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간 국내 인터넷 자율규제 관련 법적 환경의 변화 양상
Ⅰ. 들어가며
한국의 인터넷 자율규제의 역사는 일천하다. 그 이유에 대하여는 자율규제의 역량 부족, 토대 결핍, 기존매체와 차별성 부족, 규제권한의 중시, 정책입안절차의 미비 등이 제시되지만,1 무엇보다도 강력한 법적 규제 시스템 환경속에서 발전된 전통적인 매체 내용규제의 역사적 경험에서 제기되는 자율규제의 필요성이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율규제는 그 개념상 법적 규제 또는 국가규제에 대응되는 언어이지만, 국가의 법규범과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관련 속에서 발전해 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인터넷 생태계에서 자율규제의 길을 걸어온 그간 10년동안의 법적 환경의 변화를 되짚어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이 글은 한국 인터넷 자율규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적 환경의 변화를 살펴보고, 이러한 변화가 인터넷 자율규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양상과 시사점을 제시함으로써 향후 바람직한 자율규제의 방향을 가늠해보고자 한다.
법적 환경의 변화는 법제와 판례(또는 선례) 양 측면으로 구분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먼저 관련 법제의 변화를 보면, 자율규제에 대한 법률 규정, 그리고 자율규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제도로서 인터넷심의, 임시조치, 개인정보 보호 등의 변화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판례의 변화를 보면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이하 KISO라 함)의 정책결정이나 심의 등의 운영상 영향을 미친 주요 판례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인터넷심의 관련 판례, 임시조치 합헌 판례, 인터넷 소비자게시물 판례, 공인 판례, 종교 표현 관련 판례, 개인정보 보호 관련 판례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법적 환경은 아니지만, 자율규제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KISO의 주요 정책결정 등의 선례도 함께 고찰하고자 한다.
Ⅱ. 자율규제 관련 법제도 변화의 양상
- 자율규제 관련 규정
자율규제의 법적 근거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의 자율규제 관련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이라 함)은 2007. 1. 26.자 개정에서 자율규제의 내용을 마련하였다.2 이 조문은 2008. 6. 13. 약간의 자구수정을 거쳐 2018. 12. 24. 전면 수정되었다.3 최초에는 자율규제단체의 행동강령의 제정에서 시작하여 2018년 개정시에는 청소년유해정보 등의 모니터링 가이드라인의 제정 및 자율규제단체에 대한 지원근거를 추가하였다. 그런데, 이 조문으로써 자율규제의 규범인 행동강령이나 모니터링 가이드라인의 근거 또는 법적 효력이 부여된 것이라기는 어렵고, 또한 이 조문만으로 법적 지원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더욱이 자율규제단체의 행동강령이나 가이드라인의 자치법적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율규범이라고 하더라도 집행상 면책을 받기 위하여는 국가 법체계의 수용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조문이 의의를 가지자면, 자율규제를 통한 행위에 대한 책임감면 등 법집행상의 예외규정의 근거여부라고 할 것이다.
- 게시물 정책 관련
KISO의 가장 주된 기능인 게시물 정책은 내용규제정책과 관련이 있다. 그 변천을 보면 구전기통신사업법상 불온통신에 대한 심의제도(제53조)가 2002년 위헌결정4 때까지 존속하였고, 그 위헌결정 이후 2002. 12. 26.자로 ‘불온통신’을 9개의 정보로 유형화한 ‘불법통신’으로 변경되었으며, 2007년 정보통신망법에서 ‘불법정보’로 변경하여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또한 내용규제정책 중에서 청소년 보호를 위한 게시물정책도 영향을 미쳤다. 청소년보호법 및 정보통신망법에서는 인터넷에서의 청소년보호를 위한 각종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불법정보 및 청소년유해정보에 대한 게시물정책은 실상은 KISO의 자율규제 영역이라기 보다는 국가의 인터넷 내용규제 정책 또는 회원사의 게시물정책으로 운영되고 있는 특징을 가진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심의는 국가공권력을 통한 내용규제정책으로서 자율규제 영역과는 구분되는 별개의 게시물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5
보다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생활 침해 또는 명예훼손 정보에 대한 정보통신망법상 임시조치제도이다(제44조의2). 이 제도는 인터넷상 명예훼손 등 인격적 권리침해에 대한 피해구제제도로서 고안된 것인데, 요청의 주체, 명예훼손 여부 등 임시조치의 요건에 대한 판단이 어려운 경우 이를 KISO의 심의를 통하여 해결하고 있는데, 그 법적 근거가 없다면 사실 시행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이는 임시조치의 주체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라는 사업자라는 점에서 KISO라는 자율규제단체에 적합하고, 향후에 제도의 변화 여하가 게시물 정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가 된다.
