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과연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윌리엄 깁슨의 유명한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라는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오래된 작가의 상상력이 현실이 되어가는 모습에 새삼 감탄하게 될 때가 많다.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만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인공 지능 컴퓨터 ‘할(HAL)’은 무려 50년을 뛰어넘어 AI의 자연어 처리 기능(natural language processing)이나 정서적 지능(affective intelligence)의 완성을 보여주고, 1977년 제작된 최초의 ‘스타워즈’ 영화에서는 홀로그램과 로봇 인터페이스가 등장한다. 윌리엄 깁슨의 1982년 소설 ‘뉴로맨서(Neuromancer)’가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개념을 소개했다면 요즘 들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용어는 닐 스티븐슨이 1997년에 발표한 ‘스노 크래시’에 처음 등장하였다. 코로나가 가져다 준 혼돈 속에서 새로운 키워드로 급부상한 메타버스에 쏟아지는 관심과 함께 스노 크래시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스노 크래시에서 메타버스는 가상현실 기반의 인터넷이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스티븐슨이 만들어낸 개념이다. 스노 크래시에서는 메타버스 뿐 아니라 아바타라는 단어 역시 사용되는데, 아바타는 가상현실에서 이용자를 재현하는 캐릭터를 지칭한다. 아바타는 힌두교에서 신의 현신을 일컫는 산스크리트어인 ‘avatara’에서 착안된 단어로 1986년 처음 ‘Habitat’이라는 비디오게임에서 이용자의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사용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사이버스페이스에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스노 크래시에서 유래를 찾는다. 사람들은 개인 포털을 통해 아바타의 형태로 메타버스에 접속하게 되며, 아바타의 형태는 이용자 본인을 닮은 형태부터 다양한 사물에 이르기까지 제약이 없다.
21세기의 고전인만큼 심오하고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이지만 아주 짧게 소개하자면 스노 크래시는 악성 컴퓨터 프로그램 코드, 즉 바이러스의 형태가 이용자에게 마약의 효과를 내도록 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악당들에 대한 해커들의 사이버 모험활극이다. 악당의 형태가 어떠하든 메타버스에서도 세상을 파괴하려는 자와 이를 구원하려는 자 사이의 싸움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오프라인 세계와 동일한 셈이다. 지금 오프라인에서는 메타버스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이루어지고 있고, 현실세계가 필연적으로 갖는 시공간적 물성을 돌파할 수 있는 대안적 세계로 제시되고 있다. 5G 네트워크, 블록체인, 인공지능, VR 기술 등이 급속도로 융합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포트나이트’, ‘제페토’, ‘로블록스’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들이 놀라운 속도로 그 수를 늘이며 진화하고 있다. 스노 크래시가 메타버스의 UI(user interface)로 제시하는 고글이 스마트 글라스와 홀로렌즈 등의 형태로 현실에서의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렇게 메타버스가 우리 삶 속에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지금, 과연 메타버스에서 우리는 더 자유롭고 더 즐거우며 더 생산적일 수 있을까? 메타버스는 과연 오프라인 현실세계와 다른 규칙에 의해 작동하는 대안적 세계인가?
이미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지난 20여년간 메타버스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간의 상호작용과 사회적 규칙, 심리적 반응이 오프라인 현실세계와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 왔다. 대부분의 사회과학적 문제와 마찬가지로 메타버스에 대한 연구 결과 역시 명암이 엇갈리는 그림을 제시한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메타버스와 가상현실에 대한 연구를 하는 제러미 베일른슨(Jeremy Bailenson) 교수에 따르면 우선 사람들은 아바타로 가상현실에 입장하는 순간 사람들은 본인의 아바타가 지니는 특성에 따라 행동을 바꾸는 걸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매력적인 모습의 아바타는 메타버스에서 매력적이지 않은 아바타보다 더 자신에 대해 많은 정보를 공유하며 대인관계에 자신감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키가 큰 아바타는 키가 작은 아바타보다 돈을 나누어갖는 협상에서 더 유리한 결과를 성취했다. 이는 사람들이 오프라인의 현실적인 실체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긴 하지만 결국 메타버스도 오프라인을 지배하는 사회적 규칙에서 (불공정한 경우를 포함해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메타버스마저도 외모지상주의가 지배하게 될 것인가? 흥미롭게도 소설 속의 메타버스에서도 아바타 소유자의 경제력에 따라 아바타의 품질이 결정되어 아바타가 값싼 기성 아바타인지 정교한 맞춤제작의 아바타인지에 따라 메타버스에서의 신분이 나뉜다. 현실에서 값비싼 명품소비를 통해 사회적 위치를 과시하고자 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편 메타버스의 경험은 반대로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의 실제적인 태도와 행동에 유의미한 결과로 스며들기도 한다. 가상현실이 경험이 어떻게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본 연구에서 가상현실로 노숙자의 삶을 경험해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관련 법안의 청원에 더 적극적으로 동의하였고, 흑인 아바타로 메타버스에서 인종차별을 경험한 사람들은 인종에 대한 편견이 현저히 줄고 흑인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공감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상현실은 우울증을 치료하고 고소공포증의 개선을 위한 훈련 등에 사용되기도 한다. 방법이 어찌되었건 메타버스에서의 경험은 메타버스의 경계를 돌파하여 현실의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며 앞으로 그 경계는 급속하게 흐려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흐려지는 경계선에서 현실세계의 불합리성과 불공정 역시 메타버스에 그대로 반영될 수 있고 아직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메타버스의 매혹적인 새로운 기회에 대하여 사람들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할 수도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메타바이러스 스노 크래시는 컴퓨터만 감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신경을 통해 메타버스의 이용자도 감염시킨다. 메타버스에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스노 크래시’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주인공 히로가 스노 크래시에 맞서 개발한 백신인 ‘스노 스캔’과 같은 해결책이 필요해질 지도 모른다.
고대 수메르 문화와 바벨탑의 신화, 컴퓨터공학과 뇌신경과학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질주하는 닐 스티븐슨의 상상력은 그야말로 야생적이다. 더 이상 미국의 영토가 아닌 21세기의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생생히 그려지는 탈중앙화된 무정부 자본주의(anacho-capitalism)적 정치 시스템과 미국 정부가 달러를 무한정 찍어내며 발생한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따른 암호화폐 기반의 온라인 경제 시스템을 읽으며 작가의 통찰력에 깊이 경탄하게 된다. 작가들이 그들의 예지력으로 기술의 발전과 미래세계의 변화 방향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일까? 아니면 작품들이 보여주는 미래세계의 모습에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그 영감을 기술적 발전을 통해 현실화시켜나가는 것일까? 실제로 스노 크래시는 수많은 실리콘벨리의 IT 전문가들과 과학자들에게 염감의 원천이 되었으며 소설이 제시한 텍스트 속의 글자들은 상용 기술로 개발되어 사람들의 삶 속에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하고 있다. 구글어스(Google earth)는 소설에 나오는 어스(Earth) 소프트웨어에서 착안된 서비스이고, 2003년 최초의 본격 메타버스 서비스로 출시된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 역시 스노 크래시가 그 바탕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뛰어난 상상력은 미래를 견인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을 증명하는 새로운 필독 고전이다. 꽤 긴 소설이지만 책을 덮을 때쯤 독자는 앞날을 예측하기 더욱 어려워지는 격동의 변화기에 사는 우리들에게 안개 속 빛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은 결국 다음 세대의 길들여지지 않은 상상력임을 믿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