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의 현황과 미래
1. 들어가는 글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면 그 질주가 놀랍다. 지나온 과거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어딘지 모를 미래를 향해 곧바로 달려 가는 모습이다. 새로운 기술은 대개 과거의 기술을 기반으로 도약하는 데다 현재의 다른 기술들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발전에 큰 가속도가 붙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현재의 기술 발전 속도가 과거에 비해 놀랍도록 빠르다”라는 표현은 기술 발전의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도 적용될 것이다.
요즘 자주 등장하고 있는 ‘메타버스’라는 용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클 것 같다.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그렇지 않아도 새롭게 배워야 할 새로운 기술들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감을 잡기 어려운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기술이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뉴스의 주목을 받는 모든 신기술들을 다 이해하며 따라잡을 수는 없지만 메타버스는 왠지 알 듯 모를 듯해서 더 관심이 가기도 한다. 때로는 MMORPG 3D 게임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가, 가상현실을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증강현실 아바타도 나오고, SNS 이야기로 흐르다가, 블록체인 NFT 이야기가 나오고, 5G 네트워크 시대에 걸맞으면서, 또한 언택트 시대가 요청하는 기술이라고도 한다. 어떻게 이렇게 멋진 팔방미인 기술이 있을까? 과연 실체는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메타버스라고 하는 것인가?
아래에서는 메타버스의 개념적 시작에서 발전과정을 담은 역사, 현재의 모습을 살펴보고 미래의 메타버스에 대해서 간략히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메타버스의 역사
메타버스는 명확한 시작과 역사를 갖고 있다. 공상과학 소설에는 사이버펑크라는 서브장르가 있다. 기술을 잘 아는 하위계층의 주인공이 기술이라는 무기를 통해 사회적 부조리를 고발하고 맞닥뜨리는 내용을 많이 다룬다. 사이버펑크 장르의 대표작 뉴로맨서(1984)에서 탄생한 것이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라는 개념이다.1 지금은 단순히 인터넷을 의미하는 단어가 됐지만 당시에는 인간의 정신을 외부 네트워크를 통해 확장하는 제법 큰 철학을 담고 있었다. 사이버스페이스의 아이디어는 Habitat(1986)이라는 MMORPG 게임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다뤄졌다.2
그리고 이 개념은 닐 스티븐슨(Niel Stephenson)의 스노우 크래쉬(Snow Crash, 1992)라는 소설에서 현실과 연결된 특별한 가상공간으로 발전해서 아바타를 통한 경제활동이 가능한 메타버스(metaverse)라는 가상공간으로 최초로 제시됐다. 현재의 가상현실 헤드셋(HMD)과 유사한 장치를 착용하고 고화질의 그래픽으로 또는 텍스트 기반 터미널로 메타버스에 접속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스노우 크래쉬의 메타버스 개념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에픽 게임즈 창업자들의 가상세계 비전에 최근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3
메타버스를 사전적으로 풀어보면 초월 또는 재귀적 의미를 담는 메타(meta-)와 우주(universe)의 버스(-verse)가 합쳐진 단어이다. 메타데이터(metadata)가 데이터에 대한 데이터를 의미하는 것처럼 메타버스는 ‘우주들의 우주’가 사전적 의미일 것이다. 지금은 실세계와 가상세계가 합쳐져서 그 경계가 모호해진 더 큰 세계를 의미하게 됐다.
스노우 크래쉬는 시대를 앞서가는 상상을 담고 있었다. 지금에야 겨우 구현이 가능한 몰입형 실감 가상현실 디스플레이, 블록체인 암호화폐로 본격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탈중앙화 경제시스템이 메타버스의 주요 구성 요소로서 묘사됐다. 덕분에 동명의 게임(The Metaverse, 1993)이 탄생하기도 했고,4 아바타들이 등장하고 실세계 화폐와 연동되는 경제 시스템을 갖춘 게임(There, 1998)이 등장하기도 했다.5
초기 메타버스로 가장 성공적인 게임은 린든랩의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 2003)이다.6 세컨드 라이프는 3D 그래픽스 기술로 구현된 다중사용자 가상공간이다. 당시의 그래픽스 기술의 수준을 고려하고 보면 꽤 멋진 공간이었고 많은 사용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사용자 창작이 가능한 가상공간, 사회적 교류, 경제활동을 통한 이익창출 등 메타버스로서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매우 활발하게 운영됐다. 초기에는 수천만 명의 사용자가 있었지만 현재는 많이 축소된 편이다.
