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O 포럼 현장중계] 한국형 자율규제 기구로서 KISO의 특성과 함의
1. 머리글
2022년 12월 15일 기준으로 제21대 국회에 14개의 ‘온라인 플랫폼’ 관련 제정 법률안이 발의돼 있다. 법률안들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온라인 거래의 확대, 온라인 플랫폼 산업의 규모와 거래 내용 등에 비춰볼 때 기존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대규모유통업법」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고 진단한다. 제정 법률안들은 온라인 플랫폼의 중개 거래의 공정화, 플랫폼 산업 종사자 보호, 온라인 플랫폼의 이용자 보호 등을 주요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들 법률안에 담겨있는 규제 방법과 제재의 수위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온라인 공간의 문제, 특히 정보의 표현과 유통, 이용을 둘러싼 쟁점을 법적인 규제를 통해 해결할 것인지, 아니면 법적인 규제를 고려하되 우선 자율규제의 기능과 역할에 주목할 것인지, 혹은 법적인 규제를 배제하고 사업자의 자율적 정책에 의해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국회에 계류 중인 ‘온라인 플랫폼 법률안’ 중에는 2021년 1월 정부가 제출한 ‘온라인 플랫폼 중개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도 있다. 해당 법률안은 온라인 플랫폼 중개사업자의 불공정거래행위 기준, 위반행위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처리, 온라인 플랫폼 중개사업자의 손해배상책임 등에 관한 사항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22년 8월 19일 ‘플랫폼 민간 자율기구’가 공식 출범했다. 이날 배포된 정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플랫폼 자율기구’는 민간 스스로 자율규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구성된 논의기구다. 민간이 주도하여 운영하고 정부는 정책적으로 지원할 계획임을 밝혔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분야별로 구체적 이슈를 논의하기 위한 분과별 회의체를 본격적으로 가동할 예정인데 분과별 운영 계획은 자율규제 논의를 개시하기 위해 임시로 마련한 방안이다. 그런데, ‘플랫폼 민간 자율기구’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개 거래 수수료·광고비 조정, 상품 배열 기준 공개 등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 소상공인 등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쟁점이 많아 험로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또 기업, 이용자 등을 포함한 이해당사자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조선일보, 2022.9.25.; 2022.10.6.;동아일보, 2022.9.26.).
이 글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가 대표적인 자율규제 기구, 성공적인 자율정책 모델로 평가받은 배경과 성과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Korea Internet Self –governance Organization)는 2009년 출범했다. KISO는 척박한 자율규제 환경에도 불구하고 출범 후부터 지금까지 학계와 현업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그 역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기구라고 볼 수 있다. KISO는 한국의 대표적인 자율규제 기구로서 상대적으로 발전적인 자율규제 논의를 이어갈 토대를 제공하고, 자율규제의 내용 역시 구체적이며(심우민, 2022; 정경오, 2022a), ‘자발적 자율규제’ 기구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기구 스스로 규범을 정립하고 통제해 왔다(김민호, 2022). 재원의 독립성과 정부관계 등에서도 현저한 특징을 보여주었다(황용석, 2009; 이창범·황창근·정필운, 2021, 233). 온라인 플랫폼을 둘러싼 규제 입법 시도와 정부의 플랫폼 민간 자율기구 출범, 그에 대한 우려와 평가 등 최근 여러 상황을 고려한다면 한국에서 인터넷과 관련한 ‘자율규제’의 의의를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자율정책 성공모델로 평가받은 KISO 사례가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법적 규제와 자율규제의 장단점을 비교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2. KISO의 출범과 구성·운영의 주요 원칙
