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집행위원회, 인터넷 기업에 극단주의 콘텐츠 1시간 내 삭제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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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 콘텐츠와의 전쟁 선포한 유럽연합

유럽연합(EU)이 온라인 공간에서 테러 콘텐츠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 3월 초 EU의 행정부격인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온라인상에 유통되는 불법 콘텐츠, 특히 테러를 부추기는 콘텐츠에 대해선 ‘1시간 내 삭제’를 의무화하는 권고안(Recommendation)을 발표했다. EC는 오래 전부터 온라인 혐오 발언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여 왔다. 특히 지난 해 9월에는 온라인 불법 콘텐츠 퇴치를 위한 추가 조치가 필요할지 여부에 대해 계속 모니터링 하겠다고 밝힌 적 있다. 이번 조치는 그 때 공언에 대한 실행 파일 성격이 강하다.

좀 더 구체적인 배경을 알기 위해선 안드루스 안시프 EC 디지털 단일시장(Digital Single Market) 담당 부위원장의 발언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안시프 부위원장은 “온라인 플랫폼이 사람들이 정보를 접하는 주된 경로가 됨에 따라 이용자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많은 플랫폼들이 불법 콘텐츠 삭제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테러리스트들의 선전 활동에는 좀 더 신속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오프라인에서 불법으로 간주되는 활동은 온라인상에서도 역시 불법인 만큼 강력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단 입장이다.1

이번 권고안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한 시간 법칙(one-hour rule)’이다. 모든 플랫폼 사업자들이 테러 관련 콘텐츠를 발견한지 한 시간 이내에 삭제해야만 한다는 규칙이다. “테러리스트 콘텐츠는 온라인상에 올라온지 한 시간 이내가 가장 해롭기 때문”이란 설명까지 곁들였다.

 

○ 표현의 자유 vs 불법 콘텐츠 규제

테러를 부추기거나 각종 혐오발언(hate speech) 과 같은 불법 콘텐츠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명제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슬람국가(ISS)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테러단체들이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 등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EC가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테러 관련 콘텐츠를 신속하게 정리할 의무를 부과한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실행 파일로 들어가면 상황이 조금 복잡해진다. ‘삭제해야할 테러 콘텐츠’를 가려내는 작업이 생각처럼 간단하진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한 시간 내 삭제’란 절대적인 권고안을 실행하려다 보면 본의 아니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이 문제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혐오 발언이나 테러리스트 콘텐츠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문제.

둘째. 지역에 따라 서로 달라지는 기준.

언뜻 보기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혐오발언이나 테러 관련 콘텐츠가 어떤 것이냐고 정의하는 건 생각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누구나 혐오발언이라고 인정할만한 명확한 것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훨씬 더 많다. 이런 상황에서 플랫폼 사업자에게 과도한 의무를 부여할 경우엔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방대한 규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공지능(AI) 같은 것들을 활용할 경우엔 그럴 가능성이 더 많다.

이런 문제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서 이미 여러 차례 논란이 됐다. 자동 알고리즘을 통해 음란물을 규제하는 페이스북에선 예술작품 사진을 올렸다가 음란물로 차단됐다는 소식들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누드화를 음란물로 인식한 알고리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 시간 법칙’은 이런 부작용을 더 크게 만들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더 큰 건 오히려 두 번째 부분이다. 특히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글로벌 플랫폼들에겐 상당히 심각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지역별, 국가별로 금기 콘텐츠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통일된 알고리즘을 적용하는 것이 간단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나 혐오 발언 등으로 홍역을 치른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해부터 이 부분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해 왔다. 용인될 수 있는 발언의 기준이 워낙 주관적이기 때문에 페이스북 같은 거대 플랫폼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단 얘기였다. 그는 “각 지역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좀 더 지역별 통제에 가까운 시스템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털어놨다.2

이런 현상은 크게 두 가지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하나는 문화적인 차이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별 것 아닌 표현들도 다른 문화권에선 굉장히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프랑스는 지난 2000년 경매 사이트에 나치 물품을 올려놨던 야후에 대해 벌금을 부과한 적 있다. 같은 결정에 대해 미국 연방법원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같은 사안을 한쪽은 ‘혐오발언’으로 본 반면, 다른 쪽은 ‘표현의 자유’로 인정한 셈이다. 물론 둘의 차이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형성된 문화적인 격차 때문에 발생했다.

또 하나는 각국의 언론자유 수준에 따른 차이다. 중국에서 용인되는 표현의 자유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에서 용인되는 표현의 자유는 확연히 다르다. 이런 부분을 조화롭게 처리하는 것도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 국내에 미치는 영향과 실효성

유럽이 새롭게 적용한 ‘한 시간 법칙’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플랫폼들이 1차 타깃이다. ‘가짜뉴스 유포 진원지’로 몰리면서 한바탕 홍역을 겪었던 이들에겐 적잖은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반면 국내 기업들에겐 상대적으로 조금은 먼 얘기일 수도 있다. 아직 유럽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플랫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 정보에 대한 강력한 주권을 부여한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GDPR) 시행을 앞두고 국내 기업들에도 비상이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상황은 조금 다른 편이다. 아무래도 유럽어권 이용자들이 즐겨 활용하는 플랫폼을 갖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없다는 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 시간 법칙’을 비롯한 혐오 발언 관련 콘텐츠 정책은 오히려 유럽 내에서 어느 정도 실효성을 가질 것이냐에 더 관심이 쏠린다. 당연한 얘기지만 유럽 지역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는 플랫폼 사업자들에겐 상당한 압박 요인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은 큰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럽연합의 이번 조치는 입법 활동의 결과물이 아니다. 권고안(Recommandation) 형태로 제시됐다. 권고안 실행 방안을 면밀히 살펴본 뒤 법제화를 비롯한 추가 행보에 들어갈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게 EC의 공식 입장이다.

따라서 당분간은 EC나 기업들 모두 돌아가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추이를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지역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사업자들은 테러 관련 콘텐츠 색출 작업에 좀 더 힘을 쏟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EC 역시 감시 활동을 좀 더 강화할 것이다.

문제는 권고안에도 불구하고 테러 관련 콘텐츠가 근절되지 않을 경우다. 이럴 경우 EC가 어느 정도로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관련법을 만들 경우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따라서 이런 저런 변수들을 감안하면 결국 최상의 해법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각종 필터링 기술을 활용해서 자율규제에 성공하는 것이다. 물론 그 부분 역시 생각처럼 간단하지는 않다. 자율규제 과정에서 각종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EC가 야심적으로 내놓은 ‘한 시간 법칙’은 당분간은 구글,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 사업자를 긴장시키는 정도 효과에 머물 가능성이 많다. 어차피 뭔가 뚜렷한 후속 행보가 나오지 않는 한 서로 관망하는 상태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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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정식 표기명 : KISO 저널


 

  1. http://europa.eu/rapid/press-release_IP-18-1169_en.htm [본문으로]
  2. https://www.wsj.com/articles/how-to-keep-online-speech-free-1525034806 [본문으로]
저자 :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