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밀보호법 개선의 필요성

1. 정보자기결정권의 보호

통신비밀보호법의 목적은 ‘통신비밀을 보호하고 통신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통신의 비밀을 보호받을 국민의 권리는 헌법 제17조를 통해서 보장되고 있다. 이 조항은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 국민들은 사생활과 관련된 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향유하게 된다. 이른바 정보자기결정권이란 ‘자신의 정보가 언제 어느 범위까지 공개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말한다.

모든 헌법상의 기본권은 본래 국가의 침해행위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런데 기본권 침해행위는 국가에 의해서만 자행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 의해서 저질러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사인에 의한 기본권 침해가 국가기관에 의한 침해보다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데, 재벌기업의 부사장이 마카다미아 서비스를 마음에 들지 않게 하였다는 이유로 사무장을 무릎 꿇게 한 채 심한 모멸감을 주는 행동을 하였다면 사인에 의해서 기본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수 있다.

통신비밀보호

사인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를 이용하는 방법 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별도의 장치가 필요하다. 그러한 장치는 법이라는 외관을 가지고 있어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국회가 나서서 사인의 기본권 침해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입법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통신에 관한 정보자기결정권을 국가기관을 포함한 모든 사람으로부터의 침해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일찌감치 1994년에 제정되었다. 현행 통비법은 제16조의 벌칙규정을 통해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는 행위에 대하여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부과함으로써 이를 방지하고자 하고 있다.

 

2. 기본권의 제한

기본권이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은 말 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사항이다. 하지만 모든 기본권이 어떠한 경우에도 철저하게 절대적으로 보호될 수는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계획적으로 여성을 살해하고 그 시신을 토막 내서 이곳저곳에 유기한 범죄자가 계속해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게 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모든 국민은 일반적 행동의 자유가 있으므로 무슨 짓을 하든지 국가가 절대로 간섭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일반국민들은 불안해서 살 수가 없게 된다. 힘을 가진 자가 마음대로 다른 사람들을 해치고 착취하는 끔찍한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기본권은 항상 절대적으로 보장될 수 없다. 그래서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서 필요한 경우에는 기본권을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권에 대한 침해도 가능하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극악무도한 범죄자에 대해서 사형을 선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형법 제41조가 정하고 있는 사형,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벌금, 구류, 과료, 몰수와 같은 형벌은 모두 다 기본권을 침해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이러한 형벌을 부과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많은 경우 일반국민들은 형량이 낮다고 하면서 더욱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곤 한다.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한 끔찍한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는 온 나라가 들끓게 된다.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준 재벌 총수들이 경제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이유로 줄줄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기본권 제한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되어 형벌부과가 선고된 사람뿐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받는 단계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경우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형벌을 부과 받지 않기 위해서 증거를 없애거나 수사기관을 피해서 도주하여 숨어버리거나 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형사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장소적 이동의 자유를 박탈해 둘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범죄혐의가 인정되고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구속영장을 발부하여 인신을 구금한 상태에서 수사를 하게 된다.

이처럼 기본권을 제한하면서 진행되는 수사를 강제수사라고 하는데, 그 종류에는 체포, 구속, 압수, 수색, 검증 등이 있으며 범죄혐의자의 대화를 엿들음으로써 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통신제한조치도 이에 포함된다. 그런데 강제수사의 일종인 통신제한조치는 다른 유형의 강제수사와는 달리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사람이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3. 강제수사와 영장주의

강제수사를 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판단은 일단 수사기관이 하게 된다. 증거가 이미 명확하게 나와 있고 피의자가 도주할 염려도 없다면 굳이 구속수사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구속수사와 불구속 수사를 비교해 보면 수사하는 입장에서는 구속수사가 매우 편리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또 구속된 피의자는 구속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많은 심리적 부담을 느껴서 수사에 협조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편의성 때문에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일단 잡아들인 뒤에 수사를 하고 싶어지기 마련인데, 이를 무작정 허용한다면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불필요한 기본권 침해를 당할 위험이 많아진다.

그러므로 구속 여부 등 강제수사를 하여야 하는 경우인가에 대한 판단은 법률이 정하고 있는 기준에 따라 엄정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 작업을 수사기관 스스로 하도록 놔둘 수가 없으므로 강제수사를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내려지는 사안이 있을 때 검사가 법원에 영장의 발부를 신청하고 법원이 구속사유가 충족되는가에 대한 판단을 해서 영장을 발부하게 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강제수사가 가능해지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영장주의는 강제수사 전역에 적용되고 있다. 통신제한조치도 예외가 아니어서 검사가 청구하고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가지고서야 감청을 수사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받는 경우에도 법원의 영장을 필요로 하고 있어서 아주 강력한 정보자기결정권 보호가 이루어지고 있다.

 

4. 통신제한조치의 특수성과 추가적 안전장치

통신제한조치의 경우에는 강제수사가 이루어지더라도 이를 기본권의 주체인 피의자가 감청을 당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특이한 문제점이 있다. 부당하게 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하더라도 그 사실을 모른다면 부당함을 호소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당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불법감청의 방지가 매우 힘들어질 것이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현행 통비법이 취하고 있는 안전장치는 당사자 통지제도이다. 수사가 끝나면 반드시 당사자에게 감청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도록 의무화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법감청 문제는 당사자 통지제도 하나 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측면을 가지고 있다. 수사기관에서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감청장비를 이용해서 몰래 감청을 하게 되면 증거로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혐의를 확인하는 아주 손쉬운 방편으로 활용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일이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감청의 주체와 감청장비의 보유주체를 분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수사기관은 감청장비를 보유하지 못하고, 그 장비는 통신사업자가 보유하되, 수사기관이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제시할 때에만 통신사업자가 감청에 협조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현재 선진외국에서는 모두 이러한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국내의 통비법 전문가들도 이 방안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러한 방향으로 통비법을 개정하자는 국회 차원의 논의가 여러 해 전부터 있어왔지만 정작 아직까지도 결과는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제19대 국회에서는 이러한 개정작업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저자 : 김성천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