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히 불편해야 행복하다는 역설 같은 진리 ‘편안함의 습격’

“저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 이제 알았어요. 비밀 열쇠인데, 불편한 것을 감수하고 잘 해내야 해요.”
개그맨 김영철이 선배 개그맨 이경규의 유튜브 채널에서 한 발언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잠언처럼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자기 계발의 끝판왕인 그의 말은 잊고 지내기 쉬운 진실을 다시 붙잡게 한다. 김영철은 캐나다 몬트리올 코미디 페스티벌을 보고 국제적인 개그맨이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된다. 이후 10년 동안 같은 학원에 다니면서 영어를 공부했다. 영어 실력이 충분히 향상됐다고 판단한 그는 마침내 몬트리올 코미디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10분간 영어 스탠드업 코미디를 성공적으로 선보였다. 또 그는 SBS 라디오 ‘김영철의 파워FM’을 맡아 10년 가까이 단 한 번의 사고도 내지 않는 성실함으로 임했다. 매일 오전 5시 50분에 일어나 독서, 화상영어, 신문 읽기를 하면서 시간을 쪼개 쓴다. 이처럼 꾸준한 자기 계발로 정평이 난 김영철이 말하는 행복의 열쇠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데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거나 하기 싫은 일을 하는 불편함을 극복해 나갈 때 삶의 시스템이 구축되고, 긍정적인 결과가 따라온다는 것이다. 김영철이 말하는 행복은 단순히 편안한 환경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달성하는 성장과 성취감에서 비롯된다.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탐험가, 네바다주립대 저널리즘학과 교수이기도 한 마이클 이스터의 저서 ‘편안함의 습격’(수오서재·김원진 옮김)은 메시지가 새로운 책은 아니다. 스트레스나 불편함을 통해 인간이 성장하고, 궁극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잠언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메시지를 발신한다. 진부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잠언은 언제 들어도 늘 유익한 법이다. 무엇보다도 과거 한때 알코올 중독자로 어두운 삶을 살았던 저자가 자기 경험과 모험담을 바탕으로 풀어내는 메시지에는 김영철의 말처럼 공감의 힘이 있다.
저자는 편안함으로 촘촘히 덮인 현대의 일상을 잠시 벗어나, 자연의 일부로 회귀하는 새 도전을 위해 알래스카 툰드라로 향한다. 통신도, 온수도, 즉시 얻을 수 있는 재미도 없는 곳에서 그는 33일 동안 사냥과 생존을 경험한다. 그는 불편하게 먹고, 불편하게 자고, 불편하게 걷고, 자연 속에서 생존하며 느끼는 적절한 스트레스와 도전이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책은 생생한 순록 사냥기와 불편함에서 나오는 지혜를 얻기 위해 만난 사람들과의 인터뷰, 깨달음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알래스카 오지에서의 여정은 꽤 험난하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땅에서 마주하는 매서운 추위와 배고픔, 씻지 못하는 불쾌감 같은 원초적인 불편들이 이어진다. 통신조차 되지 않는 그곳에서 하루의 대부분은 순록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 하지만 야생으로의 귀환을 택한 저자는 생경한 설렘에 휩싸인다. 난생처음 가보는 산자락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기, 처음 보는 풍경과 처음 밟는 땅, 원 없이 팔굽혀펴기를 할 수 있는 언덕, 그리고 운이 좋으면 순록을 마주하는 일 등 낯선 환경에서의 도전은 잃어버렸던 인간 본연의 강인함을 서서히 되찾게 한다.
책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인류는 오래도록 불편함을 견디며 살아왔고, 그 불편함에 적응하도록 진화해왔다. 그러나 기술과 서비스가 불편함을 빠르게 제거하면서 더는 그런 불편함은 없고, 이 편안함이 극단까지 도달한 상황 속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부작용이 생겨나게 됐다. 가령, 계단이 높은 효율성을 자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출현하면서 효율성과 편안함의 측면에서 굳이 계단을 오르내릴 이유는 없어졌다. 한 실험 결과 참가자 가운데 2%만이 계단을 이용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과잉의 편안함이 결국 내일의 불편함, 즉 체력 저하, 무기력, 스트레스, 집중력 고갈로 되돌아온다고 경고한다.