세컨드 라이프의 성공은 X3D(2004)와 같은 가상현실 표준과 다양한 오프소스 가상현실 프로젝트를 이끌었다.7 OpenSimulator(2007)는 세컨드 라이프와 호환이 되는 프로토콜을 지향했다.8 상용 가상공간 플랫폼인 Entropia Universe(2006)에서는 달러와 고정비율로 호환되는 자체 가상화폐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 가상공간에서 사용자가 제작한 리조트가 65만 달러에 팔리기도 했다.9 같은 해에 지금의 메타버스 열기를 선도하는 로블록스(Roblox, 2006)가 출시됐다.10
2006년에는 구글의 메타버스 시도가 공개됐다.11 3차원 캐드 기능으로 건물 등을 손쉽게 제작할 수 있는 SketchUp이 무료로 공개돼 구글 어스(Earth)에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구글 어스는 스노우플레이크의 가상의 공간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2008년에는 세컨드 라이프와 유사한 Google Lively라는 가상공간 플랫폼을 공개됐다가 곧 중단했다.12
2007년에는 ASF 그룹에 의해 “메타버스 로드맵”이라는 보고서가 발간됐다.13 메타버스를 구성하는 주요한 기능으로 시뮬레이션, 몰입감, 내부지향, 외부지향을 선정해서 대표적인 메타버스 서비스로 가상세계, 라이프로깅, 증강현실, 미러월드를 꼽고 있다. 가상공간이면서 실세계와 연동이 되는 미러월드는 디지털트윈과도 관련이 있다. 네 가지 서비스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실세계와 가상세계를 연동하는 궁극의 메타버스에서는 모든 서비스가 연동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2011년 마인크래프트의 출시를 거쳐 2017년까지 다양한 가상환경 서비스와 플랫폼들이 출시됐다.14 VRChat(2014)는 소셜 VR 플랫폼으로 사용자가 공간을 생성하고 전신 아바타를 제어하고 음성으로 채팅이 가능하다.15 AltspaceVR(2015) 역시 소셜 VR 플랫폼으로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돼 홀로렌즈 개발과 Mesh 서비스의 탄생에 영향을 준다.16 2016년에는 Sinespace, Rec Room, Anyland, Modbox와 같은 다양한 소셜 VR 플랫폼들이 출시되기도 했다. 이것은 비슷한 무렵에 HTC Vive, Occulus Rift와 같은 VR 헤드셋들이 발표된 것과 관련이 크다.17 2017년에는 세컨드 라이프의 VR 버전에 해당하는 Sansar가 출시되기도 했다.18
3. 메타버스의 현황
위에서는 메타버스 개념의 탄생과 발전과정을 살펴봤다. 여기서는 메타버스의 최근 동향을 살펴보자.
2006년 출시된 로블록스는 현재 미국의 16세 미만 청소년 55%가 가입하고 월 이용자가 1억5천만 명, 하루 접속자가 40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800만 명의 사용자가 자체 제작한 5천만 개의 게임이 유통되고 있는 거대한 메타버스 플랫폼이 됐다. 로블록스 제작사는 2021년 초 상장돼 460억 달러의 가치를 갖는다.19 구글 트렌드에서 검색 빈도를 비교하면 로블록스와 비트코인 비슷한 수준을 보인다.20
2017년에 출시된 에픽 게임스의 포트나이트 파티로열은 사용자들의 소셜 공간에 해당하며 가입자가 3억5천만 명을 넘는다. 사용자들이 가상공간에 모여 영화나 콘서트를 즐긴다. 2020년 4월 힙합 가수 트래비스 스콧의 콘서트에 동시 접속자가 1230만 명이었고 5일간 참여자는 2천700만 명, 그리고 2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21
영화 Ready Player One(2018)은 2010년 출간된 동명의 소설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한 영화이다. 2045년을 배경으로 하는 3D 메타버스를 최신의 그래픽 기술을 사용해 구체적으로 표현했다.22
이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3D 가상현실 기반의 메타버스도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NeosVR(2018)은 본격적인 VR 메타버스를 표방하며 출시했고 전신 아바타와 사용자 제작 환경을 지원한다. 유사한 개념의 VR 가상환경으로 페이스북 Horizon(2019)이 있고 현재 비공개 초청 기반으로 실험 중이다.23
2011년에 출시한 마인크래프트(Minecraft)도 메타버스의 대표적인 응용으로 언급된다.24 단순한 블록 기반의 그래픽으로 게임과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역대 가장 많이 팔린 비디오 게임이며 사용자 수는 1억2600만 명 정도로 보고 있다.
