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O 자율규제의 역사] 자율규제 불모지에 뿌리를 내리다

KISO 설립 배경

2008년 4월 18일, 정부는 30개월 미만의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미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을 전격 발표했다. 광우병 우려에 대한 충분한 대국민 설명 없이 협상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한미정상회담을 불과 하루 앞두고 나온 기습 발표에 국민 여론은 들끓었다1 .

공론의 장인 인터넷은 광우병과 관련한 각종 괴담부터 과학적 연구결과와 외국의 정책 등이 마구 뒤섞이면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대혼란 상황에 빠졌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국민 분노는 오프라인으로 확산됐다. 5월부터 본격화된 촛불집회는 8월까지 2,000여 차례가 넘게 열렸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광우병 사태가 인터넷 공간에서의 허위•과장 정보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한 정부는 인터넷 사업자들의 ‘자율규제’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2008년 6월 13일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44조의 4(자율규제) 조항을 추가했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단체는 이용자를 보호하고 안전하며 신뢰할 수 있는 정보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행동강령을 정하여 시행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더 나아가 여당은 법적 규제까지 언급했다. 2008년 7월 9일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건강한 인터넷 문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인터넷 공간이 왜곡·과장 등 악의적인 선전도구로 사용될 때는 국민 전체에 엄청난 해약을 끼치는 일이 발생된다”며 건강한 인터넷 문화를 위한 법제적 장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자율규제’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이하 인기협)는 2008년 7월 27일 다음, SK컴즈, NHN, KTH, 코리아닷컴, 하나로드림 등 포털 6개 회사가 참여하는 `건강한 인터넷을 위한 포털정책협의회'(이하 포털정책협의회)를 구성했다. 유해게시물 자율 규제를 위한 ‘공동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자율규제가 어려운 사안에 대해서는 방심위에 의뢰해 공동 심의 및 유권해석을 의뢰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포털의 자율규제 노력이 여전히 미흡하다며 압박했다. 방통위는 2008년 9월 당사자가 댓글 삭제를 요청할 경우 무조건 삭제하도록 임시조치를 강화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추진했고, 형태근 방통위 상임위원은 2008년 11월 4일 포털 임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포털의 자율규제 미흡으로 법 강화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포털자율규제협의회’에서 KISO 출범까지

이러한 대외 환경 속에서 포털사들은 2008년 12월 16일 KISO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한 인터넷을 위한 포털자율규제협의회’(이하 포털자율규제협의회)를 발족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야후코리아, SK커뮤니케이션즈, NHN, KT하이텔, 프리챌, 하나로드림(이상 가나다순) 등 7개 포털사가 참여했다.

<사진=2008년 12월 16일 열린 포털자율규제협의회. 왼쪽부터 김 제임스 우 야후코리아 한국총괄사장, 주형철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석종훈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 최휘영 NHN 대표, 손창욱 프리첼 대표, 권은희 KT하이텔 상무, 김남영 하나로드림 대표>

정부의 법적 규제보다는 업계 스스로 자율적 노력으로 건강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이용자들의 편의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인터넷 산업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인식이 협의회의 출범 배경이다.

‘포털자율규제협의회’는 각 참여 포털사 CEO들이 참여하는 최고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와 심의위원회 및 사무처로 구성됐다. 자율규제협의회에 참여한 회원사가 자체적으로 위법•유해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게시물을 심의위원회에 상정하면 공동 심의과정을 통해 신속하게 처리 방침을 결정하며, 각 회원사는 결정된 방침에 따라 해당 게시물을 처리하는 구조다. 현 KISO의 게시물 및 검색어 처리 과정과 같다.

이후 포털자율규제협의회는 논의를 통해, 지속적인 자율규제 역할을 수행할 독립적인 기구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2009년 3월 3일 사단법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orea Internet Self-regulation Organization)을 출범했다.

<사진=2009.3.3. KISO 출범 현판식. 왼쪽부터 박혜진 NHN 서비스관리지원실장, 배영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 김창희 KISO 정책위원장, 주형철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황성기 한양대 법학과 교수>

KISO는 정관에서 ‘본 기구는 인터넷 사업자들이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신장하는 동시에 이용자들의 책임을 제고해 인터넷이 신뢰받는 정보소통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인터넷 사업자들이 이용자 보호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등 사회적 책무를 다한다’고 밝혔다. 기존 정부 규제가 이용자에게 책임을 묻는 규제적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KISO는 ‘표현의 자유’에 무게를 두면서 책임이 균형을 이루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출범과 동시에 발표한 강령도 ‘표현의 자유 옹호(제1조)’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워 KISO가 추구하는 자율규제의 방향성을 명확히 했다.

조직은 먼저 KISO를 실질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이사회와, 회원사 요청에 의해 각 게시물 등을 심의 의결하는 정책위원회를 두고, 이를 지원하는 업무를 맡을 사무처를 뒀다.

