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 코로나 이후의 세계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진 지도 몇 달, 안타깝게도 코로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바꿔 버렸다. 언젠가는 이 사태가 끝이 나겠지만, 그 이후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누구나 알고 싶은 미래의 모습이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 저자 제이슨 생커는 코로나 이후 변화할 세계의 여러 측면에 대해 재빠른 스케치를 보여준다.
“먼 미래에 더욱 중요해질 것들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큼이나 머지않은 미래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구절이 보여주듯 이 책은 거대한 하나의 패러다임의 변화보다는 비교적 가까운 미래에 코로나로 인해 벌어질 변화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가 미국인이니만큼 당연히 그렇겠지만, 전반적인 내용이 미국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는 것은 책을 읽으면서 감안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하면 방역이 잘 되었고 강제적인 봉쇄 조치는 없었기 때문에 미국 상황과는 체감되는 것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이니만큼 미국의 변화는 결국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국가로 퍼져나갈 것이므로 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유의미하다고 할 것이다.
저자가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예측하는 중요한 키 중 하나는 원격근무다. 코로나19의 확산은 그렇지 않아도 늘어나고 있던 원격근무를 확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저자는 일자리의 미래를 예측하면서 원격근무의 확산이 단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코로나 이후에도 일상적인 근무 형태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는 원격근무를 할 수 있는 업종의 경쟁력이 늘어나고, 필수 노동자가 아닌 현장 근무 인력의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라는 의미다. 저자는 의료 서비스업, 유통망 관련업 등 필수 노동과 원격 근무가 가능한 직업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선망의 직업이 되리라 예측한다.
저자는 더 나아가 원격근무의 확산, 즉 통근 수요의 감소가 에너지 수요의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 원격근무의 확산이 기업 사무실 수요의 감소와 직주근접의 아파트보다 넓은 주택을 선호하는 경향을 낳아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한국은 강제적 완전 봉쇄 조치는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영향의 체감이 덜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기업에서 생각보다 빨리 재택근무 실험을 하게 됐고, 이는 역시 코로나19가 지나간 후에도 원격근무가 가능하거나 더 적합한 부분에 대한 고민과 실행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는 교육의 미래 역시 온라인으로 옮겨버린다. 저자는 기존의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 시스템을 중세의 길드 시스템에 비유하며 온라인 교육은 이 길드 시스템을 해체할 잠재력이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대학에서 네트워크를 첫 번째 가치로 여기고 교육을 두 번째 가치로 본다면, 온라인 강의를 듣는 것에 대해 비싼 학비를 지불할 마음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저자는 온라인 교육으로 인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많은 학습 기회를 가질 것으로 본다.
사실 온라인 교육은 상당 기간 이야기돼 온 주제다. 특히 학교에서 사회성 함양과 생활지도 등의 필요성보다 지식의 전달이 중시되는 대학 이상의 성인 대상 교육에서 더욱 논의가 활발했다. 그러나 그동안 MOOCs(Massive Open Online Courses)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MOOCs가 기존의 대학 교육을 대체하거나 실제로 위협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강제적으로 많은 대학들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 다음 학기에도 예전처럼 모여서 수업을 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러한 코로나19의 상황이 저자의 주장처럼 교육의 미래를 바꿔 놓을 수 있을까? 이 부분은 사태가 얼마나 장기화되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기가 빨리 오기를 바라며, 교육의 미래가 이렇게 바뀌기 전에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리라 기대한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막대한 유동성을 시장에 풀었다. 저자는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 확대(양적 완화)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악의 경우 중앙은행이 국채, 주택담보부 채권, 회사채, 주식 심지어 실물 자산까지 손을 댈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미국의 국가부채가 계속 늘어나며 그 증가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부채 비율이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낮기는 하지만, 미국 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크기 때문에 글로벌 경제가 미국의 부채를 흡수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복지 지원으로 인해 국가 부채가 증가하고 있으며 미국의 인구 구성이 노령화됨에 따라 복지 부담이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물론 현 상황에서 긴축을 고려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팬데믹 이후의 재정 건전성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도 뾰족한 수를 제시하지는 못했고, 누구도 확신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이 팬데믹 사태에서의 재정지출과 재정 건전성에 대한 고민은 현재 어느 정부도 피해갈 수 없는 고민이다. 우리도 경기를 살리기 위해 재난 소득을 지급하고 추경을 실시하고 있다. 물론 현 상황에서는 재정지출 확대가 필요하며 미국이나 일본 등에 비하면 재정이 건전하다고 하지만, 그런 나라에 비하면 기축통화국도 아니고 경제규모가 작다는 문제점이 남아있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니 더욱 고심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흥미로웠던 부분이 있다. 한국은 코로나19로 인해 물류 공급망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미국만 해도 휴지 품귀에 신선식품이 동나는 등 취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모양이다. 우리도 마스크를 둘러싼 애로사항이 있었듯이, 생필품의 결핍을 겪는 일은 속상한 일이다.
저자는 식료품을 자유롭게 구할 수 없었던 코로나19의 기억이 지금의 십대들이 성장하여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영향을 미치리라는 예측을 한다. 저자는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는 당연히 여겨왔던 먹을 것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농업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높아지리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커다란 역사적 사건들은 사람들의 인식을 많이 바꿔 놓는다. 한국의 IMF는 실제로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고,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그 영향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에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실제로 미국 사회에도 그러한 영향을 미칠지 추후 관심을 가지고 볼 영역인 것 같다.
그동안 승승장구해왔던 여행업의 미래는 어둡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적인 수요 공백 상태에서 이에 대한 이견은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조금 독특한 견해를 내보인다. 코로나19가 머지않아 성공적으로 종식된다면 그동안 억눌렀던 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리라 예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저자는 강제적으로 홈캉스(집에서 보내는 바캉스)를 보내 보니 편안함을 느낀 사람들이 앞으로 이국적인 장소를 찾아 떠나기보다 오히려 집에서 휴식을 즐기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앞서 이야기한 원격근무의 확대와 더불어 비즈니스 여행객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비즈니스석의 수요 감소는 여행업의 수익성을 많이 떨어뜨린다.
농업이나 여행업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코로나19가 미국인들의 사고방식 자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것이냐에 달려있다. 매일 보도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나 사망자 수뿐 아니라 수치화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해 가늠해보는 것이야말로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예상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줄 것이다.
여기서 모든 부분을 다룰 수는 없지만, 저자는 이 외에도 국제관계, 정치, 미디어, ESG, 스타트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코로나 이후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한 가지 기억해 둘 것은 저자는 코로나19로 인한 여러 부정적인 여파 속에서도 긍정적인 측면을 찾으려고 했다는 점이다. 재택근무의 증가, 온라인 교육의 확대, 공중 보건 상황과 개인의 건강 상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탄소 배출이 절감된 것 등이다. 우리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고, 이 끝을 모른다는 것이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그러나 힘들더라도 이로 인한 변화를 예측해 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