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관련 분쟁에 있어서 ADR의 발전
1. 콘텐츠 산업의 확장과 분쟁의 확산
콘텐츠로 정의내릴 수 있는 영역은 광활하다. 왜냐하면 콘텐츠는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방송콘텐츠 영역뿐 아니라 게임,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광고, 공연, 연예, 만화, 캐릭터, 출판에서 확장된 지식정보 및 콘텐츠 솔루션 산업까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광범위성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분쟁을 불러온다. 콘텐츠진흥원 산하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쟁조정위)가 발간한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약 5,600여 건이 넘는 분쟁조정 상담이 이루어졌다. 전년도에 비해 21%나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콘텐츠라고 부를 수 있는 영역은 지금 이 순간에도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콘텐츠 분쟁조정을 분야별로 구분한다면, 단연 눈에 띄는 것이 전체 분쟁조정 신청의 약 80%를 차지하는 게임콘텐츠 분야임을 알 수 있다. 2011년 「콘텐츠산업진흥법」(제29조)에 근거하여 분쟁조정위가 설립된 이래로 2013년 까지 조정 신청에 있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영역은 방송콘텐츠였다. 그러나 2013년 이후, 방송콘텐츠 관련 분쟁이 점차 줄어들었던 것과 반대로 게임콘텐츠와 관련된 분쟁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판도가 바뀌었다.
현재 게임콘텐츠 분야의 분쟁조정 신청은 그 어느 영역보다 양적인 측면에서 압도적이며,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리고 게임콘텐츠와 관련된 분쟁의 급증세는 2012년과 2013년에 걸쳐 국내 게임 플랫폼의 중심이 온라인에서 모바일로 급격히 이동한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판단된다. 모바일게임의 주 비즈니스 모델인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된 정보공개 거부, 온라인에 비해 비교적 간단한 결제 시스템으로 인한 환불 문제,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불합리한 모바일게임 서비스 중단 및 보상청구 약관 등이 이용자들로 하여금 분쟁조정위의 문을 두드리게 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게임콘텐츠 분야의 분쟁 중 많은 비율이 사업자와 이용자 사이의 분쟁, 즉 B2C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게임사를 상대로 대화할 수 있는 창구가 비교적 다양했고 게임사들 역시 고객관리를 위한 부서를 두어 불만을 직접 해결 하려고 노력했던 것과 달리, 최근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모바일 게임사들의 상당수는 경제적 이유로 관련 창구를 아예 두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모바일 영역으로 거처를 옮긴 후 꾸준히 개발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는 몇 개의 기업이 과점을 유지하는 형태로 고착화 된 게임산업은 이용자들이 사업자들에게 제대로 된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비단 게임뿐만이 아니다. 현대의 콘텐츠들은 게임산업의 예시처럼 영역을 이동하거나, 서로간의 영역에 걸쳐 융·복합화 되어가고 있다. 콘텐츠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현실적 문제들 중 많은 부분은 더 이상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지 않다.
2. 콘텐츠 분쟁에서 조정의 의미
현대 법치국가에서 분쟁의 해결은 기본적으로 법원의 판단에 맡겨진다. 그러나 사업자와 사업자 사이, 사업자와 개인 사이, 그리고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항상 재판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법을 통한 판단을 듣기 위해서 개인은 경제적, 시간적으로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며 이는 종종 승소를 통해 기대되는 결과물에 비하여 터무니없이 비효율적이다. 재판 결과에 대한 만족도도 매우 낮다. 이처럼 사법 절차가 가진 한계를 메우기 위하여 알선, 조정, 주선, 중재 등의 대안적분쟁해결(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이하 ADR) 수단이 도입되었다. 국민 모두가 분쟁을 조금 더 공정하게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적 장치들이 재판을 보완하게 된 것이다.