KISO 정책의 핵심 제1,2호 정책결정

KISO는 출범 직후 각 회원사들의 게시물 처리기준이 되는 정책결정을 잇따라 의결했다. 특히 정책결정 제1호(2009.4.21.)와 제2호(2009.6.29.)는 KISO의 게시물•검색어 정책의 매우 중요한 근간이 됐다.

훗날 ‘신의 한 수’로 평가되고 있는 1, 2호는 2009년 4월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장○○ 리스트’에 올라 있는 유력 언론사 사주의 실명을 공개한 것에서 시작됐다. 해당 언론사는 자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회원사에 해당 글의 삭제•임시조치를 요구했고, KISO 정책위원회는 출범 후 첫 결정으로 2009년 4월 21일 ‘실명이 거론된 명예훼손성 게시물의 조치를 위한 정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인터넷상의 게시물로 인한 명예훼손을 주장하는 자는 삭제 또는 반박내용의 게재(이하 “삭제 등”이라 한다)를 요청할 때 명예훼손 사유와 해당 게시물의 URL을 적시해야 하고, 회원사는 이러한 요건이 충족되는 경우에 삭제·임시조치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리침해자가 직접 게시글의 구체적인 URL과 명예훼손 사유를 소명하도록 함으로써 무분별한 삭제 요청을 막았다.

정책위원회는 한 발 더 나아가 6월 29일 발표한 제2호 정책결정을 통해 구체적인 신고 요건과 예외 대상을 명확히 했다. 명예훼손을 주장하는 자는 당사자임을 밝히되,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는 명예훼손 관련 임시조치 요청의 주체가 아닌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다. 또 정무직 공무원 등의 공인인 경우에도 공적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명백히 허위사실이 아닌 한 명예훼손 관련 임시조치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했다.

이를 통해 공인 및 국가•지방자치단체 등과 관련된 게시물의 경우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가 보다 폭넓게 인정돼야 함을 제시했고, 반면 비공인, 일반인 등에 대해서는 개인의 권리보호와 명예훼손 피해구제를 우선시 했다. 이 결정은 이후 KISO가 외부 압력을 막아내고,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이 외에도 KISO는 선거기간에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다 우선시하는 결정(정책결정 9, 10, 11호), 국가적 법익 침해에 관한 사항에 대해 근거법을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소모적인 논의를 방지하고 규제 혼선을 예방하는 결정(정책결정 7, 8호), 공공선의 차원에서 생명존중의 인터넷문화 조성에 기여하기 위한 자살예방 관련 결정(정책결정 13호) 등의 정책을 결정했다. 2012년에는 정책결정의 범위를 이용자 게시물에서 넓혀 회원사가 제공하는 서비스 영역까지 확장해 연관검색어 및 자동완성검색어 관련 정책을 결정했다(정책결정 15, 16호) 2014년까지 KISO가 발표한 정책결정은 총 28건이다.

연도건수 정책결정 내용
20094제1호 실명이 거론된 명예훼손성 게시물의 조치를 위한 정책제2호 명예훼손성 게시물의 임시조치 등에 관한 추가적인 정책제3호 ‘명백한 허위사실’ 입증자료의 범위에 관한 정책제4호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구체적인 범위 설정에 대한 정책
20103제5호 정책결정 제2호의 ‘공적업무’에 대한 추가 정책제6호 허위사실 관련 게시물 처리절차에 관한 정책제7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시정요구한 게시물에 대한 처리 정책
20112제8호 국가적 법익 침해와 관련한 게시물의 처리절차제9호 선거기간중의 연관검색어 및 자동완성검색어 목록에 관한 정책
20127제10호 선거 관련 인터넷 정보서비스 기준에 관한 정책제11호 ‘선거 관련 인터넷 정보서비스 기준에 관한 정책’추가 결정제12호 임시조치 후 게시물 심의에 관한 정책제13호 자살예방에 관한 정책결정제14호 정책결정 2호 추가 결정 (처리의 제한 관련)제15호 연관검색어 및 자동완성검색어 관련 정책결정제16호 연관검색어 및 자동완성검색어 관련 추가결정
20135제17호 연관검색어 및 자동완성검색어 관련 추가결정 (유명인 및 일반인 관련)제18호 정책결정 2호 추가 결정 (모욕 관련)제19호 정책결정 15호 추가 결정 (사회적 갈등 조장 관련)제20호 정책결정 15호 추가 결정 (오타,욕설,비속어등관련)제21호 정책결정 15호 추가 결정 (검색어 및 검색결과 관련)
201457제22호 온라인 공간에서의 차별적 표현 완화를 위한 정책결정제23호 정책결정10호 추가결정 (선거 관련 인터넷 정보서비스 기준)제24호 연관 자동완성어 처리 절차 관련 결정제25호 임시조치 절차 관련 결정제26호 공인 모욕 관련 결정제27호 사망자의 계정 및 게시물 관련 결정제28호 임시조치 전 심의요청 관련 정책규정 개정
<표 1> KISO 정책결정 현황(2009~2014)

KISO는 위와 같은 정책결정을 체계화•조문화하기 위해 2014년 6월 KISO정책규정을 제정하고, 일반 이용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듬해인 2015년 10월 정책규정 해설서를 발간했다.

