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라는 정류장을 떠나 미지의 미래로 향하는 인류 : 호모데우스
2017년 출간된 <호모 데우스>는 유발 하라리가 2015년 펴내 전세계에서 600만권 넘게 팔려나간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후속편이다. 전작의 명성과 관심 속에 출간된 <호모 데우스>는 첫해에만 300만권 넘게 팔려나갔다. 두 권의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이스라엘에서 중세 전쟁학을 가르치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단번에 전세계 지식계의 스타로 부상했다. <사피엔스>는 육체적으로 강하지 않은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 다양한 인간종들이 펼친 생존경쟁에서 승리한 유일한 인간종이 되어 지구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 까닭을 지난 수십만년간의 역사를 배경으로 서술했다. 7만년의 역사를 지닌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최고 지배자가 된 결정적 계기를 하라리는 세 번의 혁명 덕분이라고 말한다. 초기 인류 시절 언어의 발달을 통한 인지혁명, 유목생활을 벗어나 정착생활과 부와 자원의 축적을 가능하게 한 신석기 시대의 농업혁명, 무지의 발견을 통해 과학적 방법을 발견해낸 근대의 과학혁명이다. 하라리는 <사피엔스> 과학혁명 부분에서 과학이 인공지능의 세계로 진입한 현재의 풍경과 미래를 조망했다. 하지만 과거 인류 역사와 생존에 하라리의 통찰에 비하면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미래에 대한 서술은 미진했고 치밀하지 못했다. <호모 데우스>는 전작 <사피엔스>를 읽으며 품게 된 궁금증 “그렇다면 지구 생태계 최고의 승자가 된 인류에게는 어떠한 미래가 예고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하는 내용이다. <사피엔스>의 부제는 ‘인류의 짧은 역사(A brief history of Humankind)’이고, <호모 데우스>의 부제는 ‘미래의 간략한 역사(Homo deus : A brief history of Tommorow)’이다. 유인원에서 출발한 다양한 인간종의 하나였던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를 거듭해, 마침내 스스로를 ‘신적인 인간(호모 데우스)’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인류의 역사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신과 같은 전지전능의 힘과 불사의 존재가 되고자 꿈꾸는 인류는 생명공학과 데이터 과학을 도구로 사용한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인 인간이 전능과 불사를 꿈꾸는 것은 무모하고 황당해 보이지만, 과학과 산업의 발달은 이러한 인간 욕망을 지원한다. 생명공학 기업들은 물론 특이점을 주장하며 획기적인 자연수명 연장을 꿈꾸는 레이 커즈와일은 그러한 욕망의 구현에 뛰어들었다. 하라리는 이것이 인류가 오랜 기간 추구해온 욕망의 종착점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원시시대의 수렵채취 생활로부터 정착해 농경과 문명생활로 접어들고 이성과 과학을 도구로 자연계를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은 인류의 무한한 욕망 덕분이다. 인류의 탁월한 생존력과 문명의 원동력이 된 무한한 욕망은 만족을 모른다. 더 큰 힘과 더 뛰어나고 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추구를 넘어 고통과 죽음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다.
미래학자도 아니고 데이터와 인공지능 전문가도 아닌 역사학자가 누구보다 도발적인 미래상을 내놓은 데 대해 전세계 비평계와 출판시장은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4차산업혁명,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등 핵심기술을 변화의 요소로 설명하며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 기존 서적들과 구별되는 점이 유발 하라리의 책에는 있다. 미래의 기술변화와 전망을 다룬 많은 책과 주장은 대체로 무엇이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 상황을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정보와 주장이다.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가 이러한 기존의 서적들과 구별되는 지점은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가 아니라, ‘인간은 왜 그러한 추구를 할 수밖에 없는가’를 설득력있게 설명해낸다는 점이다. 하라리가 말하는 미래 역시 생명공학의 발달과 데이터과학의 발달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모습이 병존하는 세상이다. 그가 예시하고 있는 현재의 기술발달 수준과 그에 기반한 미래상이 독특한 게 아니다.