힘들게 얻은 살코기 한 점과 못생긴 감자 몇 알이 연중 가장 훌륭한 식사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설탕과 소금과 기름의 완벽한 조합을 제공하는 식당이 골목마다 들어선 판에 이 밋밋한 조합을 굳이 먹을 까닭이 없어졌다. 새로운 편안함이 등장하면서 예전에는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라고 여겼던 불편함의 골대가 한참 뒤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저자는 1부에서 “아주 힘들어야 한다. 그러나 죽지 않아야 한다. 죽지 않을 정도의 고생은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명언과 일맥상통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을 달리 말하면 의식적으로 불편함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2∼5부에 걸쳐 따분함을 즐기고, 배고픔을 느끼고, 매일 죽음을 생각하고, 짐을 나르라고 조언한다. 이는 저자가 순록 사냥 여정에서 겪었던 불편함이자 현대인들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불편함이기도 하다.
저자는 북극의 한복판에서 순록 사냥을 하게 됐을 때 처음에는 경이로운 자연경관에 넋이 나갈 정도로 몰두한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다. 순록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계속 관찰하고, 동일한 지점에서 계속 매복하는 일은 굉장히 따분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미국 라스베이거스라는 화려한 도시에서 살았던 저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힘든 환경이다. 그러나 책은 따분함이 결코 비생산적인 시간이 아니며 또 다른 발전적 상태로 옮겨가기 위해 일종의 격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따분함이 생산적인 돌파구와 창의력의 원천임을 연구와 사례를 들어 논증한다. 삶과 일상에서 따분함을 느끼기 어려운 현대인들은 육체적인 질환부터 무기력과 스트레스를 동반한 정신적 질환까지 수많은 문제점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책은 지적한다. ‘비생산’으로 취급했던 공백이 오히려 생산성을 회복시키는 공간이 된다는 주장이다.
1920년대에 라디오가, 1950년대에 텔레비전이 등장했으며 2007년 6월 29일에는 아이폰이 처음 출시됐다. 결정적으로 스마트폰 세상이 펼쳐지면서 따분함은 완전히 ‘사망 선고’를 받는다. 지루할 틈이 없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줄을 서 있다가도 조금만 심심해지면 실시간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무엇인가를 검색하거나 체크한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디지털 미디어에 주의력을 넘겨주는 시간이 하루에 11시간 6분이라고 한다. 책은 이 시간이 모두 집중 모드 상태에서 소비되기 때문에 결코 공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주의력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지치고, 결국 뇌를 혹사한다는 논리다. 2000년 온라인 교육업체 메가스터디를 설립한 손주은 현 이사회 의장이 과거 한 강의에서 남긴 명언이 있다. 그는 밤새 게임을 하거나 만화책을 보고 난 뒤 환희 대신 밀려오는 절망감을 언급하며 “인생에서 쉽게 재미있고, 쉽게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나쁜 것”이라며 “인생은 고통스럽고 힘든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단언했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짧고 즉각적인 즐거움, 그리고 편안하고 쉬운 것만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 오래된 불편함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는 ‘손사탐’(손 이사장이 과거 사회탐구 강사로 활동할 당시 불렸던 별칭)의 단호했던 주장이 이 책의 여러 논거를 통해 설명된다.
이 책은 현대 건강에 대한 통찰도 전한다. 인류가 채집과 수렵·사냥을 하던 시기에는 해가 떠 있는 낮 동안에만 먹고, 밤이 되면 사실상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밤낮 구분 없이 주변에 음식이 널려 있다. 배고픔을 느낄 새가 없다. 가짜 허기와 진짜 허기도 구분하지 못한 채, 저렴한 가격의 초가공·고열량 식품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과잉 섭취한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는 ‘먹방’이라는 이름으로 정량 이상의 과도한 음식을 먹는 콘텐츠가 범람한다. 옛날에는 음식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가 부르더라도 음식물을 섭취해 몸에 비축하고, 굶주려야 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비축해 둔 지방을 태워 에너지를 얻고 생존해야 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이 더는 몸속에 음식을 미리 비축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과거의 습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음식을 습관적으로 계속 섭취한다. 게다가 현대 문명에서는 마케팅·광고를 통해 사람에게 끊임없이 음식을 먹도록 유도한다.
