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 사유 임시조치 요청에 대한 심의결정 리뷰
1. 문제제기
우리나라는 명예훼손과 관련된 갈등을 해소하는 기제들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하게 구축돼 있다. 저널리즘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나라 법령 체계는 매우 위험스런 ‘명예훼손의 지뢰밭’이다. 헌법 제21조 제4항은 언론이 타인의 명예를 침해한 때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의 제307조부터 제312조까지, 민법의 제751조와 제764조,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저작권법의 제127조와 제128조 등이 그러하다.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등의 비방금지’와 같은 규정도 명예의 훼손을 방지, 혹은, 훼손행위에 대한 처벌내용을 담고 있다. 언론중재법은 거의 통째로 언론 등에 의한 명예훼손을 구제하기 위한 내용들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법령체계 내외부의 최근 변화 중에서 공직자 명예훼손과 관련해 괄목할 만한 것을 세 가지 정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정부·국가기관의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 등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면서 대법원이 피디수첩 제작진에게 무죄 선고를 한 원심을 확정한 일이다. 대법원은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과 관여한 공직자의 사회적 평가가 다소 저하되더라도 보도 내용이 공직자 개인에 대해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이 아니라면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전직 장관 등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이유로 4년여에 걸쳐 격렬하게 진행된 사회적 논란에 법적인 종지부가 찍혔다.1) 이는 2002년 이후 대법원이 공적인 사안, 특히 공직자가 제기한 명예훼손 사건에 즈음하여 적용하는 이익조정의 법원리가 상당히 안정돼 있다는 점을 확인케 했다.
두 번째는 정보통신망법상 ‘임시조치제도’의 도입이다. 동법 제44조의2 제2항 및 제4항부터 제6항에 걸쳐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로 하여금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보에 대하여 삭제 등과 같은 요청받으면 지체 없이 ‘삭제·임시조치’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했다. 임시조치 기간은 30일 이내로 하고 그러한 조치에 대해 미리 약관에 밝혀야 하며 이러한 조치를 취할 경우 배상책임의 경감이나 면제가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나아가 동법 제44조의3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정보통신망에 유통되는 정보가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인정되면 임의로 ‘임시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임시조치는 2007년 1월 법 개정 때 제44조의5 ‘게시판 이용자의 본인 확인’ 규정과 함께 도입되었다. 본인확인제 규정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결정되었다.2) 그러나 헌재는 ‘임시조치’를 규정한 정보통신망법 규정들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보의 유통 및 확산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임시조치는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수단 또한 적절한데다가 그 기간을 30일 이내로 설정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필요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정보게재자의 사익은 크지 않음에 비해 명예훼손에 관한 헌법 제21조 4항 등의 취지를 고려할 때 달성되는 공익이 매우 절실하다는 점에서 법익균형성 요건도 충족한다고 보았다.3) 합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임시조치’는 실질적으로 방대한 게시물들의 영구적인 삭제조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동법 규정의 적용은 매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셋째, 무엇보다 인터넷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 보장과 이용자들의 책임을 제고하기 위해 인터넷서비스 제공사업자들이 2009년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뢰받는 정보소통의 장으로서 인터넷의 위상을 정립하고 이용자 보호에 주력하겠다는 취지에서다. KISO는 인터넷 게시 정보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내리는 처분의 해악을 줄이는데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익 갈등의 가능성이 있는 인터넷 게시물을 회원사들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그 기준과 원칙 등을 ‘정책결정’ 및 ‘심의결정’의 형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국가기관 및 지자체, 고위 공직자를 비롯한 공인들이 요청한 ‘임시조치’와 관련해 정책결정 제2호, 정책결정 제14호, 정책결정 제18호는 특히 의미를 갖는다. 정책결정 2호에 따르면 국가기관 및 지자체는 명예훼손 관련 임시조치 요청의 주체가 아니다. 다만 그 단체의 장 및 구성원 개인은 임시조치를 요청할 수 있다. 요청자가 정무직 공무원 등 공인인 경우 자신의 공적인 업무와 관련된 내용은 명백히 허위사실이 아닌한 임시조치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간주한다. 정책결정 제14호는 여기서 나아가 요청자가 정무직 공무원이 아닌 공직자, 언론사 등일 경우 게시물의 내용이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소명된 경우, 게시물의 내용 자체 또는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주변 정황에 의해 해당 공직자 등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인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를 제외하고선 임시조치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았다. 2013년 2월 21일 정책결정 제18호는 정책결정 제2호의 추가 결정 건으로 요청자가 정무직 공무원 등 공인일 경우 구체적인 정황이나 사실의 적시 없이 단정적이고 모욕적인 표현만을 한 경우에는 임시조치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번 글에서 살펴 볼 심의결정 ‘2013심6’ 은 이러한 몇 가지 배경에서 이뤄졌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KISO 정책위원회는 2013년 2월 21일 정책결정 제14호, 제18호의 추가 사항을 반영해 개정된 정책결정 제2호 ‘처리의 제한’에 따라 URL이 표시된 2건의 게시물에 대한 심의했다.4) 이들은 정부 기관의 정책 및 활동을 비판하는 안티 카페 내에 올려진 것들로서 해당 기관의 활동뿐만 아니라 장관인 김 아무개를 비판하는 내용의 게시물이다. 신청인 김아무개 장관은 해당 게시물이 모욕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임시조치를 요청하였다. 개정 정책결정 제2호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명예훼손을 이유로 정무직 공무원 등이 임시조치를 요청할 경우, 그것이 명백한 허위사실이 아닌 한 임시조치를 제한하고 있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다만, 구체적인 정황이나 사실의 적시 없이 단정적이고 모욕적인 표현만을 한 경우에는 임시조치를 할 수 있다.
