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 넷플릭스 세계화의 비밀
재래식 규제와 첨단 알고리즘의 힘겨루기
넷플릭스의 성장이 예사롭지 않다. 2010년 DVD 대여방식에서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로 전환할 때만 해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넷플릭스가 불과 10년 만에 1억8천만 가입자를 가진 세계 최대의 유료방송사업자가 됐다. ‘온라인 비디오 대여업자’라는 조롱 섞인 평가를 받으면서도 이제는 많은 나라에서 집중적으로 견제 받는 거대 방송사업자로 성장한 것이다. 최근에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OTT가 넷플릭스에 밀려 전멸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전체 가구의 95% 이상이 IPTV를 비롯한 다채널 유료방송을 통해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고전할 것이라는 당초 전망과 달리 넷플릭스 가입자가 5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넷플릭스 확장이 가속화되면서 경쟁사업자들의 견제와 각 나라의 규제 움직임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 어쩌면 넷플릭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급성장하고 있는 OTT(Over The Top) 서비스 전체를 규제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실제로 EU를 비롯한 몇몇 나라는 넷플릭스에 대한 규제를 지속해서 강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자국 문화와 미디어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들이 그렇게 효율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도리어 첨단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넷플릭스가 각 국가의 재래식 미디어 규제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든다.
1. 견제와 규제 그리고 넷플릭스의 대응
이 책은 넷플릭스의 글로벌화가 각 국의 미디어 규제체계와 빚고 있는 갈등과 쟁점들을 분석한 글이다. 저자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넷플릭스 세계화의 성공이 아닌 실패를 분석하겠다는 것이다. 각국의 규제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다 보니, 넷플릭스는 여러 지역의 미디어를 함께 운영하는 집합구조가 됐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넷플릭스를 ‘하나의 플랫폼에 묶인 국가별 미디어 서비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 배경에서 넷플릭스의 세계화 전략이 각 나라의 미디어규제와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을 스트리밍 인프라, 현지 콘텐츠와의 균형, 프락시(proxy) 문제 등으로 나눠 서술하고 있다.
첫째, 넷플릭스는 오픈 인터넷망을 사용하는 OTT 서비스다. 그러므로 고화질 동영상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는데 원천적인 어려움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넷플릭스는 특정 지역에서 시청 가능성이 높은 프로그램을 인터넷 트래픽이 적은 시간에 미리 전송해서 인근 서버에 저장하는 ‘맞춤형 콘텐츠 전송시스템(Content Delivery System)’을 사용하고 있다. 가입자들의 시청 이용 패턴과 보유 콘텐츠를 연결하는 추천 알고리즘을 이용한 전송 효율화 시스템이다. 또 각 나라의 네트워크 상태를 고려해 해상도를 자동으로 조정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네트워크 인프라가 취약한 국가들에서는 여전히 망사용과 관련된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 근본적 해결방법은 아직 없다. 도리어 넷플릭스가 매년 발표하는 ‘ISP 속도 지수(ISP Speed index)’는 이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인프라 수준이 낮은 나라들을 망신 주고 있다고 저자는 비판하고 있다.
둘째, 제공하는 콘텐츠의 불균형성 문제다. 저자는 1980년대 초 미국 음악을 위주로 편성해 실패했던 MTV 사례를 통해 ‘글로벌 프로그램과 로컬 프로그램 간의 균형’ 즉, ‘글로컬리즘(glocalism)’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8:2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렇지만 넷플릭스 세계화가 점점 거세지면서 많은 나라가 내용규제를 더 강화하려는 추세에 있다. EU는 2014년 ‘디지털 단일시장 정책(Digital Single Market Strategy)’에 의해 모든 VOD/SVOD 콘텐츠 목록의 20%를 EU 역내 콘텐츠로 편성할 것을 권고했고, 다음해에는 30%로 비율을 높였다. 물론 모든 나라가 그런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인도나 캐나다는 자국 콘텐츠 편성 비율 규제 자체가 없다.
