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3.0, 평등한 새로운 인터넷을 만들 수 있을까

1. 웹 3.0을 둘러싼 공방

2021년 말 웹3.0의 실체를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의 불씨를 키운 것은 실리콘밸리의 소문난 절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잭 도시 트위터 창업자였다. 머스크는 자신의 트위터에 “웹3.0은 실체가 없는 마케팅 용어에 불과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하루 뒤엔 “웹 3.0을 본 사람이 있느냐? 나는 그걸 찾을 수가 없다”는 글을 또 올리면서 비판 수위를 더 높였다.

트위터 CEO에서 물러난 뒤 암호화폐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잭 도시도 웹3.0 비판에 가세했다. 웹3.0은 벤처캐피털(VC)들이 만들어낸 마케팅 용어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웹3.0 담론의 뒤에는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로 유명한 안데르센 호로위츠가 있다고 주장했다. 안데르센 호로위츠는 인터넷 혁명의 불씨가 됐던 넷스케이프 브라우저를 만든 마크 안데르센이 이끌고 있는 벤처캐피털(VC)이다. 잭 도시 역시 머스크와 마찬가지로 웹 3.0이 실체 없는 공허한 담론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배후’로 지목된 안데르센 호로위츠는 웹3.0 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고 주장한다. 안데르센 호로위츠는 “2021년은 웹3.0의 분수령이 됐다. 상당수 정책 입안자들이 누구나 기회를 가질 수 있고, 개인들이 자신의 정보에 대해 더 많은 통제권을 갖도록 해주는 웹3.0의 잠재력을 이해하게 됐다“고 공언했다. 바야흐로 웹의 새로운 진화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번 공방은 블록체인을 비롯한 분산처리 기술들이 중앙집중적인 웹을 새로운 단계로 진화시킬 것이냐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넷스케이프 브라우저로 웹 1.0 시대를 연 마크 안데르센과 대표적인 웹 2.0 서비스로 꼽히는 트위터를 만든 잭 도시가 논쟁의 서로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도 흥밋거리다.

2. 웹 2.0과 참여, 공유, 개방

웹 3.0 공방을 이해하기 위해선 웹의 발전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인터넷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 월드와이드웹(www)은 1989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근무하던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가 처음 만들었다. 당시 월드와이드웹은 대학과 연구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학자들이 신속하게 정보를 교환하고 공동 연구를 할 수 있는 망으로 처음 설계됐다. 이후 마크 안드르센이 1994년 그래픽 이용자 인터페이스(GUI) 기반의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란 브라우저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인터넷 혁명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크 안데르센은 이후 안드르센 호로위츠란 VC를 창업한 뒤 트위터를 비롯한 많은 스타트업의 젖줄 역학을 했다.

초기의 인터넷은 일방향 플랫폼이었다. 멀티미디어와 링크가 주축이 된 하이퍼텍스트이긴 했지만, 대부분 서비스 사업자들이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형태였다. 이 시기를 흔히 웹 1.0이라고 부른다. 월드와이드웹을 잘 구현할 수 있는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가 등장한 1994년부터 2004년 무렵까지를 흔히 웹 1.0 시대로 부른다.

2000년대 중반 블로그의 부상과 함께 콘텐츠 생산의 대중화 시대가 열리면서 웹은 새로운 단계로 진화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웹 2.0이란 명칭이 본격 사용된 것은 2007년부터다. 당시 오라일리 미디어를 이끌고 있는 팀 오라일 리가 닷컴 붕괴 이후에도 참여, 공유, 개방 특성을 갖고 있는 서비스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면서 이들을 웹 2.0이라고 부르자는 것이 시초였다. 구글, 아마존 등이 대표적인 웹 2.0 서비스로 꼽혔다. 플랫폼으로서의 웹이란 개념이 중요하게 사용됐다. 블로그와 이용자제작콘텐츠(UCC)도 웹 2.0을 대표하는 서비스들이었다.

