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논의의 흐름과 전망

1. 논의 배경과 국내외 사업자 정책 현황

2000년을 전후하여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의 보급과 이용이 활성화되며 정보의 디지털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각 국은 기록물 보존 및 문화유산의 보존 차원에서 디지털 자료를 축적하는 디지털 아카이빙(digital archiving)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국가의 정책적 차원의 관심은 2003년 이라크 전에서 사망한 저스틴 엘스워스(Justin Ellsworth)라는 미국 병사의 죽음과 맞물리며 개인적 차원의 디지털 유산 논의로 이어졌다. 국가적 차원의 디지털 아카이빙 논의가 인터넷을 이용하는 국가의 개인 차원의 디지털 유산 이슈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표 1>과 같이 국내외 인터넷 사업자의 디지털 유산 정책은 대부분 비슷한 측면이 있으며 접근권한 제공 및 백업 지원 등의 일부분에 있어서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업자들은 대부분 유족에게 정보를 최대한으로 제공하기 보다는 최소한으로 제공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사업자가 속한 국가의 법률 또는 사업자의 약관 등이 작용하겠지만, 보편적으로 이러한 정책을 취하는 이유는 개인정보 관련 이슈와 통신비밀 관련 이슈 등이 주요할 것으로 보인다.

<표 1> 국내외 인터넷 사업자의 디지털 유산 정책

최대한 정보제공 ← →최소로 정보제공
구분
상속인 권한
명의
변경
비밀번호
제공
접근권한
제공
백업
서비스
현상유지
이용
해지
계정삭제
(이용내역
영구삭제)
공개
정보
비공개
정보
NHN
×
×
×
조건부 지원
×
×
Daum
×
×
×
×
×
×
SK커뮤니케이션즈
×
×
×
×
×
×
Google
(YouTube)
×
×
조건부 제공
조건부 지원
조건부 지원
×
Yahoo
×
×
×
×
×
×
Facebook
×
×
×
×
×
Twitter
×
×
×
×
×

※ 각 사의 정책을 바탕으로 재구성

또한 사업자별로 제공하는 서비스 특성에 따라 정책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Facebook의 경우 제공하는 서비스가 개인화 서비스이면서 네트워크 서비스이고, 타임라인 페이지가 시간의 흐름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점이 추모 목적의 현상 유지 정책을 취하는 하나의 이유일 것으로 추측된다. 반면, Twitter의 경우 네트워크 서비스성이 강하며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유족과 사업자 모두에게 현상유지가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이며, 그에 따라 공개된 트윗의 백업을 지원해주고 현상유지를 허용하지 않는 정책을 취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Daum과 SK커뮤니케이션즈, Yahoo, NHN의 경우 유족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며 사망 확인 시 계정을 삭제하고 관련 정보를 영구 삭제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다만, NHN의 경우 공개게시물에 대해 유족임을 증빙하고, 사망확인서 등을 제출하면 백업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다. 구글의 경우 최근 휴면계정관리(Inactive Account Manager) 정책을 발표하며 일정 기간 동안 이용이 없는 계정에 대해 제3자가 조건부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정책은 한국의 디지털 유산 논의에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2. 한국에서의 논의 경과 : 국가와 시장의 노력

한국 사회에서의 디지털 유산 논의는 2010년 천안함 사건 당시 희생 장병의 미니홈피 유지관리 이슈가 언론을 통해 기사화되며 촉발되었다. 디지털 유산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김금래, 유기준, 박대해 등의 국회의원은 각각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며, 디지털 유산 논의를 국회로 가져갔다.

2010년 3인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주로 사망자의 블로그, 미니홈피 등의 관리, 개인정보의 보호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으며, 전반적인 디지털 유산의 처리를 다루기에는 다소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 3개의 법안은 18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으며, 19대 국회로 바통이 넘겨졌다.

19대 국회에서는 김장실 의원이 2013년 5월 22일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며, 의안심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이 법안은 디지털 유산에 대한 재산적 가치성과 고인 추모의 목적 등을 고려하여 상속인이 디지털 유산의 소유 및 관리권한을 승계하도록 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디지털 유산을 이용자가 사망하기 전에 작성·게시·획득·보관·관리한 정보로, 게임물의 이용을 통하여 획득한 유·무형의 결과물(점수, 경품, 게임 내에서 사용되는 가상의 화폐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게임머니 및 대통령령이 정하는 이와 유사한 것), 선불전자지급수단, 그 밖에 사망한 이용자가 작성하거나 전송하여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보관 중인 공개 또는 비공개의 게시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정보로 정의하였다. 또한, 유서 등 이용자가 생전에 디지털 유산 처리를 정한 경우에는 이를 우선하도록 하였다.

국회의 논의와는 별도로, 사업자 차원에서의 노력도 지속되어왔다. 국내 주요 포털이 주축이 되어 발족한 (사)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이하 KISO)는 정책위원회를 통해 2010년부터 디지털 유산의 처리에 관한 자율규제 정책을 논의해 왔다. 2010년 9월에는 세미나를 개최하여 디지털 유품이 무엇이고, 사업자는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으며 사회적 관리 차원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진단을 시도하였다.