문제는 넷플릭스 추천시스템이다. 전통적 편성개념과 달리 개인 맞춤형 추천알고리즘에 대한 콘텐츠 비율규제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EU는 목록편성 비율 뿐 아니라 추천시스템에서 유럽 콘텐츠가 이용자들에게 잘 보이도록 하는 ‘가시성(discover ability)’을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콘텐츠 선택은 이용자들의 선호에 따라 알고리즘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넷플릭스가 질 낮은 로컬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목록에 배치해 추천알고리즘에서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알고리즘이 이용자 선호와 시청 이력에 의해 작동된다는 점을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넷플릭스 세계화 전략이 각 나라의 일부 엘리트층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북미나 유럽을 제외한 많은 나라에서 주된 넷플릭스 이용자들은 자국의 로컬 콘텐츠를 원하는 계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MTV처럼 미국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도리어 더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특정화된 목표 시청자 전략은 이용요금 정책에서도 볼 수 있다. 획일적인 월 10달러 수준의 이용료는 북미·유럽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비싼 가격이라는 점이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중국이나 인도의 소득수준에 비해 크게 높은 이용료다. 이는 넷플릭스가 로컬 지역 전체 이용자가 아닌 소수 엘리트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셋째, 넷플릭스의 해적 시청이나 우회 시청에 대한 태도다. 넷플릭스가 가상사설망(VPN, Virtual Private Network), Smart DNS, Add On 같은 무료 브라우저를 이용한 불법 시청을 사실상 방조하거나 규제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2010년부터 2014년 세계화 초기에는 사실상 이를 묵인, 관용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저자는 토렌트 등에 대한 애매한 태도를 볼 때, 넷플릭스의 역사는 저작권 침해의 역사라고까지 하고 있다. 이후 경쟁업체들의 압박으로 태도는 변화되었지만, 많은 나라에서 조기 채택자(early adaptor)확보를 위해 불법 시청을 통제하는데 소극적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넷플릭스의 ‘지오블로킹(Geoblocking)’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2016년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으로 전환하면서 넷플릭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비용을 투자하는 콘텐츠 저작권 보유자가 되었고, 이로 인해 울며 겨자 먹기로 가장 적극적으로 불법 시청을 규제하는 사업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경제 수준이 낮고 비영어권 국가에서는 불법 시청을 사실상 관망하는 이중적 태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만한 부분은 여전히 남아있다.
2. 카멜레온 같은 넷플릭스 세계화
저자는 넷플릭스 세계화를 1970~80년대 문화 제국주의와 글로벌리즘이라는 이분법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 기조는 넷플릭스 세계화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넷플릭스를 세련된 글로벌 미디어가 아니라 전문 콘텐츠를 제공하는 또 하나의 HBO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마디로 각국의 인프라와 경제 상황에 맞추어 다양한 전략을 추구하는 ‘하나의 플랫폼에 묶인 국가별 미디어 서비스 집합’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일관성 있는 넷플릭스 효과(netflix effect)라는 것은 없다’라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이 넷플릭스 세계화의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다루는 것이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넷플릭스는 다양한 로컬 시장과 협상을 통해 성장했고, 글로벌 콘텐츠와 로컬 콘텐츠를 병행하는 ‘글로컬리즘(glocalism)’ 사업자라 할 수 있다. 또한 일부 국가에서는 대중화를 목표로 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소수 엘리트를 타깃으로 하는 카멜레온 같은 탄력적 미디어 사업자다. 한마디로 넷플릭스를 여러 나라에 진출해 돈을 버는 미디어 비즈니스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저자는 각국의 경제 여건과 무관하게 적용되고 있는 균일한 가격정책은 정보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소득수준이 높은 엘리트층을 타깃으로 하면서 북미 위주의 글로벌 콘텐츠에 대한 이용자들의 저항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저자인 라몬 로바토(Ramon Lobato) 교수는 호주 멜버른 RMIT 대학의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다. 스마트TV와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활발한 연구 결과들을 내놓고 있다. 그렇지만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우호적인 것 같지는 않다. 비판 이론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기업이익에 목적을 둔 글로벌 미디어 확산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당연히 넷플릭스 세계화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지 않아 보인다. 넷플릭스뿐 아니라 글로벌 플랫폼들이 운영하는 OTT 서비스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광고수익을 늘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끌어 모으는 유튜브나 전자상거래를 위한 미끼 상품으로 스트리밍 비디오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에 대해서도 냉소적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응하는 각 국의 규제들 역시 무기력하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 간의 행복한 공존’이 가능하다고 보는 저자의 시각도 결국은 희망 섞인 결론이 아닌가 싶다. 역설적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에게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Television is new television’이라는 마이클 울프(Michael Wolf)의 말을 인용한 것도, 그 역시 전통적인 텔레비전 매체에 향수를 가진 커뮤니케이션학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