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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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루머 – 인터넷시대에 던지는 신 문명비판
원   제: On Rumors
저   자: 캐스 R. 선스타인
역   자:  이기동 역/윤평중 해제
출판사: 프리뷰
출간일: 2009년 12월 07일

2
제   목: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원   제: Going to Extremes
저   자: 캐스 R. 선스타인
역   자:  이정인 역
출판사: 프리뷰
출간일: 2011년 10월 04일

“루머” (원제: On Rumors, 2009)와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원제: Going to extremes, 2009), 단숨에 읽어 내려간 두 권의 책이었다. 선스타인 교수는 “루머”와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라는 두 권의 책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특정 이슈에 대해 정보를 교류하며 정보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키고 극단적 행동으로 나아가게 되는 프로세스를 다양한 실험결과와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설명하고 있다.

먼저 “루머”는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는 이유와 왜 우리는 그것을 믿게 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양한 실험 결과들을 보여준다.

루머는 이렇게 전파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든,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일하든, 아니면 누군가에게 해를 가할 목적이든, 선의에서 출발하였든 루머꾼들이 인터넷 공간의 카페, 블로그, SNS를 통해 회사에 대해, 다른 사람에 대해, 정부에 대해, 외국의 누군가, 무언가에 대해 그럴 법한 스토리를 작성하여 포스팅 해두고, 이를 본 사람들이 시간이 길든 짧든, 전파하게 되며, 동조하고 확산된다.

루머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폭포효과와 집단극단화 현상을 동반한다. 사회적 폭포현상은 정보의 폭포현상과 동조화 폭포현상으로 구성된다. 정보의 폭포현상은 앞선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따라서 하는 것을, 동조화 폭포현상은 자기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루머를 믿으면 자기도 그 루머를 믿는 경향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즉 우리가 판단을 내릴 때 타인의 생각과 행동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로 보이고 싶은 욕망인 평판 압력도 작용하여 루머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회피하도록 만든다.

집단 극단화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정보를 교류하다보면 보다 극단적인 견해를 갖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정보교환을 통해 구성원은 집단 동질성이 강화되며 다양성은 저하되고, 혼자였을 때에는 감히 하지 않을 일들도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된다. 이후에 설명할 테러리즘이나 극단주의에도 이 집단 극단화가 중요 개념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집단 극단화란 극단주의와는 다른 개념이다. 집단 극단화라는 것은 분리된 집단들 예컨대, 진보나 보수, 중도처럼 집단이 그룹핑 되는 것을 의미하며 극단주의는 양쪽의 극단이나 급진주의를 의미한다.

기존의 신념이 얼마나 강한지 여부는 루머를 수용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루머에 대한 반대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루머를 수용하는데 까지의 심리적 수용문턱이 높다. 반대로 수용문턱이 낮은 사람은 루머를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을 띄게 된다. 또한 루머에 대해 사람들은 인지부조화를 피하기 위해, 즉 자신이 믿고 있고 알고 있던 것과 배치되는 사실을 최소화 하려 한다. 그리고 루머에 대한 감정상태, 주로 역겨움, 분노 등의 감정이 강할수록 루머는 잘 전파된다.

폭포 현상과 집단극단화가 동반된 거짓루머가 유포되는 경우 바로잡기란 매우 힘들다. 사람들은 인지부조화를 피하려고 오히려 거짓루머를 정당화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선스타인 교수는 위와 같이 루머의 발생원인과 전파 과정, 사람들의 신념과 심리상태, 감정 등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게, 다양한 실험결과를 소개하며 설명한다.

그는 오늘 날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활성화된 인터넷 사회를 감시사회라는 부정적 뉘앙스로 규정한다. 그러나 누군가에 대한 안 좋은 루머가 퍼졌을 경우, 전파성이 크기 때문에 위험성이 매우 높아질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전파 속도와 마찬가지로 이를 교정하는 데에도 신속할 수 있다는 입장 즉, 인터넷이 보편화된 현실에 대해서는 비관론과 낙관론이 모두 가능하며 이에 대해 비관이나 낙관보다는 적합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데 초점을 둔다.

그리고 나서 선스타인 교수는 지금의 시대상황을 고려하며 루머에 대한 대안을 다음과 같이 모색하고 있다.

1. 거짓 루머를 바로 잡으려면 루머를 믿는 사람들이 보기에 특별히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 그러한 메시지를 전달해야만 한다.

2. 위축효과의 위험성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해로운 루머에 대해 가해지는 적정 수준의 위축 효과는 엄청나게 중요하다.

루머의 원인과 과정에 대한 혜안에 비해 대안은 조금 아쉬운 면이 있다. 법의 역할과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 못지 않게 해로운 루머에 대한 적정 수준의 위축 효과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미국법과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하였는데, 표현의 자유를 해하지 않는 적정 수준의 위축효과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일독을 권할만하다. 현실에서 중요하게 발생하는 악성 루머에 대해 모두가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누구도 원인에 대해 이렇게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심도있게 분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루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루머 이외의 분야에도 강한 설명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루머에서 정보가 퍼져나가는 과정은 조직과 집단, 국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선스타인 교수는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에서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에서는 “루머”에서 밝힌 정보의 확산 과정의 개념을 바탕으로 집단적인 행동, 급진주의, 테러리즘 등 집단적인 차원의 극단적 행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집단 극단화의 과정은 루머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 정보를 교류하며 자신들만의 네트워크에 둘러싸여 자신들만의 정보가 모든 것인 듯 편향적으로 정보를 습득하고, 극단적인 생각과 행동을 실천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집단에서 논의를 하다보면 보다 극단적인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동의를 얻기 쉽다는 수사적 이점을 갖기 때문에 보다 집단토의를 하다보면 결과는 더욱 극단적으로 치닫게 된다.

