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강남 부동산 오너’…가상 부동산의 유혹
1. 강남 땅 한번 사볼까
마켓 플레이스를 둘러본다. 서초구 주택가 땅이 99달러다. 최근 높은 원달러 환율을 고려해도 우리 돈으로 12만원 남짓. 클릭! 결제! 이제부터 나는 강남 땅 주인이다.
가상 부동산 플랫폼 ‘어스2(Earth2)’에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만큼이나 쉽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발품을 팔고 등기부등본을 확인하고 계약서를 작성하고 잔금을 치르기까지 몇 달에 걸쳐 이뤄진다. 더욱이 강남에 내 집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서초구 아파트 아크로리버파크(이하 아리팍)는 2022년 1월 평당 1억3000만 원을 넘었다. 국민평형 전용 84㎡(34평)가 46억6000만 원에 팔렸다. 반면 가상세계인 어스2에선 해당 위치의 부동산 가격이 1만8054달러(약 2166만 원·457타일)다. 거래단위인 타일(10m×10m)당 39달러(4만6800원)다.
현실세계에선 아리팍 한 평도 사기 어려운데 가상세계라면 불가능하지 않다. 타일 하나를 5만 원도 채 되지 않는 금액에 살 수 있다.
이렇게 천지 차이인 두 세계가 공통점이 있다면 급격한 부동산 값 상승이다. 현실세계 만큼이나 가상세계에서도 부동산 값이 치솟고 있다. 어스2에서 아리팍 해당 타일의 가격은 2020년 12월29일 77달러로 타일 당 0.16달러에 불과했다. 1년 여새 2만% 이상 상승한 셈이다.
2. MZ 세대 끌릴 수밖에
가상 부동산은 가상의 부동산을 사고 파는 것으로 가상 부동산 플랫폼을 통해 거래가 이뤄진다. 거래 과정에서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능한 토큰)를 적용하기도 한다. 이는 현실에서 해당 부동산이 ‘내 것’임을 증명해주는 ‘등기권리증’과 같은 역할을 한다. 거래는 실제 화폐로 이뤄지기도 하고 가상화폐로 거래되기도 한다
영끌(영혼까지 끌어올 정도로 대출을 받다)로도 내집마련이 어렵고 아파트 청약 문턱마저 높은 2030 세대들이 이런 가상 부동산에 끌리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MZ세대들은 이미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현실에도 친숙하다.
푸드테크 플랫폼 식신 대표이자 최근 메타버스 플랫폼 트윈코리아를 론칭한 안병익 대표는 그의 저서 ‘메타 유니버스 초세계(2021)’에서 “MZ세대들은 구직난에 힘들어하고 멈출 줄 모르는 집값 폭등에 상심한다”며 “이런 현실을 벗어나 가상세계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어 하고 현실과 다른 ‘부캐’로 살아가는 걸 즐긴다”고 평했다.
더욱이 이미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 투자 경험을 갖고 있는 세대들에겐 가상부동산을 통한 자산증식에도 기대가 크다.
3. 가상 부동산 플랫폼 우후죽순
실제 지구를 본뜬 가상지구를 만들어 거래하는 어스2의 인기가 이를 반영한다. 2021년 12월 기준 어스2의 투자자 국가별 집계를 보면, 한국 투자자들의 가상 부동산 자산 가치 총액은 1178만 달러(139억 원)로 2위를 차지했다.
이 플랫폼은 2020년 11월 론칭, 타일(10m×10m)을 임의로 생성했고 이용자들은 이 타일을 거래한다. 국내 DGB금융그룹이 어스2 내에서 DGB대구은행 제2본점 건물(대구 북구 칠성동 위치)을 약 100만 원에 구매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앞서 게임회사에서 출발한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 샌드박스(Sandbox)등도 대표적인 플랫폼이다. 두 곳 모두 가상화폐로 거래한다.
