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유리감옥’

<도서 정보> 유리감옥
제목: 유리감옥
원제: The Glass cage
저자: 니콜라스 카
역자: 이진원
출판사: 한국경제신문
출간일: 2014년 9월 12일


CAD(Computer aided design) 사용을 절제하며, 하얀 종이위에 자신이 짓게 될 건축물을 그려보고, 지우고,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면 이내 다시 그려보는(drawing) 건축가, 피사체를 충분히 음미할 수 없도록 만든 디지털 카메라를 내려놓고, 자신이 원하는 빛과 색, 그리고 구도에 적합한 피사체가 될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리는 필름 카메라를 다시 손에 쥔 사진사.

저자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이들을 현대판 러다이트(luddite1 )라 부른다. 구글 글래스, 구글의 무인 자율조종 자동차, 비행기의 자동항법장치, 네비게이션, GPS, 빅데이터, 폭격용 드론, 레이저 포 등의 신기술이 등장하고 자동화와 기계화, 디지털화가 가속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반자동 또는 수동을 더 선호하며 인간과 기계의 조화, 또는 자동화로 인한 폐혜로부터 인간주의의 회복을 모색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는 의미에서이다.

러다이트를 이야기 할 때 아담 스미스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둘은 기술 낙관론과 기술 비관론이라는, 기술을 바라보는 정 반대 시각의 표상이기도 하며, ‘유리감옥(the glass cage)’을 탐독하는데 중요한 개념들을 제공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내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므로 기계를 파괴해야 한다는 러다이트들과 기술 발전이 이윤 확대와 투자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므로 기술의 발전과 자동화, 디지털화는 인류에게 더 풍요로운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아담 스미스는 동일한 현상을 완전히 반대의 방향에서 해석하는 두 시각을 대변한다.

 

유리감옥을 기술 낙관론과 비관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저자는 기술 비관론에 천착한다기보다는 기술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는 듯하다. 자동화와 기계화, 컴퓨팅 기술의 발전이 한 인간의 감각 기관과 지능, 신체에 긍정적 영향보다 부정적 영향이 적지 않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으며,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니 이를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Carr)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연구결과와 철학가, 사상가, 실제 사례 등 광범위한 지식을 동원하고 제시하며 반복적으로 기술낙관론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예컨대, 네비게이션의 일상화로 운전자들은 자주 다니는 도로조차 지형지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이라든지, 이누잇(Inuit) 젊은이들의 경우, GPS가 보급된 이후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자연 속에서의 어딘가를 찾아가는 뛰어난 방향 인지 능력이 감퇴하여 길을 잃는 사고에 까지 이르게 된다든지, 자동항법장치에 의존하는 비행기 조종사들이 위급상황 발생시 자동항법에 주로 의존해 와서 대처 능력이 떨어져 사고에 이르게 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카는 이러한 자동화와 기술발전의 위험을 유리감옥이라는 표현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예컨대, 유리감옥은 스마트폰, 컴퓨터 스크린, GPS, 네비게이션, CAD, 자동항법장치, 주식예측프로그램, 전자의료기록시스템, 디지털카메라, 전투용 드론 등의 디지털 편의 기기 및 장비 등이며, 이 유리감옥에 갇힌 사용자는 기술의 편리함에 빠져, 주변 환경에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상호작용하지 않는 존재, 자동화와 기계화에 의존하게 되는 존재가 되어 결국 인간본성(natural state of human being)에 따라 온전히 존재(存在)하지 못하는 존재론적 궁핍(existential impoverishment)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유리감옥을 읽으며 한 편으로 기술 비관론적 관점에서 매우 방대한 지식을 동원했다는데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유리감옥으로부터의 탈출구 모색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카(Carr)는 유리감옥을 통해 인간본성에 맞는 삶에 관한 철학적 탐구가 아닌, 자동화와 기계화, 디지털화에 대한 인지오류적 맹신과 성찰 없는 낙관론에 대한 이의 제기에 더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아쉬움이 희석되는 것도 사실이다.

 

끝으로, 유리감옥을 읽으며 감명 깊었던 부분을 인용하며, 결어를 대신하고자 한다.

“노동력을 줄여주는 기계는 일만을 대체해주는 역할만 하고 끝나지 않는다. 일을 하는 사람들의 역할, 태도, 기술을 포함해서 전체적인 일의 성격을 바꿔놓는다. 자동화는 일과 근로자를 모두 바꿔놓는다.”

“자동화에 대한 안심(의존)과 편향(맹신)은 과실과 태만이라는 그릇된 행동에 빠지게 한다.”

“전자기록 시스템을 도입한 1차 의료 담당 의사들을 상대로 조사했는데, 그 결과 임상학적 지식 감소와 환자에 대한 고정관념 증가를 포함해 탈숙련화의 결과가 드러나는 증거들이 나타났다.”

“직관을 대체하지 못한 컴퓨터, 알고리즘은 결코 직관을 온전히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의식적으로 논리적 사고를 하는 훈련의 결과가 아닌 자발적 판단의 여지가 존재할 것이다.”

“길 찾기의 자동화는 우리를 만들어준 환경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멀리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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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러다이트 운동은 19세기 영국의 중북부에서 일어난 공장의 기계파괴 운동이다. 산업 혁명으로 인한 고용감소와 실업률 확대, 경제불황 등으로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자 영국 중부 노팅엄의 직물공장에서 시작되어 랭커셔, 체셔, 요크셔 등 북부로까지 확대된 사회운동이다. 러다이트 운동은 네드 러드(Ned Lud)라는 가상의 인물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문으로]
저자 : 유정석

(전)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정책운영실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