하라리의 독특함이자 그의 책이 잇따라 베스트셀러가 된 비결은 그가 주제를 다루는 방법이다. 그 역시 현재의 기술 발달과 이로 인한 미래의 모습을 조망하지만, 그는 왜 그러한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인가를 인간의 오랜 역사와 그를 추동한 인간의 깊은 욕망을 근거로 흥미롭게 서술한다. 기술과 변화에 빠져서 전문적으로 다루기보다는 한발 떨어진 관찰자, 성찰자의 관점을 갖는다. 그가 역사학자이기 때문이다. 역사학은 제한된 사료와 흔적으로 과거를 탐구하고 그 시기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상상하고 해석하는 작업이다.
지난해에 이어 2017년 두 번째 방한한 유발 하라리는 만화가 윤태호씨와 방송(tvN)에서 대담을 진행했다. 웹툰을 창작하는 윤태호씨는 스마트폰과 디지털 기기를 창작을 위한 필수적 도구로 활용한다며 소재 발굴이나 독자 반응 확인에 유용하다는 점을 말했다. 하라리는 자신은 휴대전화가 아예 없고, 날마다 2시간씩 명상을 한다고 역설했다. 윤태호씨가 현대 기술문명에 대한 이해없이 어떻게 미래를 이야기하는지 궁금해하자 하라리는 “코끼리를 이해하기 위해 코끼리가 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는 1년에 한 차례 인도로 가서 60일간 미디어와 단절하고 세상과 연결되지 않은 명상의 기간을 갖는다. 디지털 도구와 기술을 직접 사용하지 않는 역사학 전공자가 데이터가 지배할 미래에 대해 통찰력 있고 독창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비결이었다.
하라리의 작업은 인류 역사를 긴 관점에서 관찰하고 설명하려는 빅 히스토리로 불린다. 숨가쁜 속도로 질주하는 현기증 나는 현재 기술 변화의 모습과 미래를 좀더 제대로 관찰하는 방법은 하라리처럼 한발 물러서 현실을 성찰하는 것이다. 디지털 도구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그가 디지털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모습과 의미를 설득력있게 설명하는 것 역시 현실에 발을 담그는 대신 메타적 성찰과 이해를 통해서 더 높은 통찰에 이를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는 인류가 지금까지 이룩해온 빈곤과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성취를 넘어 불멸, 행복, 신성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본다. 질병, 노화, 죽음 자체를 극복하는 것이 미래 인류의 새로운 목표가 된다. 인류가 ‘호모 데우스’가 되려는 추구를 멈출 수 없는 배경으로 그는 4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지식과 시스템이 점점 전문화되고 방대해짐에 따라, 누구도 모든 점이 연결된 전체그림을 볼 수 없으며 따라서 인류 욕망의 질주에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다. 둘째, 지속 성장을 추구하는 경제와 사회는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무너지기 때문에 경제와 산업은 무한질주로 치닫는다. 셋째, 인간 발전과정은 다른 복잡계와 달리 인간의 예측과 개입으로 달라지기 때문에 결국 통제할 수 없다. 넷째, 역사지식의 역설로, 역사와 미래에 대해 인간 인식이 깊어질수록 역사는 경로를 바꾸게 되고 인간의 지식은 빠르게 낡아버린다.
