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민,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인간성의 구현을 위하여

문화시평_저널제31호 사본

 

누스바움(M. C. Nusbaum)의 『인간성 수업: 새로운 전인교육을 위한 고전의 변론』 (원제: Cultivating Humanity (1997))은 500페이지에 달하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주장의 요지는 의외로 간명하다. 저자는 사회문화적 쟁점들이 복합화, 국제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대학 교육은 결코 자유교육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이때의 자유교육의 핵심은 세계시민의 양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조금 더 설명을 보충해보자. 저자는 교육의 근본적인 존재이유는 인간다움의 계발에 있으며 이는 소크라테스로 대변되는 비판적 성찰과 세네카로 대변되는 공동체를 위한 인간성의 고양을 자유교육의 토대로서 간주한다. 하지만 저자에게 고대 자유교육의 토대는 우리의 방법론적인 자원일 뿐, 현대 사회가 요청하는 ‘세계시민’의 역량은 다양한 쟁점들이 물리 공간과 사이버 공간을 넘나드는 현실적 맥락에서 새롭게 규정되어야 하는 과정적 대상임을 명시한다. 21세기를 들어서 본격화되고 있는 한국 대학의 시장화, 대중화, 효율화로의 편향적 질주가 전인교육을 담당해야 하는 대학의 목표를 직업교육으로 변질시키는 근본적 요인임을 직시할 때, 대학의 전인교육을 위해 자유교육을 결코 포기할 수 없음을, 나아가 자유교육이 세계시민의 양성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할 때 우리의 미래가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이러한 선언적 주장만을 본다면 이는 대학교육에 관심을 가진 지식인이라면 모두가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문제이며, 해결 방법 또한 여타 교육정책보고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일견 무난하게 들리는 주장의 논리 안에 누스바움의 탁월함이 존재한다. 그녀는 잘 훈련된 이론적 토대와 실천적 행정 경험에 기반하여 대학 교육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쟁점들을 과감히 펼치고, 신중히 검토하고, 단호하게 닫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문화상대주의자들과 전통인문학자들의 반대를 만나게 되면 자신이 주장했던 그 비판적 성찰의 힘으로 논증하고 설득하고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이 지난한 길을 그녀와 함께 걸으며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평이한 주장은 그것이 보편성의 차원의 문제제기였음을, 고전적 자유교육의 전통과 혁신적 자유교육의 쟁점이 유발하는 긴장을 정면으로 대결하는 누스바움 특유의 돌파력이 전통과 혁신 양자의 가치를 상호견인하면서 우리를 어느새 ‘세계시민’의 이상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문학자인 누스바움이 자신이 속한 안락하고 편협한 학제의 틀로부터 벗어나 대학 교육의 위기와 대응에 대한 이 위대한 고투의 기록은 우리에게 다음의 두 가지 숙제를 던진다. 첫째, 세계시민에 대한 심화적 이해이다. 세계시민이란 누구이며, 왜 필요하며,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둘째, 1997년의 미국의 지성인이 도출한 자유교육의 핵심을 세계시민의 양성으로 이해할 때, 우리와 다른 ‘지도와 달력’으로부터 나온 이 성찰적 결과물을 어떤 의미로 해석, 수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세계시민은 누구이며, 왜 필요하며,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저자는 자유교육과 시민성의 연관을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의 비판적 성찰과 로마의 세네카의 세계시민 개념으로부터 찾고 있다. 자신의 앎이 타성과 습관, 권위와 전통에 의한 것은 아닐까를 늘 회의하였던 소크라테스의 비판적 성찰. 자신이 속한 특수한 정체성- 언어와 민족, 국가-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고, 함께 살기라는 공동의 가치를 인간다움의 구현으로 보았던 세네카의 세계시민 개념이야말로 새로운 자유교육의 주제와 방법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세계시민 개념이 이러한 것이라면 우리의 자유교육이 이를 핵심적 가치로 요구해야 하는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다. 현대의 대학 교육이 전문적 직업교육으로 편향되는 현실에서, 전인교육을 담당하는 자유교육의 위상과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유교육의 축소는 각자가 속한 자신의 특수한 정체성과 집단만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수많은 개인들과 고도의 지식을 습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에 대한 기여와 윤리적 방향은 고민하지 않고 성과만을 지향하는 전문인들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과연 자기실현의 과제를 존재이유로 앞세운 개인들과 성과와 보상의 산술 계산만을 공정함으로 환원하는 전문인들을 양산하는 것이 최고교육기관의 역할일까. 