- 인물정보 서비스 관련
인물정보 서비스는 KISO의 회원사인 네이버와 카카오가 각 자사 운영 포털사이트(네이버, 다음)에서 인물정보의 검색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이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검색한다는 점에서 검색엔진의 기능에 속하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주요 인물의 직업, 학력, 경력 등 상세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이용자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정보사회에서의 개인정보 서비스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이 서비스가 제공하는 해당 인물의 인적사항은 개인정보에 해당되는 것이어서 개인정보 보호법제의 규율을 받게 되고, 한편 이러한 개인정보에 대한 규율법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성격상 강행규정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물정보 서비스는 개인정보 보호법제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게 된다. 「개인정보 보호법」은 2011. 3. 29. 제정되었는데 물론 그 이전에도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내용의 법률이 존재하였으므로, 이 법률의 체계화된 내용에 따라 인물정보 서비스는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Ⅲ. 판례의 영향과 KISO의 자율규제 양상
- 서언
KISO의 게시물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임시조치에 대하여는 헌법재판소가 정보통신망법상 관련 조문에 대하여 합헌결정6 을 하여 위헌여부에 대한 논란은 일단 종식되었다.7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에 들어가면, 임시조치 요청의 주체의 범위, 게시물의 성격(소비자 관련 게시물, 종교 관련 게시물 등) 등에 대한 정책결정이나 심의를 위한 법적 쟁점까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아래에서는 KISO의 정책결정 및 심의결정 중 몇가지 쟁점에 대하여 영향을 미친 주요 판례와 관계를 소개하고자 한다.8
- 임시조치 요청의 주체
임시조치 요청의 주체에 대하여 보면, 정보통신망법에서는 ‘피해자’로만 규정되어 있을뿐 그 주체의 제한 규정이 없으나, 임시조치가 정치인, 고위관료,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 등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지속되었고, 이에 따라 이들에게도 임시조치를 요청하는 피해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실무적으로 논란이 되었다. 이에 KISO는 제2호 결정9 에서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와 정무직 공무원 등의 공인이 자신의 공적 업무와 관련된 내용에 대하여는 임시조치를 요청할 수 없는 것으로 결정하였는데,10 이는 기존의 판례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것이다. 먼저 국가기관 등의 기본권주체성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이를 부인하면서 오히려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내지 실현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판시하였는데,11 이 취지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할 것이다. 또한 정무직 공무원 등에 대하여 보면, 대법원은 2002. 1. 22. 선고 2000다37524 판결 이래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은 보호되어야 하며 그 점에 관한 의혹제기가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쉽게 책임을 추궁하여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책결정 및 정책규정에서는 공인의 개념을 ‘정무직 공무원등’으로 한정하고 그 내용이 공적업무와 관련된 경우에는 ‘명백히 허위사실이 아닌 한’ 임시조치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범위를 한정한 것이다.12 사실 이러한 쟁점사항은 판례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라기 보다는 주된 취지를 인터넷의 특성을 감안하여 자율규제 차원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임시조치 대상 게시물의 성격
(1) 먼저, 소비자 게시물에 대한 심의사례와 판례의 관계를 본다. 최근 소비자의 구매행태를 보면 인터넷에 유통되는 소비자의 해당 제품에 대한 사용 리뷰 등을 통하여 소비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이러한 리뷰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 그로 인하여 해당 제품이나 기업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가 발생될 수도 있다. 현행법상 이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정보통신망법 제70조제1항)에 해당되는데 이를 위법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문제가 된다. 대법원은 산후조리원 사건에서 소비자가 자신의 경험을 후기 형태로 인터넷에 게시한 사안에서 명예훼손을 부인하고 있다.13 이는 형식적으로는 게시의 비방목적을 인정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한 것이지만, 결국 인터넷사회에서의 소비자 리뷰를 통한 소비행태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에 따라 KISO도 소비자게시물 사건에서는 이러한 취지를 받아들여 임시조치를 신중하게 결정하고 있다.14
(2) 다음으로 종교 관련 게시물과 판례의 관계를 본다.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종교 관련 표현은 일반 표현 보다 고도의 보장을 받게 되며, 이로 인하여 타인의 명예를 침해하는 경우 종교의 자유 보장과 개인의 명예 보호라는 두 법익을 이익형량하여 결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하면서,15 종교적 비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KISO는 이러한 취지에서 종교와 관련된 경험담을 종교의 자유의 보호대상으로 결정하거나16 종교 관련 사항에 대한 비판은 사실의 적시로 볼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17
Ⅳ. 시사점과 과제
KISO가 발족한 이래 최근 10년간 자율규제의 법적 환경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는 하기 어렵다. 정보통신망법에서 내용규제 가이드라인의 제정이나 정부지원의 근거 등 자율규제의 내용이 약간 추가되긴 하였지만, 자율규제의 법적 환경을 본질적으로 변경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편 KISO의 정책 결정이나 심의사례의 축적은 앞서 본 바와 같은 판례를 토대로 한 것이 많은데, 이는 새로운 판례의 등장이라기보다는 기존의 판례의 입장을 KISO가 그 취지를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가 된다. 