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인터넷 정책 관련 주요 쟁점 및 남은 과제
1. 새로운 인터넷 정책을 위하여
2000년대 초반 급속한 초고속인터넷 보급과 그로 인한 인터넷의 일상화는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생활의 모든 부분이 온라인에 옮겨졌다. 정보와 의견의 파급 속도와 범위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한국 사회는 인터넷의 편리함을 발견했다. 동시에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인터넷의 부작용에 놀랐다. 악플, 허위사실 유포, 인신공격 등이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퍼져 나가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2000년 이후 인터넷 정책은 이 같은 현상을 통제하려는 노력의 연속이었다. 전례가 없고,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기에 더 불안감이 컸고, 서둘러 문제를 해결하려 조급한 규제 정책을 내놓았다. 인터넷 실명제와 사이버 모욕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전 지구적 규모로 자유롭게 정보가 유통되는 인터넷에서 국내에 한정된 규제를 강제하는 것은 실효를 거두기 힘들었다. 보다 근본적으로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2012년 제한적본인확인제에 대한 위헌 판결은 기존 인터넷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를 공식 확인하는 역할을 했다. 박근혜 정부는 모바일 중심으로 디지털 환경이 변화하는 가운데, 규제 대신 자율 중심의 인터넷 정책 구조를 짜야하는 과제를 안고 출발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는 불필요한 인터넷 관련 규제를 폐지하고 표현의 자유를 확대한다는 정책 기조를 발표한 바 있다.
2. 새 정부 인터넷 정책 주요 쟁점과 과제
가. 인터넷 실명제, 그 이후
1) 여전히 실명 요구하는 법규들
인터넷 실명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면 그에 상응하는 정책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받았다. 실명제로 인해 인터넷 서비스 업체가 회원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는 관행이 생겼고, 결국 대규모 해킹과 개인정보 노출로 이어졌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인터넷 게시판에 댓글을 달거나 의견을 표명하기 위해 본인 확인을 해야 할 필요는 없어졌다. 정부는 아예 정보통신망법과 개인정보보보호법으로 온라인에서 주민등록번호 수집 및 활용 금지를 법제화했다.
문제는 전자상거래나 게임 등 게시판과 댓글 외 인터넷의 다른 영역은 여전히 현실의 주민등록제도와 연계되는 본인 확인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정보통신망법의 실명제 규정은 사라졌지만 공직선거법의 실명제 규정은 여전히 살아있다. 선거 기간 중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 댓글을 달려면 실명 인증을 해야 한다.
심야 시간 청소년의 온라인게임 접속을 금지하는 게임 셧다운제나 온라인 전자상거래 관련 정보를 보관할 것을 요구하는 전자상거래 관련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서도 여전히 주민등록번호를 통한 본인 확인이 필요하다.
휴대폰 번호나 아이핀, 공인인증서 등을 통한 본인 확인은 사업자에게는 비용 부담을, 사용자에게는 불편을 초래한다. 사회적으로는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이 상존한다. 결국 인터넷 분야의 혁신을 가로막는 결과가 된다.
익명성,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 글로벌 통합 등을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의 특성을 외면하고 세계 유례가 없는 강력한 주민등록 체제를 온라인에도 그대로 이식하려는 관행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2) 신뢰 기반 IT 정책 고민해야
현재 국내 IT 정책은 사업자와 사용자의 상호 작용과 시장 원리에 대한 신뢰보다는 혹시 모를 부작용이나 문제를 선제적으로 규제하고 막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신뢰와 공유를 바탕으로 하는 모바일 시대 경제 흐름과 배치된다. ‘창조경제’를 정책 기조로 내세운 박근혜 정부로서는 모바일과 인터넷 기반의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정책 구조를 지속적으로 바꿔가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래부 신설로 인해 규제 기관으로 성격이 변화된 방통위에 정보보호 업무가 남게 됨에 따라, 정보보호 정책이 조직 논리에 의거해 더 선명한 규제 강화 기조로 나갈 가능성도 점쳐진다.
나. 청소년 보호와 인터넷 정책
1) 청소년보호와 인터넷 정책
인터넷 및 미디어 정책과 청소년 보호 정책의 조화가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게임 셧다운제를 규정한 청소년보호법이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등이 대표적이다.