인류는 고통과 질병을 피하고자 생명체의 본능적 욕구를 이성과 과학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활용해 상당 부분 성취했고 지속 발달시키고 있다. 생명체의 본능에서 출발했지만 인류는 이 욕망을 전능과 불멸이라는 목표로 드높이고 무한질주에 들어섰다. 이는 현실에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더 나은 상태’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확인된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도입된 다양한 의료 시술은 나아가 자연인의 능력 이상의 힘과 수명, 감정 체계를 갖춘 ‘트랜스 휴먼’의 등장으로 논쟁을 불러오고 있다. 무릎 아래가 없는 선천적 장애를 안고 태어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육상선수 피스토리우스는 탄소섬유 의족을 장착하고 비장애인 선수들과 경쟁해 승리했다. 의족 장착으로 자연인보다 뛰어난 달리기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비난 속에 그는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육백만불의 사나이와 같은 시도를 막을 수 없는 미래다. 인간의 장애 치료와 인간능력 개량시도를 구분하는 명확한 선은 없다. 어디까지가 치료이고, 어디부터 업그레이드인지 모호하다. 21세기 의학의 목표는 질병 치료에서 건강한 사람의 성능을 높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부자의 지갑을 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치료의 명분으로 트랜스휴먼 수술이 도입되지만 이내 권력층과 부유층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자리잡는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슈퍼 인공지능이 가져올 디스토피아를 대처하기 위해 인간 두뇌에 인공지능 칩(브레인 임플란트)을 삽입해 스스로 사이보그가 되어 인공지능을 극복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실제로 머스크는 브레인 임플란트 개발업체인 뉴럴 링크를 인수해 자신의 주장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하라리도 인공지능에 밀려날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생물학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컴퓨터와의 결합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라리는 생명공학과 정보기술 과학의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트랜스휴먼은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 데우스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라리는 21세기 진보의 열차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정거장을 떠나 미지의 미래로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21세기의 주력 상품은 인간의 몸, 뇌, 마음이 될 것”이라고 본다.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의 탁월한 특징으로 허구의 개념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그 허구의 개념으로 인해 거대한 집단은 효율적으로 소통하고 하나처럼 움직일 수 있게 되어 다른 유인원들은 불가능한 목표를 성취하게 되었다. 그 허구적 개념은 돈, 사회, 신, 국가, 윤리와 같은 것들로 수백만, 수천만명이 동일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탁월한 도구임이 입증되었다.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키고자 하는 인류의 새로운 종교는 데이터교가 될 것이라고 그는 본다. 데이터교는 우리가 최고의 효율성과 설명력, 미래 예측능력으로 간주하고 있는 데이터와 알고리즘 기반 세계관을 의미한다. 하라리는 18세기에 신 중심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이동한 것처럼 21세기 데이터교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다시 데이터중심 세계관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데이터 중심 세계관은 인간을 기존의 자리에서 밀어낼 것인데, 동인은 실용성이다. 데이터교가 강력해지면서 처음에는 휴머니즘의 가치인 건강, 행복, 힘의 추구가 가속화되지만 효율성 논리에 따라 결국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고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사물인터넷을 넘어 만물인터넷이 되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세상은 인간의 이해와 처리 능력을 초월한다. 인류는 복잡하고 거대하고 효율적인 알고리즘을 만들어 세상을 극도로 효율화시켰지만, 각 구성원은 거대한 알고리즘의 전체적 모습과 기능을 이해할 수 없다. 거대한 퍼즐의 한 조각을 끌어안고 씨름할 따름이다. 알고리즘과 데이터로 움직이는 세상의 실질적 통제권이 인간으로부터 넘어가 알고리즘의 몫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라리는 인류의 욕망이 갖는 역설적 측면을 조명한다. 인간은 화폐, 국가, 정치, 종교, 미래와 같은 가상의 개념과 이를 기반한 무한한 욕망을 제시할 줄 하는 허구 창조의 능력을 통해 번영을 이뤘지만 결국 스스로 만들어낸 개념의 강력한 힘에 빠져버려 그 부속품이 된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과학성과 효율성을 신봉하고 그것을 새로운 종교처럼 추구하는 인간이 결국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가장 사랑하고 의존하는 것 때문에 고통받고 지배받는다. 데이터교의 신도가 된 모든 21세기인은 동시에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으며 스스로의 주체적 결정능력과 통제권을 잃어버리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는 게 하라리의 통찰이다. 하지만 디스토피아의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이제껏 그러해왔든 자신에게 예고된 미래와 운명을 인지하면 또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면을 함께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