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 뉴 엘리트

최근 새로운 지식 창출과 확산 유형인 집단지성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집단지성의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상에서 ‘위키피디아’나 ‘네이버 지식인’ 같은 서비스를 통해 특정 주제나 질문에 관해 대중의 답이 공유되고 수정되면서 집단적인 지식이 산출된다. 집단지성은 일반 참가자 사이에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수평형 지성을 뜻한다. 이러한 지성은 개별 분산 방식과 동적인 변화 형태를 기반으로 한다. 집단지성은 민주주의의 주요한 기반인 공론장을 사이버 공간에서 실현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더 나아가 온라인 공간에서 집단지성이 단순하게 전달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역량이 극대화되고 지식의 창발성과 역동성이 증가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개인도 중앙의 규제와 제한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기존 규제와 제한으로 벗어나 지식과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계속해서 고도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과거 일부 엘리트를 중심으로 지식이 창출되고 분배되는 피라미드형(수직형) 지성을 기반으로 하는 체계가 흔들리고 있다. 과거 지식의 창조가 축적된 지식을 지니고 이를 활용할 능력을 보유한 개별적인 전문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인식됐다면, 정보 기술의 발달은 긴 시간을 두고 형성돼 소수의 전문가 사이에서만 유통돼 오던 지식의 ‘순환’과 ‘공유’를 유례없이 촉진함으로써 정보의 무한한 확산을 가능케 했다. 이에 따라, 오랜 기간 유효한 정보나 지식의 생성자이자 제공자로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해온 엘리트의 설 자리가 줄어든 것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엘리트의 역할이 일반 대중에 의해 전면적으로 대체되거나 역할이 사라진다고 보는 것은 다소 비현실적인 전망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여전히 엘리트는 사회 각 분야를 이끌고 있으며 중요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엘리트는 산업사회의 전형적인 엘리트라고 보기는 어렵다.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엘리트의 특징이나 역할은 이전의 엘리트와 다르다. 따라서 엘리트가 되기 위한 자질도 다를 것이다.

‘뉴 엘리트(New Elite)’ 저자 그지바치(Piotr Feliks Grzywacz)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엘리트가 되기 위한 자질과 덕목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앞으로의 시대를 이끌어갈 뉴 엘리트는 어떤 가치관을 따르고 있으며,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지바치는 “세계는 지금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때까지 당연시하던 것이 더 유지될 수 없다고 본다. 물론 예전에도 기술에 따른 혁신이 존재했다. 1800년대 천연 얼음을 판매하는 사업이 있었으나 제빙기가 나오면서 기존 사업이 사라졌고, 제빙기 얼음 판매 사업도 냉장고가 등장하면서 사라지게 됐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기술 발달과 혁신이 가속화되고 있다. 각종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도입에 따라 기존 질서에 근거한 ‘오래된 것’이 사라지게 된다. 단순하거나 반복적인 직무는 AI나 로봇에 의해 대체되게 된다. 단순한 생산직이나 서비스직뿐만 아니라 일부 전문직도 이러한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실제로 여러 전문가 집단은 자동화, 로봇화, AI로 인해 상당한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심지어 지식정보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지금 직업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많은 조직에서 근면함과 복종, 지능이 아니라 정렬, 창조성, 솔선이 중요한 덕목이 등장하게 된다. 특히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유형의 엘리트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들이 ‘올드 엘리트’와 구별되는 ‘뉴 엘리트’이다. ‘올드 엘리트’와 ‘뉴 엘리트’를 성질, 지향점, 행동, 인간관계,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올드 엘리트’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집단이다.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전문직에 종사하여 한 분야에서 리더의 지위를 얻은 사람이다. 그러나 이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성공에 주된 관심이 있다. 그리고 일단 엘리트의 위치에 다다르면 발전 가능성을 잃어버린다. 자기가 하는 일보다는 지위가 중요하고, 폐쇄적인 인간관계만을 유지한다. 창조적이기보다는 기존의 규칙을 충실히 지키는 것을 우선시한다. 이러한 점에서 ‘올드 엘리트’는 의사나 판사, 검사 혹은 변호사같이 전통적인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한다. 실제로 지금도 한국사회에서는 이러한 직업을 갖기 위해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엄청난 자원과 시간을 투여하고 있다.

반면에 ‘뉴 엘리트’는 개인적인 성공보다는 사회 전체적인 이익을 중시한다. 이러한 이타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사회 공헌을 지향하고 있다. 조직 내외의 환경 변화에 개방적이고 유연하며 적극적인 자세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들에게 지위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성취를 더 중시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기 위해 지나친 보여주기식 소비보다는 최소한의 소비만을 하는 실용적인 사람들이다.

저자는 책의 상당한 부분을 뉴 엘리트가 되기 위한 자질과 행동 습관 등에 할애하고 있다. 이는 공산주의의 급격한 붕괴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노력과 능동적인 도전을 통해 뉴 엘리트로 성공한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에 상당 부분에 힘입은 바가 크다. 조국인 폴란드에서 자본주의 이행 과정에서 개인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학업을 마쳤으며 독일, 네덜란드, 미국, 일본 등에서 끊임없는 자기 도전을 이어 나갔다. 최근 온라인 공간에서 중요 의제를 제시하고 있는 구글에서 인재개발, 리더십 분야에서 직접 활약한 경험은 뉴 엘리트의 자질에 관한 논의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구체적으로 뉴 엘리트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배우면서 세계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세계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제의식도 지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밖에 조직의 리더로서 팀원들에게 활력을 주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명확한 비전과 전략을 가지고 생산적이고 성과를 우선시하라는 조언도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AI나 로봇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에 기반을 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 과정을 겪으면서 앞으로의 삶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를 비롯한 기존 조직이나 제도에서는 기존 질서에 근거한 학습이 반복되고 있다. 여전히 교사의 시각에서는 정해진 규칙을 잘 지키는 학생이 모범학생이고 훌륭한 인재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사회와 기술의 발전과 기존의 대응 방식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으로 인해 일종의 아노미 현상을 겪고 있다, 결론적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전환기에 사회 여러 부문에서 중요한 인재와 엘리트가 되고 싶은 많은 사람은 이 책에서 사회 변화의 전반적인 방향성과 아울러 구체적인 행동 방식을 찾을 수 있다.

다만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하면서 저자의 논의를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뉴 엘리트가 되는 여정에서 보여준 여러 가지 행동과 자세가 새로운 시대에만 적용되는 자질이나 덕목은 아닐 것이다. 인생에서 능동적이고 유연하고 적응적인 자세는 어느 시대에나 통용될 수 있는 중요한 자질과 덕목이다. 예를 들면, 다른 나라에서 그 나라 언어로 의사소통하는 능력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중요한 자질이다. 사회혁신도 AI 시대만의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오랜 역사 속에서 혁신은 끊임없이 진행됐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의식이 더욱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뉴 엘리트만의 차별적인 자질이 덕목이 체계적으로 제시된다면, 전환기에 인재나 엘리트가 되고 싶은 많은 사람에게 더 유용한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이명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