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결정 제2호 추가 결정 리뷰
1. 머리말
지난 2013년 2월 21일 사단법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orea Internet Self-governance Organization, 이하 ‘KISO’)는 회원사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에서 규정하고 있는 임시조치를 취하는 기준에 관하여 추가적인 정책결정을 하였다. 임시조치에 대한 정책결정 제2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공인의 임시조치 요청과 관련하여, 대상 게시물이 구체적인 정황이나 사실의 적시 없이 단정적이고 모욕적인 표현만을 한 경우에는 임시조치를 할 수 있도록 명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정책결정 제18호).
KISO는 이미 지난 2009년 4월 2일 정책결정 제1호(실명이 거론된 명예훼손성 게시물의 조치를 위한 정책)를 통하여 최초로 명예훼손성 게시물의?처리를 위한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2009년 6월 29일 정책결정 제2호(명예훼손성 게시물의 임시조치 등에 관한 추가적인 정책)를 통하여 정책결정 제1호를 좀 더 구체화하였다. KISO는 그 후에도 2010년 5월 18일 정책결정 제5호(정책결정 제2호의 ‘공적업무’에 대한 추가결정의 건), 2012년 7월 25일 정책결정 제14호(정책결정 2호 추가 결정) 등을 통하여 명예훼손성 게시물의 삭제·임시조치에 관한 기준을 정교하게 다듬어 온 바 있다. 이번 정책결정 제18호도 이와 같은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정책결정 제18호의 내용을 살피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정책결정의 내용
(1) KISO 정책결정 제18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책결정 2호 [처리의 제한]을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①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는 명예훼손 관련 임시조치 요청의 주체가 아닌 것으로 간주한다.다만, 그러한 단체의 장 및 구성원 개인은 명예훼손 관련 임시조치를 요청할 수 있다. ② 임시조치를 요청하는 자가 정무직 공무원 등 공인인 경우, 자신의 공적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명백히 허위사실이 아닌 한 명예훼손 관련 임시조치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본다. 다만, 구체적인 정황이나 사실의 적시 없이 단정적이고 모욕적인 표현만을 한 경우에는 임시조치를 할 수 있다. ③ 임시조치를 요청하는 자가 제2항의 ‘정무직 공무원 등 공인’에는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그가 공직자, 언론사 등일 경우 임시조치를 요청하는 게시물의 내용이 그 업무에 관한 것으로서(그가 공적 지위를 벗어난 때에도 해당 지위에 있을 때 발생한 공적 업무에 관한 것이면 여기에 포함된다)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는 것일 때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시조치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본다. 1. 게시물의 내용이 명백한 허위사실임이 소명된 경우 2. 게시물의 내용 자체 또는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주변 정황에 의해 그 게시물의 내용이 해당 공직자 등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인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
(2) 머리말에서도 잠시 언급한 것처럼, KISO는 이미 지난 2009년 4월 2일 정책결정 제1호(실명이 거론된 명예훼손성 게시물의 조치를 위한 정책)를 통하여 명예훼손성 게시물의 처리를 위한 기본원칙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이 결정의 3.에서는 “욕설, 개인정보침해 등 명백한 불법성 게시물에 대한 조치는 이번 정책결정의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하여, 욕설로 대표되는 모욕적인 표현에 정책결정 제1호 내용의 적용을 명시적으로 배제하였다. 그리고 이후 2009년 6월 29일 정책결정 제2호(명예훼손성 게시물의 임시조치 등에 관한 추가적인 정책), 2010년 5월 18일 정책결정 제5호(정책결정 제2호의 ‘공적업무’에 대한 추가결정의 건), 2012년 7월 25일 정책결정 제14호(정책결정 2호 추가 결정) 등 일련의 결정이 있었지만, 모욕적인 표현에 대한 처리를 구체화하는 결정은 없었다.
(3) 이번 결정이 있기 전, 이러한 일련의 정책결정을 통하여 보완된 정책결정 제2호는 “명예훼손성 게시물의 처리는 명예훼손을 주장하는 자의 요청(신고)이 있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구체적으로 “인터넷상의 게시물로 인한 명예훼손을 주장하는 자는 삭제 또는 반박내용의 게재(이하 ‘삭제 등’이라고 한다)를 요청할 때 명예훼손 사유와 해당 게시물의 URL을 적시해야 하고, 회원사는 이러한 요건이 충족되는 경우에 임시조치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일반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의무의 주체인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는 원칙적으로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없고, 일반적 인격권의 주체가 아니라고 해석되므로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는 명예훼손 관련 임시조치 요청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와 별개의 인격체인 “단체의 장 및 구성원 개인은 명예훼손 관련 임시조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처리의 제한] 제1항).
한편 [처리의 제한] 제2항과 제3항에서는 이에 근거하여 임시조치를 요청하는 자가 정무직 공무원 등 공인인 경우와 그 밖의 공직자, 언론사 등인 경우를 구분하여, 임시조치를 요청할 수 있는 경우와 요청할 수 없는 경우를 각각 차별적으로 규율하고 있다.
이번 정책결정 제18호는 바로 “임시조치를 요청하는 자가 정무직 공무원 등 공인인 경우, 자신의 공적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명백히 허위사실이 아닌 한 명예훼손 관련 임시조치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보면서도, “구체적인 정황이나 사실의 적시 없이 단정적이고 모욕적인 표현만을 한 경우에는 임시조치를 할 수 있다”고 추가적으로 규율한 것이다.