2008년 12월 16일, 다음커뮤니케이션, 야후!코리아, 에스케이커뮤니케이션즈, 엔에이치엔, 케이티하이텔, 프리챌, 하나로드림 등 7개 포털사는 ‘건강한 인터넷을 위한 포털 자율규제협의회’를 발족하기로 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업계 공동의 자율규제’를 통한 ‘신속한 이용자 피해구제 및 권익보호’를 도모하겠다는 목적을 밝혔다. ‘자율규제협의회’는 2008년 7월부터 6개월간 운영해 온 ‘건강한 인터넷을 위한 포털정책협의회’에서 발의되었다. 우선 ‘위법·유해한 게시물’에 대한 처리로 임무를 한정해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신속하게 이용자의 피해를 구제하는 데 역점을 두기로 했다. 자율규제협의회에 참여한 회원사가 자체적으로 ‘위법-유해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게시물을 심의위원회에 상정하면 공동 심의과정을 통해 신속하게 처리 방침을 결정하고, 각 회원사는 방침에 따라 해당 게시물을 처리하기로 하였다. 자율규제협의회는 참여 포털사의 CEO들이 참여하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심의위원회’, ‘사무처’로 구성했다. 보도자료에서 7개 포털사 CEO들은 ‘순수한 민간 자율’로 운영될 자율규제협의회는 “한국적인 공동 자율규제 체계”를 갖추어 나가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포털자율규제협의회, 2008). KISO 출범 직전 당시 법적으로 인터넷을 강하게 규제하려는 입법적 분위기가 있었다, 더불어 포털정책협의회는 방통위, 방심위와 문방위 소속 국회의원, 방심위와 다양한 통로를 확보해 여러 차례 소통을 했다.1
포털정책협의회(2008)에 따르면, 인터넷자율규제협의회가 구성된 배경은 세 가지다. 첫째, 대외 규제를 강화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둘째, 인기협을 중심으로 포털정책협의회를 구성해 유해 게시물 자율규제를 위한 ‘공동가이드라인’ 제정, 이용자 계도 ‘공동 캠페인’을 실시하고, 자율규제가 어려운 사안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공동심의’를 진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셋째, 당시 포털정책협의회는 방송통신위원회, 문방위 소속 국회의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과 여러 차례 간담회를 개최하고 포털의 자율규제 기관의 신설과 자율규제 강화 등의 문제를 협의했다(포털정책협의회, 2008). 포털정책협의회는 이때 현행 KISO가 한국형 자율규제 기구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결정을 한다. 필자가 보기에 다음 몇 가지이다.
첫째, KISO는 2008년 설계 단계에서 자율규제 기구를 <이사회>, <심의위원회>, <사무처>로 구성하기로 하고, 이사회는 협의회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 조직 및 운영과 관련한 각종 규정의 제·개정을 맡기로 했다. 이때 이사회를 협의회에 참여하는 ‘포털사들의 대표이사’로 구성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포털정책협의회는 자율규제의 ‘주체’는 사업자이므로,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는 참여 사업자들의 대표이사들로 구성하는 것이 타당하며, 따라서 자율규제에 관한 모든 ‘권한’은 일단 이사회에 유보된 뒤 그 기능 및 역할에 따라 심의위원회, 사무처에 위임되도록 설계했다. 둘째, 협의회 내부의 실질적인 의사결정기구이자 사무처의 관리 감독기구로 ‘심의위원회’를 외부 전문가로 구성했다. 협의회는 내부 인사로 심의위원회를 구성한 B안 대신, 자율규제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확보해 심의위원회 운영의 공정성, 객관성이 부각되는 A안을 선택했다. 셋째, 새로 출범한 자율규제 기구의 예산을 참여한 포털 회원사들의 현물출자 및 인력파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하였다. 2008년 인터넷 포털사들이 자율규제기구를 설립하면서 그 재원을 스스로 해결하기로 한 것은 자율규제의 실효성 확보 차원에서 볼 때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넷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와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해 두 가지 대안을 놓고 고민했다. 인기협의 부설조직으로 두려는 A안과 인기협과 완전히 독립된 조직으로 운영하는 B안이었다. 포털정책협의회는 독립조직을 구상한 B안을 선택하는데 연구자가 보기에 KISO가 성공적인 한국의 자율규제 모델로서 기능하게 된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다.