이런 블록 기반 가상세계는 The Sandbox(2020)에서 블록체인과 NFT 기능과 결합됐다. 메타버스 초기 서비스들도 디지털 아이템 거래에 자체 화폐를 제공했는데 2020년에는 블록체인 NFT가 거래증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블록 메타버스에는 ATARI 테마공원이 건설되고 있다고 한다.
이더리움 블록체인과 결합된 메타버스로는 Decentraland(2020)가 있다.25 메타버스 상업활동을 위한 가상 부동산을 판매하고 있는데 최근에 가상 쇼핑몰 건설 부지가 70만4천 달러에 팔리기도 했고, 부동산 투자로 91만3천 달러에 부지가 팔리기도 했다.
전신 아바타 소셜 VR 메타버스인 Somnium Space(2020)도 이더리움 기반으로 동작한다.26 같은 개념의 메타버스인 Sensorium Galaxy(2021)는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고품질의 그래픽, 경제 시스템, 세계관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27
마이크로소프트는 AltspaceVR 매입 이후에 홀로렌즈 증강현실 기술과 결합한 혼합현실 협업 플랫폼 Mesh(2021)를 출시했다. 28 메타버스는 특정 디스플레이 기술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텍스트 기반의 SNS도 어떤 의미에서 충분한 메타버스일 수 있다.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이 제공하는 그래픽의 품질은 저품질 블록 그래픽스의 성공에 비춰 볼 때 메타버스가 동작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아닌 것 같다.
국내에서는 2018년에 출시된 제페토가 메타버스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귀여운 아바타 캐릭터와 다양한 아이템, 얼굴 표정으로 제어하는 캐릭터와 증강현실, 사용자 제작 콘텐츠까지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제페토에서 개최된 블랙핑크 공연은 4000만 뷰를 돌파했고, 3000만 명이 팬 사인회에 참석했다.29
최근 메타버스의 새로운 동향은 명품 기업과의 협력이다. 패션 명품 구찌(Gucci)는 제페토와 아이템 개발에서 이미 협력하고 있다. 발렌티노, 발렌시아가, 루이비통 등이 기존 메타버스에서 패션쇼나 쇼케이스를 진행했다. 또한 루이비통, 카르티에, 프라다는 모조품 방지를 위해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 Aura를 출시하기도 했다.30
4. 메타버스의 미래
위에서 메타버스의 개념적 탄생과 발전 과정, 그리고 최근의 현황을 살펴봤다. 이를 통해 메타버스가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개념이 아니라 거의 30년간의 발전을 통해 꾸준히 진화해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컴퓨팅 및 네트워크의 성능, 블록체인 가상화폐의 등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최근의 놀라운 성장을 이끌어 낸 것을 봤다. 여기에 인공지능 기술이 가미돼 가상세계의 효용과 즐거움이 더 커진다면 메타버스의 성장은 더욱 놀라울 것이다. 그리고 실세계와 가상세계의 본격적인 연결로 새로운 부가가치의 창출은 가속될 것이다.
최근의 다양한 현황을 모두 담을 만한 메타버스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아직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그러한 정의가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 실세계에도 수많은 문화와 국가 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것처럼, 메타버스도 다양하다. 가상세계가 눈 앞에 펼쳐지는 모습도 다르고 실세계와 연동되는 방식과 목적도 상이하다. 연결, 창조, 확장, 체험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내가 주도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형태에 상관없이 사용자들은 그 메타버스를 환영할 것이다.
따라서 실세계의 제약조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다양성의 보장은 메타버스의 중요한 매력이자 성공 요소일 수 있다. 이를 위해 메타버스 내에서의 물리 규칙, 정치, 경제, 문화적 규범이 자체적으로 정의되고 진화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메타버스에서도 자율적인 성장, 정화, 쇠락의 과정을 목격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율적 운영은 실세계 경제나 다른 시스템과 연결되면서 필연적으로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국가 간 경계를 넘는 새로운 경제 체제 탄생의 어려운 과정을 블록체인 가상화폐의 발전 과정에서 목격하고 있다. 실세계와 가상세계의 본격적 연결이 역사상 최초로 실험되고 있으니 아직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거대한 실험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며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메타버스의 가상세계는 하부 IT 인프라의 성능과 규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거대 IT 기업에게 유리하며 독점적인 플랫폼의 등장이 예상되기도 하며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다양한 메타버스의 탄생과 메타버스 간 연동을 통해 본격적으로 더 큰 세상, ‘우주들의 우주’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오픈 메타버스를 위해 표준화도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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