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카페와 정치
2009년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이후 정국에서 모?일간지 7월 15일자에 게재된 칼럼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얼마 전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이해찬 전 총리의 강연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봤다. 그는 요즘 인터넷에서 ‘대장부엉이’로 불리며 부쩍 인기를 끌고 있다. 왜 하필 부엉이일까. 노 전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뛰어내렸던 곳이 부엉이바위다. 현 대통령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조롱하듯 대통령을 부를 때 등장하는 동물의 천적이 부엉이이기도 하다. 그는 이 별명이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똑같은 이름이 붙은 인터넷 카페에 글도 썼고, 그를 ‘대장부엉이’로 떠받드는 모임에 나가 강연도 했다. 그를 서울 강남의 강연장으로 불러낸 사람들은 각각 패션, 성형수술, 화장품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모였다는 3개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다. 강연 참석자 500명 중 90% 이상이 말끔한 복장의 20·30대 여성들이었다… 기자는 한때 그의 사무실과 집을 찾아다니며 취재했던 탓에 그를 제법 잘 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 강연은 기자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불과 3~4년 전 이 나라의 총리를 지냈던 전 정권의 핵심 인사가 후임 정권의 지지층이 밀집한 강남 한복판에서 패션·화장품·성형수술 동호회 소속 회원들에게 ‘독재정권 종식(終熄)’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초현실주의 연극 한 편을 보는 듯했다.” (밑줄 필자 강조)
칼럼을 부분적으로 인용하였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하여, 칼럼의 목적이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라는 점을 짚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보기로 하자. 칼럼의 필자가 이야기한 ‘초현실주의 연극 한편’의 청중이 되었던 패션, 성형수술, 화장품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모였다는 3개 인터넷 카페의 회원들은 자신들을 삼국카페 소속이라고 당당하게 칭한다. 삼국카페 더 나아가 여성카페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여성카페와 정치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과연 한편의 ‘초현실주의 연극’인지 아니면 ‘바뀐 정치적 현실’을 보여주는 것인가?
이야기는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2008년 촛불은 2002년 미군궤도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과 2004년 탄핵 국면에서의 촛불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촛불소녀로 대표되는 10대 여학생들의 대규모 참여, ‘선영아 사랑해(My Cafe)’, ‘아고라(Agora)’, 육아, 미용, 성형 등을 주제로 모인 다양한 인터넷 카페 회원들의 시위 참여 등, 이때까지 보지 못하였던 집단들이 시위의 주체가 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밤이 깊어지면서 물리적인 충돌이 생기고 시위가 격화되면서는 전통적인 운동집단이 등장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밤 10시 이전의 시위 국면에서는 전통적인 운동단체들도 그리고 기존의 정당도 철저히 배척을 받는 현상이 생겨났다. 이들은 누구이고, 칼럼에서 인용한 ‘대장부엉이’초청강연회까지 이어지는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들은 단지 위장한 ‘노빠’들인가? 아니면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이들인가? 물론 이러한 질문에 대한 속시원한 답을 내릴 수 있는 능력도 없고 그럴 자격도 가지지 못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단초들은 풀어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가장 정치에 무관심하고 혐오를 가지고 있는 집단으로 흔히 연령을 기준으로 이야기할 때는 10대와 20대이고, 특히 여성은 전통적인 정치 현장에서 정치적 문제의식이 가장 약하고 과소대표되는 집단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집단이 길거리에 나오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삼국카페로 돌아가 보자. 2008년 촛불에서 일군의 젊은 여성들이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광화문의 동화면세점 앞에서 조용히 깃발(소울드레서)과 아래의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던 장면을 보면서 가졌던 의문, 즉 저들은 누구이고 왜 나왔을까?
