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인터넷 자율규제의 변화와 한국 자율규제의 미래
1. 들어가는 말
자율규제는 인터넷 등장 초기부터 온라인 공간에 대한 규제의 중요한 틀로 기능해 왔다. 물론 인터넷 이전에도 영화나 방송 등 미디어 분야는 국가의 규제를 최소화하며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자율적 규제로 규율해왔다. 그 외 새롭게 등장한 기술과 산업영역으로 충분한 법적, 정책적 경험과 지식이 부족해서 규제 공백이 발생하기 쉬운 분야에서는 자율규제가 정부의 규제를 대신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한 영역에 대한 규제가 마련되기까지는 해당 분야에 대한 정보와 경험의 축적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의 조정은 물론 규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기반 산업과 같이 새롭게 등장한 영역, 기술 발전이 급격한 분야에 대해서는 국가의 법제도적 대응이 규제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이 경우 법률의 원칙적이고 큰 틀 내에서 민간의 자율규제가 규제 공백 해소와 규제의 수용력 제고를 위해 효과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미디어와 같이 정부의 직접적인 규제 또는 개입이 적절하지 않지만, 일정부분 통제가 필요한 경우에는 사업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자율적인 규제가 효율적일 수 있다. 인터넷은 그 미디어로서의 속성, 그리고 끊임없이 기술적으로 진화하고 다양한 분야와 융합하는 기술산업적 특징으로 인해 기술 발전에 장애가 되지 않는 유연한 규제적 대응이 요구되었고, 각국 정부는 물론 디지털 기업들도 다양한 자율규제적 방법을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소셜미디어가 급격히 보급되면서 소셜미디어가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사회경제적 활동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되고,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디지털의 영향 및 이를 둘러싼 환경도 크게 변화했다. 특히 최근 몇 년 디지털 플랫폼과 관련해서 야기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인터넷의 무결성과 자율규제의 효용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인터넷 자율규제도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 공간은 초기의 장밋빛 기대와 달리 가짜뉴스, 허위정보(disinformation) 등을 포함한 정보의 인포데믹(Infodemic, 악성 정보확산)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공간이 되었고, 정보와 인터넷 공간에 대한 신뢰도 의심받고 있다. 특히 2017년 미국 대선 이후 가짜뉴스와 허위정보에 대한 세계 각국의 법적 대응 노력은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규제환경 변화의 가장 큰 전환점이 되고 있다. 이제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야기된 인터넷 생태계의 변화를 고려하면서 인터넷 공간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인터넷 자율규제의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2. 디지털 기술 발전과 규제환경 변화
인공지능과 데이터 처리 및 관리 기술의 발전으로 인터넷 환경은 급격히 변화했다. 인공지능이 빅데이터와 복잡한 알고리즘과 결합하면서 만들어내는 편향성과 불공정성의 심화, 인공지능 알고리즘 추천기능이 낳은 필터버블(filter bubble)과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현상으로 인한 가짜뉴스와 허위정보의 확산, 사이버 괴롭힘과 혐오의 증가 등 인터넷 공간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더불어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이 크게 성장하고 영향력도 커지는 데 비해 인터넷 공간에 대한 책임과 노력이 그만큼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도 늘어나고 있다.1
이러한 상황에서 허위정보가 선거 등 국가의 중요한 정치적 결정에 미칠 잠재적 영향에 대한 우려, 온라인 혐오를 기반으로 한 정치 사회적 양극화와 극단주의의 발호, 그리고 더 확대되는 사이버 괴롭힘 등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개인의 자아 형성과 삶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로 인해 기존의 인터넷 자율규제에 대한 재검토의 요구도 커지고 있다. 