정책결정이 심의결정을 통해 꽃피우다

KISO는 이러한 정책결정을 토대로 2010년부터 개별 안건에 본격적인 심의에 착수했다. 초창기엔 정치인이나 정부•자치단체의 심의요청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제1,2호 정책결정을 통해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는 명예훼손의 주체가 아니고, 정무직 공무원 등 공인도 명백히 허위사실이 아닌 한 명예훼손 관련 임시조치 대상이 아닌 것으로 간주함에 따라 이들의 삭제•임시조치 요청은 대부분 ‘해당 없음’으로 결정이 났다. 유○○ 장관의 패러디 게시물 건(2010.3.4.), 송○○ 의원의 성접대 관련 게시글 심의의 건(2010.6.22.), 안○○ 의원 명예훼손 게시물 심의의 건(2010.7.13.), 서울대 패러디 동영상 게재중단의 건(2011.6.16.) 등이 대표적이다. 정무직 공무원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대학교수, 언론인, 공기업 사장 등도 공인으로 간주했다.

또한 종교단체의 모독단어 사용금지의 건(2011.8.9.), ㈜문화방송의 명예훼손 관련 심의의 건(2012.3.28.)처럼 대상이 특정되지 않은 집단에 대해서도 명예훼손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대부분 ‘해당 없음’ 결정을 내렸다.

2012년 7월 25일 연관검색어 및 자동완성검색어(이하 연관검색어)도 심의 대상에 포함하는 정책결정이 내려진 후에는 연관검색어에 대한 심의요청이 폭증했다.

특히 연관검색어와 관련한 삭제요청은 정무직 공무원뿐만 아니라 연예인, 작가, 가수, 의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쇄도했다. 그러나 연관검색어 역시 정무직 공무원에 대해서는 공적 업무와 관련이 없는 사생활 영역에서 발생했거나, 허위사실임이 명백히 소명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민의 알 권리를 더 중요시했다. 한○○ 의원이 삭제 요청한 자동완성/연관검색어 건(2013.3.26)이나 서울시장 관련 연관검색어 삭제요청의 건(2013.5.14.)이 대표적이다.

반면 공인의 가족이나 연예인, 기업인의 연관검색어 삭제요청은 대부분 당사자의 권리침해를 인정해 ‘삭제 혹은 기타 필요한 조치’ 결정을 내렸다.

자율규제 영역 확대

게시물 및 연관검색어에 대한 심의가 10여 년간 이뤄지면서 판례가 축적되자 자연스레 심의 건수도 줄었다. 회원사들이 KISO에 심의를 요청하는 대신 기존 판례를 참고해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늘어난 데다, 요청인 또한 투명하게 공개된 과거 판례를 보고 심의결과 예측이 용이해지면서 심의요청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대신 인터넷 환경이 다변화되면서 기존의 게시물•검색어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자율규제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맞춰 KISO도 자율규제 영역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청소년유해물이 인터넷상에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책위원회 산하에 온라인 청소년 보호체계 구축위원회(2014)를 설립했고,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에 따른 개인정보 관리 강화 및 네이버 인물정보 서비스 체계 정비 등을 위해 인물정보 검증 및 자문위원회(2013)도 가동했다.

또한 네이버부동산에 게재되는 매물에 대한 허위•과장광고를 걸러내기 위해 2012년 11월 부동산매물클린관리센터를 신설한 데 이어, 2014년 11월에는 매물의 존재 및 거래 가능여부를 사전에 확인함으로써 이용자들에게 신뢰도 높은 인터넷 부동산 매물을 제공하기 위해 부동산매물검증센터(2014.4)를 부설기구로 설립했다.

출범 10년을 맞아 2019년부터는 본격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기존 게시물•검색어 위주의 업무에서 AI 등 신기술 영역과 혐오표현 등 현안에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정책위원회 산하에 △이용자콘텐츠분과 △서비스운영분과 △온라인광고분과 △특별분과를 신설하고 다양한 소위원회를 구성, 운영했다.

외부 기관과 양해각서(MOU)를 통한 자율규제도 추진했다. 2012년 9월 서울시와 성매매, 음란물 근절을 위한 여성폭력 방지 업무협약을 맺고 불법 성매매와 음란 게시글 또는 이에 이용되는 메신저 ID를 처리할 핫라인을 구축한 이후 10년간 23만 3천여 건을 처리했다. 휴대폰 소액결제를 통한 이용자 대출사기 등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2012년 9월 전화결제산업협회와 MOU를 맺고 매년 1천여 건 안팎씩 총 1만7천여 건을 처리했다.

2021년 4월엔 인터넷 공간의 신뢰성을 높이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정보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코로나19 관련 허위조작정보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고 약 5천 건(2022년 10월 말 현재)의 게시물을 처리했다.

  1. 한국 실패 사례에서 배우는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전략, 2015. 11. 1., 송해룡, 김원제, 조항민, 김찬원, 박성철 [본문으로]
저자 : 이인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이사회 의장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저자 : 신익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