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생이 온다
# 인기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 속 코너, ‘MZ 오피스’에선 직장에서 자유롭게 브이로그를 촬영하는 사원으로 주현영이 출연한다. 매번 선배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던 주현영은 어느덧 선임이 되어 신입 후배 김아영을 맞이한다. 사무실에서 무선 이어폰을 끼고 일하는 김아영에게 선배 주현영이 주의를 주자 돌아오는 것은 “저는 이어폰을 꽂아야 업무 능률이 오르는 편입니다”라는 답변이다. 하지만 주현영의 뒷목을 잡게 만든 김아영조차 선배가 되자마자 곧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 하루 종일 헤드폰 에어팟 맥스를 착용하고 있는 후배 윤가이가 등장한 것. 윤가이를 지적하자마자 김아영이 들은 답변은 “노래를 듣는 게 아니라, 단지 패션 능률 때문인데 안 되나요?”였다.
지난 2018년 「90년생이 온다」책이 출간됐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순식간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40만 권 가량이 판매됐다. 세대론 논쟁에 한 획을 그으며 모두가 90년대생의 특징에 대해 얘기하고 본인이 속한 세대만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진풍경을 만들어냈다. 이후 6년의 시간이 흐른 2024년 현재, 90년대생 신입사원은 회사의 중간 관리자가 되었고 어느덧 2000년대생이 사회에 진입해 새로운 신입 역할을 맡게 됐다. 기업에, 사회 각 조직에 새로운 세대가 다시 한 번 등장한 시기가 온 것이다.
매번 새로운 세대가 등장할 때마다 기성세대는 큰 충격에 휩싸인다. 고대 수메르인의 점토판부터 이집트 피라미드, 소크라테스 대화록까지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기록이 나왔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신입 사원의 행동을 보고 혀를 끌끌 차는 부장님 역시 20대 시절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라며 윗세대의 혀를 차게 만들었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매번 자연스럽게 새로운 특징을 가지는 세대는 등장하기 마련일텐데 왜 매번 이 세대들을 알아야 할까.
저자의 답은 간단하다. 지금의 세대를 봐야 지금의 시대를 볼 수 있다. 젊은 세대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 2020년대 현재, 우리 시대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고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할까. 이 궁금증의 답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기 위해선 이 시대의 모습을 온전히 품고 나타난 2000년대생들을 정확히 봐야 한다.
1. 그래서 MZ세대가 뭔데?
최근 몇 년간 가장 사회에 영향을 끼친 용어 순위를 꼽는다면 MZ세대가 단연 상위권을 차지할 것이다. MZ세대라는 표현은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와 Z세대(Generation Z)를 합해 현재 젊은 세대를 통칭한다. 여러 세대가 합쳐진 탓에 1980년도에서 2010년도까지 무려 30여년간 태어난 인구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 나이로 따지자면 10대 중반 청소년부터 40대 중반까지 같은 세대인 셈이다.
80년대생과 90년대생, 그리고 2000년대생은 사실 서로 다른 시대 속에서 완전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자라왔다. 80년대생은 성장기인 1997년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평생직장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90년대생들에게 평생직장은커녕 신입사원까지도 잘릴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이로 인해 앞선 두 세대는 자기계발을 통해 회사에서 경쟁력을 갖거나 공무원과 같은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 등 조직 내에서 살아남는 방법에 몰두해왔다. 반면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 폭등을 지켜본 2000년대생은 근로소득만으로 살아남기 어렵다는 인식 하에 ‘직장을 그만 두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렇듯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각 세대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MZ세대 내 나이대별 특성이 명확하게 다르다는 점 외에도 사실 이 용어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사용 의도’로부터 비롯된다. 정확한 범위와 유례, 적용 가능성 등을 고민한 끝에 사용하기보다는 그저 ‘요즘 것들’의 행태를 비판하기 위해 용어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에게 MZ세대란 그저 조직의 규칙을 무시하고 스마트폰만 보는 탓에 문해력이 부족하며 자기 자신만 아는 ‘요즘 것들’일 뿐이다.