특히 허위정보는 그로 인한 사회적, 개인적 피해가 막대하지만 자율적 규제로는 그 생성과 유통을 막는데 역부족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이는 결국 엄격한 법적 규제의 모색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 생태계를 둘러싼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인터넷 규제의 근본적 재설정에 대한 요구도 제기되는 등 각국에서는 인터넷 규제를 둘러싼 다양한 변화와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첫째, 디지털 기술 발전과 인터넷 생태계의 급변으로 인터넷 자율규제는 후퇴하고 인터넷 콘텐츠 및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법적 규제 시도가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 대한 자율규제를 유지해오던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가짜뉴스와 허위정보, 그리고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사례 등 플랫폼 기업의 책임성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가져온 사건을 계기로 법적 규제가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 분야의 성장과 더불어 디지털 기술 발전과 정보 유통 채널의 다양화와 증가, 그리고 플랫폼 서비스사업자의 이윤 창출 모델의 근원적 한계로 인해 약관과 모니터링을 중심으로 한 민간기업의 자율적 불법·유해 콘텐츠의 관리는 점점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그러나 가짜뉴스와 허위정보가 범람하고, 사이버 괴롭힘과 혐오가 점점 더 심화되고 늘어나고 있지만, 사용자 규모와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이 결국 광고 노출의 범위를 높여 상업적 이윤으로 이어지는 플랫폼의 이익 창출 메커니즘으로 인해 플랫폼 사업자들이 미온적으로 대응하거나 방기했다는 비판도 많다. 인공지능 기반의 플랫폼의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은 불법이거나 자극적 허위정보를 걸러내기보다는 더 많은 이용자에게 노출시키고, 정치적 양극화와 갈등을 더 심화시키는 결과를 야기하고 있다. 이것이 인터넷 공간에 대한 철저한 자율규제 원칙을 고수해오던 많은 국가들에서 플랫폼에 대한 법적 규제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배경이다.
독일은 허위정보의 확산을 계기로 불법 및 허위정보 유통에 대해 플랫폼 사업자에게 강력한 의무를 부여하는 「네트워크 집행법Netzwerkdurchsetzungsgesetz (NetzDG)」을 입법하였다. 영국 역시 온라인상의 안정성 확보와 향상을 목적으로 2019년 4월 ‘Online Harms White Paper’를 공표하고 그 후 2021년 5월 「온라인안전법안(Online Safety Bill)」이 제출되어 의회에서 논의 중이다. 이 법안의 대상 콘텐츠는 불법 콘텐츠와 아동·청소년 유해 콘텐츠 그리고 성인에 해로운 콘텐츠이며, 독일과 같이 이러한 콘텐츠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플랫폼 사업자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주요국의 불법·유해 정보 규제법률 현황]
미국은 인터넷과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대표적 민간 자율규제 모델 국가이지만 최근 들어 콘텐츠에 대한 법적 규제 요구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 인터넷 산업의 탄생과 발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온 「통신품위법(Communications Decency Act)」은 자율규제의 근거를 제공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개정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미국 「통신품위법」230조(c)(1)는 제삼자가 작성한 콘텐츠와 관련하여 온라인 플랫폼은 ‘출판자(publisher)’나 ‘발언자(speaker)’가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률에 기반하여 플랫폼 사업자는 스스로 콘텐츠를 삭제, 차단하더라도 법적 책임은 지지 않는 광범위한 면책 권한을 부여받았다. 제삼자 콘텐츠(third-party content)에 접속을 제한해도 면책되므로 플랫폼은 온라인 게시물들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고, 또 불법·유해 정보 유통을 적극적으로 삭제·차단할 수 있다.2 사실 이 면책 권한은 사실 온라인 플랫폼의 책임 회피를 용인하는 것이라기보다 자율적 규제에 대한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통신품위법」에 근거하여 인터넷 공간에 대한 철저한 자율규제 원칙을 고수해오던 미국에서도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모두에서 플랫폼 기업 규제를 가져올 입법이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성매매를 조장하는 온라인 사이트를 규제하는 「FOSTA(Allow States and Victims to Fight Online Sex Trafficking Act)」와 「SESTA(Stop Enabling Sex Traffickers Act)」가 2018년 입법되면서 “통신품위법 230조는 불법적으로(unlawfully) 성매매를 장려 혹은 용이하게 하는 사이트들에 대한 법적 보호를 위해 입안된 것이 아니다”라고 명시하며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자 하였다.3 또한 2019년 6월에는 공화당 Hawley 상원의원이 일정 규모 이상의 플랫폼 사업자가 면책받을 요건으로서, 타자가 발신한 정보를 정치적으로 편향적 방식으로 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연방거래위원회(FTC) 인증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통신품위법」230조의 개정안(Ending Support for Internet Censorship Act, 116th Congress (2019-2020))을 제출하였고 2021년에도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내용으로 하는 법안이 제출되었다.