만약 그렇다면 인간다움의 조건인 공동체적 시민성은 어디에서 배우고,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 것일까. 시민성은 결코 생득적 능력이 아니다. 이것은 어떠한 가치보다 얻기도, 지속하기도 어려운 그렇기에 이를 자신의 인격으로 전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 상당한 훈련과 노력이 요구되는 숭고하며 지적인 인격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대학의 ‘새로운’ 자유교육의 핵심인 세계시민적 가치가 체질화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특성, 대학의 역량, 대학의 지역적 여건을 분석하여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고 저서의 상당 부분을 미국 대학의 특성별 분석의 사례, 실천의 과정, 커리큘럼의 내용에 할애하고 있다. 많은 사례 분석을 통해 누스바움은 세계 시민 양성의 커리큘럼은 과감한 기획과 지속적 운영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고 대학의 역량은 이를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학마다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인 주제적, 학제적, 방법론적 실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주제적 차원에서 세계 시민의 양성을 위해 교수자들은 자신의 전공을 중심에 두고 여기에 현재 다양한 방식에서 쟁점화되고 있는 가치들을 기민하게 연관함으로써 학생들이 급변하는 사회 현실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방법론적으로는 그 전달에 있어서 문학과 예술의 서사적 상상력을 통해 지금, 여기가 아닌 먼 곳의 미래를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학제적으로는 전통적 자유교육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폐기처분하지 않고 오히려 기존의 권위의 타파가 정당하게 이루어질 때 전통은 혁신적 생명을, 혁신은 보편의 가치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고전 교육의 전통의 가치로부터 비판적 성찰의 힘을 찾고, 보다 다양화되는 현실의 문화적 쟁점-미국의 인종문제, 극심한 소득격차문제, 다문화 갈등, 인터넷 혐오, 젠더 갈등-을 그러한 대상으로 반응, 수용하려는 ‘세계시민’의 이상은 치열한 갈등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인간성 수업』은 다른 ‘지도와 달력’을 가진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저서가 출간된 1990년대의 미국은 계급과 인종, 민족과 젠더 등 다양한 가치들이 상호대립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고 증오하던 이른바 문화전쟁의 소용돌이 안에 있었다. 이러한 문화적 충돌의 현실은 지금까지 자유교육을 중요한 가치로서 내세웠던 미국 대학 교육의 허약함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불행히도 이후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효용가치의 전면화에 내세운 강한 현실적 요구 앞에서 대학의 자유교육은 자신의 위기를 실질적 내용의 강화로 이끌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의 포착에 실패했다. 급기야 대학 내 자유 인문교육의 위상은 무용하거나 지적 허영에 불과한 것으로 조롱, 폄하되었고 학제적 벽에 쌓인 전통 인문 교육의 ‘강한 노병’들은 급변하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이러한 조롱을 대중적 지성의 결핍으로 간주하였다. 『인간성 수업』은 바로 이러한 현실적 맥락으로부터 태어난 한 지식인의 응답이다. 불행히도 1990년대의 미국 사회가 보여준 이 내홍과 위기의 광경들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아니, 그보다 더욱 심각하게 체감되고 있다. 압축적 경제성장이 야기한 경쟁 심리의 내재화, 산업세대와 민주세대의 대립이 해소되기도 전에 등장한 청년세대의 사회적 분노와 박탈감의 표출이 불과 몇 년 전의 우리 사회의 뜨거운 쟁점으로 격화되었고, 최근에는 기존의 억압을 비판하고 소수자의 권리를 강화하려는 다양한 집단의 움직임들이 사이버 공간과 물리공간을 오가며 치열한 문화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그리고 다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우리의 자유교육은 사회의 다양한 쟁점들을 교육적 차원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를 시민성의 내용으로 수용하였는가. 전통과 혁신을 오가는 길항과 은유 속에서 이 쟁점들을 정치적 공정함의 문제로 이끌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왔는가의 질문과 과제들이 우리 앞에 무겁게 놓여있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완독한 이 책을 다시 잡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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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도승연

광운대학교 인제니움 학부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