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에이전트(AI Agent), 이미 그러나 아직

1. 들어가며

인공지능(AI : Artificial Intelligence) 기술이 적용된 상품이나 서비스(이하 ‘상품등’이라 한다)를 국내외의 기업들이 잇달아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상품등 중에는 해당 기업 스스로 또는 언론들이 ‘인공지능 에이전트(AI Agent)’라는 이름을 붙이거나 범주로 분류한 것을 볼 수 있다. 예컨대 가장 최근에 공개된 삼성전자의 ‘볼리’와 엘지전자의 ‘스마트홈 AI 에이전트’를 비롯하여 애플의 ‘시리’, 아마존의 ‘알렉사’, 삼성전자의 ‘빅스비’, SK텔레콤의 ‘에이닷(A.)’, 네이버의 ‘클로바X’, 카카오의 ‘카카오 i’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상품등은 시간이나 날씨, 그 밖에 간단하거나 일반적인 질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만을 제공하는 것부터 대화 내용을 요약하거나 생필품을 주문하는 기능, 또는 가전제품과 같은 사물을 제어하고 주위 환경을 학습하는 수준에 이르는 것까지 저마다의 기능을 구현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상술한 상품등의 여러 기능에서 공통적 속성을 선별하여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파악하는 것은 난망한 듯하다. 물론, 통상 이에 관한 이해가 없다고 하더라도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상품등을 사용하는 것에는 특별한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와 같이 인공지능의 기술이 산지사방(散之四方)에 적용되고 관련한 입법 등이 논의되는 풍경을 접하면서 겪게 되는 낯설음에서 벗어나, 이를 둘러싼 사태를 제대로 인식하고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 개념을 일정 수준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

2. 인공지능 에이전트에 관한 의문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위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부터 확인하여야 한다. 다만 인공지능이라는 단어의 광범위한 사용과 관련 산업의 급격한 전개 상황으로 인하여 이를 둘러싼 합의된 개념을 도출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우선,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를 통상 문자 그대로 정의하여 보면, “인간에게 있는 ‘지능’을 연산처리장치 등과 같은 인공적인 수단을 통하여 실현시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부언하면, “일정한 정보처리나 기계제어와 같은 목적을 위해 인간의 구체적인 통제나 지시가 없이 전자적 처리 장치가 스스로 학습하거나 그 학습결과를 바탕으로 출력이나 작동을 하는 시스템”을 인공지능으로 파악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적절할 것으로 생각된다.1

다음으로, 에이전트(agent)라는 단어는 ‘행위자, 작용자, 보좌관,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하도록 허락을 받은 자’와 같은 의미를 가진 ‘agens’라는 라티움어로부터 연유하고 있으며, ‘대리인, 대행자, 또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자(또는 동인(動因))’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2 이러한 의미를 토대로 컴퓨터공학 분야에서는 1990년경부터 ‘합리적 에이전트(rational agent)’ 또는 ‘지능적/지능형 에이전트(intelligent agent)’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이를 개략적으로 정의하면 “사용자를 대신하여 자율성 있게 활동하는 컴퓨터 개체”라고 할 수 있다. 빌 게이츠(Bill Gates)의 경우에는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자연어를 이해하면서 사용자의 정보를 기반으로 다양한 과업을 처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정의한다.3 이를 종합하면, 인공지능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특정 상황을 인식하고 그에 관한 과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전자적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앞서 서술한 대부분의 상품등은 아직까지 질의에 대한 검색 결과나 학습 데이터를 활용한 결과값의 제공, 그밖에 음성 데이터의 문자 데이터로의 변환 등에 머무르는 것으로 보여,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공지능 에이전트에 해당하는지는 의문스럽다.