[미국의 불법·유해 정보 규제 법안 현황]
이와 같은 미국과 유럽의 변화는 디지털 기술발전과 그로 인한 인터넷 생태계의 변화로 인해 이제 더 이상 기존의 규제방식이 새로운 문제들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근저에 있다.
둘째, 가짜뉴스 및 허위정보의 확산에 대한 대응이 각국 인터넷 규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2016년 미국 대선 과정 등장한 가짜뉴스는 이후 미국과 유럽을 비롯하여 전 세계 국가들의 현안이 되었다.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자율규제도 2016년을 기점으로 아동·청소년 보호 및 불법 유해 콘텐츠 관리에서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를 막기 위한 팩트체크와 모니터링 등이 중심이 되는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인터넷 불법·유해정보에 대한 자율규제기구는 여전히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2021년 기준 전세계에는 150개국 391개의 팩트체크 기관이 활동하고 있다.4
허위정보에 대한 대응이 인터넷 규제의 중심적 목표가 되면서 기존의 인터넷 콘텐츠 자율규제 기관들이 가짜뉴스 대응으로 역할을 확장하는 예도 나타나고 있다. 독일의 자율규제기구인 Freiwillige Selbstkontrolle Multimedia-Diensteanbieter(이하 ‘FSM’)은 「네트워크 집행법 Netzwerkdurchsetzungsgesetz (NetzDG)」의 입법으로, 독일연방 법무부 지정 NetzDG에 따른 최초의 자율규제 기관으로 지정되었다. 이로써 FSM은 청소년 유해 정보 자율규제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중심으로 한 활동에서 플랫폼 사업자들의 허위정보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기관으로, 불법·유해 정보 자율규제 기구에서 허위정보에 대한 처리기관으로 영역을 확장하였다.
대한민국의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역시 불법·유해정보 중심에서 가짜뉴스, 허위정보에까지 자율규제를 확대하였다. 2018년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두고 “언론보도 형식의 허위 게시물” 신고를 받는 한편, 코로나 19 관련 허위정보가 확산되면서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신고도 받고 있다.5
셋째,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터넷상의 아동·청소년 보호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고, 아동·청소년 보호의 목표와 범위의 확대가 요구되고 있다. 모바일 환경으로의 급격한 전환과 더불어 아동·청소년의 인터넷 이용도 급증하였다. 아동·청소년 불법·유해 정보에 대한 신고-삭제라는 인터넷 자율규제의 가장 전형적 모델에 더해 아동·청소년의 가짜뉴스와 허위정보 노출에 대한 대책, 그리고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 등 아동·청소년 보호의 목표와 범위의 확장이 필요해지고 있다. 아동·청소년은 가짜뉴스와 허위정보에 특히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 등도 나오고 있어 아동·청소년의 허위정보 대책은 지금 세계 각국이 고심하고 있는 과제이다. 데이터 사회로의 진전과 더불어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보호가 사회적으로 시급하고 중요해지면서 이들의 개인정보보호에 특화된 자율기구들도 등장하고 있고 향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iKeepSafe는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디지털 제품에 대한 기술적 인증을 제공하고 학교와 학부모에게 학생들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정보보호 평가를 거친 교육 관련 프로그램 소스를 제공하는 비영리 자율기구이다.
