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터넷 규제환경과 KISO의 과제

*Ⅰ. 들어가면서

드디어 한국에서도 사업자들이 스스로를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대체로 한국의 토양에서 정부와 손을 잡거나 혹은 정부로부터 일정한 권한을 위임 받지 않은 채, 스스로를 규제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생소하다. 거기다가 이들은 정부와 거리가 있다고 그들의 강령1)에 자신 있게 표현하면서 그 ‘자율’과 ‘독립’의 진정성을 보이려 애쓰고 있다. 이들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이하 ‘KISO’)2)이다. 2009년 3월에 만들어졌고, 아직은 인터넷포털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 중 7개 회원사만 참여하고 있다.3) KISO는 만들어지면서부터 언론의 관심을 받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언론을 향하여 뭔가 내어 놓고 있다.4) 아마도 KISO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무의식적 공감대가 있는 것 같다. 인터넷에 대해 우호적인 사회적 여론과 정부가 있을 때는 이런 논의가 연구에 머물렀었다.5)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집권하고 나서 1년 만에 인터넷으로 사업을 하는 이들 중에서 특히, ‘미디어’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 그것도 가장 매출액이 높은 기업 중심으로 스스로를 규제하겠다고 나섰으니 KISO는 뭔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기대된다. 급박하게 구성되고 신속히 뭔가를 내어 놓고, 세상을 향하여 존재를 알리는 KISO는 이들이 뭔가에 쫓기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에 대한 ‘미디어적 규제’가 지난 한 해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역시 ‘급박하게, 그리고 신속히, 세상을 향하여’ 쏟아져 나왔다.6)

그래서 할 수 없이 우리가 원하던 ‘숙의구조’는 진행중이다. KISO는 정책결정을 두 개 하였고7), 이러한 정책결정을 하나하나 쌓아가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 지 결정하겠다는 입장인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의 정책세미나와 같은 ‘숙의구조’는 당연히 예정된다. 우리가 원했던 ‘숙의구조’는 그간의 연구를 통해 논의되었던 사실들을 모두 펼쳐두고,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장기간에 걸쳐 그 시행을 고민한 끝에 누구도 부인하거나 무시하거나 또는 빠져나갈 수 없는 스스로의 규제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숙의구조’도 차선은 된다. 앞으로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들이 나서서 스스로의 이해를 떠나 세상을 향하여 우리도 잘 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히고, 지지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소 급하긴 하지만 좋은 출발이다.

이 발표는 KISO가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KISO는 우리나라가 인터넷을 통해 그만큼 성장하였음을 대내외에 보이는 시금석이다. 그것은 바로 KISO가, 우리에게도 ‘근대적 시민인 네티즌’이 존재하고, 우리에게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지속가능한 기업문화’가 존재하며 우리에게도 ‘합리적으로 시장의 역할을 인정하고 자제하는 정부’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믿고 남들도 믿게 하는 ‘선진성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Ⅱ. 왜 자율규제인가?

1. 자율규제의 토양

KISO는 자율규제기구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자율규제하겠다는 것인가? KISO는 그 정관에서 스스로의 기능8)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1. 기구 강령 및 가이드라인 수립
2. 회원사 등으로부터 요청 받은 인터넷 게시물 처리 정책에 관한 사항
3. 국제 자율규제기구와의 교류협력 및 국제기구 활동 참여

KISO는 최상위 의사결정기구로 이사회를 두고 있지만9), 중요한 정책의사결정은 정책위원회에서 담당하는데 그 기능10)은 다음과 같다.

1. 기구 강령 및 정책결정 가이드라인의 제정 및 개정안 마련
2. 위원으로부터 요청 받은 인터넷 게시물에 대한 정책 결정
3. 합리적인 게시물 정책 수립을 위한 기타 사업

위의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KISO는 인터넷 내용규제에 관하여 어떤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실제로, KISO는 정책결정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것도 주로 명예훼손 등 ‘권리침해 게시물’에 대한 사업자의 ‘임시조치’를 정하고 있는 정보통신망법상의 ‘사업자의 조치’를 위한 판단을 대행하는 기구로 운용11) 되고 있다.

