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화사회, 자동화된 불평등을 말하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은 미래사회를 상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이다. 이들 중 인공지능은 인간의 노동력과 의사결정을 기계가 대신해주리라는 인류의 기대가 실현되는 과학기술의 종착역이 아닐까 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의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은 허구가 아니며 기술시대에 대한 과도한 억측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컴퓨터가 고안된 기계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엄연히 자동화된 기술에 관한 연구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의 역사는 이전부터 기록돼 왔고 인공지능은 지능화시대를 앞당기는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올해부터 조지메이슨, 퍼듀, 노던애리조나, 스탠포드, UC 버클리와 같은 미국의 대학들에서는 음식배달 로봇이 캠퍼스를 누비며 학생들에게 도시락을 성공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학생들이 배달 앱을 통해 주문한 음식을 전달하는 것이다. AI 로봇은 도로가 잘 정비되고 차량 통행이 없는 곳, 로봇에 친화적인 대학가나 IT 기업체에서 운영하기가 적합하다. 필자가 다니는 회사의 로비에도 AI 로봇이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방문객들과 근처 주민들에게 개방된 공간이니만큼 이제 AI 로봇은 일반에게도 어색하지 않다. 향후 몇 년 내에 AI 로봇이 거리로 나올 수 있어 보인다.
현재는 비교적 단순한 알고리즘이 적용된 것이지만, 로봇청소기, 홈 비서의 역할로 집안에서도 바깥 날씨에 대비해 외출할 수 있고, 스마트 폰만으로도 집안의 전력과 가스를 제어할 수 있어 에너지 소모나 화재를 막을 수 있다. 비록 약한 수준이지만, 인류는 인공지능으로부터 일상업무를 프로그램 시켜 수행하기에 충분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 한편 기술에 대한 사회적 기대감은 지능화 사회를 앞당기는 데 기여하므로, 기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에서의 예측과 준비도 필요하다.
지능화 사회에 대해서 다양한 접근을 하는 책들이 한참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기술을 좀 더 쉽게 사실 그대로 보여준다는 면에서 「스마트 시티, 유토피아의 시작」은 충분히 경쾌하다. 이 책은 매우 쉬운 언어로 4차 산업혁명과 수사학적 모호함을 현실감 있게 제시한다. 저자는 네트워크에 기반한 스마트 홈 기술이 ‘시티’라는 공간으로 확대될 때, 개인이 ‘시티’에서 삶을 영위하는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게 된다고 한다. 이 책은 인공지능 기술을 소재로 상상되는 공상과학영화와 같은 이야기 대신에, 현실에 기반한 일상생활의 인공지능에 관한 이야기를 균형감 있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이 인상적인 점은, 미디어·방송·통신, 그리고 제조업 등 다양한 산업에서 IoT와 센서 기술이 진화하는 모습을 재치 있게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특히 저자는 미래의 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하면서 주요 대목마다 관련 유튜브 영상을 볼 수 있는 QR코드를 넣어주었는데, 덕분에 언어로는 부족한 2%의 이해를 영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독자에 대한 배려이자 동영상 시대에 걸맞은 이 책의 저술 방식은 조금은 무거운 형식의 글들에도 시도하고 싶게 만든다.
이 책을 보는 동안 저자는 아마도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팬일 것이라는 짐작을 했다. 저자가 그의 이름을 잠깐 언급하기도 했지만, 보통식의 공간이 인간에 가져다주는 이미, 자연과의 조화를 은근슬쩍 껴 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저자는 지능화 사회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인간의 역할과 기술과 인간의 조화에 대한 화두를 매 장마다 던짐으로써 인간 중심적인 미래상을 준비할 것을 권한다. 그렇다면 인간 중심적인 기술사회의 미래상은 무엇일까? 이 부분에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간 존엄의 기본적인 철학적이고 헌법적인 가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술사회의 역사를 되짚어 봄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마리 힉스의 「계획된 불평등」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친 현대 기술사회에서의 성적 불평등이라는 놀라운 역사 발견을 해낸다. 인공지능에 관한 윤리적 담론이 ‘차별’이라는 문제에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저자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시대에서 전산 분야에서의 여성의 공헌과 자질, 능력을 역사를 통해서 객관적이고, 세련되고, 차분한 논조로 써 내려간다.