이후 KISO는 세미나와 정책 협의 등을 바탕으로 2011년도에는 전 세계적으로도 초창기 연구에 속하는 “사망자의 디지털 유산(개인정보, 계정, 게시물 등) 처리방안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에는 학계, 법조계 전문가를 포함하여, NHN, Daum, SK커뮤니케이션즈, KTH 파란닷컴 등의 주요 포털 실무자들이 참여하였으며, 디지털 유산의 합리적 처리 방안으로 법률에서 기본방향을 규율하고 자율규제로 구체적인 절차 등을 정하여 시행하는 방안을 도출하였다.

하지만, 연구를 통해 구체적인 자율규제 기준 또한 검토되었으나, 사업자 공통의 시행기준으로 삼기에는 현행 법규와 충돌할 우려가 있는 부분이 있으며, 현실적으로 이용자의 요청이 미미하고, 사회적 논의가 더 진행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잠정 보류하기로 하였다.

3. 해외에서의 논의 경과 : 미국의 사례

국내에서는 국회 차원의 논의, KISO를 중심으로 한 민간자율규제 차원의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한편, 해외의 경우에는 다른 어느 국가보다 미국이 디지털 유산 논의의 중심이 되고 있다. 2003년 故 저스틴 엘스워스 병장의 유족과 야후의 소송에서 출발하여, 최근 미국 통일법위원회에서 “디지털 유산에 대한 수탁자의 접근권한 등에 관한 법률(기고자 역)”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법안의 초안은 2013년 7월 회기에 논의될 예정이다.

이 법안의 초안은 매우 흥미롭다. 우선, 법안은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개념정의가 명확하지 않았던 용어들에 대한 정의 작업을 광범위하게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콘텐츠(contents), 계정(digital account), 디지털 자산/디지털 재산(digital asset/digital property), 정보(information), 기록(record) 등과 같은 용어들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디지털 유산과 관계된 다양한 용어들에 대한 개념정의 시도는 국내에서 디지털 유산 처리를 고민하는 많은 이해관계자들도 참고할 만한 부분이다.

다음으로, 사망자의 능동적 행위가 담긴 또는 그로 인해 발생한 광범위한 디지털 정보에 대해 “기본적으로” 상속을 인정하는 입장이라는 점이다. 그에 따라 적법한 상속인 또는 대리인은 사업자로부터 계정 접근 권한, UCC, 텍스트, 부호 뿐 아니라 로그기록에 까지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다.

미국 시장 영역의 사업자 사례로는, 2013년 4월 구글이 디지털 유산과 관련하여 발표한 휴면계정관리서비스가 대표적이며 핫이슈이다. 구글이 발표한 정책에 따르면 이용자가 구글 계정을 일정기간 동안 이용하지 않는 경우, 해당 계정은 휴면계정이 되며 동시에 이용자가 사전에 지정한 콘텐츠를 가족, 친지 등의 신뢰할 수 있는 제3의 이용자가 백업받을 수 있다.

구글의 정책은 기존의 국내외 사업자들의 정책과 비교하면 획기적이다. 무엇보다, 유족이 사망자의 디지털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리고 유족은 콘텐츠의 공개/비공개 여부와 관계없이 서비스 단위로 디지털 유산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국내에서 공개 정보와 비공개 정보의 제공에 차별을 두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점을 감안하면 국내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시사하는 바 또한 없지 않다.

다만, 구글은 신뢰할 수 있는 이용자가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기간을 제한하고 있는데,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신뢰할 수 있는 이용자가 콘텐츠에 접근하더라도 계정이 폐쇄되거나 데이터가 삭제되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신뢰할 수 있는 이용자임을 입증하고, 데이터를 수령하기 까지는 이용자의 입증, 구글의 승인이라는 두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신뢰할 수 있는 이용자라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 구글의 승인 단계에서 정보제공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4. 향후 전망

디지털 유산 논의는 한국과 미국의 이슈일 뿐 아니라 디지털 인류 모두의 현안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통일법의 진행방향에 따라 디지털 유산의 처리 방향도 결정될 것으로 보이나, 세계 최대 사업자인 구글이 내놓은 정책이 통일법 제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 김장실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 상정되어 있으나, 논의가 진행되고 있어 입법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다. 국내 사업자의 경우, NHN은 구글 정책 발표 이전부터 공개 게시물에 대해 간단한 구비서류 증빙이 있는 경우 백업을 제공해오고 있었다.

향후 디지털 유산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국가별로 처한 시장의 상황과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미국과 한국의 디지털 유산 논의 전개 과정에서의 공통적인 부분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유족이 사망자의 데이터에 접근을 요청하자 거절당하거나 극히 일부의 정보만을 얻을 수 있었고, 이에 대해 사회적 반향이 일었으며, 국가 차원의 입법 이슈가 되었다는 점이다.

인터넷 분야는 그 역사가 매우 짧고 기술적 특성이 오프라인의 현실과 다른 측면이 있다. 또한, 기술의 변화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고 혁신적이어서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분야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디지털 유산 논의에 기술과 현실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할 것이고, 국가 차원의 공적 규제와 민간 차원의 자율규제가 협력을 통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저자 : 유정석

(전)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정책운영실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