KISO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렇게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자율규제의 본질적 문제에 관한 의문은 남아 있다. ‘자율규제’도 엄연한 규범이다. 이른바 규범이라 함은 사회적으로 준수하여야 할 행동의 준칙으로서 이를 위반하였을 경우 일정한 사회적 제재를 받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니, 일단 누가 준수하여야 할 것인지가 분명하여야 하고, 무엇이 행동의 준칙인지가 명확하여야 하며, 이를 위반하였을 경우 어찌할 것인가가 제시되어야 한다. 그래야 규범의 준수가 기대되고 그 규범의 생존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KISO가 갖고 있는 생각은 뭔가 혼동이 있어 보인다. KISO는 스스로를 규율하겠다고 하였지만, 그 규범을 준수하는 이가 ‘스스로’가 아니라 어쩌면 그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를 위한 규범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12) 자율규제의 성공을 위하여 진정성을 갖고 나섰다면 인터넷의 주인인 ‘이용자’를 잘 모시기 위하여 ‘스스로’를 어떻게 규율할 것인지에 대하여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13)

다음으로 남는 의문은 그러한 규범이 왜 자율규제여야 하는가이다. 전통적으로 자율규제는 단일한 규범집행자의 범위를 넘어서는 관할권의 문제를 극복하는데 유용하였다. 미국처럼 연방국가에서 국가의 권위에 의할 수 없는 주간(interstates) 상사분야나 국제상사분야 등에서 이러한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규범 준수자가 특정집단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그 성질이 균등할 때 즉, 균질적인 수범자를 대상으로 할 때 자율규제는 성공가능성이 높다. 변호사·의사·교원 등과 같은 전문 직업 집단의 자율규제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규범집행자가 규범에 대한 이해당사자인 경우에도 자율규제는 선호된다. 표현의 자유와 같이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표현권자와 대립하는 당사자인 국가권력은 그 스스로를 자제하고 ‘사상의 자유시장에서의 자율규제’를 옹호하여야 하는 것이 헌법적 요청14)인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KISO는 어디에 해당하는가. KISO는 하기에 따라서 이 모두에 해당할 수도 있고, 이 모든 자율규제의 토양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자율규제의 토양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KISO가 표방하는 자율규제의 ‘규범’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어떻게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누구에게까지 이를 확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해 보인다.

2. 자율규제의 장점과 한계

그렇다면 한국에서 자율규제는 어떤 장점을 갖고 있을까. 전통적으로 자율규제는 규제비용이 저렴하고, 규제집행의 거부감이 적으므로 순응도가 높은 장점이 있다. 당연히 만족도도 높을 수 있다. 자율규제는 기본적으로 연성의 규범을 적용하게 되기 때문에 현장에 적합한 전문적·기술적 정의의 구현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한계도 당연히 존재한다. 실효적 집행과 불복의 경우 및 수범자가 불분명할 경우 ‘착한 수범자만 손해 보는’ 일도 존재한다. 이때 가장 괴로운 점은 행위공간이 다양한 수범자가 특정 자율규제 공간을 이탈하는 경우이다. 자율규제의 토양 자체가 사라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KISO의 정관을 보면 탈퇴가 자유롭다.15) 이때 받는 제재는 겨우 회비를 반환받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16) 징계는 제명이 제일 강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규정17)은 KISO의 규범이라기보다는 국가의 법규범이다.

KISO는 자율규제의 장점으로 무엇을 갖고 있는가. 영향력 있는 인터넷포털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디어적 성격’의 ‘표현 시장’으로서의 인터넷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의 점유율로 치면 대한민국의 인터넷자율규제의 성공을 점칠 수 있는 부분이다. 점점 더 많은 네티즌들과 시민들이 ‘표현 행위에 대하여’ ‘당사자인 권력’이 나서서 직접 규제를 하겠다는 시도에 반대의견을 쌓아가고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자율규제는 국가라고 하는 단일하고도 강력한 규범집행자가 있고 수범자가 온전히 그의 관할권 내에 속하는 경우에는 그의 ‘승인-그것이 적극적 승인이건 묵인이건’ 내지는 자제를 필요로 한다. KISO는 이런 점에서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다.

