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술이 가져올 비즈니스 기회
가상화폐. 많은 사람들에게는 개념도 생소한 존재가 황금알을 낳는 유망한 투자처로 혜성처럼 등장하였다. 1년에 수십배의 “투자수익”을 기록한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는 일부에서 투자광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정부와 은행들에서 쏟아지는 끊임없는 경고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한다. 최근에는 중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에서 가상화폐에 대한 거래금지 혹은 규제의 움직임을 보이자 가상화폐의 가격이 급락하거나 해킹사건이 벌어지면서 가상화폐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하는 등 혼란의 과정을 지나고 있다.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가상화폐를 주제로 한 많은 서적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비즈니스 블록체인”의 저자인 “윌리엄 무가야 (William Mougayar)”는 새로운 측면에서 가상화폐를 설명하고자 시도한다. 먼저 그는 가상화폐를 둘러싼 현재의 혼란은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본다. 가상화폐의 미래가치가 기존의 경제 사회적 구조를 바꿔 놓을 정도로 대단할 것이라는 기대가 투자자들의 기대를 끌어 모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미래가 기존의 경제 사회적 구조에 막혀 쉽사리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론이 교차하면서 치뤄야 하는 과도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가야는 가상화폐의 기술적 기반인 블록체인의 사업적 가능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즉 가상화폐는 블록체인으로 이룰 수 있는 많은 결과물의 하나일 뿐으로 더 중요한 것은 블록체인의 기술 잠재력에 있다는 주장을 폄으로써 가상화폐가 야기한 혼란의 문제를 살짝 빗겨간다. 더 나아가 블록체인기술을 이용해서 해결할 수 있는 “현재”의 여러가지 문제점들 보다는 이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서 이룰 수 있는 “새로운” 다양한 사업적 기회들을 강조한다. 블록체인기술의 가정은 기존의 정치, 경제, 사회적인 개념을 뛰어 넘는 것이어서, 기존의 구조나 혹은 문제점에서 벗어나서 접근해야 제대로 된 기술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무가야는 블록체인기술의 탈중앙적 성격에 집중한다. P2P네트워크를 통해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컴퓨팅리소스를 기반으로 한 블록체인기술은 다양한 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개인간에 발생하는 (금전적인 것을 포함한) 거래내역의 기록(블록)을 어느 중앙에 위치한 컴퓨터에 모아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참여 컴퓨터들에 공개하고 새로운 거래내역 발생시에 블록들을 서로 인증하게 하는 해시(hash)알고리즘을 이용해서 동시다발적으로 이 사실을 모든 참여 컴퓨터들에서 업데이트한다. 이들 참여 컴퓨터에 공개된 거래의 사실은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공개정보”가 되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신뢰구축의 근본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거래정보를 갖고 서로 인증함으로써 해당정보가 “옳다”라고 증명하는 새로운 구조의 신뢰방식인 것이다. 만일 해커가 거래내용의 소유권자를 바꾸고자 할 경우 해당 내용이 기록된 모든 컴퓨터의 내용을 동시에 바꿔야 하는데, 수십, 수백만대의 참여 컴퓨터들의 인증과정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을 현실적으로 찾기 어렵다. 즉 블록체인에서의 신뢰구축은 기존의 중앙컴퓨팅 방식에서 사용해온 높은 성벽을 (방화벽과 같은) 이용한 수세적 방식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참여 컴퓨터들의 네트워크와 상호인증기술을 이용한 탈중앙적이며 한편으로는 공세적 방식에 기반한다.
이같은 블록체인의 탈중앙적 성격은 기존의 정치, 경제, 사회적 구조와 필연적인 갈등을 야기한다. 거래라는 것은 “가치의 이동”인데, 이 가치이동 사실에 대한 인증과 보관, 보장 등을 그 동안은 정부나 은행과 같이 공신력을 법적이나 사실적으로 획득한 기관들이 담당해왔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등장은 이러한 기능들을 네트워크 자체로 이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기술의 미래적 잠재력과 현실의 충돌이다.