“너… 배운여자인가”는 무슨 의미인가? 단순히 당시 유행하였던 영화 ‘타짜’에 나오는 “나 이대 나온 여자야”를 원용한 정도로 생각하였으나, 이것은 오산이었다. ‘배운여자’는 단순히 고학력이 아니라 배운 지식을 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활용하면서,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여성을 일컫는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여성 카페에서의 ‘배운 여자’들은 소울드레서(패션), 쌍코(성형), 화장발(화장품), 82쿡(요리), 육아 등 여성과 관련된 주제를 기치로 하여 자신들의 취미와 관심사를 중심으로 모였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나타나는 사회적/정치적 현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사회적/정치적 이슈가 거대담론을 통해 이루어지기 보다는 ‘생활 속의 정치’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카페에서 형성된 친밀감과 신뢰감에 기초하여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축적하였고, 이것이 ‘먹거리’는 특정 이슈와 맞물리면서 아무도 예견 못하였던 폭발적인 참여로 이어진 것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여성들만이 가입할 수 있는 카페 1, 2, 3위인 ‘화장~발(회원 약 35만)’ , ‘쌍코(회원 약 20만)’ , ‘소울드레서(회원 약 12만, 여기는 남성회원도 가입 가능)’는 2008년을 기점으로 ‘삼국’이라는 명분 아래 뭉치기 시작했다. 본 원고의 서두에 언급하였던 이해찬 전총리 팬클럽인 ‘찬 전총리(회원 약 20만)’도 삼국 카페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한다. 세 카페는 삼국으로 묶여 있기도 하지만, 각 카페마다 다른 분명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쌍코’ 카페는 고구려(주도적)의 기상을 이어받았다 하여 ‘쌍구려’로 ‘화장발’ 카페는 백제(조용하고 할 때는 분명함)의 기상을 이어받아 ‘장백’으로 ‘소울드레서’ 카페는 신라(화려하지만 냉철함)의 기상을 이어받아 ‘소라’라고 불린다. 또한 각각의 카페는 특징적인 언어체를 사용하는데, 화장발은‘~긔’체를, 소울드레서는‘~닭’체를 쓰며, 쌍코는 ‘~하오’체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이들의 특징은 ‘삼국’ 깃발에서 사용되었던 이미지(아래 그림)에서 잘 살펴 볼 수 있다.
2008년 삼국은 소울드레서(이하 소드)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경향과 한겨레에 미국산 쇠고기 광고를 내면서부터 장발과 쌍코와의 심리적인 연대가 시작되었고, 소드가 장발과 쌍코에 주요 언론사 하나씩 맡아서 1대1 전담하자는 내용의 도전장을 내고 두 카페가 이를 수락하면서 본격적인 삼국연합이 탄생하게 된다. 이후 삼국은 다양한 방식의 시위 참여와 플래시 몹 등을 통하여 정치를 무겁고 장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발랄한 풍자와 패러디를 기본으로 하여 소프트하고 ‘시크’하고 ‘엣지’있는 방식의 여성 특유의 감성들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또한 바자회와 같은 사회동원 활동, 일상적인 게시판에서 회원들과의 질의응답을 통한 정치적 재교육 효과, 해외 여성회원들의 영문 지식과 저널 번역을 통한 정치정보 제공과 같은 준 대안미디어 효과 등의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2008년 촛불 정국 이후, 노무현 전대통령 추모집회, 사진집 제작, 추모광고 모금 바자회,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리플북 전달, 언론노조 바자회 삼국 부스 등의 다양한 정치활동을 전개한다. 이들의 정치 행태는 분명 그 전 세대와는 엄청나게 다르고, 무겁지 않고 그러면서도 메시지는 분명하다.
2005년 인구통계로 추산하여 보았을 때 2010년 한국의 20-35세 사이의 여성은 대략 500만 명 가량이다. 삼국카페의 회원이 대부분 이 연령대에 속한다고 보았을 때, 총 누적 회원 수는 67만 명 가량이고 중복회원을 감안하더라도 50만 명은 충분히 될 것으로 추산된다. 대략 연령대의 1/10이 삼국카페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모든 회원들이 정치적 ‘활동가’도 아닐 것이고, 온라인/오프라인을 통해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회원들이 제한적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대표성이 얼마나 되는지는 판단하기 힘들다. 또한 이들의 원래 정치적 성향이 그러하였기 때문에 2008년 이후의 정치적 활동이 가능하였다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보다 면밀한 관찰과 연구를 통하여 판단할 문제일 것이지만, 중요한 점은 분명 이들이 ‘정치를 인식하고 실행하는 방식’은 과거의 그것과는 매우 달라 보인다는 것이다. 다양한 현장관찰과 대화를 통하여 가지게 된 느낌은, 이들이 특정 정치세력의 프로그램에 동조하여 정치 현장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양한 정치적 관점을 가진 다양한 직종과 전문가 집단이 여성 커뮤니티를 통하여 등장하고 있다는 점과 이들이 한국 사회에 새로운 어젠다를 던지고 이를 새로운 정치적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패션, 화장, 성형, 육아, 요리 등 일상적인 주제를 매개로 새롭게 형성되는 정치집단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언제든지 새로운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여성이기 때문도 하겠지만, 새로운 집단에 의한 새로운 방식의 정치에 주목을 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