게다가 KISO가 만일, 당면한 기업경영 상의 애로 문제만을 해결하는 창구가 된다면 그 비전에도 불구하고 수범자의 획정이나 실효성의 확보 등과 같은 ‘신뢰의 틀’을 갖추지 못하여 결국 자율규제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3. 한국에서 자율규제의 성공조건

KISO가 활동하게 되는 한국의 자율규제적 토양을 살펴보자. 우리는 미국과 달리 헌법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사회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여서는 안된다고 하는 규범을 정하고 있다. 물론, 1987년 헌법 개정 시에 비할 때 우리 사회가 표현의 자유에 관한 법적 보호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헌법에서 미국 수준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인터넷이 가장 표현촉진적인 매체’라고 옹호하는 헌법재판소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표현행위를 규제하는 다양한 입법은 여전히 합헌적인 상태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에 의하여 표현 그 자체가 세상에 출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검열’은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표현된 행위에 대하여 국가가 법률에 의하여 그 책임을 묻는 구조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다. 그 표현행위가 범죄가 된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적시되고 일반적으로 기대될 수 있는 수준이면 범죄로도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토대에서 자율규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율규제를 위한 ‘규범’의 정립이 매우 중요해진다. KISO가 그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우리 헌법보다 더욱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수준의 결정을 해 나간다면 문제를 가진 이들은 KISO 대신 국가를 찾게 될 것이다. 그러니 한국적 자율규제 규범을 정립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KISO가 정책결정을 하는 때에 법원의 견해를 면밀히 살피는 점은 다행스런 일이다.위와 같은 헌법적 규범에 따라 우리는 인터넷에 관한 정부규제 기관을 매우 다양하게 여러 층위에서 보유하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있고,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정책적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자율규제에 영향을 끼치는 기관은 바로 형사사법기관이다. 형사사법기관은 경찰, 검찰 등은 물론 다양한 사법경찰(예를 들어 불법소프트웨어단속권을 가진 공무원, 내사·외사 등의 권한을 가진 정보수사기관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규제환경은 다분히 한국적이다. 실제로 사업자에 의한 임시조치는 정부의 집행명령서(예를 들어 방송통신위원회의 거부·정지·제한 명령)와 같은 행정처분보다 해당 수사기관의 출두요청 전화가 더 위력적일 수도 있다.

이러한 한국적 환경에서 자율규제가 성공하기 위하여서는 더 강력한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이 더 자제하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국가기관의 자제는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국가기관의 자제는 그것이 ‘권력자가 표현행위에 대한 당사자로서 부당히 개입하는 것임’을 시민사회가 확인하는 것으로 얻어야 한다. 결국 국가기관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여야 하는 본연의 임무를 저버리고 나설 경우 그것이 국가권력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여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다행히 인터넷의 발달로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현재적 상황에서 볼 때 KISO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자제로, 방통심의위는 방통위의 자제로, 방통위는 형사사법기관(정보수사기관 및 이른 바 권력기관)의 자제로 자율규제의 성공을 확보하여야 한다. 자제를 확보하여야 한다는 의미는 자제하는 이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신뢰는 그의 임무와 그의 이익을 이해하고 자율규제가 추구하는 임무와 이익의 타협선을 찾아나감으로써 얻어야한다. 그 공동선을 이탈하는 이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신뢰구축의 틀을 쌓아야 한다. 결코 대립적인 구도가 아니라 협력적인 구도여야 한다는 말이다.