정책위원회는 임시조치 신청인이 ‘정무직 공무원’인 장관이고 해당 게시물들이 특정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지 않으므로 ‘명백한 허위사실’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따라서 심의의 주요한 쟁점은 개정 정책결정 제2호에 따라 해당 게시물이 ‘구체적인 정황이나 사실의 적시 없이 단정적이고 모욕적인 표현만을 한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아무개 셀카’라는 제목의 심의대상 ①은 고사용으로 쓰는 돼지머리를 찍은 사진이었다. 위원회는 심의대상 ①이 해당 정부 부처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신청인 김아무개 장관의 행적에 대해서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 패러디적인 요소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 제목과 내용을 대조할 때 신청인이 심한 모욕감을 느낄 만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정황이나 사실의 적시 없이 단정적이고 모욕적인 표현만을 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심의대상 ②에 대해 정책위원회는 신청인 김아무개 장관을 희화화한 풍자물로 판단했다. 즉, 해당 게시물은 풍자적인 표현으로 해당 정부부처와 신청인 김아무개 장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하는 정치적 패러디로 규정했다. 따라서 구체적인 정황이나 사실의 적시 없이 단정적이고 모욕적인 표현만을 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나아가 KISO정책위원회는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정무직 공무원 등의 공인’을 대상으로 한 정치적 패러디에 대하여는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정책결정 제14호의 내용을 거듭 확인하였다. ‘2013심6’에서 정책위원회는 심의대상 ①에 대해 ‘삭제 또는 그에 준하는 조치’, 심의대상 ②에 대해서는 ‘해당 없음’ 결정을 내렸다.
3. 결론에 즈음한 평가
2008년 후반기부터 본격화된 ‘미디어관련법’ 처리과정에서 정부와 집권 여당은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하기 위해 상당한 품을 들였다. 2008년 11월 나경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인터넷상의 모욕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였다. 모욕의 피해 확산이 빠르고 광범위하지만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며 친고죄 적용을 피해갔다.5) 같은 해 10월 장윤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법 개정안 역시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하고 가중 처벌하는 조항을 두었다.6) 정보통신망법과 형법 등 두 갈래로 전개된 집권 여당의 입법안은 인터넷상의 모욕적 표현을 친고죄가 아니라 ‘반의사불벌의 죄’로 다루겠다는 ‘강력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피해자의 고소가 없더라도 사법절차를 통해 처벌을 용이하게 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시민사회 진영의 눈에는 그러한 입법적 시도가 ‘처벌의 위협’을 용이하게 하자는 것으로 비춰졌다. 모욕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뿐만 아니라 처벌의 위협을 ‘빠르고 광범하게’ 확산해 보겠다는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비춰진 것이다. 정부나 공직자, 정치인 등에 대한 인터넷상의 비판적 견해에 재갈을 물리려는 입법안으로 간주되었다. 명예훼손을 형사벌로 다스리는 선진 국가들이 드물고 더욱이 모욕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가 극히 소수라는 점도 여당의 사이버 모욕죄 신설을 반대하는 토대였다.
