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떻게 모든 종을 초월한 존재가 되었는가?
초월의 의미
영국의 과학저술가, 가이아 빈스의 <초월>은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에 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비하면 과학책에 가깝지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비하면 인문학책에 가깝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일까? 인간을 과학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인문학의 주제인 인간적 가치를 분석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 유행하는 빅히스토리에서 인간의 역사를 특화시킨 과학인문학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가이아 빈스는 칼 세이건의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와 같은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눈부신 성취를 이룬 인간의 본질를 밝히고, 인류가 처한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모색하는 것이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에서 칼 세이건은 인간이란 생물종이 스스로 바꿀 능력이 있을지를 질문한다. 기억 상실증에 걸린 인류에게 끊임없이 과거의 이야기를 상기시키며 위험스러운 결과를 피하려면 스스로 변해야 한다고 주지시킨다. 가이아 빈스의 <초월>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이다. 차이가 있다면 빈스는 처음부터 인간 종을 스스로 바꿀 능력이 있는 존재로 규정한 점이다.
우리는 바꿀 수 없다고 믿는 것들이 많다. 인간은 지구 환경의 물리적, 생물학적 법칙에 의존하는 존재다. 예컨대 지구의 중력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고, 산소를 호흡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그런데 어느덧 인간은 로켓을 만들어 지구의 중력을 거슬러 달에 가고, 산소 호흡을 위한 생명유지 장치를 등에 메고 우주를 유영한다. 이 책에서 가이아 빈스가 말하는 ‘초월’은 바로 이것을 뜻한다. 바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우리 스스로 바꾸어 왔다는 사실 말이다.
유전자, 환경, 문화가 인간 진화의 3요소
그렇다면 어떻게 바꿀 수 있었나? 답은 ‘진화’에서 찾았다. 인간은 자연 환경에 살아남기 위해 유전자를 바꾸며 진화했다.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자연선택된 형질을 ‘적응’이라고 한다. 행동생태학자나 진화심리학자들은 유전자와 환경이 기본적인 인간성을 형성했다고 주장한다. 환경은 유전자가 발현되는 배경인데 문화진화론자들은 여기에 하나 더 ‘문화’라는 요소를 집어넣었다. 문화는 개인 사이에서 학습되고 사회적으로 전달되면서 진화하는 사상과 신념, 가치, 지식의 집합을 말한다. 인간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문화의 출현은 진화를 촉발시킨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예를 들어 불과 언어의 사용은 인간의 유전자와 뇌를 재조직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뇌는 문화 정보를 획득하고 저장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관으로 진화하였다. 이렇게 유전자와 문화가 상호작용하는 관점이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이다.
<초월>에서 가이아 빈스는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에 의거해서 ‘초월종’의 개념을 분석한다. “나는 유전자, 환경, 문화 이 세가지를 ‘인간 진화의 3요소’로 부르기로 했다. 상호보완적 존재인 3요소는 놀라운 인간의 본질을 만들어냈다.”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는 단지 환경이나 유전적 변화에 의해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인간의 문화는 계속 축적되며 스스로 진화한다.”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개인의 지성보다 인류의 집단적 문화이다.” 이렇듯 가이아 빈스는 ‘문화선택’, ‘문화진화’를 적극 차용해서 인간의 특별함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한다. 다른 생물종은 물리적,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지만 인간은 다른 생명체가 따랐던 진화의 과정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불, 언어, 미, 시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자신은 예외적이고 불가사의한 존재가 되었다. 이 책의 표현대로 “모든 종을 초월한 존재”로 거듭났다. 가이아 빈스는 그 놀라운 진화의 과정을 불, 언어, 미, 시간이라는 4가지 핵심 주제로 설명하고 있다. 얼핏 보면 불, 언어, 미, 시간은 다윈의 <인간의 유래>를 비롯해서 인간의 특별함을 다루는 과학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소다. 사실 이 책의 독창성을 의심할 수도 있지만 나는 저자의 서술 방식과 이야기 솜씨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주제 ‘불’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호모 에렉투스가 불을 발견해서 추위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했고, 불로 조리한 음식을 먹다보니 에너지 대사활동에 효율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 책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질그릇의 발명과 음식 문화의 출현으로 확장된다. 아래의 문장을 읽다보면 “진흙 한 덩어리”로 빚어낸 인간의 능력에 감탄사가 나온다.
인간은 진흙 한 덩어리만으로도 거의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난 역사 속에서 실제로 그렇게 해왔다. 그렇게 만들어진 물건은 불을 통해 단단하게 구워져 부드러운 진흙 덩어리와는 완전히 다른 특성을 가진 3차원의 단단한 물체로 뒤바뀌게 된다. 진흙을 불에 굽는 과정은 진흙 자체뿐만 아니라 인간 문화에도 대단한 변화를 가져왔다.
두 번째 주제 ‘언어’에서는 인간의 이야기가 “마음이 마음에게 말을 거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이아 빈스는 마치 이 책에서 자신이 주장한 언어의 역할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이야기라는 인지적 도구를 활용해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정신적 힘과 용기를 북돋고 있다. 세 번째 주제 ‘미’에서도 성선택과 예술작품과 같은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 넘어서, 건축과 도시 문화로 나아간다. 아름다움은 사회 공동체의 목표가 되는 도덕과 철학을 제시하였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통해 사회적 가치와 개인의 정체성을 융합해서 하나로 결집할 수 있었다.
네 번째 주제 ‘시간’에서는 미래를 통제하고픈 인간의 욕망을 통찰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인간은 성관계를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은 오늘 하고 있는 일이 9개월 뒤에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이처럼 우리는 뇌의 전전두엽을 통해 미래를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노력은 과학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주변의 세계를 관찰하고, 측정하고, 추론하면서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켰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문화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너무나 낙관적이고 인간적인 전망
이렇게 생물학적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인간은 초유기체가 되어가고 있다. 가이아 빈스는 이 초유체를 ‘전능한 인간’이라는 뜻에서 호모 옴니포텐스(Homo omnipotence), 호모 옴니스(Homo omnis), 줄여서 홈니(Homni)라고 불렀다. ‘호모 옴니스’라는 용어는 유발 하라리가 ‘신이 된 인간’이라는 뜻에서 이름 붙인 ‘호모 데우스’가 연상된다. 호모 옴니스와 호모 데우스는 스스로 몸과 마음을 초월해서 전능한 능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비슷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와 가이아 빈스의 전망은 확연히 다르다. 하라리는 “인간이 신이 될 때 역사가 끝날 것”이라며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을 예고한 반면, 빈스는 호모 옴니스가 등장한 미래를 낙관적으로 내다보고 있다. “오직 하나밖에 없는 살아있는 행성 지구 위 공동의 인간성을 이해하고 포용함으로써 선량하고 살기 좋은 인류세를 이룩해낼 수 있다”고 말이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최근 기후 변화와 생태계 파괴로 인간의 폭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을 지구 환경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인간으로부터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라는 한탄이 나오고 있는데 이 책은 인간의 긍정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키고 있는 듯하다.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 인간 자신”이라고 마지막 문장을 끝맺고 있다. 과학저술가가 쓴 책이라서 유발 하리리와 같은 역사학자의 저서에서 입증하지 못한 과학적 내용을 기대했으나 결론에서 ‘호모 옴니스’의 선언적 주장에 그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