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규제된 자율규제(Regulated Self-Regulation)를 음미한다 : 해외기관을 통해 살펴본 멀티미디어시대의 내용규제
*현재의 진보된 통신환경은 우리가 21세기 디지털시대를 맞이하면서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발전된 모습이며 방송과 통신 그리고 기기의 융합은 현재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다. 이러한 방송통신 환경의 융합 속에서 생산된 콘텐츠들은 소비자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재편집되어 재분배되고 있다. 또한 여러 진위를 판단하기 힘든 정보까지 이젠 식상한 표현이 되어버린 정보의 홍수의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작년 서울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서 노르베르트 슈나이더 독일 주미디어청 회장은 국가들 간의 적절한 합의의 방법을 통해 다국가간 혹은 국제적으로 법원칙을 적용해야만 디지털시대에 사는 정보이용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유럽연합 내에서 인터넷 불법유해정보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는 방안에 대한 오랜 논의와 1999년 행동계획(Action Plan) 이후 전 유럽집행위원회에 의해 진행된 ‘안전한 인터넷 프로그램(Safer Internet Programme)’은 효율적인 내용규제에 있어 인터넷 내용규제 체계가 글로벌화되어야 함을 지적했다.
따라서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그 내용규제의 틀을 상호호환 혹은 양립 가능한, 더 나아가 글로벌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필요하며 그 일환으로 다른 나라의 내용규제를 설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선 많은 나라 중에 독일의 멀티미디어자율규제기구(Freiwillige Selbstkontrolle Multimedia-Diensteanbieter, 이하 ‘FSM’)을 소개하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독일의 체계를 통해 유럽국가의 전반적인 내용규제의 틀을 읽을 수 있다.1) 미국은 여러 주(州)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다양한 지역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수정헌법의 영향력 안에서 내용규제정책이 단일성을 띄고 있으며 더 나아가 연방법을 통해 여러 주(州)를 아우르는 법적규제체제를 마련할 수 있었다. 반면, 유럽은 각국마다 서로 허용될 수 있는 문화적 사회적 담론이 다르며 일정부분 윤리적 가치가 적용되는 부분(아동성학대 이미지)을 제외하면 규제 대상, 내용해석, 위반성 및 그 처벌규정 등의 통일성을 기대할 수가 없다. 즉, 하나의 법적인 접근보다는 다차원적 접근 방법을 선택하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자율규제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2)
따라서 독일 FSM의 이해를 통해 유럽의 인터넷 혹은 멀티미디어 내용규제체제를 이해할 수 있고,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유럽에서 내용규제가 발전했는지를 살펴보면 다국가적 혹은 국제적 자율규제의 틀을 그려볼 수 있다.
FSM이 말하는 ‘규제된 자율규제(regulated self-regulation)’ 체제란 온라인 미디어의 청소년보호 분야에서 2003년 3월 등장한 시스템이다. 즉, 정부(주정부 및 연방정부)가 자율규제에 있어 법적 틀과 그 구조를 마련하고 그렇게 마련된 틀에 정보제공자가 내용을 채울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FSM의 이러한 시스템은 도덕과 가치관의 변화와는 다르게 경제 요구에 따라 빠르게 발전하는 정보통신기술에 보다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정부와의 협력에 있어서도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국제적 기준에 부합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체제 안에서 자율규제 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FSM은 1997년 인터넷과 관련된 자율기구로 미디어단체와 온라인기업에 의해 설립된 사단법인으로 2004년 11월 청소년미디어보호위원회에 의해 ‘인권 및 청소년미디어보호에 관한 당해 주간(州間)협약(이하 ‘주간협약’)’의 유일한 자율규제기구로 승인되었다. 현재는 독일 내 주요 검색서비스 제공자 및 핸드폰서비스 제공자 등 51개 회원사가 있으며 회원사인 eco(독일인터넷산업협회)를 고려하면 대부분의 독일 인터넷 및 멀티미디어 제공자를 회원사로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o 규제된 자율규제 기관 o 검색엔진서비스 제공자 자율규제 o 핸드폰 제공자 자율규제 o 채팅서비스 제공자 자율규제 o Web 2.0(사교네트워크) 서비스 제공자 자율규제 o 신고센터 운영 o 전문가 위원회 o 청소년보호관련 교육 o 매체이해 증진 o 주간협약(제7조)에 근거한 청소년보호위원 대리 o 국제협력(INHOPE) |
즉, FSM은 사업자의 자율규제를 기반으로 멀티미디어 플랫폼 상의 불법유해정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며 불법유해정보 신고를 접수·처리(핫라인 운영)하고 회원사에게 FSM이 규정하고 있는 행동강령의 준수를 권고한다. 만일 회원사가 불법청소년유해정보를 유통할 경우 FSM은 시정조치를 내리거나 징계 또는 벌금 및 제명과 같은 자체 징계를 내리게 된다.
