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화된 시민의 목소리, 브라질 인터넷 권리법(Marco Civil da Internet)

“인류는 혁명적인 시기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힘이 없습니다. 정보를 소유한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쿠데타를 일으킬 수 없지요. 정보는 더 이상 선별적이거나 사유화된 것이 아닙니다…(중략)… 아제르두 법1 은 인터넷 남용(abuse)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검열을 강요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책임이 필요하지만 금지나 처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2  2009년 6월 제10회 국제 자유 소프트웨어 포럼(free software forum)에 참석한 당시 브라질 대통령 룰라는 이 연설을 통해 브라질 인터넷 권리법의 시작을 알렸다.

2008년 아제르두 브라질 의원은 사이버범죄를 형사처벌할 것을 제안하는 법을 제안하였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과 비난이 극에 달했다.3  2008년 무렵 사이버모욕죄 발의 등에 우리 시민사회의 비판이 고조되었던 것처럼.

브라질 법무부는 아제르두 법안에 대하여 큰 반대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이 법안을 국제사회에서 리더쉽을 활용하는데 활용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브라질 시민사회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4 2008년 6월 브라질 대학교수, 정보운동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이 법을 반대하는 온라인 청원서를 작성했고, 그 해 이 온라인 청원서는 17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제출되었다.

자유는 지식 창조의 바탕이며, 이는 인터넷의 발전과 생존의 기반입니다. … 아제르두법은 모든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그들의 이용자들을 잠재적 이용자로 규정하고 이들을 감시할 것을 요구합니다. 아제르두 법은 의심과 불안, 그리고 망중립성의 실패를 의미합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수많은 인터넷 이용자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전락할 것입니다.

아제르두 의원법안 반대 온라인 청원서 내용의 일부5

2009년 4월 시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노동당과 다양한 노동조합, 자유 소프트웨어 연합체들도 함께 시민사회 그룹 “히우 그란지 두 술(Rio Grande do Sul)”을 조직해 브라질 정부에 직접 아제르두가 제안한 법을 중단하라는 서한을 보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룰라는 이 서한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아 직접 시민사회 대표들과 함께 사이버 범죄 이슈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2009년 룰라가 자유 소프트웨어 포럼에서 앞의 연설을 한 이후, 브라질 법무부는 형사처벌이 아닌 시민들의 권리에 대한 법적 체계를 제안하기 위한 업무에 착수했다. 리오데자네이루의 로스쿨(CTS-FGV6 )은 브라질 법무부와 함께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법안의 내용 구성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브라질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2009년 10월 29일부터 약 2년간 온․오프를 통하여 법안을 토론할 수 있었다.7 최초의 안은 2007년 레무스 교수가 제안한 이용자 권리를 법제화할 것을 요구한 내용을 토대로 한 법무부안이었다. 그 초안은 이후 누구든지 포털(www.culturadigital.br)에 로그인하여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을 하는 방법을 통해 발전되어 갔다. 블로그, 트위터 등의 여러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들도 함께 이용되었으며, 물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찬반 투표를 할 수도 있었다. 또한 최초의 논의과정에서 브라질 법무부는 사회의 이해관계자들을 대표하는, 시민들, 회사들 그리고 정부, 이렇게 3가지로 구분해서 초안을 제시함으로써 멀티스테이크 홀더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브라질 인터넷 권리법의 제정과정은 약 1100개 코멘트를 포함하여 총 2400여개의 의견제시가 이루어졌을 만큼 성공적인 상향식 의사형성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8

이러한 협의절차는 2010년 5월까지도 계속되었고, 브라질 법무부 장관은 토론과 코멘트들을 취합하여 최종 법안 초안을 만들었고, 2011년 8월 24일 브라질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는 이 법을 브라질 의회에 제출했다.

