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융합문명론
제 목: 융합문명론 – 분석의 시대에서 종합의 시대로
저 자: 김문조
출판사: 나남
출간일: 2013년 9월 5일
처음 책장을 펼치면서 드는 생각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문명(文明)’에 대한 방대한 내용을 쉽사리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감이었다. 그러나, 생산양식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 다양한 사례와 친절한 이론의 설명까지 곁들인 저자의 친절함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매우 ‘재미있는’ 문명 여행을 했다는 소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서, 학교에서 배운 문명과 역사에 대한 단상은 각각의 시대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사건들이 전문화 과정을 통해 분화되어가는 과정을 목도하는 훈련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전체적인 시각에서 새로운 문명론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듯이, 다양한 증거들이 아니더라도 세계는 ‘어떠한’ 힘에 의해 변화하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가 소위 ‘융합’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조류에 기인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융합의 힘은 과거에도 존재하던 단순한 단편적 현상과 달리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물을 동시적으로 포섭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방향성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융합이라고 보인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디지털 기술과 그에 따른 미디어의 발전에서 많은 부분이 촉발된다고 보고 있는데, 정보의 생성과 변환, 공유, 네트워크 등에 있어 이전과는 다른 일대 혁신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는 12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4개의 파트로 구분됨을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융합현상과 그에 따른 논리에 대해 그 기원과 의의를 진단하며, 새로운 관점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으며(1장~4장), 두 번째 파트에서는 미디어와 사회의 관계성에 대한 고찰을 통해 융합적 사회현실에 대한 접근법을 고찰하고 있고(5장~7장), 세 번째 파트에서는 융합사회가 갖는 특성과 다양한 역동성을 영역별로 규명하고 있으며(8장~9장), 마지막 파트에서는 융합시대의 도전과제와 정책적 구상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더하고 있다(10장~12장).
저자는 전체적으로 이 책에서 인류 문명과 사회의 발전과 관련된 일련의 변화와 현상들을 ‘융합’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고 있는데, 이러한 주제와 관련하여 디지털 기술의 효능이 네트워킹 기술과 합류하여 소통양식의 일대혁신을 초래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책의 내용에 따르자면, 생산양식의 변화에 따라, 농업혁명이 미개사회를 농경사회로, 산업혁명이 농경사회를 산업사회로, 정보혁명이 산업사회를 정보사회로 전환시켰듯이, 새로운 기술과 미디어에 의한 소통혁명이 융합사회로의 이행을 촉구하고, 보다 넓게는 모든 물적, 정신적 요소들 간의 다양하고 자유스러운 결합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융합문명’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모이고(수렴), 섞이고(혼합), 바뀌고(변형), 나뉘고(분화), 거듭나거나(재구성), 새로운 것으로 창발하는 현상으로서의 ‘융합’이라는 용어는 매우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생산 활동이나 노동시장에서 과거 산업사회의 고정성이나 안정성과 비교하여 수평적이고 비고정적이며 유동적인 성격들이 나타남에 따라,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사회의 변화가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명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소정의 내재적 질서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새로운 시대에는 물적, 정신적, 신체적인 모든 차원에서 이러한 질서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규칙이 정의되어 재정비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자는 새로운 문명화 과정을 일련의 단계적 연속체로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 패러다임론을 정리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특히, 정보통신기술을 주축으로 한 기존의 정보문명론은 융합문명론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책의 전체 구성에서 볼 때, 문명의 출현 배경, 문명론의 의미, 문명의 발전에 따른 미디어와 사회의 향방, 새로운 소통질서의 모색, 각 영역별 동학 등에 이르기까지 방대하면서도 꼼꼼하게 관찰되고 분석된 결과로 나타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영화의 사례와 솔로대첩, 개죽이, 개똥녀 사건, T24 페스티발 등 정보화 공간에서 나타나는 실제적인 사례들은 이러한 변화 양상을 이해하기 위한 재미있는 증거로서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하나의 보너스가 되고 있다.
다만, 저자가 지적하였듯이, 이러한 융합사회의 도래에 따라 나타나는 혼돈과 단절, 방치, 불화, 격차, 추방 등 잉여와 불균형의 문제들은 우리가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의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저자가 제시한 정책적 구상과 함께, 미디어 생태계를 주축으로 한 생활세계의 새로운 변화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실천전략의 모색은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문제로 보인다.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인류문명과 세계의 변화를 주도해온 것은 효율성과 합리성을 앞세운 분화나 전문화의 힘이었다. 이런 분할의 힘이 이제는 융합적인 힘으로 대체되고 있는데, 디지털과 네트워킹 기술의 결합이 그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앞에 강조한 대로, 저자는 뉴미디어에 의한 소통 혁명은 융합 사회, 그것도 모든 물적·정신적 요소의 ‘자유결합’을 촉진하는 융합 문명으로 이끌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문명의 융합적인 전환에 관한 이해를 통해 장차 사회 발전의 방향도 전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와 같이 전체적이면서도 일관된 내용이 물 흐르듯 잘 정리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지금까지 수십 년을 대학 강단에서 사회학과 지식, 사회, 문화 등의 주제를 가르치면서, 노동·정보사회·문화·과학기술·현대사상 분야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해온 저자의 공력(功力)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학계의 대표적인 석학인 저자가 진지하게 문명 발전에 대한 연구를 집대성, 정리하여 하나의 결과물로 제시한 이 책은 최근의 융합현상과 문명의 발전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을 위해 도움이 될 주요 ‘개념들’을 다양한 이론을 바탕으로 앞세워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문명사를 공부할 수 있는 교과서가 될 것이며, 융합문명에 대한 최근 연구와 미래 문명의 발전방향을 예견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학 전문서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하버마스나 비트겐슈타인 등 해당 전공분야의 주요 이론들이 정리되고 문명론과 연결되어 설명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서라기보다는 전문서나 교재에 가까운 점은 독자들이 감안을 해야할 점으로 보인다.
정보화 이후의 융합시대로 이행되면서 생기는 사회의 변화와 변화 방향을 제대로 다양한 시각에서 잘 조명하고 있으며, 최근 우리 주변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일련을 융합현상들을 ‘문명론’이라는 초장기적 관점으로 잘 정리한 이 책은 독자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최근의 한국의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국가가 독점해오던 담화영역에 비(非)국가 행위자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준다는 측면에서 융합문명론의 시각은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우리가 어떤 시각을 견지해야 하는가 하는 단초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삶의 수준’이나 ‘삶의 질’을 넘어 ‘삶의 의미’를 고민해야 할 시대로 바뀌어 간다는 저자의 주장처럼, 인류의 능력을 믿는 입장에서 새로운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독자들에게 즐거운 ‘자극’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