탈중앙화된 블록체인은 결제 처리 속도 향상, 중개자로 인한 업무 지연 근절, 신원 및 평판 즉시 조회, 승인 없이 주어지는 접근 권한 증가, 오버헤드 없는 수평적 구조, 네트워크 내 신뢰 구축, 공격에 대한 회복력, 중앙 장애점 소멸, 합의에 의한 거버넌스 등 거대한 기술적인 잠재력을 지닌다. 이러한 특징들을 바탕으로 사업가들과 기술개발자들은 끝없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 역설한다. 그 예로서 은행 없는 뱅킹, 중앙기구의 직인 없는 소유권 이전, 이베이없는 전자상거래, 드롭박스 없는 컴퓨터 저장소, 우버없는 교통 운송 서비스, 구글없는 온라인 신원 인증 등을 제시한다.
이러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해서 무가야는 가상화폐가 불러일으키고 있는 투자의 광풍은 지엽적 현상이라고 치부하면서 그야말로 전체 판을 바꾸는 정치, 경제, 사회적 잠재력 (disruptive technology)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번역서에는 Disruptive technology를 “와해성기술”로 표현하였는데 무가야는 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이러한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무가야는 나씸 테이럽(Nassim Nicholas Taleb)을 인용하면서 2007년 미국발 경제위기 상황이 중앙집중화된 인증 및 결정구조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그러면서 블록체인으로 구현될 새로운 세상은 모든 인증 및 결정 등을 탈중앙화 시킴으로써 위기상황에 보다 능동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보다 효율적인 구조를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블록체인 기술은 국경의 한계를 극복하는 진정한 세계적인 경제, 사회적 흐름을 주도할 것이란 희망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나씸 테이럽은 ‘Black Swan’이란 개념을 설명하면서 세계화에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며 커뮤니티 중심적인 작은 단위의 활발한 생명력의 담보를 주장했었다. 무가야의 기대와는 다른 측면이다. 이는 곧 블록체인기술이 당면하고 있는 모순점이기도 하다. 기술 측면에서만 본다면 분명 전체 판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은 국가와 정부, 커뮤니티라는 지역적, 문화적, (가상이 아닌) 실제적 기반 위에서 발전해온 현재의 구조를 고려할 때 첨예한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무가야는 무정부적인 가능성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가상화폐의 익명성이 음성적 거래에 주로 사용되는 등의 문제점이 실제로 발생하는 상황에서 블록체인과 기존 구조 사이의 파열음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이 책은 무가야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블록체인의 새로운 사업적 잠재력을 조망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신선한 사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블록체인이 가져올 수 있는 사업적인 혁신의 영역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기존의 기업들이나 스타트업들이 이러한 기술과 기회를 어떻게 사업적으로 접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한 점은 이 책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블록체인기술과 기존의 정치,경제, 사회적 구조가 충돌하는 측면에 대한 깊은 고찰이 부족해서 블록체인 기술의 진정한 한계를 가늠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사실 블록체인으로 불리우는 기술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기존의 수많은 기술들의 새로운 결합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그 동안 수많은 기술들이 세상을 구조적으로 바꿀 것처럼 등장했지만 많은 경우에 기존의 사회적 구조와 밀고 당기는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되거나 심지어는 사라져왔다. 무가야는 블록체인기술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사업적인 성공가능성을 강조하면서 보다 복잡한 측면에서 현재 당면한 고난의 심도나 현실적인 극복방안에 대한 주제는 다소 피하고 있다는 인상도 준다. 물론 이러한 부문까지 담는다면 책의 두께가 수배로 커지겠지만 말이다.
이 책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확신이 있고 이를 사업적으로 적용하고자 노력하는 사업가나 개발자들에게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의미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실적인 사업 가이드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는 주변상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함에 따라 다소 일방적인 측면이 있어 보인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이 야기하는 세상의 변화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에게도 추천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