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20대 국회에 바란다

1. 들어가는 글

국회_특성화

20대 국회가 마침내 닻을 올렸다. 물론 새로울 건 없다. 매 4년마다 새로운 국회가 구성되면서 야심한 첫 발을 내딛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으로 접근하면 새 국회에 거창한 주문을 하는 게 새삼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놓고 보면 이번 국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새로운 기술 때문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현란한 변화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연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띄운 ‘4차산업혁명’ 화두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지난 3월 열린 이세돌 9단과 구글 알파고 간의 바둑대결 여파로 인공지능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한국의 삼성을 비롯해 구글, 페이스북 등 내로라하는 IT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가상현실(VR) 산업도 막 태동기를 맞고 있다. 애플과 구글 같은 대형 IT 기업과 테슬라 같은 전문기업이 경쟁하고 있는 자율주행차 역시 새로운 세계의 문턱에 도달해 있다. 여기에다 최근 몇 년 동안 주요 키워드에 단골로 올라온 빅데이터 이슈도 만만치 않다.

이런 새로운 기술은 혼자 뿌리를 내릴 순 없다. 연구실 차원에서야 모든 게 가능하지만 현실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기존 법의 영역을 벗어나는, 혹은 기존 법으로 규정하기 애매한 상황들 때문이다. 이런 부분을 메워주는 것은 국회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특히 요즘처럼 기술이 빛의 속도로 진화하는 시기엔 현실의 질서를 흩뜨리지 않으면서도 미래 산업 발전의 터를 닦아주는 쪽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2. 20대 국회가 풀어야 할 현안들

20대 국회에서 첫 발의된 법안은 ‘빅데이터진흥법’이다. 배덕광 의원을 비롯한 14명이 공동 발의한 이 법은 비식별 개인정보 취급을 대폭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빅데이터 산업을 진흥하기 위해선 동의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기본 입법 취지다. 물론 비식별 데이터에 한한다는 단서 조항이 있다.

이 외에도 20대 국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는 인터넷 관련 법안은 적지 않다. 당장 대기업의 인터넷은행 참여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은행법 개정안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소위 ‘은산분리 완화’가 은행법 개정안의 핵심 쟁점이다. IT 대기업의 지분 출자 제한 규정이 계속 유지될 경우엔 핀테크 사업을 하는 인터넷은행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게 법안 개정을 찬성하는 쪽의 주장이다.

이철우 의원을 비롯한 122인이 발의한 ‘국가사이버안보에 관한 법률안’은 19대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던 법안이다. 사이버 테러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대통령 산하에 ‘국가사이버안보정책조정위원회의’를 두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다. 하지만 이 법은 사이버 테러에 대한 개념 규정이 모호하다는 비판과 함께 국민 감시와 사생활 침해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아 엄청난 논란이 예상된다.

세계 인터넷업계의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잊힐 권리’ 문제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에선 몇 년 째 잊힐 권리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잊힐 권리 법제화 논의는 강하지 않은 편이다. 대신 방송통신위원회가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을 적용했다. 본인이 삭제하기 힘든 글을 삭제하거나 접근 배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제3자가 올린 게시물에 대해선 적용하기 힘든 부분이 허점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이 부분 역시 논쟁의 대상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적지 않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비롯해 신기술을 법적으로 포괄해야 할 영역이 적지 않다.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통합방송법 역시 넓게 보면 인터넷 유관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쟁점들 역시 변화된 기술 환경을 반영하면서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힘든 작업이 필요한 영역이다.

3. 먼 미래를 내다보는 대승적 관점을 기대한다

이 외에도 여러 쟁점들이 20대 국회의 도마 위에 올라올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런 쟁점 법안들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이냔 점이다. 19대 때처럼 여야가 당리당략으로 첨예하게 대립할 경우엔 핵심은 놓친 채 엉뚱한 공방만 계속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모든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면서 사이버 테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떤 형태로든 짚어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런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법을 추진하는 쪽이 좀 더 열린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테러 방지란 큰 목표도 중요하지만 사생활 보호란 기본권 역시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불특정 다수의 국민을 ‘파놉티콘’에 가둬놓는 불상사가 있을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테러 방지란 미명하에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안에 대해선 극히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빅데이터육성법이나 ‘은산분리’도 마찬가지다. 두 법 모두 새로운 기술 수용이란 밝은 면 뿐 아니라 개인정보 남용이나 대기업의 과한 영향력 행사란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갖고 있다. 21세기 인터넷 세상의 질서를 규정할 대부분의 법들은 대부분 이런 양면성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규제 범위를 과하게 잡을 경우엔 육성보다는 통제 쪽에 방점이 찍히게 되고, 지나치게 흐릿하게 규정할 경우엔 있으나마나 한 법이 될 우려기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쪽에만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할 경우엔 절대 반대 외엔 방법이 없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이 건전한 토론 문화다. 그 과정을 통해 서로의 약한 고리를 메워주는 지혜가 필요하단 얘기다.

지금 세계 경제는 4차산업혁명의 격랑에 대비해야 하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시대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선 국회부터 눈앞에 이익보다는 첨단 ICT 흐름을 잘 반영할 수 있는 토대를 닦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이제 막 발을 뗀 20대 국회가 그 역할을 잘 감당해주길 바란다. 특히 이번에 새롭게 영입된 각 당의 IT 전문가들이 최근의 기술 흐름을 잘 읽으면서 여야가 초당적으로 머리를 맞대는 문화를 만들어주길 간절히 기원한다. 3당 비례대표 1번 의원들이 ‘4차산업혁명 포럼’을 결성했다는 소식이 그 어느 때보다 반가운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모쪼록 이런 협력과 균형을 바탕으로 20대 국회가 4차산업혁명 시대의 초석을 놓는 멋진 공론의 장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저자 :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