우리나라의 청소년보호책임자 제도처럼 독일도 주간협약 제7조에 근거해서 정보제공자는 청소년보호위원을 지정토록 하고 있다. 이에 중소사업자들은 자체적으로 청소년보호위원 지정에 드는 재정적 부담을 갖지 않고 주간협약에 의해 자율규제기관으로 인정받은 FSM을 자신들의 청소년보호위원기관으로 임명할 수 있다. 또한 FSM의 회원사의 경우 일정부분 정부기관의 제재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어 자율규제의 틀에 참여하는 멀티미디어 정보제공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즉, 독일도 우리나라처럼 법적 근거에 의하여 청소년유해정보는 19세 미만이 접근할 수 없도록 성인인증 규정을 준수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인증절차 없이 청소년 유해정보가 유통되는 경우 법적 제재를 받게 되는데 이러한 위반이 FSM의 회원사에 이루어질 경우 먼저 FSM 자체적으로 시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밖에 FSM의 주요활동 중에는 각 서비스별 행동강령을 마련하여 자율규제를 육성하는 것도 있다. FSM은 자체적인 행동강령을 두면서 검색엔진제공자 행동강령(2004년 12월), 핸드폰 사용에 있어 청소년 보호를 위한 핸드폰서비스제공자 행동강령(2005년 6월), 채팅서비스 제공자 행동강령(2007년 6월), Web 2.0 사교네트워트 제공자 행동강령(2009년 3월) 등을 마련하였다. 이 행동강령에서 FSM의 회원사는 아동성학대 이미지, 폭력적 포르노그라피, 동물 혹은 수간이 포함된 성행위, 청소년을 위험하게 하는 정보 등에 대하여 접속을 금지하고 있으며 회원가입으로써 이러한 강령에 준수를 선언한 것으로 간주, 위반 시 제재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을 바탕으로 한다. 검색엔진제공자 행동강령의 경우, AOL, 구글, 라이코스유럽, MSN, T-Online, t-Info, 야후 등 대부분의 주요 검색엔진서비스 제공자가 참여하고 있으며 특히 불법정보(친나치, 아동성학대 등)의 URL 인덱스를 통한 검색결과 제한을 실행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핸드폰 서비스 제공자의 경우 독일의 주요 서비스 제공자인 T-mobile, O2, The Phone House, Vodafone D2, E-Plus가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자의 자율규제 육성 및 불법유해정보 신고의 처리 등과 동시에 사업자들과 함께 청소년 보호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면서 멀티미디어 매체의 올바른 사용을 통해 역기능에 대한 인식 증진과 더불어 보다 다양한 멀티미디어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FSM는 독일 내 미디어 및 청소년 보호 관련 국가기관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는 국제인터넷핫라인협회(INHOPE)의 회원기관으로서 해외불법정보를 각 해당국 회원기관으로 이첩 시켜 처리하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문화적, 국가적 다양성이 존재하는 가운데 내용규제가 전부라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또한 여기서 소개된 FSM과 독일의 자율규제 시스템이 최선이라 할 순 없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이 정착하기 위해서 필요로 했던,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장려하려는 내용규제가 이해집단(stakeholders)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consultation)를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클 것이라고 본다.
* 필자는 런던 정경대학(LSE)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2005년 이후 정보통신윤리위원회 국제협력관, 국제인터넷핫라인협회(INHOPE) 집행이사회 일반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2008년 이후 아태 인터넷 핫라인 네트워크(APIH) 사무국장으로 있다. [본문으로]
1) 지난 10년간 유럽 내에는 인터넷 규제의 틀을 보면 사업자 혹은 NGO 등이 일정한 행동강령(code of conduct)이나 규정(rule)을 통해 법집행기관들과 사업자, 관련 정부부처와 협력하여 신고접수 된 불법정보를 처리하는 핫라인 네트워크(INHOPE)와 불법정보 및 유해정보와 관련하여 사용자 특히 청소년과 아동 보호와 관련된 미디어이용능력(media literacy)과 미디어의 잘못된 이용의 폐해에 대한 대중적 인식증진을 위한 교육 및 캠페인을 담당하는 대중운동 네트워크(INSAFE)를 통한 자율규제의 틀이 발전해 왔다. 2009년부터 이 두 네트워크의 상호 연계를 강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본문으로]
2) Charlesworth, Andrew ‘The governance of the Internet in Europe’, The Internet, Law and Society, edited by Yaman Akdeniz, Clive Walker and David Wall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