지능화 사회라는 유토피아적 환상이 현실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수많은 기업이 인공지능 연구에 앞다투어 투자하고 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이라는 기술만을 두고 생각했을 때 단연 떠오르는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굴지의 글로벌 인터넷기업들의 모국이기도 하지만 MIT를 비롯한 대학들이 주도적으로 인공지능 연구를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다.
한편 인공지능의 역사를 보면 20세기 영국은 최초의 프로그래머를 배출했고, 인공지능 분야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에 따른 전산화가 미국 못지않은 수준으로 발전했던 국가였다. 2014년도에 개봉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최초의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를 통해 연합군의 전시 작전을 성공적으로 컴퓨터 공학자인 앨런 튜링(Alan Turing)을 업적을 세상에 소개했다. 영화는 고독한 천재 남성의 업적을 묘사하는데 치중한 나머지 그 옆에 있던 앨런 튜링이 이끄는 블레츨리의 수천 명의 여성 기술자의 공로를 놓쳤다. 그 때문인지 미국의 애니악(ENIAC)이 작동하지 않았던 2차 대전의 흐름을 승리로 바꾼 영국의 암호해독 전산 능력에 놀라게 되면서도, 1970년 이후 인공지능 역사에서 영국의 부진함, 오늘날 영국에는 ‘구글’과 같은 기업의 부재에 논리적 연결고리가 상실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도대체 20세기 영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마리 힉스는 「계획된 불평등」에서 세계대전 당시 블레츨리에서 암호해독을 이행한 여성 노동자들의 활약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당시 전산 분야에서 주도적인 전문기술인력이었던 여성들은, 전시와 정부의 전산화에 값싸고 충실한 노동력으로 동원되다가 세상이 이내 곧 평온해 질 때쯤이면 남성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홈 스위트 홈’으로 내쫓겼다. 저자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적 서사를 통해서 전시와 종전 직후 여성이 전산 사업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밝혀내고 있었다.
저자의 연구는 20세기 영국 전산 사업의 주역인 여성을, 대역자로 치부하고, 기계를 다루는데 필요한 ‘신경질적인 성향’을 가진 존재로 평가절하하는데 급급했던, 영국의 전산 역사 속에 감춰진 사실을 폭로하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이 연구가 중요한 점은, 폭발적인 기술의 특이점이 논해지는 이 시점에서 인류와 기술의 역사를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지 교훈을 준다는 점이다. 특히 이 책이 보여준 훌륭한 발견은 성별화된 노동 차별이 영국의 IT 산업 인력 시스템에 실패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영국의 컴퓨터 혁명의 실패는 노동구조에 대한 성차별이었지만, 특이점을 거론하는 기술시대의 불평등은 인종, 계층, 종교 등 수 많은 지점에서 자동화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기술로 재편될 인간사회는 기존 사회의 편향과 잘못된 습관을 강화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우려는 기술이 주도하는 미래사회가 인간의 존엄에 중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기술사회에 담론은 이미 시작됐다. 제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어도, 제도에서 비롯되는 사회경제적 불균형은 그 분야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균형적인 사회시스템은 모든 시민의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마리 힉스의 「계획된 불평등」에 인용된 랭던 위너(Langdon Winner)의 말을 대신하여 글을 마치도록 한다. “산업화 초기의 제조 공정에서부터 기술발전이라는 말은, 어떤 기술이 주로 계층, 인종, 성별을 기준으로 사회를 가르면서 사회적 이익 집단에는 경이로운 돌파구를,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장애물을 안겨준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