물론 2012년 정보통신망법상 임시조치에 대하여 합헌결정은 임시조치를 둘러싼 위헌성 시비에 대하여 종지부를 찍음으로써 게시물정책에 대한 불안요소를 제거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KISO의 정책결정이나 심의와 기존의 판례 사이에 상이가 있는 경우, 판례에 배치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추종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판례의 공백이 있거나 명백히 반하는 것이 아닌 한 자율규제의 취지를 살려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자율규제의 발전을 위하여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한 법제 측면에서 보면, 향후 자율규제의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는 게시물정책으로 인한 당사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책임규정을 법률화할 것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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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흠·황성기·김지연·최승훈, 「인터넷 자율규제」, 커뮤니케이션북스, 2004, 184-186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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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조의4 (자율규제)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단체는 이용자를 보호하고 안전하며 신뢰할 수 있는 정보통신서비스의 제공을 위하여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 행동강령을 정하여 시행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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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조의4(자율규제)
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단체는 이용자를 보호하고 안전하며 신뢰할 수 있는 정보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행동강령을 정하여 시행할 수 있다.
②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단체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가 정보통신망에 유통되지 아니하도록 모니터링 등 자율규제 가이드라인을 정하여 시행할 수 있다.- 청소년유해정보
- 제44조의7에 따른 불법정보
③ 정부는 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단체의 자율규제를 위한 활동을 지원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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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2002. 6. 27. 99헌마480결정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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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하여, KISO 정책규정은 국가적 법익 침해와 관련한 게시물처리(제8조), 청소년보호를 위한 검색어정책 등(제30조 내지 제32조)의 경우에는 위 게시물정책을 그대로 시행하지 않고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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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2012. 5. 31. 선고 2010헌마88 결정.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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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오, “정보통신망법상 권리침해정보에 대한 임시조치의 위헌성”, 「정보법판례백선(Ⅱ)」, 박영사, 2016, 555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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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보 서비스와 관련해서는 개인정보보호 관련 다양한 판례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공개된 개인정보를 정보주체의 동의없이 수집하여 인물정보서비스에 이용한 사안에서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판결(대법원 2016. 8. 17. 선고 2014다235080 판결)은 인물정보 서비스의 운영상의 근거를 제시하는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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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O, 2009. 6. 29. 명예훼손성 게시물의 임시조치 등에 관한 추가적인 정책(제2호결정). 현행 정책규정 제5조로 도입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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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하게 본다면 정무직 공무원 등의 요청을 제한한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게시물을 임시조치의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제5조제2항 “임시조치 등을 요청하는 자가 정무직 공무원 등 공인인 경우, 자신의 공적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명백히 허위사실이 아닌 한 명예훼손 관련 임시조치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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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1994. 12. 29. 선고93헌마120 결정 ; 헌재 1995. 2. 23. 90헌마125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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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KISO(2018), 「2018 KISO 정책규정 해설서」, 54-69면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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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판 2012.11.29. 2012도10392 결정.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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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내용은 황창근, “소비자 게시물의 재게시에 대한 심의결정 리뷰”, 「KISO저널」 제19호(2015.6.22.)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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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996. 9. 6. 선고 96다19246,19253 판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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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O 2015.4.6. 2015심7 결정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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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O 2014.10.21. 2014심19 등 다수 결정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