게임 셧다운제는 게임 사용자의 연령을 확인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나 아이핀 인증을 통한 본인 확인을 요구한다. 이는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고도 온라인 서비스를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터넷 정책 흐름과는 맞지 않는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인터넷의 본질적 특성과도 어울리지 않아 실효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아청법은 실제 아동이 아니라 아동 캐릭터가 등장하는 음란 애니메이션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시켰다. 음란성 판단 기준 역시 자의적이며 표현의 자유와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가로막는다는 등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인터넷은 전문가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에게 창작과 표현의 공간을 열어 주며 새로운 혁신을 촉진해 왔다. 인터넷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는 이런 폭발적 에너지를 가로막을 우려가 있다.
2) 증상보다는 근원 봐야
최근 논란이 된 청소년 보호에 관한 제도들은 ‘청소년 보호’라는 자체 가치에만 집중해 사회 전반의 다른 분야와 조화를 이루지 못 하는 상황이다. 과도한 입시 경쟁과 학교 폭력 등 척박한 환경에 처한 청소년들의 상황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청소년 보호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됐다.
청소년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가 게임이나 스마트폰 등 미디어 분야의 문제 증상으로 주로 나타나면서 미디어 자체를 규제하려는 대증요법적 정책이 양산되는 실정이다. 이러한 정책은 부모 세대 표심에 쉽게 호소할 수 있어 정치인들이 선호하기도 한다.
청소년 보호라는 가치가 중요하지만 표현의 자유, 이를 확대할 새로운 미디어의 발전과 이를 바탕으로 한 창의적 산업의 성장 역시 사회 전반의 건전한 발전에 꼭 필요하다.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몰이해와 불안에 근거한 정책을 쏟아내기보다는 변화하는 환경을 숙고하여 보다 근본적인 정책 틀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됐다.
다. 인터넷 리터러시 교육 강화해야
최근 몇 해 동안의 경험은 실명제나 사이버 모욕죄 등 사용자의 행동을 제도로 제약하는 방식으로는 인터넷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사용자와 사업자 스스로 온라인 공간의 질서를 만들어나가고 합의해 가는 사회적 과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분별한 악플이나 허위사실 유포, 인신공격 등이 법적 강제보다는 사실과 주장에 대한 집단지성적 필터링을 거친 사회적 압박을 통해 걸러지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다.
현재 인터넷은 맥락 없는 지식이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널리 전파하기 쉬운 구조다. 지식의 선순환만큼 지식의 악순환도 가능하다. 온라인 공간에 좋은 지식과 콘텐츠를 쌓고, 근거와 논점을 가지고 주장을 펼치는 것이 규범으로 자리 잡도록 할 필요가 있다.
IT 교육의 목표 역시 PC 활용을 넘어서 인터넷 정보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고 미디어를 스스로 통제하며, 적극적으로 좋은 미디어를 활용해 가치를 만들어 내는 ‘미디어 리터러시’ 비중을 높여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임시조치 등 인터넷 표현을 둘러싼 논란을 조정하는 업무를 KISO 등 민간에 돌리는 등 자율규제의 방향을 포용하고 있다. 인터넷 윤리나 리터러시 정책 주무부처가 미래부로 정해지면서 규제보다는 미디어 활용의 가치에 중점을 두는 정책 기조가 기대된다.
3. 마치며
현재는 지난 10년 간 전성기를 누린 유선 인터넷의 시대가 저물고 모바일 중심의 새 패러다임이 펼쳐지는 시기다.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지속돼 온 인터넷 관련 정책 방향도 과감한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까지 생소한 인터넷 환경에 대한 오해와 불안이 인터넷 정책의 주요 기조였다면, 앞으로는 모바일과 인터넷의 잠재력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정부 정책 안에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있는 말’을 규정해 두기 보다는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정하고 최대한 사용자와 시장의 자율을 확대해야 한다. 위치기반 서비스나 클라우드 컴퓨팅 등 앞으로 논란이 커질 가능성이 큰 분야가 계속 나올 때 이 같은 원칙을 일관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