3. 이미 있는 인공지능 에이전트에 관한 생각

사실, 인공지능 에이전트에 관한 생각, 즉 신(神)이나 인간이 자신의 모상(模像)을 만들어 자율적인 조력자에게 역할을 맡긴다는 아이디어는 고대부터 있어 왔던 것이기에 오늘날 새롭거나 낯선 것은 아니다. 우리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거(典據) 중 대표적인 것이 희랍의 고전 서사시인 호메로스(Homeros)의 《일리아스(Ilias)》이다. 《일리아스》에서 인공지능 에이전트와 관련한 부분을 아래와 같이 살펴본다.

그러자 황금으로 만든 하녀들이 주인을 부축해주었다.

이들은 살아 있는 소녀들과 똑같아 보였는데

가슴속에 이해력과 음성과 힘도 가졌으며

불사신에게 수공예도 배워 알고 있었다.

《일리아스》 제18권, 417-420행4

상술한 장면은, 테티스(Thetis) 여신이 자신의 아들 아킬레우스(Achilleus)를 위한 무구(武具)들(방패, 투구, 정강이받이, 가슴받이)의 제작을 부탁하려고 헤파이스토스(Hēphaistos)에게 방문하였을 때의 상황이다. 절름발이 헤파이스토스는 테티스를 맞이하면서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으나 생명이 있는 사람과 같은 시종(handmaids)에게 부축을 받는다. 이러한 ‘황금 시종’을 인공지능이나 로봇의 원형(archetype)으로 흔히 설명하고 있는데, 진정한 자율성을 가진 인공지능 에이전트의 의미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또는 가까운 장래에 실현 가능한 인공지능 에이전트는 오히려 아래와 같이 헤파이스토스가 무구들을 제작하기 위해 사용하는 ‘풀무’라고 할 수 있다.

풀무 옆으로 가서 그것을 불 쪽으로 돌려놓더니 일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모두 스무 개의 풀무가 용광로 밑으로

강도가 다른 여러 가지 바람을 잔뜩 불어넣었는데

헤파이스토스가 원하는 대로 그리고 일의 진도에 따라

때로는 일을 돕기도 하고 때로는 멈추기도 했다.

《일리아스》 제18권, 469-473행5

한편, 인공지능을 그것의 목적이 특정 영역에 국한되어 있는지 여부에 따라 ‘弱 인공지능(weak AI)’과 ‘强 인공지능(strong AI)’으로 나누는 기준에 따르면,6 ‘황금 시종’은 후자, ‘풀무’는 전자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분류와 관계없이 ‘황금 시종’이든 ‘풀무’든 간에 모두 궁극적으로 헤파이스토스를 위해 특정 상황을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도구’에 해당한다는 점이 향후의 인공지능의 파악에 있어 중요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4. 아직 없는 인공지능 에이전트에 관한 문제

전술한 바와 같이, 인공지능 에이전트는 궁극적으로 사람을 위한 도구 가운데 하나이지만, 기존의 일반적인 도구와는 달리 주어진 환경에 대하여 자율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특징적 차별점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공지능 에이전트의 자율성에 관한 지나친 기술적(技術的) 전망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에게 많은 논쟁적 전개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에이전트의 법적인 지위를 어떻게 파악하는지를 둘러싸고 여러 견해의 대립이 있는데, 통상의 일반인이 빈번하게 접하는 영역인 민사 분야의 대표적 쟁점을 간략히 살펴본다.

우선, 대표적인 민사적 쟁점으로,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통한 계약의 체결에서의 인공지능 에이전트의 의사능력에 대한 인정 여부에 관한 것이 있다. 이에 관하여, 적어도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는 인공지능 에이전트에게 의사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공지능 에이전트는 법률상 대리인(代理人)보다는 사자(使者)와 유사하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 반면, 대리인과 마찬가지의 의사표시의 능력을 가진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후자의 견해는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대리인으로 보는 경우에도 다시 법인격이 없는 대리인으로 볼 것인지, 법인격의 주체로 볼 것인지에 대한 견해로 나뉘어 있다.7