아동·청소년의 인터넷 이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아동·청소년을 불법·유해 콘텐츠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불법·유해 콘텐츠로부터의 분리·보호는 점점 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가 되고 있다. 또한 아동·청소년이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주체로 등장하면서 기존의 아동·청소년 보호와는 새로운 차원의 더욱 복잡하고 더 정교한 아동·청소년 보호를 위한 자율규제 모델이 필요하다. 따라서 기존의 아동·청소년 불법·유해 콘텐츠에 대한 신고와 삭제라는 자율규제적 모델에서 아동·청소년 유해 콘텐츠의 유통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기술적 설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3. 인터넷 자율규제의 변화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른 환경변화로 인해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정부 규제 논의가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금은 산업 초기의 규제 공백의 시기가 아니라, 산업의 성숙화 단계에서 발생하는 남용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개입을 도모하는 단계라고도 볼 수 있다. 유럽은 허위정보 유통을 막기 위해 플랫폼에 대한 강력한 의무와 처벌을 내용으로 하는 적극적 입법으로 대응하고, 미국은 「통신품위법」 230조에 대한 개정 논의가 의회에서 시작되고 있다. 즉 자율규제의 시대는 변화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첫째, 인터넷 자율규제는 기업 또는 민간기구를 중심으로 한 자율적 규제에서 정부-민간의 협력 모델로 변화하고 있다. 인터넷 유통 정보의 폭발적 증가와 자율적 규제를 우회하고 회피하는 다양한 기술의 진화, 기술 발전으로 인한 정보 유통속도 및 영향력을 미치는 범위의 확대 등으로 인해 기업과 민간기구에 의한 자율적 규제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로서도 정부와 협력하지 않는 한 불법·유해정보의 유통과 확산을 막기 어려워졌다. 법적 규제는 더 강한 법적 규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할 때, 정부와 협력하는 새로운 자율규제 모델의 더 광범한 실험과 발전이 필요한 때이다.
둘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투명성과 책임성에 대한 요구와 더 적극적 자율적 규제의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의 인터넷 환경은 인터넷 초창기 큰 역할을 하였던 민간 자율규제 기구의 역할만으로 인터넷 공간의 콘텐츠 유통의 속도와 범위를 따라갈 수 없지만, 정부의 법적 규제는 사후적 대응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플랫폼 사업자의 다양한 기술적 노력 등을 포함한 적극적 대응에 대한 요구, 이 과정 투명성과 책임성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고, 이러한 변화는 거스를 수 없다.
셋째, 인터넷 자율규제 기구의 역할 중 정책연대, 분쟁조정, 교육의 중요성과 역할이 커지고 있다. 인터넷 자율규제 기구들이 설립 초기 담당하였던 주요 기능으로는 콘텐츠 내용 등급화와 핫라인, 모니터링에 따른 블랙리스트 운영과 삭제 등이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 발전과 정보 생산 및 유통채널의 폭증으로 처리해야 할 불법·유해 정보도 급증하고 있어, 더욱 신속한 대응을 위한 정책연대와 분쟁조정 기능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현재 자율규제의 대상이 되는 정보들의 경우 정책적, 법률적 조정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정부 또는 법적인 기구와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고는 처리가 어려워지고 있다. 자율규제 기구에 의한 정책조정과 분쟁조정의 확대는 정부의 콘텐츠 규제 대상 확대 및 과잉 범죄화를 막고, 디지털 플랫폼의 과잉 삭제에 대한 우려를 일정 정도 방지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다.6
인터넷 자율규제의 발전 초기, 자율규제를 구성하는 주요 내용은 내용심의와 등급규제, 콘텐츠에 대한 모니터링과 신고 시스템 운영, 그리고 미디어 리터러시 증진을 위한 이용자 교육 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율규제의 수단 및 내용은 디지털 기술혁신과 인터넷 생태계의 변화와 더불어 크게 변화하고 있으며 2000년대 전반기 발전하였던 자율규제의 중심축은 디지털 플랫폼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가짜뉴스와 허위정보 등 인류가 발전시켜 온 민주주의적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온라인 여론 형성에 대한 우려 등으로 인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각국에서 인터넷에 대한 법적 규제 시도가 확대되면서 플랫폼 기업들도 새로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초창기 자율규제의 좁은 틀로 현재 야기되는 문제들에 대응할 수 없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대형 플랫폼의 자율규제 의지는 여전히 불확실하고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각국 정부가 본격적 규제 논의를 시작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더 적극적으로 자율규제에 나서야 할 때이다. 플랫폼 기업들이 자율규제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기업의 이익 때문이지만, 사실 이용자의 신뢰를 상실하면 디지털 플랫폼은 계속해서 성장, 발전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7
