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게임업계 vs 유저 갈등, ‘확률형 아이템’ 논란 해법은
확률형 아이템 논란은 지난 몇 년 간 국내 게임업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호 발급이나 앱 마켓의 수수료에 대한 논란이 게임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라면 확률형 아이템 논란은 게임을 제공하는 주체인 게임사와 이를 이용하는 이용자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라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국내 게임시장은 물론 글로벌 게임시장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사업 모델이다. 일정한 가치를 지닌 게임 내 아이템이나 재화를 확률에 의해 이용자가 습득하도록 하는 이 장치는 게임 내 밸런스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과도하게 낮은 확률을 부여해 사행행위를 부추기는 요소라는 지적을 받고 있기도 하다.
현재 국내 게임산업에는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가 시행 중이다. 말 그대로 게임사가 게임 내 아이템 획득 확률을 투명하게 공개해 이용자에게 게임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지난 2015년부터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이런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두고 여러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는 게임사와 게임 이용자 사이의 입장 차이가 도드라졌던 것에 비해 올해부터는 정치권도 이에 대한 의견을 내세우고 있는 모습이라는 점이다.
<실효성 지적을 넘어 법적규제 필요론 떠올라>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보이는 이들은 제도의 실효성 여부를 지적한다. 이는 강제성을 지니지 않고, 미준수 게임의 경우 게임과 기업 이름만 공개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게임에 적용된 확률과 공개된 확률이 다르다는 이용자의 의구심에 대해서도 아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지난해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내 게임업계의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지적했던 유동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당시 “확률형 아이템 획득 확률이 실제와 다를 경우 고의성 여부에 따른 처벌 규정이 필요하다. 또한 확률 외에도 아이템을 얻기 위해 필요한 재화가 어느 정도인지도 표기할 필요가 있다. 이용자를 좋은 게임으로 유도할 수 있는 방안과 지원책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동수 의원은 올해 3월에는 이중뽑기 시스템(컴플리트 가챠)를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종류별 공급 확률 정보를 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자율규제가 구색 맞추기용으로 전락했으며 이렇게 되는 동안 이용자의 신뢰가 사라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황희 장관은 지난 2월 진행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합리적이지 못한 부분은 반드시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별도로 게임산업 활성화 방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또한 4월에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업계 의견을 들어 충분히 수용될 수 있는 방안으로 조정하겠다”며 “정도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한국게임학회 역시 확률형 아이템 문제가 자칫 더 큰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확률형 아이템은 IP 우려먹기와 결합되어 게임산업의 보수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이용자 반발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게 되면 게임 사업 모델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가 들어올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용자 신뢰 회복 위해서는 자율규제 필요…. 게임산업의 자정능력 증명해야>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지난 5월 공개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자율규제 강령 개정안’을 공개하고 오는 12월부터 이를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해당 개정안에는 기존 캡슐형 아이템 외에 강화형, 합성형 아이템의 확률도 자율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와 함께 적용대상의 범위가 확대되며 강화, 확률정보 표시방법의 다각화도 이뤄졌다. 기존에는 확률형 아이템의 결과물에 대한 개별 확률 공개와 확률정보 표시 위치를 이용자 식별이 용이한 게임 내 구매화면에 안내하는 데 그쳤다면, 12월부터 적용 예정인 개정안은 기존 아이템을 포함해 유료 인챈트 및 강화 콘텐츠의 확률과 유료와 무료 요소가 결합된 콘텐츠의 확률도 공개하도록 가닥을 잡았다.
더불어 자율규제 적용 대상을 아이템으로 국한하고 있는 현행 규정과 달리 효과 및 성능을 포함한 콘텐츠까지 확대해 그 영향력을 넓힌다는 방침이다.
당시 강신철 한국게임산업협회장은 “강령 개정은 자율규제 준수 기반을 넓힌다는 의지를 갖고 자율규제 대상 범위 확대와 확률 정보 공개 수준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며 “모든 참여사들이 엄중한 책임감으로 자율규제 강령을 준수하는 것은 물론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정치권은 게임제작업자 또는 게임배급업자가 게임을 유통시키거나 이용에 제공하기 위해서는 해당 게임에 등급, 게임내용정보, 확률형아이템의 종류ㆍ종류별 공급 확률정보 및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표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며 자율규제가 아닌 법적규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자율규제가 법적규제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활용하기 쉽고 상황에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꼽는다. 또한 비용 측면에서도 법적규제보다 자율규제가 경제적이라는 주장도 이어진다.
게임사들도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대다수의 게임사는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만 게임사와 이용자 사이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현재 적용 중인 자율규제안보다 세밀하고 현실적인 강령을 적용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상황이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게임사 모두 자율규제를 강화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강령 개정안에 반대하는 게임사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다만 게임사마다 아이템 확률과 콘텐츠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완벽하게 공개할 수 있을 것인지 확신하기는 쉽지 않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행 제도만으로는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고 수긍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다만 법적규제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자율규제를 강화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990년대부터 이어진 게임산업에 대한 규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부정적인 인식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게임업계 스스로가 자정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 관계자는 “시장 상황과 산업 경쟁력을 살펴보고 규제를 검토해야 한다. 강제적 셧다운제도 10년만에 폐지되고 각 가정에서 자율적으로 게임 이용시간을 정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이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자율규제라 할 수 있다”며 “이용자와 소통 창구를 늘리고 이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자율규제 강화로 신뢰를 회복해야 할 시점이다”이라고 말했다.
<규제의 형태보다는 정부와 사업자, 이용자의 협력이 중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문제는 오는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 정도로 확률형 아이템 논란이 게임산업을 넘어 문화산업 전반에서 중요한 이슈로 자리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확률형 아이템 논란은 게임산업이 더욱 건강한 체질을 갖추며 발전할 수 있기 위한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다만 이 논쟁에서 자율규제 찬성 측과 반대 측이 서로 거리를 두고 자신의 목소리만 전하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함께 의견을 공유하고 개선안을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보다는 어느 한 쪽의 입장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고집스러운 행보만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어떤 형태의 규제건 정부와 사업자, 이용자가 서로 협력해야 그 효과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
콘텐츠 산업 내에서 유독 게임산업에만 진흥보다는 규제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는 점도 아쉬운 점이다. 타 산업은 진흥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게임은 규제에 집중한다는 인상을 받는 것은 비단 기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법적규제의 필요성을 이해하지만 새로운 규제를 만들기보다는 이에 앞서 현행 제도에 힘을 실어주며 약점을 보완하는 움직임이 먼저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현행 자율규제의 약점이 실효성이라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자율규제를 이행하지 않는 게임사에 대한 확실한 불이익을 줄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자율규제를 뒷받침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것은 그간 규제에 시달렸던 게임산업과 이를 지켜봤던 게임 이용자 모두에게 달가운 일은 아니다.
확률형 아이템이 게임 산업에 있어 긍정적인 영향력만 지닌 ‘절대선’은 아니지만 반대로 게임 산업의 경쟁력을 저하하기만 하는 ‘절대악’인 것도 아니다.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논란은 옳고 그른 것을 찾아내는 논쟁이 아니다. 더욱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갖추고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논쟁이다. 이용자 보호를 위해 정부와 산업계가 대립이 아닌 협력을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