2. 2000년대생을 알아야 시대가 보인다
‘요즘 것들’이라는 지적에 가려진 2000년대생들의 진짜 모습을 알아야 현 시대를 알 수 있다. 세대와 시대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관계다. 먼저 시대는 이 속에서 살아가는 세대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한 시대 속에서 자라난 세대는 다시 시대에 영향을 미쳐 또 한 번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2000년대생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저자는 초합리·초개인·초자율 세 가지를 꼽는다. 먼저 2000년대생은 합리적이다. 언제 어디서나 검색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주장보다는 팩트를, 명분보다는 실리를 중시한다. 단순히 술자리 식사비용을 N분의 1로 나누는 것을 넘어 술값과 안줏값으로 구분해 더 합리적으로 나눠 내는 더치페이가 요즘 세대를 보여주는 한 사례다. 다만 모두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만을 하다보니 신규 팝업 스토어와 유명 맛집에는 긴 대기줄이 생기는 한편, 적당히 괜찮은 식당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게 되는 현상도 생긴다. 개인에게 최선의 선택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비합리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역설적 상황이다.
다음으로 2000년대생은 개인을 중시한다. 나 자신은 물론 타인을 포함한 모든 개인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특정 개인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공감도도 높다. 다만 개인주의가 자칫 이기주의로 변질될 경우 사회에서 관계를 맺고 가치를 창출하는 선순환이 무너질 수 있다.
개인의 자율적 선택과 이에 따른 책임을 중시하는 특징도 있다. 자율성을 추구하는 세대는 모두가 같은 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는 전통 근무제도를 의무가 아닌 단점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이 원할 때 일을 하는 긱워커가 늘어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오직 개인의 선택과 책임만 중시할 경우 사회의 역할을 외면한 채 개인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는 부작용이 생길 우려도 있다.
3.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살고 있는 시대
2000년대생의 특징은 극도의 효율을 추구하는 사회의 모습과 연결된다. 과거 인간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로 회식을 활용했다면, 요즘은 MBTI를 통해 상대방과 나의 간격을 더 빠르게 좁혀간다. 사람의 유형을 16가지 중 하나로 끼워 맞추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분류라는 비판이 있지만 이 틀이 상대방의 성향을 빠르게 판단하기에 유용하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모습은 콘텐츠 소비에서도 나타난다. 이나다 도요시의 저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유튜브와 넷플릭스 영상을 1.5배속으로 보고 중요하지 않은 장면은 10초씩 건너뛰는 모습을 보인다. 같은 시간 내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영상을 소비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AI(인공지능)처럼 변해가기도 한다. ‘디지털 AI 인간’은 프로그래밍 체계를 있는 그대로 이행하는 디지털 기술처럼 자막, 문자 등을 기반으로 한 명료한 소통을 선호한다. 반면 아날로그적 소통은 목소리톤, 맥락, 의미까지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디지털 AI 인간이 늘어날수록 상황올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은 줄어드는 현실에 부딪힐 것이다.
또한 디지털 사회에선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에 휩싸이게 된다. 나와는 다른 극소수의 연예인이 TV에 등장하던 시대와 달리, 현재는 누구나 유튜브 채널을 만들 수 있고 인스타그램 프로필을 설정할 수 있다. 어제의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던 누군가가 순식간에 유명인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스마트폰 속에서 클릭 몇 번만으로 인플루언서들과 내 삶을 비교하며 누군가는 자극을, 누군가는 좌절을 맛본다.
4. 2000년대생을 맞이하며
세대 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존재했다. 저자는 이를 해결할 방안으로 다른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닌, 차이를 명확하게 알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서로 다른 시대에서 각기 다른 사건과 기술, 문화를 경험하며 자라왔으니 마음 속으로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쩌면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2000년대생을 아는 것은 결국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시대를 알 수 있는 방법이다. 2000년대생, 그리고 앞으로 새롭게 등장할 이후 세대들이 함께 몰고 올 시대의 흐름을 ‘요즘 것들’로 치부하지 않고 잘 지켜보는 것이 윗세대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