Ⅲ. 인터넷자율규제와 KISO의 과제

1. KISO의 기능 실질화

KISO의 비전이 ‘한국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인터넷자율규제기구’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러 가지 한국적 조건과 상황을 고려하여 현재와 같은모습으로 출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능이 겨우 회원사들의 책임을 감면하기 위하여 게시판의 내용을 심의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곤란하다. 그것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법률상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사업자의 의뢰를 받아 신속하게 답을 주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다. 방통심의 심의를 받으면 공적판단을 받은 것이니, 사업자로서는 더욱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KISO가 정부규제로부터 승인을 얻는 것은 그 활동이나 심의의 내용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KISO의 결정이 법원으로부터 번복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KISO의 본질적인 힘은 모든 인터넷참여기업으로부터 보다 강력한 자율규제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인터넷기업이 수범자로서의 자세를 갖고 KISO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바로 이 부분은 정부 규제가 도와야 할 지점이다. 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정부규제기관이 KISO로부터 이탈하는 사업자를 바라보고 있는 점만으로도 KISO는 실질적 자율규제기관이 될 수 있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법제를 통해 특정한 인터넷사업을 수행하는 모든 사업자가 자율규제기구에 가입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방법이다. 변호사·의사 등과 같이 전문직업군에 대하여 강제로 시행하는 형태이다. 다만, 인터넷사업을 어떻게 분류하고 체계화하여야 전문직업군과 같은 수준의 균질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KISO 기능의 실질화를 위하여 자율규제의 토양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의 고려가 가능하다고 본다.

첫째는 대외적으로 관할권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에 관하여 고민하는 것이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서비스에 대해서는 우리 인터넷포털이 경쟁력을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것이고, 한국어 문화권에서는 이러한 논의의 필요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미국, 일본, 중국 등의 한국어 인터넷서비스사업자와의 연대18)를 통해 KISO의 존재를 명실공히 국경을 넘는 자율규제기구로 만드는 작업이 가능할 것이다. 한류의 문화적 잠재가치 등을 고려하면 정부와 국가가 이를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19)

둘째는 회원사 내부적으로 보다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인터넷문화규범을 형성하는 것이다. 본디 자율규범이라는 것은 외부적 규제로는 달성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을 때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정부규제나 국가적으로 논의하기에는 비교적 사소하지만, 인터넷기업이나 이용자등에게는 중요한 가치가 있는 규범을 발굴해 낼 필요가 있다. 아마도 참여기업이나 전문가 들이 이러한 규범을 목록화하고 논의에 부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내용규제적 사항도 있겠지만 기업활동에 관한 사항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KISO가 기업활동이나 시장질서에 관한 사항도 규범으로 정립한다면 실질적으로 자율규제기구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산업분야별로 존재하는 기업협회 내지는 산업협회는 일정부분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 구성의 개방과 참여의 보장

KISO가 실질적인 인터넷자율규제기구로 자리매김하려면20) 현재보다 구성에 관한 고민을 더 하여야 한다. 즉, 초기 단계의 의사결정체계는 현재와 같은 상태가 불가피한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인터넷자율규제기구의 거버넌스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인터넷사업자 중 일부라는 한계를 극복하여야 한다. 물론, 방통심의위라고 하는 일반적이고 상위적 개념의 기구를 두고 분야별 자율규제기구(예를 들어 포털, 게임, 상거래 등)를 두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겠으나, 그렇게 되면 처음에 밝힌 바와 같이 비전과 명칭 등이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다음은 이사사와 참여회원사의 구조에 관한 사항을 고민하여야 한다. 또한 자율규제기구를 회원사가 직접 참여하여 그 결정을 하여야 하는 체계에 의할 것인지도 고민하여야 한다. 회원사가 의사결정체를 구성하고 규범을 형성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일단 사전에 합의된 규범의 집행과 준수의 시기에도 스스로 참여한다는 것은 규범의 순환구조상 비상식적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구조형성에 깊이 관여하되 의사결정은 독립적으로 운용하도록 하는 거버넌스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 이용자 내지는 일반 시민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전문가가 참여함으로써 이를 대변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문가보다 파워유저나 네티즌 대표가 상징적으로라도 참여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인터넷 이용자들 중에서 입후보를 거쳐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대의원 등을 선출함으로써 KISO의 자율규제기구성을 보다 극적으로 표명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3. 정부규제와의 협력

한국적 상황에서 KISO의 성공여부는 정부규제와의 관계설정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KISO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의 관계를 우선적으로 살펴야 한다. 방통심의위는 인터넷 분야에 관한 법적 심의기구이므로 KISO가 심의를 통해?결정하는 사항은 본질적으로 방통심의위의 권한과 겹칠 수밖에 없다.