여당의 입법안은 무산되었지만 고위 공직자나 정부정책에 대한 인터넷상의 표현행위들은 간단없이 형사적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규정을 적용해 처벌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법률창고에 오랫동안 유폐돼 있던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의 ‘허위통신’ 행위로 다뤄졌다. 지난 몇 해 동안 인권과 표현 자유를 다루는 국내외 기구들은 한국의 표현 자유가 크게 위축되었다고 평가했다. 숱한 사례들이 거론될 수 있겠지만 오프라인의 MBC ‘피디수첩’과 온라인의 ‘미네르바’ 사건이 대표적이라 할 것이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죄 위반으로 기소돼 형사법정에 세워진 피디수첩 제작진은 2011년 9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미네르바’에게 적용됐던 관련 법조항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2010년 12월 위헌을 선고했고 미네르바는 석방돼 자유의 몸이 되었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정부·공직자·정치인에 대한 언론의 비판과 견제는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뼈대다. 언론뿐만 아니라 시민 개개인이 보복과 처벌의 두려움 없이 정부정책에 대한 견해를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판례에 적절하게 판시돼 있듯이 공복이라고 불리는 공직자들의 권한이라고 하는 것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시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따라서 주인으로서 시민은 공직자들의 공적인 행위와 정부 정책에 대해 서슴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알 권리를 대행해 주는 언론을 통해 충분히 알아야하고 알게 된 것에 시민으로서 사상과 감정을 섞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고위직 공직자와 정치인을 공인으로 분류하는 배경에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러한 지위에 종사하려면 언론의 비판적 보도에 노출되는 것을 수용한다는 점도 작용한다. 애초에 시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으려고 할 경우 주인인 시민들의 물음에 언제든 대답할 의무를 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언론의 비판적 보도나 시민들의 자유로운 표현의 대상이 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일개 시민으로서 그가 가진 인격권을 모조리 훼손당해도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외형적으로 봐서 명백하게 공적인 사안과 관련될 경우, 또는, 분명히 내밀한 사적 사안일 경우에 분쟁의 소지는 크지 않다. 문제는 그 중간 지대에서 주로 발생한다. 표현 행위자를 비롯해 다수의 사람들이 ‘공적’인 영역이라고 여기는 것을 고위직 공직자가 ‘사적’인 문제라며 부정하는 경우이다. 시민사회는 공직자의 공적인 영역을 넓혀서 보는 경향이 강하고 공직자는 사적 영역을 크게 확대하려고 맞선다. 심지어 법원의 확정 판결에서조차 ‘정부정책’의 영역이라고 판단한 사항에 대하여 개인의 인격권이 침해당했다고 분개하는 공직자들도 있다.
위 ‘2013심6’은 2007년 개정 정보통신망법에 구체화된 ‘임시조치’ 요청과 관련됐다는 점, KISO 출범 초기부터 주요 정책결정 사항인 ‘정무직 공무원’의 요청이라는 점, 진실한 사실이나 허위사실로 판단할 수 있는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점에서 결론 도출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최근 몇 년 사이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과 풍자의 범주에 들 수 있는 사건들, 이를테면 G20 쥐 그림 풍자나 ‘회피연아’ 풍자 영상 등에 대해 실제 처벌이 이뤄졌거나 처벌 절차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더불어 인터넷상의 특정한 표현 행위들을 ‘모욕죄’로 규정해 처벌하려는 부단한 시도들이 집권 여당을 중심으로 적극 추진되었다. 정치권은 사이버폭력으로부터 연예인의 인격권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시민사회는 그러한 시도가 정치인에 대한 비판과 풍자, 정부정책에 대한 견제와 비판 등에 재갈을 물리려는 발상이라고 반발해 왔다. 모욕을 형사벌로 다루는 나라가 거의 없고 심지어 언론의 명예훼손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나라가 드물다는 세계적 조류를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터넷상의 모욕적 표현을 형사벌로 다스리려던 입법적 시도를 시민사회 등이 무산시켜 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KISO 정책위원회가 정무직 공직자에 대한 모욕적 표현에 대해 임시조치 결정을 내린 것은 다소 의아스럽다. 특히 공적기구의 안티카페 공간에서 이뤄지는 표현들을 앞뒤 맥락을 잘라내고 엄밀하게 낱개로 재단해 살펴보면 구체적인 정황이나 사실의 적시 없이 단정적이고 모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들로 넘쳐날 때가 많다. 현직 장관과 같은 정무직 공무원의 일거수일투족, 혹은, 해당 부처의 정책행위는 이미 사회적 맥락을 지니고 있고 특히 해당 부처에 대한 정책감시와 비판·풍자를 행하는 사이버 공간의 게시글들은 그 자체로 ‘단정적이고 모욕적인 표현’의 성격을 띨 수 있다. 상당한 게시물들의 경우 이미 ‘구체적인 정황이나 사실의 적시’ 위에 놓여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KISO의 자율적 정책결정과 심의결정이 민·형사적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자발적 강제’ 수준의 행보를 넘어서기를 기대한다.
1) 대법원 2011.9.2.선고 2010도17237 판결 [본문으로]
2) 헌법재판소 2012.8.23.선고 2010헌마47,252(병합) [본문으로]
3) 헌법재판소 2012.5.31. 2010헌마88 [본문으로]
4) ① : http://cxxe.nxxxr.cxm/cxxxxxxxxxt/1xxx7, ② : http://cxxe.nxxxr.cxm/cxxxxxxxxxt/1xxx1 [본문으로]
5)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1801683) [본문으로]
6) 형법 일부개정법률안(180163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