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규제의 미래] 메타버스 자율규제

1. 자율규제의 이해

가. 자율규제의 의의

자율규제는 일률적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자율’과 ‘규제’ 모두 정의하기 무척 까다롭기 때문이다. 자율규제의 역사 또한 무척 오래되었다. 넓게 보면, 중세의 길드나 한자동맹, 일본의 나까마(仲間)와 같은 상인조직들의 규율도 자율규제로 볼 수 있다.1 그러나 이들의 규율을 자율규제의 시초로 볼 수 있는 것은 중앙집권이 확립되지 않았던 시절, 이들이 일정한 공적 기능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율규제는 공익 목적을 지니거나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사적 자치와 구별된다.

자율규제는 미국과 유럽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해된다. 자유주의가 강조되는 미국에서는 민간 스스로 공적 기능을 담당하면서, 시장 실패를 이유로 한 연방정부의 규제 개입에 대한 방어적 측면에서 자율규제가 발전하였다.2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발적 자율규제가 자율규제의 원칙적인 모습이 된다. 반면, 공익 실현을 국가의 임무로 보고 국가를 공익 실현의 최후의 보루로 여기는 프랑스나 독일에서는 국가의 후견주의적 관점에서 자율규제가 발전하였다.3 그러므로 공동규제 또는 ‘규제된 자율규제’가 자율규제의 원칙적인 모습이 된다.4 자율규제를 어떻게 이해하든 이는 민(民)과 관(官)의 관계 설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특히 공동규제에서는 민관의 적절한 협력과 역할 분담이 요구된다.

공동규제와 독일법에서 사용되는 ‘규제된 자율규제’는 개념상 구별하기 어려운데,5 이들은 정부가 규제의 외연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민간이 자율적으로 규범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것을 원칙적인 모습으로 한다.6 이때 민간은 규범의 제정ㆍ집행 전반에 관여하며, 자율성을 누리지 못한 채 단지 정부의 지시를 이행하는 것은 공동규제라고 보기 어렵다. 공동규제 중에는 정부의 개입이 강한 명령ㆍ지시형 공동규제도 있지만, 이는 시장의 건전성 유지ㆍ감독이 특히 중요한 금융 분야와 같은 경우에 한정되는 것이다. 이 외의 대부분 영역에서는 명령ㆍ지시형 공동규제가 정당화되기 어렵다. 자율규제는 규제 비용이 민간에 전가되고 정부의 책임성도 약화될 수 있기 때문에, 자율성이 제한된 자율규제를 할 바에야 그냥 법적 규제를 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자율규제와 구별해야 할 것으로 법적 규제가 완비된 상태에서 집행 단계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민간을 참여시키는 것, 즉 자율준수 프로그램(compliance program)이 있다. 이에 참여하는 민간은 수범자의 위치에서 제한된 자율성만을 행사할 뿐이며, 여기에 참여해야 할 동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참여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인센티브 규제’라고도 부른다. 자율준수 프로그램에서는 규제의 집행 과정에서 제한적 자율만이 부여되기 때문에, 비록 이것이 넓은 의미의 자율규제에 속한다고 볼 여지가 있더라도 이러한 유형이 자율규제의 원칙적 모습인 것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7 그리고 자율준수 프로그램에서는 인센티브가 확실해야 하며, 이러한 인센티브 없이 민간에 이의 참여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나. 자율규제의 기능

현대 사회에서, 특히 글로벌화되고 디지털화된 인터넷 환경에서 자율규제는 전체 규제 체계의 한 축을 이룬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더 이상 국가 주도의 경성적인 법적 규제만으로는 공익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기 어렵다. 종래 자율규제는 법적 규제의 대립항에 있거나 규제개혁의 수단이나 규제완화의 방편으로 이해되었지만, 이제는 법적 규제와 함께 어우러져 전체 규제 체계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8 많은 경우에 자율규제는 법적 규제와 길항작용을 하는데, 법적 규제 도입의 잠재적 혹은 현실적 위협이 자율규제의 도입 계기가 되기도 하고, 자율규제가 법적 규제를 보완하기도 하며, 자율규제의 내용이 법적 규제의 내용을 선도하기도 한다.