사업자와 이용자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날 경우 선택할 수 있는 대표적인 ADR 유형에는 중재와 조정이 있다. 중재와 조정은 제3자의 개입과 판결로 인해 분쟁 당사자들이 합의를 이룬다는 점에서 유사한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중재의 경우, 조정과 달리 사법재판과 같이 제3자가 내린 결정을 상대에게 강제적으로 따르게 할 수 있다. 한편, 조정은 분쟁 당사자들에게 무료로, 신속하게, 실효성 있는 구제를 제공하고자 도입되었으며, 언론부터 금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시도되고 있다. 조정이 시도될 경우 상대와의 동의하에 전문가를 제3자로 참여시킬 수 있고, 그 해결책의 수용은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특정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 상황과 분쟁 당사자들의 사정을 고려한 적절한 합의를 통해, 피해 구제를 넘어 산업과 소비자 간의 이해를 촉진할 수 있는 자율적 대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조정은 콘텐츠 분쟁에서 특히 효과적일 수 있다. 게임산업에서 발생하는 B2C 분쟁의 예시를 보더라도 소비자 개인이 사업자 혹은 기업에 직접 소송을 제기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념의 정의는 기술의 발전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며, 관련법은 매일 생겨나는 사례들을 망라할 수 있을 만큼 촘촘히 정비되어있지 않고, 소비자가 접근할 수 있는 계약서인 약관은 유명무실하거나 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소비자가 사법절차에 소요되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미성년자이거나 기업이 특정 정보를 독점하고 있다면 분쟁을 소송이나 재판으로 해결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는 점은 감안할 때 콘텐츠 분쟁에서의 조정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3. 콘텐츠 분쟁 조정의 발전 방향
위에서 살펴보았듯, ADR은 현재의 콘텐츠 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그 중에서도 조정은 영역을 막론하여 적용할 수 있는 자율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조정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현존하는 조정 제도의 불완전성이 여러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조정 제도에 대해서 어떠한 개선 방법이 강구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현재의 조정은 많은 영역에서 주요 ADR로 자리 잡았지만 그 때문에 특정 영역을 담당하는 기관별로 산개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로 인해 영역간의 특징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분쟁의 종류는 더욱 확장되고 있는 현재의 콘텐츠 분쟁 사례에 적용하기가 애매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특히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새롭게 발생하는 분쟁의 경우, 분쟁 당사자 양측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조정 결과를 도출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콘텐츠를 둘러싼 문제들이 분쟁 당사자들 간 인식의 차이로 인한 것일 때, 조정보다는 중재로 해결되어야 하는 사안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조정은 당사자 간의 합의를 전제하며, 전문가인 제3자의 의견을 최대한 따를 것이라고 가정하지만 실제 판결을 이행하는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자율에 맡겨진다. 반면 중재는 절차의 마지막에 제시되는 결론에 법적 효력이 있으며, 당사자는 반드시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는 만큼, 재판의 판결과 그 성격이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만약 B2C 분쟁처럼 당사자 간 힘의 차이가 클 경우 소명 절차의 끝에 내려진 판결이 강제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재 분쟁조정위에 들어오는 신청의 대부분은 게임 콘텐츠에 관한 문제이다. 또한 게임이용자 간, 혹은 게임사업자 간의 문제가 아닌 이용자와 사업자 간의 분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사업자와 이용자 간 분쟁이 만연한 현 상황에서 조정 제도가 소비자의 주요 피해구제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조정의 결과에 대한 수용이 강제적인 성격을 지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의 피해구제가 이루어지지 않을 위험성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즉, 조정은 영역을 유연하게 넘나들어야 하고, 합의에 대한 수용의 자유를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기관을 통해 이관되는 문제들의 영역을 분류하거나 나누는 대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의견을 나누는 통로가 활성화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를 원활히 처리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보충되어야 한다. 또한 분쟁 당사자 한 쪽의 일방적인 수용 거부가 다른 한 쪽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 외에 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면, 조정의 과정에서 다소 강제적인 성격의 다른 권고안을 제시할 수 있게 하는 보완책이 필요할 수 있다.
4. 소송보다 조정: 전문성 살린 ADR의 확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 한다’는 독일의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Rudolf von Jhering)의 고어가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인 법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어느 시대의 현자도 법의 입김을 모두에게 고루 나눠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인간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변화하는 시대를 포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많은 법률이 생겨났고, 법률이 완전히 보호하지 못하는 부분은 여러 이름의 장치로 보완되었다. 현대의 법은 확장되고 융합되어가는 영역 속에서 복잡하고 구체적인 형태로 발전해왔기에, 국민은 국가의 조치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아내고 주장해야만 한다.
그러나 모든 개인이 법의 판단을 듣기 위해 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다.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찾아줄 필요는 없으나, 그들이 법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래서 현재의 법치주의 사회에서 조정을 비롯한 대안적 분쟁해결 수단의 가치는 자명하다. 일부 단점에도 불구하고 조정은 여전히 적극적으로 이용자를 보호하고, 분쟁을 예방하는 핵심적 도구로 수용되고 있다. 따라서 ADR로서의 조정은 분쟁을 겪는 모든 당사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당사자 자치의 원칙이 지켜지는 한도 내에서 의미 있는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한다.
21세기 국가의 성장 동력으로 여겨지는 콘텐츠 산업은 각 영역에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며 소비되는 동시에 창작되고 있다. 수많은 콘텐츠와 콘텐츠, 개인과 콘텐츠, 개인과 콘텐츠 산업의 결합을 토대로 한 방대한 문제들은 앞으로도 다양한 사례로 나타날 것이다. 분쟁조정위는 현재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게임 콘텐츠 영역이나 B2C 분쟁에 대해서 기존 분쟁사례를 분석하여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분쟁을 신청하기 전, 기준을 통해 많은 사례들이 예방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C2C 및 B2B 등의 해결을 위한 지원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특히 B2B의 경우, 분쟁가액이 크고 힘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적극적이고 공정한 후속 처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현재 실시되고 있는 ADR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게임산업의 경우를 예를 든다면 최근 게임관련 분쟁과 이에 대한 조정 요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중재가 포함된 독립된 게임분쟁조정위원회(가칭)를 설립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관련 조정의 경우에도 현재는 저작권 위원회에서 따로 실시하고 있으나 게임관련 저작권 조정은 게임분쟁조정위원회에서 할 수 있도록 조정절차를 통합해서 운영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2011년 게임조정위원회를 만들고자 하였으나 효율성 측면에서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에 포섭된 바 있다. 7년이 지난 현재 상황이 이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 그리고 현재 콘텐츠분쟁 조정제도를 개선하고 보완해야 할 시점이라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분쟁을 예방하고 분쟁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조정제도의 정비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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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공정거래조정원 공식 홈페이지 (2018. 4). http://www.kofair.or.kr/hp/bin/step.do
-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공식 홈페이지 (2018. 4). https://www.kis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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