3. KISO의 주요 성과와 함의
KISO는 다양한 자율규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개정하면서 정보통신망의 신뢰와 안전의 확보, 이용자 보호를 위한 강도 높은 자율적, 자발적 규제를 수행해 왔다. KISO 회원사들은 수시로 변화하는 산업 생태계에 발맞춰, 혹은 시장의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공동의 자율규제 기준을 만들고 시행해 왔다. 전문가 집단인 정책위원회가 자율규제를 위한 구체적인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고 전원 합의를 통해 그 내용을 정립하여 시행한다. 시장에서 자율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회원사의 자발적 수용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전원 합의’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회원사들은 KISO 정책위원회의 결정을 자사의 약관 등에 반영해 실천하고 있다. 국회가 관련 법률을 만들어 시장에 적용하기 전부터 자발적, 자율적으로 시장의 이용자를 보호하고 정보의 신뢰성 확보 등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시행해 왔다.
이를테면 임시조치 및 불법·권리침해 게시물에 대한 판단 기준, 선거 관련 인터넷 정보 서비스 기준, 인터넷상 차별표현 완화를 위한 정책, 자살 예방을 위한 정책, 청소년 보호 조치 등을 들 수 있다. “임시조치”에 대한 법적 규제 시도와 그로 인한 표현의 자유 위축 등의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KISO는 자율규제 시스템에서 이 사안을 다루어왔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상 ‘임시조치’ 규정 중 “게시자 이의신청권 제공”은 없다. 그러나 KISO 회원사는 임시조치 기간 내 이의신청권을 제공하고 있다. 임시조치 기간이 만료된 후 처리방안에 대해 현행 정보통신망법은 이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KISO 회원사는 ① 임시조치 기간 내 이의신청이 없을 경우 ‘삭제’하며 ② 임시조치 기간 내 이의신청이 있을 경우 ‘임시조치 만료 후 복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KISO 회원사의 전향적인 자율적 조치를 입법안으로 반영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다. 발의한 개정안의 내용은 현행 KISO 회원사의 임시조치에 대한 자율적 규제 조치와 같다.
2011년 3월 30일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자살예방법)이 제정돼 2012년 3월 31일 시행되었다. KISO는 2012년 6월 7일 ‘자살예방에 관한 정책결정’ 제13호를 정했다. 기존의 ‘자살예방법’은 KISO의 자살예방 정책결정에 담긴 내용을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KISO 정책결정 제13호의 내용은 자살과 관련한 유해 게시물이나 커뮤니티를 알게 된 경우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이용을 제한할 것, 카페 등 명칭에 자살이나 동반자살을 목적으로 하거나 방조, 유인하는 표현이 사용될 경우 허용하지 않을 것, 자살 시도의 긴급성과 위험성이 있는 게시물은 수사기관 등 관련기관에 신고할 것, ‘자살’과 ‘동반자살’을 키워드로 검색할 때 자살 예방 상담기관 등의 정보가 노출될 수 있도록 할 것 등이다. 2019년 1월 15일 개정, 6개월 후 시행된 ‘자살예방법’은 KISO가 선제적으로 자율규제를 해 오던 ‘자살예방’을 위한 정책을 개정법에 반영했다. KISO와 회원사는 ‘자살예방 정책결정’에 따라 자살과 관련한 유해 게시물을 삭제하고 금칙어를 적용하는 등 자율규제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나아가 경찰청 사이버안전국과 MOU를 체결해 구호 절차를 진행하는 등 자율정책기구로서 수행하던 업무가 ‘자살예방법’의 규정으로 명문화되면서 기존의 활동은 그대로 유지된 반면, 오히려 업무책임자를 지정해야 하는 법적인 의무를 감당하게 되었다. 반면 KISO의 자율적 규제 활동에 따른 면책조항이나 인센티브 조항은 신설되지 않은 입법상의 한계가 드러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KISO는 2019년부터 기존의 게시물, 검색어 등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이뤄지던 자율규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온라인 플랫폼이 제공하는 인물정보와 어학사전 등 각종 정보는 물론 AI, 챗봇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로 자율규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2021년 정책위원회는 코로나19 관련 허위 조작정보에 관한 정책을 신설하고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통해 관련 허위 조작정보를 신고 받아 처리하는 등 적극적으로 자율적·자발적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22년 KISO는 온라인상의 혐오표현에 대한 자율적 대응 차원에서 ‘혐오표현 심의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혐오표현에 대한 입법적 규제와 관계 없이 온라인에서 이용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혐오표현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고 신속하게 구제하기 위한 조치다.