웹 2.0은 웹의 양방향성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하지만 구글, 페이스북 같은 웹 2.0 대표 주자들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평등한 소통 공간이라는 웹의 취지가 위협받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게 제기됐다. 한 때 참여, 공유, 개방을 실천하는 업체로 인터넷의 추앙받았던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은 지금 거대 IT 공룡으로 전 세계 규제 당국의 견제를 받고 있다. 인터넷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이지만, 의미 있는 소통이나 상거래를 하기 위해선 IT 공룡들이 둘러쳐 놓은 담장(walled garden)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들이 정한 규칙을 따라야 하며, 그 대가로 소중한 개인 정보를 넘겨주는 불이익까지 감수해야만 한다.

3. 블록체인과 웹 3.0 시대의 본격 개막

웹 2.0의 이런 한계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웹 3.0이다. 웹 3.0은 지능화된 개인맞춤형 웹이란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거대 플랫폼이 중앙 서버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웹 2.0 생태계와는 달리 웹 3.0에선 블록체인에 분산 저장된다. 블록체인에 기록된 각종 정보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으면서도 데이터의 안정성이 뛰어난 편이다.

웹 3.0의 이런 특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 덕분에 다양한 데이터를 분산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데이터 원장을 네트워크 참여자들에게 나눠주는 기술이다. 특히 블록체인 상의 거래가 승인되기 위해선 전체 노드의 절반 이상이 동의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위변조가 불가능하다.

또 다른 특성은 ‘소유’ 개념이 좀 더 강조된다는 점이다. 웹 2.0이 강조했던 것 중 하나는 ‘읽기’에서 ‘읽고 쓰기’로의 진화였다. ‘쓰기’가 활성화돼야만 이용자 참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비롯해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들이 웹 2.0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건 이런 특성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웹 3.0은 여기에다 ‘소유하기’란 새로운 가치를 덧붙였다. 그래서 웹 3.0을 지탱하는 중요한 한 축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 기반이 된 토큰 경제다.

시장진입(Go to market, GTM) 전략을 살펴보면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웹 2.0은 일방향 웹에서 양방향 웹으로 진화한 개념이긴 하지만, 시장진입 전략은 대다수 전통 비즈니스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즉 인지도를 높이고, 잠재고객을 확보한 다음 이들의 관심을 최대한 고조시켜나가는 방법으로 점차 충성 고객으로 전환시키는 방식이다. 전통적인 웹1.0에 비해 이용자들의 참여와 소통이 중요한 역할을 하긴 하지만, 잠재 고객을 충성 고객으로 진화 발전시키는 기본 문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다보니 구글, 아마존, 이베이, 페이스북 같은 소수 거대 플랫폼들이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반면 다른 기업들은 완전한 황무지 상태에서 의미 있는 규모의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분산형 구조를 갖고 있는 웹 3.0은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웹 2.0과는 크게 다르다. 무엇보다 웹 2.0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던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없다. 따라서 거대 플랫폼의 횡포 뿐 아니라 후광 효과까지도 기대하기 힘들다. 대신 새롭게 고객을 확보하려는 기업들은 자기 힘으로 네트워크를 덧붙여나가면서 조금씩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 이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토큰(token)이다. 이용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대대적인 마케팅 비용을 쓰는 대신, 초기 기여자들에게 토큰을 나눠주게 된다. 토큰은 자발적 참여 유인이 되는 동시에 네트워크에 대한 소속감도 높여주는 역할을 하면서 거대 사업자의 후광을 입지 않아도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좀 더 높여주게 된다. 웹 3.0 패러다임에서 ‘토큰 이코노미’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이런 구조와 관련이 있다.

4. 탈중앙화 자율조직 DAO

이런 특성을 갖고 있는 웹 3.0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분산형 자율조직(DAO)이다. DAO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는 개인들이 자본을 모으고, 투표 등의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해 나가는 온라인 공동체다. 자본은 토큰으로 모으고, 토큰의 지분만큼 투표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최근에는 소더비 경매에 나온 미국 헌법 초판을 낙찰 받기 위해 17,000명이 ‘컨스티튜션 DAO’를 결성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컨스티튜션 DAO는 72시간 만에 4천만 달러 이상을 모금했고 실제 경매에 참여했다. 근소한 가격차로 낙찰에는 실패했지만 DAO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를 평가 받고 있다. 분산 금융(DeFi)을 비롯한 블록체인 기반의 많은 서비스들은 이렇게 작동한다고 보면 된다. DAO는 각종 안건이나 자금 사용처 등을 별도 중앙조직 없이 분산된 개인들이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투자 현황, 자금 모집, 운영 방법 등이 모든 참여자들에게 공개된다.