4. 한국 자율규제의 미래와 KISO
우리나라는 인터넷에 대한 법적 규제의 큰 틀 내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다양한 민간 자율규제 기구들이 협력하는 인터넷 자율규제 방식을 발전시켜왔다. 국내 자율규제 환경은 한편으로 가짜뉴스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언론사와 플랫폼 기업들의 자율적 팩트체크 노력이 증가하는 등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자율규제 범위가 확대되는 한편, 디지털 불법 촬영물의 유통에서 드러나듯이 플랫폼의 자율적 규제의 한계도 드러났다. 디지털 정보 생산과 유통 환경의 급변은 아직 충분하게 성숙하지 못한 우리나라 자율규제의 후퇴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는 인터넷 공간이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높이고 동시에 책임성도 확보하여 인터넷이 신뢰받는 정보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이 협력하는 한국형 자율규제 모델로 자율규제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해왔다. KISO의 주요 사업은 기구 강령 및 가이드라인 수립, 회원사 등으로부터 요청받은 인터넷 게시물 등의 여러 정책에 관한 사항, 국제 자율규제 기구와의 교류 협력 및 국제기구 활동 참여, 기타 기구 목적에 부합되는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가짜뉴스 신고센터의 마련 등 국내 인터넷 환경변화에 조응하여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여전히 15개 회원사에 머물러 있고, 해외의 대규모 플랫폼이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수 회원사 중심의 확장성 부재의 한계도 있다.
자율규제는 같은 분야의 기업들이 협력할 때 훨씬 더 성공적일 수 있다. 개별 기업은 경쟁사에서 발생하지 않는 추가 비용이 발생하면 자율규제에 주저할 수 있다. 인터넷 발전 초기 정부 규제의 비용은 크지 않았지만, 규제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정부의 법적 규제 강화가 점점 더 확대되고 있기에 플랫폼 사업자의 더 적극적 신뢰 회복 노력과 책임감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인터넷 자율규제의 모델 구축이 가능할 것이다. 디지털 기술혁신이 초래한 인포데믹의 시대에 어떻게 표현의 자유와 플랫폼 기업과 이용자들 등 행위자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한편, 건전한 정보 유통체계를 마련하고, 또 효율적 인터넷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할지를 고민함에 있어 가짜뉴스와 허위정보에 대한 자율규제의 발전, 그리고 거대 플랫폼을 아우르는 정부-민간 자율규제 협력시스템의 발전이 필요하다.
자율규제가 발전하지 못한 공간을 각종 법적 규제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혁신의 속도가 현실의 규제체계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여전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법제도적 규제만으로는 따라갈 수 없고, 따라서 오히려 자율규제의 필요성은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 생태계의 발전과 규제환경의 급격한 변화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국가-민간의 협력적 거버넌스와 자율규제의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 Simon Yeoman, “Will self-regulation fix the Internet?”, DCD, March 07, 2018 [본문으로]
- 최은창, 「미 통신품위법 개정, 허위정보 범람 막을까?」 MIT Technology Review, 2021. 5. 31. [본문으로]
- Aja Romano, ‘A new law intended to curb sex trafficking threatens the future of the internet as we know it’, Vox, Jul 2, 2018. [본문으로]
- https://reporterslab.org/fact-checkers-extend-their-global-reach-with -391-outlets-but-growth-has-slowed/(접속: 2022.10.20.) [본문으로]
-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가짜뉴스 신고센터<https://report.kiso.or.kr/fakenews/> [본문으로]
- 김유향, 「해외 인터넷 자율규제의 동향 및 시사점」, 『KISO 저널』 제23호, 2016. 6. 23. [본문으로]
- Michael A. Cusumano, Annabelle Gawer, and David B. Yoffie, “Social Media Companies Should Self-Regulate. Now.” Harvard Business Review, January 15, 2021. <https://hbr.org/2021/01/social-media-companies-should-self-regulate-now>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