다. 자율규제의 성공조건

자율규제도 규제이다. 그러므로 규제가 필요한 경우에 도입되어야 한다. 동시에 자율규제는 만능도 아니고 절대선도 아니라는 점도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율규제 자체가 어떤 분야에서 공익 목적 달성을 위한 적절한 수단일 때 이를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시장의 구조적 독점이나 담합 등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법적 규제를 고민해야지 자율규제에 맡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율규제가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는 분야를 먼저 식별해야 한다.9

자율규제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도 자율규제의 모델이 적절해야 한다. 자발적 자율규제를 택할 것인지 공동규제를 택할 것인지, 공동규제의 경우 자율형으로 할 것인지 명령ㆍ지시형으로 할 것인지, 자율규제의 주체 측면에서 자율규제기구를 통한 집단적 자율규제를 할 것인지 아니면 사업자별로 개별적 자율규제를 할 것인지 등이 해당 분야의 특성에 맞게 결정되어야 한다. 자율규제기구를 구성할 때에도 참여형ㆍ개방형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자율규제가 조합주의적으로 흐르는 것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율규제에서는 자율성과 책임성의 상호관계가 분명하게 설정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민간에 자율규제 실패의 책임을 묻기에 앞서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정부 주도로 자율규제의 실질적 내용을 형성하는 경우, 그와 같은 ‘장식적 자율규제’는 성공하기 어렵다. 이러한 장식적 자율규제는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치행정의 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아울러, 정부가 자율규제를 통해 관할권을 확대하려 하거나, 법령으로 도입할 때 논란이 될 것을 자율규제를 명목으로 우회적으로 도입하려는 것도 마땅히 지양해야 한다.10

2. 메타버스에서의 자율규제

우리 주변에는 이미 많은 메타버스 서비스와 관련 제품들이 출시되어 있지만, 메타버스도 자율규제만큼이나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법적 측면에서 메타버스의 주목할 특징은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현실세계에 가깝게 창출된 가상공간 내에서, 이용자들이 사전에 예측하기 어려운 다양한 활동을 통해, 글로벌 차원에서 가상공동체ㆍ가상사회ㆍ가상세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11 이러한 메타버스는 그 특유의 가변성, 역동성, 개방성, 포괄성 등을 고려할 때, 자율규제가 필요한 분야가 많다. 그러나 메타버스와 관련된 모든 분야가 자율규제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자율규제가 필요한 분야를 식별하여 그에 맞는 자율규제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메타버스는 디지털 플랫폼의 성격을 지니며, 그 안에서 많은 콘텐츠와 매체물ㆍ표현물이 생성되고 전달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인터넷 내용규제와 마찬가지로 메타버스에 대해서도 내용규제가 논의될 수밖에 없는데, 내용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측면에서 전통적으로 자율규제가 적용되어 왔던 영역이다. 그러므로 메타버스 내용규제에 관해서도 자율규제가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고, 또 필요하다. 특히, 국내에서는 과도한 게임 규제가 메타버스 발전의 장애물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12 그 경계가 모호할 수 있는 게임 기반 메타버스와 비게임 메타버스를 구별하고, 게임 규제가 적용되지 않더라도 건전한 메타버스 생태계 유지가 가능함을 실증하고 확인하는 차원에서도 자율규제가 적절히 기능할 수 있다.13

메타버스 기획ㆍ제작ㆍ이용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갖는 분야가 기술 표준과 지적재산 분야이다. 그러나 기술 표준은 대체로 시장의 경쟁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율규제나 법적 규제 모두 적합하지 않을 때가 많다. 지적재산과 관련하여서는 궁극적으로는 법의 제ㆍ개정을 통해 해결되어야 할 부분이 많지만, 그러한 법의 제ㆍ개정을 기다리기에 앞서 자율규제를 먼저 시행할 수 있다. 즉, 자율규제기구가 기존 법령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종 기본원칙, 행동강령, 가이드라인 등을 제시하고, 주기적으로 교육을 실시하면서 수시로 자문을 제공하는 등의 활동은 당장 유용하기도 하지만, 향후 제ㆍ개정될 법의 내용을 민간이 어느 정도 미리 형성하여 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14