방통심의위는 규제기관이고, 자율규제기구는 자율기관이므로 각각의 역할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양자가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하여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좋다면, 자율기구가 더 역할을 하여야 할 것이고, 빨리 공동규제의 틀을 정립하자면 규제기관이 권한을 유보하면서 자율기관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율기구는 성장을 필요로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반면 방통심의위는 법적으로 그 권한과 범위가 확정되어 있으므로 KISO가 방통심의위와 함께 성공하기 위하여서는 방통심의위원회가 자율규제기구를 인큐베이팅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 구체적 방법으로는 일부 기능에 대한 위탁이 가능할 수 있거나, 아니면 방통심의위가 자율기구의 판단부분을 용인해주는 등의 조치가 있을 수 있겠다. 또한, 조직구조와 각 협력의 효율성을 위하여 시장적 관점에서 비교우위가 있는 부분을 상호계약의 방식으로 스와핑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심의에 관한 사항은 공유 또는 분할하되, 분쟁조정은 방통심의위에서 전담하는 등의 조치와, 그에 따른 비용보전 등이 그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분쟁조정기능은 어디에서 맡아서 운영하든 법원에 의하여 해결하는 것과 동일한 결과를 얻는 것으로 인식된다면 문제가 없다. 다만, 분쟁조정에 대한 당사자의 수용성과 비용 등 대체적 분쟁해결제도의 특성을 고려하면 공공 분쟁해결제도가 더 나을 수도 있다.

형사사법기관에 의한 신속조치와 법률 집행이 실질적으로는 심의 이상의 효과를 내기도 하므로, 관계기관과의 핫라인 형성과 같은 협력체계가 필요하다. 실제로 심의를 거쳐 시정요구하고 take down하는 사례보다 경찰서나 검찰에서 수사에 돌입하고 take down하는 것의 실질적 압박감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이런 노력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형사사법기관과의 공조시스템은 해당정보가 명백히 불법인가의 여부가 분명할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KISO의 다른 기능은 여전히 중요하다.

공적 규제와의 협력을 고려할 때 분쟁조정업무까지 담당하는 것은 자율기구의 업무로는 부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분쟁조정은 법원의 업무를 대신하는 일이므로 공적 신뢰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조정’이라고 하는 분쟁해결방식은 근본적으로 당사자의 승복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해당 조정에 대한 최종적 당부를 판단하는 법원에 있어서도 자율기구의 결정보다는 방통심의위의 결정인 공적 결정을 더욱 신뢰할 것이라는 점과도 연결된다.

4. 국제적 활동의 강화

국제적 활동은 홍보, 공조, 해외진출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다. 이미 정관이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해외의 다양한 국제적 자율기구와의 협력은 예정되어 있다. KISO의 해외진출에 관한 전략적 비전도 포함되어 운용된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경험을 살려 한국형 자율규제기구의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적 방법론 등을 형성하는 노력이 우선되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Ⅳ. 나오면서

KISO와 자율규제에 관하여 두서없는 의견을 정리하였다. KISO는 이제 걸음마 단계에 있고, 여러가지 제한적 상황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너무 먼 미래를 염두에 두고 불편한 의견을 전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ISO는 한국 인터넷 역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전환점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KISO는 그 이름 자체가 한국 인터넷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모든 주체가 바라는 실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KISO가 어느 순간 누군가의 아이디어에 의하여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란 뜻이다. 그러므로 KISO는 모든 한국 인터넷 참여자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재적 모습과 한계를 인정하지만, KISO의 원래적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한국 인터넷 참여자가 도처에 존재한다는 점이KISO의 본질적 힘이다.

이제 발표를 마치면서 인터넷의 참 주인은 네티즌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네티즌은 현재의 이용자는 물론 잠재적 이용자를 포함하는 것이므로 결국 국민이자 시민이다. 인터넷은 개별 이용자가 중요한 문화로 출발하였다. ‘회원님’들로 구성된 인터넷 문화가 어느새 사업자와 소비자의 관계로 전락하고 누구는 의사를 결정하고 누구는 소외 받고 누구는 이익을 가져가고 누구는 아픔을 떠안는 ‘보통 사회’의 ‘보통 문화’로 인터넷은 변화하여 갔다. 아니, 보통 보다 더 ‘저질스런 문화’로도 변화하여 갔다. 여기에 인터넷에 대한 ‘타율적 규제’의 논거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 출범한 KISO는 인터넷의 본질적 문화와 가치인 ‘참여’, ‘개방’, ‘공유’를 회복하고 네티즌을 섬기는 ‘가치 중심’에만 서서 현재의 고민을 하면 된다. 그러면, 늘 곁에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한국 네티즌이 얼마나 우수한 시민인지 KISO가 입증해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 이 발표문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정책세미나(2009.9.29)를 위해 작성한 것으로 완성된 논문이 아님을 밝힙니다. [본문으로]