디센트럴랜드의 경우 9만 개의 토지가 거래되고 있다. 2021년 6월 기준 디지털 땅(LAND)의 매매 규모는 6300만 달러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곳에는 미술관, 카지노 등의 건물들이 존재하고 세계적인 경매사 소더비사가 가상갤러리를 열기도 했다.
메타렉스는 국내 최초 가상부동산 플랫폼이다. 가상자산 아스터코인을 통해 거래한다. 최근 가상자산 클레이튼 기반의 ‘클레이시티(Klay City)’도 주목받는 플랫폼이다. 부동산 투자 메타버스 플랫폼이자 P2E(Play to Earn)를 표방하고 있다. 클레이시티 종로구의 티어1 684번지 NFT가 3월3일 NFT거래 플랫폼 오픈시(opensea)에서 12만 클레이(약 1억7000만 원)에 거래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2021년 12월엔 전국을 대상으로 한 메타버스 기반 가상 부동산 서비스 ‘트윈코리아’도 론칭했다. 당시 서울 지역 사전청약에서 신사, 강남, 홍대 등 인기지역은 개시 1분 만에 마감됐다. 올해 1월 진행한 판교, 분당, 과천 등 주요 신도시 청약도 1시간 만에 완판됐다.
4. 장밋빛 전망 속 봉이 김선달 우려도
가상 부동산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쏟아진다. CNBC는 2022년 2월 메타버스 데이터제공업체 메타메트릭솔루션즈 자료를 인용, 2021년 한해 메타버스 가상 부동산 판매량은 5억 달러, 2022년 1월 판매량은 8500만 달러로 집계했다. 2022년 말까지 1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이 폭발적으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들이 쏟아지지만 여전히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란 우려도 동시에 나온다. 특히 환금성에 취약하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어스2는 가상 부동산 거래 후 현금화하려면 운영자에게 메일을 보내야 한다. 최소 한 달에서 수개월 이상 걸린다는 전언이다. 50달러 미만의 금액은 현금화할 수도 없다. 일부 플랫폼에서 거래하는 가상화폐는 코인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아 역시 현금화기 어렵다.
현실에서 아파트가 빌라나 단독주택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투자가 몰리는 데는 표준화된 상품으로 가격산정이 용이하고 환금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상 부동산은 가치산정도 모호하다.
최현준 클레이티시티 대표는 국내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장기적으로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자산이 실제 자산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아직은 쉽지 않아 보인다.
윤정현 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가상 부동산을 포함한 메타버스의 진정한 의미는 현실과의 단절이 아니라 현실의 연장”이라며 “가상공간에서 벌어들인 돈이 해당 플랫폼에서만 통용되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화폐가치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플랫폼이 지속하려면 유저들이 유지돼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한데 유저들이 없으면 가상 부동산 가치는 제로”라면서 “가상세계가 유지되지 않거나 사이트를 닫으면 가상부동산도 소멸한다”고 꼬집었다.
시장이 성숙하기까진 기술과 플랫폼의 옥석이 가려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윤정현 선임연구원은 “지금 당장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서비스와 20~30년 후 실현될지 안 될지 모르는 공상과학적인 내용 등 중장기적으로 가능한 것들이 당장 가치가 있는 것처럼 부풀려 있어 거품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자산의 개념이 형성 된지 얼마 안 돼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대부분의 투자와 마찬가지로 해당 기술과 플랫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옥석이 가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문헌]
-단행본 : 안병익(2021) 『META UNIVERSE 초세계』. 출판사 : 이가서
-보고서: 과학기술정책연구원(2021). 『메타버스,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
-인터넷뉴스: CNBC(2022.2.1.) Metaverse real estate sales top $500 million, and are projected to double this year: https://www.cnbc.com/2022/02/01/metaverse-real-estate-sales-top-500-million-metametric-solutions-says.html?&qsearchterm=Metaverse
-인터넷뉴스: 파이낸셜뉴스(2022.1.12.) “메타버스서 부동산 투자로 자산 키운다”: https://www.fnnews.com/news/202201080047545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