정경오(2022b)는 최근 개최된 포럼에서 KISO가 심의결정을 통해 정책규정을 형성하는 등 ‘자치규범’을 형성한 점, 법률이 제정되기 전 연성법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고 평가했다. 자살예방에 관한 정책결정, 혐오표현에 대한 정책결정의 경우를 그 예로 제시했다. 또 KISO 운영이 성공적인 이유로 심의의 독립성, 정책위원의 전문성, 심의결정문의 공개, 심의결정에 있어서 주심제도 도입, 재원과 운영의 독립성을 제시했다.
인터넷은 표현의 자유가 가장 확대될 수 있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표현으로 인한 여러 해악이 발생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온라인에서는 대부분 정보와 의견의 자유로운 유통을 통해, 궁극적으로 진실이 허위를 이겨내고 인간과 공동체를 위해 더 유익한 정보가 해로운 정보를 능가한다는 믿음이 있다. 한편, 온라인에는 사상의 자유로운 유통과 조정에 의해 쉽게 치유되지 않는 정보가 존재하고, 사회적 소수자를 혐오하며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정보가 존재하고 그 해악이 삽시간에 널리 확장, 치유가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개인이나 사업자, 사업자단체의 자율적인 규제에 의해 해소되지 못하는 해악이 존재하고, 그 점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법적 개입과 처벌의 현실적 필요성도 있다. 이용자의 보호나 거래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개입의 필요성도 크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공간에서는 자율규제가, 국가의 자동적인 개입에 앞서야 한다는 믿음을 포기할 수는 없다. 온라인상의 자율규제가 실효적이라는 점을, 한국적 자율규제 모델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는 보여주었다. 이 글은 그러한 믿음을 포기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작성되었다.
□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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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범·황창근·정필운 (2021). <정보통신망법>, 박영사.
정경오 (2022a). 토론문: 포털과 자율규제. 한국경쟁법학회 외 주최 <자율규제에 대한 법학적 논의: 정부규제의 대안> 학술세미나 토론문.
정경오 (2022b). 토론문: 한국형 자율규제 기구로서 KISO의 특성과 과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자율규제 모델 KISO에서 답을 찾다> 포럼 자료집.
포털자율규제협의회 (2008). 보도자료: 포털 7개사, 자율규제협의회 만든다: 게시물 신속처리를 통한 이용자 권익보호 위해.
포털정책협의회 (2008). 인터넷자율규제협의회(가칭) 구성에 관한 제안.
황용석 (2009). 포털의 자율규제 현황과 과제: 자율규제모델의 관점에서 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현황과 과제. 언론중재위원회 <언론중재>, 제113호, 53-70.
KISO 사무국 (2022.11.17.). 보도자료: KISO, 온라인상 혐오표현 적극 대응 나선다.
- 이 부분 자료는 KISO의 김대기 정책위원이 보관, 정리한 내용을 참고했다. 김 위원은 KISO 출범 준비단계서부터 현재까지 자율정책기구의 산증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해 왔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