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경제에서의 조세 : OECD/G20 성명서 주요 내용과 앞으로의 과제
OECD/G20에서의 논의 과정
‘세원 잠식 및 소득 이전’을 의미하는 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는 국가 간 조세제도가 서로 달라 나타나는 허점이나 기존 국제 조세제도의 맹점을 이용한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 또는 조세절감 행위를 가리킨다. 다국적기업의 경우 인위적으로 기업지배구조나 거래구조를 고안해 실질적으로 경제적 활동이 이뤄진 국가에서는 과세소득이 적게 발생하도록 하고 유효세율이 낮은 국가에서 과세소득이 많이 발생하도록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기업 전체적인 차원에서의 세 부담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BEPS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를 위해서는 국가 간 긴밀한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에 국제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2012년 G20 정상회담에서 BEPS에 대한 제재 필요성을 명확히 했고, 이에 따라 2013년 OECD에서 BEPS 프로젝트를 시작해 2015년까지 15개의 실행계획(Action Plan)을 수립했다.
디지털 경제에서의 조세 문제는 BEPS 프로젝트 실행계획의 첫 번째 항목을 차지할 만큼 주된 관심사가 되어왔다. 디지털 경제에서는 시장이 소재하는 국가(market jurisdiction, 이하 ‘시장소재국’)에 고정사업장(permanent establishment) 등 과세대상이 되는 실체(taxable presence)를 만들지 않고도 충분히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 상당수의 다국적기업은 이를 이용해 시장소재국에는 사업기능이나 자산, 위험 등을 최소한으로 해 과세대상이 되는 실체를 만들지 않는 한편, 세율이 낮은 국가에는 계열회사를 설립해 주요 사업기능과 자산, 위험 등을 집중시키는 동시에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이 계열회사에 유보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세 부담을 낮추고 있다. 그 결과 시장소재국의 거주자나 내국법인은 상대적으로 다국적기업보다 높은 세 부담을 지게 된다.
OECD와 G20은 관심 있는 국가들이 함께 BEPS 관련 문제에 대한 기준을 정립하고 BEPS 프로젝트 이행 상황을 확인하고 모니터링하기 위한 협의체인 포괄적 이행체계(Inclusive Framework, 이하 ‘IF’)를 출범시켰다. IF는 2018년부터 디지털 경제에서 발생하는 BEPS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논의를 주도해왔으며 2020년 1월 개최된 회의에서 두 가지 방안으로 접근해 가기로 했다. 일명 ‘디지털세’라고 불리는 이들 두 가지 방안은 ‘Pillar 1: 시장소재국에 대한 과세권 배분’과 ‘Pillar 2: 국제적 최저한세율 도입’이다. 2021년 11월 현재 141개국이 IF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 중 137개국이 이들 방안에 동의했다.
IF는 지난 7월 마침내 디지털세에 대한 합의안을 공개했으며, 이후 지난 10월 31일에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디지털 경제에서 발생하는 조세 문제의 해결을 위한 두 가지 방안에 관한 성명서(Statement on a Two-Pillar Solution to Address the Tax Challenges Arising from the Digitalisation of the Economy)’를 채택했다. 내년까지 이에 대한 후속 검토 작업을 거쳐 세부기준을 협의하고 각 국가 간 인정 절차를 거쳐 2023년부터 이들 제도를 발효·시행할 예정이다.
Pillar 1: 시장소재국에 대한 과세권 배분
매출 발생지역과 과세권을 잇는 과세 연계점(nexus)에 근거해 다국적기업이 실제 용역을 공급하고 이윤을 창출하는 국가에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이 Pillar 1의 주 된 내용이다. 즉, Pillar 1에 의하면 전 세계 매출액(global turnover)이 200억 유로(약 27조 원) 이상이며 이익률(profitability)이 10% 이상인 다국적기업의 매출액 일부에 대한 과세권을 해당 기업이 영업이익을 얻은 시장소재국에 배분하게 된다. 매출액 기준은 실제 집행 경험 등을 고려해 시행 7년 후에는 100억 유로로 축소할 예정이며, 채굴업과 규제대상인 금융업 등은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과세권을 배분받기 위한 과세 연계점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해당 관할권 내에서 적용대상 다국적기업의 매출액이 100만 유로 이상이어야 한다. 다만, GDP가 400억 유로 이하인 국가에서는 매출액이 25만 유로 이상인 경우 과세 연계점이 형성된다. 매출은 재화나 용역이 사용 또는 소비되는 최종 시장소재국에 귀속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적용대상 기업의 이익 중 이익률 10%를 넘어서는 초과이익의 25%에 대한 과세권을 시장소재국에 부여한다. 다만, 해당 기업이 시장소재국에 배분하는 과세권의 대상이 되는 초과이익에 대해 이미 해당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고 있는 경우에는 그 과세권의 규모를 제한한다. 과세표준은 회계를 기반으로 해 일부 조정을 거쳐 결정하고 손실의 이월은 허용된다. 구분 회계는 예외적인 경우로 한정한다. 과세권의 배분에 의해 이중과세가 발생할 경우 소득공제나 세액공제 방식을 이용해 이중과세를 조정한다.