또 다른 쟁점으로는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통하여 생성한 창작물에 관한 법적 위치설정이다. 현행 지적재산법에서 의해 보호되는 지적재산은 인간의 지적·정신적 활동의 성과인 발명이나 저작물과 같은 창작물과, 영업상의 신용이 내재된 상표나 상호 등의 표지(標識)는 물론이고 영업비밀과 상품형태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모두 인간에게 가치 있는 유용한 정보를 말한다.8 따라서,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창작물을 생성하였다 하더라도 현행법상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창작자(발명자, 저작자 등)로서 인정받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향후 자율성이 강화된 인공지능 에이전트에게 창작자의 지위를 부여하자는 입법을 주장하는 논자(論者)가 있는데, 이는 자동으로 노출과 초점 등을 맞추어 주는 디지털 카메라를 사진저작물의 저작자로 의제(擬制)하자 주장하는 것과 특별히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된다.

5. 나가며

향후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가지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인간의 자유의지와 같은 수준에 이른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인간의 도구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통해 얻게 되는 이익과 부담하는 책임의 배분에 관한 제도의 설계는 이러한 인식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 미래의 ‘황금 시종’을 지나치게 의식해 ‘풀무’ 수준에 있는 지금부터 제도적 구조를 개혁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듯이 말하는 것은 지나친 상상력과 기업들의 화려한 마케팅 전략에 현혹되어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개혁적 입법에 관한 어려움과 위험성에 관해서는 프랑스민법전 기초자의 한 사람인 포르탈리스(Jean-Étienne-Marie Portalis)가 다음과 같이 말한 바9 가 있어 그것으로 결론을 대신한다.

“행복하게도 천재적 재능을 갖추고 또 일종의 돌연한 계시를 받아서 한 국가의 기본체제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도록 태어난 사람만이 변경을 제안하기에 적절하다.”

  1. 福岡真之介 編(2020), 『AIの法律』, 商事法務, 7頁; 이해원(2023), 『인공지능과 불법행위책임』, 14-22면; 제이콥 터너 지음/전주범 옮김(2023), 『로봇 법규-인공지능 규제』, 한울엠플러스, 20면 참조. [본문으로]
  2. 라틴-한글사전(2006),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法律ラテン語辞典(1985), 日本評論社; https://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agent; 혼비英英韓辭典(1993), 汎文社 참조. [본문으로]
  3. 이상용(2016), 인공지능과 계약법 – 인공 에이전트에 의한 계약과 사적자치의 원칙-, 『비교사법』, 제23권 4호(통권75호), 한국비교사법학회, 1644-1645면;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정보통신용어사전(https://terms.tta.or.kr/dictionary/dictionaryView.do?word_seq=171384-1); https://www.gatesnotes.com/AI-agents<2024. 3. 15. 최종방문> 참조. [본문으로]
  4. 호메로스 지음/천병희 옮김(2012), 『일리아스』, 숲. [본문으로]
  5. ibid. [본문으로]
  6. 제이콥 터너 지음/전주범 옮김(2023), 『로봇 법규-인공지능 규제』, 한울엠플러스, 19-20면 참조. [본문으로]
  7. 자세한 사항은, 이상용(2016), 인공지능과 계약법 – 인공 에이전트에 의한 계약과 사적자치의 원칙-, 『비교사법』, 제23권 4호(통권75호), 한국비교사법학회, 1652-1667면; 한국인공지능법학회(2021), 『인공지능과 법』, 박영사, 115-123면(김영두·고세일 집필 부분) 참조. [본문으로]
  8. Paul Goldstein(1992), 『Copyright, Patent, Trademark, and Related State Doctrines : cases and materials on the Law of intellectual property(3rd ed.)』, Foundation Press, p.1; 박성호(2023), 『저작권법(제3판)』, 박영사, 24면; 송영식‧이상정‧황종환‧이대희‧김병일‧박영규‧신재호, 송영식(2013), 『지적소유권법(상)(제2판)』, 육법사, 38-39면 참조. [본문으로]
  9. 포르탈리스 저/양창수 역(2003), 『民法典序論』, 박영사, 28면. [본문으로]
저자 : 김훈건

KISO저널 편집위원, SK커뮤니케이션즈 법무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