1)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강령 제5조 독립적 운영“우리는 이해관계, 부당한 외압 등에 좌우되지 않고 독립적이고 투명하게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를 운영하며, 정부기관의 조치 및 협조 요청은 명확한 법적 근거에 기반을 두고 검토한다.” [본문으로]

2) 영문으로는 KISO(Korea Internet Self-governance Organization)라 부르고, http://www.kiso.or.kr/라는 인터넷주소를 쓴다. [본문으로]

3) 그런데 왜 인터넷자율정책기구라는 거창한 이름을 썼을까? ‘인터넷종합정보서비스제공자 자율정책기구’ 또는 ‘인터넷포털사업자 자율규제기구’ 정도의 이름을 써도 될 듯한데, 이런 이름을 쓴 것은 우리의 척박한 토양에서 아마도 그 비전이 크고 의욕도 대단하다는 뜻으로 새기고 싶다. [본문으로]

4) KISO의 게시판에는 언론 홍보건수가 12건으로 가장 많다(http://www.kiso.or.kr/news/pr.php). [본문으로]

5) 인터넷자율규제에 관한 논의는 이미 1990년대말부터 시작되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가장 많은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어찌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이미 그 때 많이 논의가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본문으로]

6) 미네르바사건, 포털책임에 관한 대법원판결, 사이버모욕죄 신설추진, 검색서비스사업자 규제법 상정 등이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 [본문으로]

7) http://www.kiso.or.kr/news/decision.php에 가면 내용을 볼 수 있다. [본문으로]

8)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정관 제4조(기능) [본문으로]

9) http://www.kiso.or.kr/introduction/organ.php에 가면 의사결정구조의 조직도를 확인할 수있다. [본문으로]

10) 같은 정관 제30조(기능) [본문으로]

11) KISO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해 나가야 할 지에 대해서는 우선 정관의 기능을 사업의 구체적 내용으로 삼는 것으로 고민을 시작하면 될 것?같다. [본문으로]

12) 이렇게 되면 ‘포털권력’이라는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된다. [본문으로]

13) 만일, 임시조치 여부 판단만을 의뢰하여 맡긴다면 ‘자율심의기구’에 그치게 되고 이는 사회적으로는 방통심의위가 일을 잘 하면 되는 부분이다. [본문으로]

14) 미국 헌법과 같이 표현의 자유를 국가형성의 기초로 인정하는 경우에는 이런 전통의 수립이 일반화된다. 현대선진헌법 국가에서는 국가가 직접 표현의 자유를 다스리는 당사자가 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하물며 이들은 ‘사적 검열’이나 ‘사후적 규제’에 따른 위축효과까지도 고려하고 있을 정도이다. [본문으로]

15) 같은 정관 제8조 제2항 [본문으로]

16) 같은 정관 제8조 제2항 [본문으로]

17) 같은 정관 제8조 제3항 [본문으로]

18) 없다면 우리가 만들어서라도. [본문으로]

19) 현재 정관(제4조)에서는 ‘국제 자율규제기구와의 교류협력 및 국제기구 활동참여’를 정하고 있지만 이 보다는 더 적극적인 노력으로 KISO의 국제적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기존의 국제기구와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 국제기구가 모두 한국어서비스와 큰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20) 사실, 이미 KISO는 성공적인 홍보전략과 사회적 필요성으로 인하여 훌륭한 브랜드가치를 갖고 있으므로 이런 실질적 기능을 가져야만 한다. 만일, 이런 실질화에 실패한다면 그 반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만큼 사회적 기대와 주목을 받고 있다는 반증이다. [본문으로]

저자 : 권헌영

(전) KISO저널 편집위원,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