않는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언어란 살아 움직이는 힘이 있고, 다양하게 조합되어 쓸 수 있는 만큼 한 단어의 의미를 하나의 틀 안에 가둘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차별∙비하 표현을 지정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예시였지요.
이렇듯 복잡하고 어려운 토론을 거쳐 자문위의 활동 결과로 ‘어학사전 서비스 이용자 보호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어학사전 편찬 전문성, 저작권 보호 등의 원칙에 더해 이용자의 언어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사전 내의 차별∙비하적 표현에 대한 조치 방안을 규정에 포함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렇게 마련된 가이드라인에 따라 고빈도 표제어를 추출하고, 그중 가장 첫 번째로 ‘장애’, ‘지역’, ‘출신 국가’, ‘인종’, ‘종교’ 등을 대상으로 하는 표제어들을 검토하여 최종적으로 차별∙비하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표제어들을 분류하게 되었습니다.”
– KISO에서 나온 결정이나 결과물을 회원사가 실무에서 적용할 때 도움이 된다면 어떤 측면에서 그러한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KISO ‘어학사전 자문위원회’ 활동 결과물을 바탕으로 네이버 어학사전에서는 해당 표제어들을 대상으로 차별∙비하적 표현 주의 문구를 적용하였습니다. 이제 네이버 검색창에서 ‘계집’, ‘벙어리’, ‘깜둥이’와 같은 단어들을 검색하게 되면 ‘차별 또는 비하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이용에 주의가 필요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KISO의 ‘차별표현 바로알기 캠페인’으로 연결되는 링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작업은 말뭉치와 빅데이터를 근거로 하여 실제 쓰이는 빈도를 바탕으로 차별∙비하적 표현을 분류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KISO와의 작업을 통해서 국어학자뿐 아니라 인권을 연구하는 인권위원, 법을 연구하는 법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의 시선과 논의를 통해 차별∙비하적 표현을 재단하여 공정성을 획득할 수 있었고, 카카오와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게 되어 이용자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간 네이버 어학사전의 개선점으로 지적되어 왔던 시대착오적인 단어와 표현들에 대해 KISO와 손잡고 그 현황을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주의 문구에서 나아가 ‘차별표현 바로알기 캠페인’이라는 능동적 활동으로 발전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KISO와의 협업의 지평이 더 넓어지기를 바라봅니다.”
– 마지막으로 KISO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네이버 어학사전을 찾는 이용자들은 단어의 정확한 쓰임을 알기 위해 검색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용자들이 원하는 바를 위해 오늘도 사전을 다듬고 있습니다. 사전이라는 특성상 우리는 새로운 말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신조어를 널리 유통시키거나 언어의 규칙과 규범을 제시함으로써 더 나은 언어 사용의 길을 제시할 수는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KISO와 함께 어학사전 속 표현 중 지역∙종교∙장애∙인종∙출신국가∙성별∙나이∙직업 등과 관련한 차별 표현들에 대해 바로잡았습니다. 최근 들어 사회 갈등이 심화되고 그에 따른 차별, 혐오적 표현이 특히 인터넷에서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어학사전을 넘어 검색어 전반의 차별∙비하∙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쉽지 않겠지만, KISO와 함께 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