한편, 법안이 의회에 간 뒤 새로운 사건이 발생해 브라질 인터넷 권리법의 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있었다. 2012년 유명 여자 연예인의 누드 사진이 온라인에 떠돌면서 온라인상의 범죄에 대하여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드높아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년간 브라질 시민사회가 반대해 왔던 아제르두 법 등 몇 개의 인터넷 규제법이 한꺼번에 브라질 의회를 통과했다. 브라질 인터넷 권리법은 이 과정에서 통과되지 못했고,9 쉽사리 통과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2013년 스노든은 브라질이 미국의 주요 도감청의 타겟이라는 사실을 포함하여 NSA의 전 세계 시민을 상대로 한 반인권적인 도청행위를 폭로했다. 그리고 브라질 내에서 브라질 인터넷 권리법은 NSA 사태에 대한 해결방법으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그 해 지우마 호세프는 제68차 유엔총회에서 미국의 대량 감청에 대한 비난과 동시에 인터넷 거번너스와 인터넷 이용을 위한 민간차원의 다자간 협력틀을 창설할 것을 제안하면서 브라질 인터넷 권리법안에 규정되어 있던 중요 원칙들을 보장할 것을 명시적으로 제안했다.10 이제 브라질 인터넷 권리법은 브라질 의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통과될 것이 예상되고 있었다.

지우마 대통령의 위 유엔연설은 인터넷 거번너스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여러 이해관계자들에게 큰 반향을 주었다. 그래서 올 4월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800여명의 이해당사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미래의 인터넷 거버넌스를 논의하는 회의가 열렸다. 일명 넷 문디알 회의.11 브라질은 인터넷 권리법을 만들던 경험을 이 회의에서 부족함이 없이 다시 재현했다. 회의 시작전 180여개의 사전 의견과 1370여개의 온라인 코멘트 등을 바탕으로, 상향식 의사형성과정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상파울로 멀티스테이크 홀더 선언문을 채택한 것이다.12

또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약 800여명의 인터넷 이해당사자들이 모인 이 회의의 식전 행사에서 브라질 상원을 막 통과한 이용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멀티스테이크 홀더 모델을 구현한 인터넷 권리법에 서명을 했다. 브라질 시민들이 2008년부터 아제르두 법안을 반대하며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투쟁하고 노력해 온 것을 안 전 세계 시민사회는 브라질 인터넷 권리법에 대하여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13 이런 이유로 넷 문디알 회의는 브라질 국내외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는 회의였다.

하지만 이 법을 구체적으로 찾아보면 마냥 박수를 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제3조 인터넷 권리 원칙 규정1. 표현의 자유 2. 프라이버시 보호 3. 개인정보 보호 4. 망중립성 보호 및 보장 5. 네트워크의 보안, 안정성과 기능의 보장 6. (생략) 7. 인터넷의 참여적 성격의 보장 8. 비즈니스 모델의 자유제7조 인터넷에 대한 접속은 시민권의 행사를 위하여 필수적인 것임을 규정하고 각종 프라이버시 권리 보장 규정

제8조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것은 인터넷 접속권의 확실한 보장의 전제임을 규정

제9조 망중립성을 규정하면서, 트래픽 관리 등의 예외에 대하여는 멀티스테이크 홀더 구조체인 Internet Steering Committee(CGI.BR14 ) 등의 자문을 받아 대통령이 결정하도록 규정

제11조 브라질의 영토 내에서 개인정보나 커뮤니케이션 데이터의 수집, 보관, 처리 등의 활동 중 어느 하나라도 이루어지는 경우, 특히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보호 등에 대하여는 브라질법의 적용

제13조, 제15조 수사목적 데이터 보관기간 조항

제18, 19, 20조 제3자가 생산한 내용에 대한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의 원칙적 면책규정 등(예외적으로 법원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책임)

제21조 나체 또는 성적 활동이 포함된 사적 비디오나 이미지 등과 관련된 제3자가 생산한 내용에 대하여는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의 책임규정

제24조 정부, 사업가, 시민사회 그리고 학자들이 참여하는, 멀티 스테이크홀더적, 투명하고, 협조적이고 민주적인 거버넌스 구조체의 확립에 대한 가이드라인 규정

마르코 시빌 법의 중요 내용 

법 제13조, 법 제15조의 데이터 보관기간 등의 규정들처럼 그 내용도 모두 다 인터넷 권리와 자유에 부합한다고 보기도 어려운 요소들이 있었다.15 하지만 세부적인 논란을 떠나서 인터넷 이용자의 입장에서 중요한 개인들의 인권을 법률로서 보장하고, 인터넷 정책형성을 멀티스테이크홀더 모델로 구현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이 인터넷 권리법의 의미를 평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법은 그 제정과정 자체의 상향식 의사형성과정의 구축을 실현하였다는 점에서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법 제9조, 법 제24조에서 드러나듯 브라질 인터넷 권리법은 인터넷 정책결정과정에서 멀티스테이크홀더 구조체를 통해, 투명하고, 협조적이면서, 민주적인 상향식 의사결정과정을 존중할 것을 법으로 규정하였다.