저자는 배고픔이 우리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해법을 제시한다. 인간의 몸은 원래 궁핍한 시기를 견디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일정 시간 공복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몸에 이롭다는 것이다. 공복 상태에 들어가면 식후 대사 작용이 끝난 뒤 손상된 세포를 스스로 제거하는 ‘자가 포식’(Autophagy·오토파지) 과정이 활성화되고, 노화와 질병을 유발하는 세포가 제거된다. 가끔 24시간을 굶는 단식이 인간에게는 오히려 정상적이고, 이로운 일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역시 저자가 오지에서 순록 사냥 여정을 통해 깨우친 경험이다. 33일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배낭에 실은 식량이 한정돼 항상 배고픔에 굶주린 상태였고, 사냥을 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순간도 많았다. 사냥에 성공한 다음에는 무려 180kg인 순록을 해체한 뒤 숙소까지 8km를 운반해야 했다. 저자는 이런 경험을 통해 편안함의 감옥에서 빠져나와 몸과 마음을 움직이고, 인류가 잃어버린 불편함의 감각과 생존의 본능을 깨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곰곰이 생각하면 이 책의 시작은 몸에서 비롯된다. 저자가 자기 몸을 알래스카라는 오지로 던지지 않았다면 여정과 성찰은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인이 몸 쓰기를 꺼리는 대신 하루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디지털기기에 쓰는 등 편안함을 추구한 결과 온갖 몸과 마음의 병에 시달리게 됐다. 안온하기만 하면 강인함을 잃을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이치다. 결국 몸부터 움직여야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를 떠올렸다. 몸을 움직이는 단순한 행위가 생각의 무게를 덜어내고 삶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힘이 된다는 점에서 두 책은 닮아있다. 하정우는 매일 3만 보씩 걷고, 심지어 하루 10만 보까지도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로 유별난 걷기 마니아다. 그에게 걷기는 단지 몸 관리 수단만은 아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던 과거의 어느 막막한 날에도, 이따금 잠까지 줄여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지금도 꾸준히 자신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슬럼프가 찾아와 기분이 가라앉을 때, 온 마음을 다해 촬영한 영화에 기대보다 관객이 들지 않아 마음이 힘들 때 그는 운동화를 꿰어신고 걸으며 자신을 추스른다. 몸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생각이 무거운 것임을 알기에 한 발만 떼면 걸어진다. 가만히 누워있는 것은 휴식이 아니라는 깨달음도 얻게 된다. 걷고 돌아오면 금방 곯아떨어지기에 불면증이나 우울함을 겪을 새도 없이 언제 어디서나 꿀잠을 자게 된다. 별일 없으면 자빠져있지 말고 걷기라도 하자는 것은 그의 생활신조가 됐다. 일단 몸을 일으키는 것, 다리를 뻗어 한 발만 내디디는 단순한 행동의 힘이 세다는 것을 두 책은 공히 말해준다.
‘편안함의 습격’은 무엇보다도 인류가 태초에 어떻게 살아왔으며 인간이 원래 어떤 존재였는지를 되짚었다는 점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편안함과 풍족함이 곧 행복과 충만함으로 이어진다는 현대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당돌하게 도전하며 현 인류가 잃어버린 불편함이라는 감각을 일깨운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 같지만, 인터뷰와 학술적인 연구를 제시하며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과 성찰을 담은 인문·교양서에 가깝다. 이 책을 통해 편안함을 얻은 대가로 무엇을 잃었는지 알게 된 우리는 안온한 일상 곳곳에서 의식적으로 불편해질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적절히 불편해야 행복하다는 역설 같은 진리를 실천해야 한다. 도둑처럼 스며든 편안함이 우리의 삶을 잠식한다는 점을 늘 생각하면서 불편함을 마주하고, 선택하고, 때로는 일부러라도 조금 더 불편해질 궁리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에너지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인간다움의 본질을 되새기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다. 당장 알래스카 툰드라 오지로 가서 혹한을 견디고, 따분함을 느끼고, 배고픔을 참으며, 죽음을 생각하고, 무거운 짐을 나르라는 얘기는 아니다. 일상 속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작은 시도로 첫발을 떼어보자. 일생의 첫 도전이라면 김영철·니체·손주은·하정우의 명언이나 저작, 인터뷰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음 글
[문화시평] 노동의 미래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
[문화시평] 4차 산업혁명과 남북관계
[문화시평] 다빈치에서 인터넷까지
OS 여인의 키스 – 영화 『her』를 보는 몇 가지 관점
‘AI 교과서’ 저자가 말하는 인공지능과 공존의 길
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깨어있는 이용자가 세상을 바꾼다 : ‘망중립성을 말하다’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