메타버스 내 디지털 재화 및 서비스 거래와 관련하여서는 기존의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 「콘텐츠산업 진흥법」 등이 예상하지 못했거나 적용되기 어려운 분야가 있기 때문에 자율규제가 필요할 수 있다. 특히, C2C 거래에 있어 크리에이터에 대한 규율, 확률형 아이템 거래 제한, 환불 및 정산정책, 분쟁조정 등과 관련하여 자율규제가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15

반면, 금융에 유사한 실질을 지니는 가상자산과 관련하여서는 법적 규제를 기본으로 할 수 밖에 없고, 자율규제를 하더라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른 한국금융투자협회의 경우처럼 명령ㆍ지시형 공동규제가 타당할 수 있는데,16 최근 논의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안)」에서도 디지털자산업협회를 통해 이와 유사한 형태의 자율규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메타버스 관련 개인정보 보호 영역은 「개인정보 보호법」의 집행과 관련하여 자율준수 프로그램 형태의 제한적 모델이 적용될 수 있는 영역이다.

이상에서 메타버스 자율규제의 필요성과 방식을 분야별로 개략적으로 정리해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 메타버스 자체가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만큼, 자율규제의 내용도 그에 따라 당연히 변모해야 할 것이다.

  1. Jean Pia Mifsud Bonnici(2008), 『Self-Regulation in Cyberspace』, TㆍMㆍCㆍAsser Press, p. 10; Ulrike Schaede(2000), 『Cooperative Capitalism: Self-Regulation, Trade Associations, and the Antimonopoly Law in Japan』, Oxford University Press, pp. 255-256. [본문으로]
  2. J.Bonnici(2008), p. 18; 이승민(2022), 『메타버스와 법: 그 물음표(?)와 느낌표(!)』, 박영사, 120면. [본문으로]
  3. J. Bonnici(2008), p. 18; 이승민(2022), 122면. [본문으로]
  4. 최유성/서재호/유지영/최무현(2008), 『공동규제(Co-regulation) 활용방안에 관한 연구』, 한국행정연구원, 34면. [본문으로]
  5. 서보국(2019), 독일 공법상 규제된 자율규제제도 – 우리의 지방공기업법과 지방자치법과의 관련성에 대하여, 『지방자치법연구』, 제19권 제1호, 170-172면. [본문으로]
  6. 서보국(2019), 172면; 선지원(2021), 규제 방법의 진화로서 자율규제의 실질화를 위한 연구, 『행정법연구』, 제64호, 106면. [본문으로]
  7. 이승민(2022), 185-186면. [본문으로]
  8. 이를 ‘메쉬 규제’(mesh regulation) 또는 ‘네트워크화된 규제’(networked regulation)라고 부를 수 있다(J. Bonnici(2008), pp. 20-22). [본문으로]
  9. 송도영/이승민/박종현/김태오/선지원/정근정(2022), 『메타버스 자율규제 운영방안 연구』, 한국메타버스산업협회, 27-28면. [본문으로]
  10. 이상의 내용에 관해서는 이승민(2022), 127-131면 참조. [본문으로]
  11. 이승민(2022), 12면. [본문으로]
  12.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이승민(2022), 61-75면 참조. [본문으로]
  13. 메타버스 내용규제와 관련한 자율규제 방안의 상세는 송도영/이승민/박종현/김태오/선지원/정근정(2022), 183-190면 참조. [본문으로]
  14. 송도영/이승민/박종현/김태오/선지원/정근정(2022), 181-182면 참조. [본문으로]
  15. 송도영/이승민/박종현/김태오/선지원/정근정(2022), 191-192면 참조. [본문으로]
  16. 송도영/이승민/박종현/김태오/선지원/정근정(2022), 193-194면 참조. [본문으로]
저자 : 이승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