다국적기업 내 하나의 법인이 Pillar 1과 관련한 절차를 일괄해 수행해야 한다. Pillar 1 합의 시 기존의 디지털 서비스세 및 유사한 과세는 폐지 또는 도입을 취소해야 하며 새로 도입하는 것도 허용되지 아니한다. Pillar 1과 관련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의무적·강제적 분쟁 해결 절차에 의해 조정되며 디지털세를 도입·운영하는 모든 국가는 해당 조정 결과에 구속된다.
Pillar 2: 포괄적 최저한세 도입
Pillar 2에서는 연결매출액이 7.5억 유로(약 1.1조 원) 이상인 다국적기업은 세계 어느 곳에서 사업을 하더라도 최저한세율인 15% 이상의 세금을 반드시 납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다국적기업들이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에 소재한 자회사에 이익을 집중 시켜 조세를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다만, 정부 기관, 국제기구, 비영리 기구, 연금펀드 및 투자펀드 등은 글로벌 최저한세의 적용에서 제외된다.
급여비용 및 유형자산 순장부 가치 등에 의한 실질 사업 활동 지표에 대하여는 최소 7.5%의 고정률을 적용해 과세표준에서 공제한다. 시행 5년 이후에는 최소 5%의 고정률이 적용된다. 톤세 제도를 적용하는 해운업계의 특징을 감안해 국제 해운 소득도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Pillar 2는 서로 연관된 국내법상 규칙(domestic rule)인 소득산입규칙(Income Inclusion Rule 또는 IIR)과 비용공제부인규칙(Undertaxed Payment Rule 또는 UTPR), 그리고 조세조약상 규칙(treaty-based rule)인 원천지국과세규칙(Subject to Tax Rule 또는 STTR)으로 구성돼 있다.
소득산입 규칙에 의하면 자회사가 국가별로 계산한 실효세율을 기준으로 최저한세율에 미달해 저율 과세 되는 경우 최종 모회사가 해당 미달세액만큼을 최종 모회사의 소재국에 납부해야 한다. 따라서 다국적기업이 실효세율이 10%인 국가에 자회사를 두는 경우 최저한세율에 미달하는 5%에 해당하는 세액을 최종 모회사가 있는 국가에서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개별 국가에서 연결매출액이 7.5억 유로 미만인 다국적기업에 대해서 소득산입규칙을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비용공제부인규칙에 따르면 반대로 최종 모회사가 저율 과세 되는 경우 해외 자회사들이 미달세액만큼을 자회사의 소재국에 납부해야 한다. 다만, 기업들의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용공제부인규칙은 2024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조세조약상 규칙인 원천지국과세규칙에서는 저세율국에 소재하는 국외 관계사(related party)에 지급되는 이자나 사용료 등에 특정 세율 수준보다 낮은 명목세율이 적용되는 경우 양자조약에 근거해 원천지국에 추가 과세권을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각 국가는 이러한 Pillar 2를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나 도입할 경우 IF에서 합의된 방식을 준수할 의무를 지며, 또한 다른 국가가 Pillar 2를 적용할 경우 이를 수용할 의무를 진다.
디지털세 도입의 영향과 과제
이러한 성명서의 내용대로 2023년 디지털세가 도입되면 전 세계 조세제도와 기업환경은 크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각국은 그동안 자국에서 상당한 매출을 올리면서도 납세의무를 부담하지 않고 있던 다국적기업에 대한 과세권을 가지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100여 개 정도의 기업에 대해 이번 성명서의 내용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중 특히 구글, 애플, 메타(舊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으로 대표되는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저세율국에 진출해 이익을 취해왔던 경영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우리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Pillar 1의 적용을 받아 해외에서 납세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반면, 국내에서 활동하는 거대 플랫폼기업 중 80여 개 정도에 대해 한국 정부가 과세권을 행사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리고 Pillar 1의 적용으로 수천억 원의 세수 감소가 불가피하지만, Pillar 2가 적용됨으로 인해 수천억 원의 세수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디지털세는 디지털 경제에서 다국적기업으로 인해 발생한 조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적 논의의 산물이며, 그 이행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국가 간 정보 공유와 협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앞으로 합리적인 세부기준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다면 다국적기업의 조세 부담이 지나치게 가중될 수도 있고 국가 간 충돌과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관련된 국제적 논의에 적극 참여해 국내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충돌과 혼란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세의 국내 도입을 위해서는 관련 국내법과 우리나라가 체결한 조세조약의 개정이 필요하다. 관련 조세제도와 행정에 있어서 대비가 미비할 경우 세수일실이 발생할 수도 있고 조세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외국인 투자가 위축될 수도 있다. 나아가 디지털세로 인해 달라지는 기업환경을 고려한 효과적인 외국인 투자유치정책의 마련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