이제 다시 우리의 법체계로 돌아와 보자. 브라질 인터넷 권리법상의 의미있는 조항들, 원칙조항들, 망중립성 보장조항, ISP 면책조항들을 우리 법상에 도입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최우선적으로 가장 먼저 제도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인터넷의 이해당사자들이 상향식으로 의사를 형성해 나가되, 그 과정이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경험을 쌓는 것이 아닐까. 우리 시민사회의 연대가 그동안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인권보장을 위해 형성해 온 경험적 논리들은 이제는 여러 제도들로 꽃피울 시기가 온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에게 브라질 인터넷 권리법에서 가장 의미있는 조항들 중의 하나는 바로 제24조라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도 우리도 브라질처럼 시민사회의 움직임들이 이제는 씨앗을 뿌려서 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 우리 정부도 브라질에서 열린 상파울로 넷문디알 회의에서 우리 나라에서 투명하고 누구에게나 열린 상향적 의사형성과정의 멀티스테이크홀더 모델구현에 대하여 동의하며 이를 지지함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4일 시작할 한국의 인터넷 거번넌스 포럼의 시작은 이러한 논의를 시작할 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http://igf.or.kr/) 한국의 인터넷이 하향식 정책결정과정에 따른 규제가 아닌, 시민의 인권보장을 위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협의로 거버넌스를 구현할, 그리고 전세계적 논의에 비추어보아도 합리적인 거버넌스 구조체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일 말이다.

  1. 브라질의 아제르두(Azerdo) 의원이 발의한 사이버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등을 규정한 법안 [본문으로]
  2. https://www.eff.org/issues/cybercrime/president-brazil-2009 [본문으로]
  3. Juliana Nolasco Ferreira, 「Building the Marco Civil: A Brief Review of Brazil’s Internet Regulation History」, 「Stakes are High :Essays on Brazil and the Future of the Global Internet」.2014. 4. [본문으로]
  4. 이미 이 법이 나오기 전부터 2007년 호날두 레무스(Ronaldo Lemos) 교수는 인터넷 이용자들의 권리 등을 법제화할 것을 요구하는 논문 “Internet brasileira precisa de marco regulatorio civil”을 발표하기도 할 정도로 브라질 시민사회에서의 인터넷 활용에 얽힌 여러 논의들은 상당히 축적되어 가고 있었다. [본문으로]
  5. Juliana Nolasco Ferreira, 「Building the Marco Civil: A Brief Review of Brazil’s Internet Regulation History」, 「Stakes are High :Essays on Brazil and the Future of the Global Internet」.2014. 4. [본문으로]
  6. Center for Technology and Society at the Getulio Vargas Foundation [본문으로]
  7. http://culturadigital.br/marcocivil/sobre/ [본문으로]
  8. Pedro Paranagua, 「Brazil’s Internet Framework Bill」. http://www.slideshare.net/pedro_paranagua/talk-global-congressmarcocivil15122012 [본문으로]
  9. Juliana Nolasco Ferreira, 「Building the Marco Civil: A Brief Review of Brazil’s Internet Regulation History」, 「Stakes are High :Essays on Brazil and the Future of the Global Internet」.2014. 4. [본문으로]
  10. http://gadebate.un.org/sites/default/files/gastatements/68/BR_en.pdf [본문으로]
  11. http://netmundial.br/ [본문으로]
  12. 한국 시민사회의 상파울로 멀티스테이크홀더 선언문 채택 평가 http://www.ccej.or.kr/index.php?document_srl=405849 [본문으로]
  13. http://webfoundation.org/2014/03/welcoming-brazils-marco-civil-a-world-first-digital-bill-of-rights/ [본문으로]
  14. 브라질 멀티스테이크홀더 구조체 [본문으로]
  15. 2014. 4. 8. 유럽사법재판소는 Data retention directive가 프라이버시 등의 권리침해를 이유로 무효확인을 하였다. http://curia.europa.eu/jcms/upload/docs/application/pdf/2014-04/cp140054en.pdf [본문으로]
저자 : 김보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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