(4) 우리 헌법상 명예란1) “사람이나 그 인격에 대한 ‘사회적 평가’, 즉 객관적·외부적 가치평가”를 의미하며, 이는 헌법 제10조에서 보장되는 일반적 인격권의 한 내용으로 인정된다.2) 한편 명예훼손이란 “명예주체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3) 우리 형법은 이러한 헌법상 명예를 보호하기 위하여 형법 제307조에서 명예훼손죄를, 제311조에서 모욕죄를 규정하고 있다. 형법상 모욕죄에서 금지하는 “모욕(Beleidigung)적인 표현”이란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단순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의 표현을 말한다.4) 욕설이 대표적인 모욕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욕적인 표현은 사실을 적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형법상 명예훼손적 표현과 구별된다. 그러나 양자는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인 이른바 외적 명예를 보호법익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5)
우리 학계는 모욕적인 표현도 구두 및 문자에 의한 의사표현행위이기 때문에 헌법 제21조 제1항에서 보호하는 표현에 해당한다고 이해하고 있다.6) 다만, 그러한 표현은 흔히 타인의 명예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헌법 제21조 제4항은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주의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모욕적인 표현이 타인의 명예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 입법자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근거하여 이를 행하는 행위자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이 때 모욕적인 표현을 얼마만큼 제한할 것인가는 이를 행하는 행위자의 표현의 자유와 모욕적인 표현에 의하여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는 사람의 인격권의 상충을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의 문제이다.
우리 입법자는 양자를 조화하기 위하여 모욕적인 표현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면서도, 민법과 형법 등에서 일정한 요건에 따라 이를 제한하고 있다. 민법은 헌법상 명예를 보호하기 위하여 제750조와 제751조에서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제764조에서 법원이 피해자의 청구에 따라 명예훼손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에 가름하거나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이미 설명한 것처럼, 형법은 헌법상 명예를 보호하기 위하여 형법 제307조에서 명예훼손죄를, 제311조에서 모욕죄를 규정하고 있다.7)
(5) 정책결정 제18호는 그동안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에 규정된 임시조치제도의 적용에 있어서 회색지대(gray zone)로 남아있던 모욕적인 표현을 포함하는 게시물의 임시조치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였다. 이에 따르면 정무직 공무원 등 공인이 임시조치를 요청하는 경우 대상 게시물이 구체적인 정황이나 사실의 적시 없이 단정적이고 모욕적인 표현만을 한 경우에는 임시조치를 할 수 있고, 그 밖의 표현을 한 경우에는 임시조치를 할 수 없다. 즉, 정무직 공무원 등 공인인 경우, 구체적인 정황이나 사실의 적시 없이 단정적이고 모욕적인 표현만을 한 경우에는 임시조치를 한 상태에서 모욕 여부에 대한 실체적 판단을 받고, 그 밖의 표현을 한 경우에는 임시조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욕 여부에 대한 실체적 판단을 받는 것이다.
결정은 “구체적인 정황이나 사실의 적시 없이 단정적이고 모욕적인 표현만을 한 경우에는 임시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형법상 모욕죄에 비하여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을 선택하고, 그 범위를 좁히려 시도하고 있다. 모욕이라는 용어의 모호함에 따른 집행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에 규정된 임시조치제도가 가구제의 일종이므로 본안 판단보다 엄격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해에 따른 것이라 짐작된다.
3. 정책결정의 의미와 과제
(1) 요컨대, 정책결정 제18호는 그동안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에 규정된 임시조치제도의 적용에 있어서 회색지대로 남아있던 모욕적인 표현을 포함하는 게시물의 임시조치에 관하여 좀 더 분명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법 제44조의2에 의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인 KISO 회원사의 부담을 덜어주고 각 회원사간 편차를 줄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점에 그 의미가 있다. 나아가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에 따라 임시조치를 취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KISO의 비회원사에게도 하나의 모범적인 기준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2) 한편, 입법자는 자율규제기구인 KISO의 정책결정에서 유독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에 규정된 임시조치를 구체화하는 규정이 많은 이유를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제44조의2의 임시조치제도가 도입은 되어 있지만, 이에 따라 실제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주체인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에서 보면 미비한 점이 많아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할지 결정하기 곤란하게 규정되어 있다는 것, 즉 법령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입법자는 이와 같은 법령의 불완전함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를 넘어, 이에 근거한 조치로 인하여 가구제되거나 표현의 자유를 제한당하는 이해당사자인 국민의 피해로 직결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국회와 행정부가 법령의 보완을 검토하여야 할 때이다.
1) 헌재 2005. 10. 27. 2002헌마425. [본문으로]
2) 헌재 2005. 10. 27. 2002헌마425; 전광석, 「한국헌법론」, 집현재, 2013, 262쪽; 정종섭, 「헌법학원론」, 박영사, 2012, 418-419쪽. [본문으로]
3) 대법원 1997.10,28. 96다38032. 정종섭, 앞의 책, 594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4) 박상기, 「형법각론」, 박영사, 2011, 190쪽 참조. [본문으로]
5)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이해와 달리, 모욕죄는 외적 명예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명예감정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유력한 견해가 최근 주장되고 있다. 이에 관해서 자세한 것은 박경신, 김가연, “모욕죄의 보호법익 및 법원의 현행 적용방식에 대한 헌법적 평가”, 「언론과 법」 제10권 제2호, 2011, 441-467쪽 참고. [본문으로]
6) 박경신, 김가연, 앞의 글, 446쪽. [본문으로]
7) 우리 형법에서는 명예훼손죄와는 별도로 제311조에서 모욕죄를 정하여 처벌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규정이 없는 대다수 국가에 비하여 모욕적인 표현에 의하여 사회적 평가가 저해되는 사람의 보호에 좀 더 치중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박경신, 김가연, 앞의 글, 446쪽에 따르면 명예훼손죄와 별도로 모욕죄를 처벌하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 일본, 독일, 대만 4개국에 불과하다고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