이러한 집단에 남아 있기 싫은 사람들은 집단을 떠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 집단은 더욱 극단적인 사람들로 구성되며, 내부 동질성은 강화되고, 다양성은 약화된다.

선스타인 교수는 집단 극단화에서 권위있는 사람의 역할에 대해, “집단 극단화는 다른 사람이 주는 정보나 지위와 관련된 신호 때문에 일어난다. 권위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시키는 경우에는 정보나 지위가 주는 신호가 아주 크다.”고 밝히며 권위의 함정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집단 극단화에 대한 탈극단화 방안으로 집단 구성원의 입장이 매우 균등히 나뉘어져 있는 상태에서 서로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때 나타난다고 보았다.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균등히 분포된 상황에서 서로의 입장에 대해 배척하지 않는 상황이 극단화를 피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집단 극단화에 대한 최종적인 처방에 대해서 에드먼드 버크의 전통주의, 제레미 벤담의 결과주의, 제임스 메디슨의 견제와 균형 등 세 가지를 제시하며 이 가운데 다양성이 보장된 견제와 균형이 제일 생산적인 개념으로 보고 있다.

버크의 전통주의란 자신의 한계를 제대로 아는 합리적인 사람은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상당 부분을 전통에 위임한다는 것이다. 전통주의가 극단주의를 약화시키는 측면이 있지만 전통주의 자체가 사람들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끈 경우도 많아 선스타인 교수는 이를 생산적인 처방 가운데 한 가지 대안으로만 언급하고 있다. 벤담의 결과주의란 결과에 대한 분석을 통해 사회적 논란을 줄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사실에 충실토록 함으로써 집단극단화와 관련된 위험을 줄일수 있다는 것이다. 선스타인 교수는 결과 분석을 통해 얻는 바람직한 이점을 의견 충돌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점을 들고 있다.

제임스 메디슨의 견제와 균형이란 표현의 자유를 바탕으로 하여 다양한 사회세력이 서로 견제를 통해 극단적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선스타인 교수는 이를 가장 바람직한 극단주의의 처방으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양원제나, 전쟁선포권의 의회 위임, 연방제도를 통한 국가 내 다양성의 증진 등을 그 예로 들고 있다.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의 결론은 이렇다. 이슬람 테러리즘, 르완다의 인종청소, 민족분쟁, 미국의 피그만 침공 등 다양한 국제정치적 사건이 집단사고를 통해 극단적 입장으로 치닫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고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지 않아 발생하였다. 이에 대한 처방은 다양성의 증진 및 이를 위한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 이해,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한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작동하게 하는 것이다.

다양성, 표현의 자유, 견제와 균형에 대한 좋은 비교 사례로는 부시 대통령과 링컨 대통령을 들 고 있다.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공은 부시 대통령의 행정부 운영 스타일, 즉 부시 대통령에 대한 반대는 충성심의 부족이라는 획일화된 리더십 때문이었다. 반면 링컨 대통령의 경우 행정부와 참모진이 건전한 라이벌로 구성된 팀이었으며 링컨 대통령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주로 청취하였으며, 이들을 참모로 기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의 차이에 대해 역사는 두 대통령을 동일하게 평가하고 있지 않다.

선스타인 교수의 “루머”와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라는 두 권의 책은 인터넷이 보편화된 모든 국가와 사회에 시사점을 준다. 거짓 루머의 발생원인과 확산과정, 루머의 확산에 따른 극단적인 견해를 가진 집단의 형성, 그에 대한 바람직한 처방 등에 대한 설명을 통해 선스타인 교수는 아직은 질서가 잡히지 않은 인터넷 시대에 하나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의견이 나뉘어 대립하는 곳에서는 균형 잡힌 시각의 권위자의 중재가 필요하다든가, 적어도 허위임이 명백한 루머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위축효과가 필요하다든가, 극단주의의 발현에 대한 처방으로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 가운데 하나인 2차 다양성(집단 간 다양성), 그리고 다양한 집단 간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는 점 등 현재 전 세계적으로 질서 정립의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많은 국가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큰 틀의 기준이 바로 그것이다.

대가의 역작에 대해 토를 다는 것이, 아직 온전히 졸고를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섣부른 지적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아쉬운 점을 들자면, 현상의 발생원인과 진행과정의 탁월한 설명에 비해 처방 부분에 아쉬움이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국가와 사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역사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인터넷 시대에 획일화되고 자세한 기준 제시가 어려웠을 것임을 감안하면 두 권의 책은 현상 분석에 대한 탁월한 결과물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 : 유정석

(전)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정책운영실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