2022년 들어 DAO가 특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블록체인 데이터 전문 업체 메사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0년이 디파이의 해였고 2021년이 NFT의 해였다면, 2022년은 DAO의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넷은 생산과 유통의 민주화를 이루어내면서 새로운 이용자 참여 시대를 열었다. 특히 참여와 공유, 개방을 기치로 내걸었던 웹 2.0 패러다임은 평범한 많은 사람들을 콘텐츠와 상거래의 중요한 축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전통적인 경제 패러다임을 허물어버리면서 소비자(이용자)의 힘을 좀 더 강력하게 키워줬다.

하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참여와 공유 자체는 아름다운 가치이지만, 그게 규모의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다보니 몇몇 거대 IT 플랫폼 사업자들이 인터넷을 쥐락펴락 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오히려 오프라인 공간의 독점보다 더 심각한 불평등 현상이 발생했다. 구글, 메타(구 페이스북) 같은 몇몇 기업들이 사실상 주요 인터넷 서비스를 독점하면서 개방과 참여라는 당초 이상은 실종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웹 3.0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을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특히 웹 3.0과 코인 이코노미의 핵심 작동 원리인 DAO에 거는 기대가 크다. 분산된 환경에서 모든 사람들이 중요한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몇몇 거대 기업들이 주도하는 지금의 인터넷보다는 훨씬 더 민주적인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5. 나가며 – 웹 3.0은 실체가 있는 담론일까

2000년대 중반 웹 2.0 담론이 뜨겁게 달아오를 때도 실체를 둘러싼 공방이 적지 않았다. 팀 오라일 리가 웹 2.0 담론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나서자 “마케팅 용어 아니냐”는 강한 비판도 제기됐다. 하지만 당시 웹 2.0 대표 주자로 거론된 구글, 아마존, 트위터 같은 기업들은 이후 인터넷 비즈니스를 주도하면서 이용자 참여의 전범을 보여줬다. ‘그들만의 정원’ 안에서의 참여를 강요한다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이전의 웹 서비스에 비해 한 단계 진보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웹 3.0도 비슷한 공방을 겪고 있다. 특히 웹 2.0 대표 주자인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는 “유명 벤처캐피털(VC)와 그들의 파트너들이 웹 3.0까지 손에 넣게 될 것”이라면서 “웹 3.0은 결국 다른 명칭을 붙인 중앙집중적인 인터넷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웹 3.0을 주도하고 있는 안데르센 호로위츠 공동 설립자인 마크 안데르센은 이런 비판에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웹 3.0을 공개 저격한 잭 도시를 트위터에서 차단한 데 이어 올 들어선 “2022년에도 많은 사람들을 차단할 것이다(In 2022, I am GOING TO BLOCK SO MANY PEOPLE)”란 글을 올리면서 웹 3.0 비판론자들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과연 웹 3.0은 잭 도시의 말처럼 ‘실체 없는 마케팅 용어’에 불과한 걸까? 아니면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마크 안데르센의 장담처럼 또 다른 웹의 혁신으로 이어질까? DAO를 기반으로 한 웹 3.0은 구글, 메타 등이 주도하는 지금의 인터넷을 ‘모두의 정원’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웹 3.0이 실체를 갖기 위해선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 있어야만 한다. 구글, 아마존 등이 웹 서비스의 새로운 단계를 선사해줬던 것처럼 웹 3.0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한 서비스가 자리를 잡아야만 한다. 그 때까지는 웹 3.0의 실체를 둘러싼 공방은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웹의 혁신에서도 중요한 건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T. Tomica, & Rathmell, J. (2022.1. 7). How to build a better internet: 10 principles for world leaders shaping the future of web3. a16z. https://a16z.com/2022/01/07/how-to-build-a-better-internet-10-principles-for-world-leaders-shaping-the-future-of-web3/

저자 :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