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산업 활성화 대책의 현황과 과제 – 지급결제부문을 중심으로
1. 테크핀 현상으로서의 핀테크
최근 정부와 언론,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핀테크(Fintech)에 대한 관심이 높다. 비교적 최근에야 핀테크란 이름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이 새로운 현상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 어려울 수 있으나, 대체적으로 ICT 기술을 금융서비스에 접목함으로써 소비자편의성이 극대화된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이 바로 핀테크 현상의 본질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핀테크라고 볼 수 있는 현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신용카드 단말기를 통한 결제, 인터넷 뱅킹, 공인인증서를 통한 지급결제 등도 넓은 의미에서는 핀테크현상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핀테크는 이러한 기존의 서비스들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비트코인 등 새로운 전자화폐, 페이팔, 알리페이 등으로 대표되는 간편결제서비스, 엔젤리스트, 랜딘클럽, 쿠오보와 같은 소비자 참여형 금융투자플랫폼 등 ICT 기업들이 제공하기 시작한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두고 우리는 핀테크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러한 핀테크 현상이 가진 중요한 특징은 금융기관이 주도가 되어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ICT 기업들, 특히 규모가 작은 창업 기술기업 중심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편리한 금융서비스에 접목해 보고자 하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실제로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내면서 핀테크 현상이 촉발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① 무선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을 기반으로 급성장해 온 SNS 및 모바일결제시장, ② 그를 기초로 변화하고 있는 소비자들의 사회관계 형성방식, ③ 그리고 ‘편리함’, ‘간편함’으로 대변되는 소비행태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지금 핀테크는 철저히 소비자들의 니즈(needs)와 그에 부합해 온 ICT 기업들이 주도가 되어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며, 그 때문에 핀테크라고 부르기보다는 테크핀(TechFin=Technology+Finance)이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맞는 용어의 사용일지 모른다.
2. ICT 강국이면서 핀테크 후진국인 한국
우리 언론들과 정부는 항상 우리나라가 전세계적으로 보기 힘든 정보통신 인프라를 가지고 있고, 그 때문에 우리나라가 ICT 강국이라고 선전해 왔다. 실제로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2009년도부터 매년 발표해오고 있는 ICT 발전지수1 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조사대상국들 중 거의 최상위 순위를 항상 차지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핀테크와 관련해서 마치 우리나라가 후진국인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2014년 12월에 동아일보가 실시한 전문가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30명 중 26명이 우리나라의 핀테크 수준이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뒤처져 있다고 응답했으며, 그 중 11명은 이들 국가와 우리나라의 수준 차이가 3-5년 정도라고 응답한 바 있다.2 하지만 언론 등에서 핀테크의 선두주자로 흔히 지목되고 있는 영국, 미국은 ICT 발진지수를 기준으로 할 때 각각 5위와 14위에 불과하고, 중국은 30위권 내에도 순위를 올리지 못하는 등 우리나라와 상당한 격차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3. 핀테크의 성장을 억제해 왔던 규제 거버넌스
핀테크를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금융서비스의 정보 인프라가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1990년대 후반 일본 금융사들이 종합온라인 시스템을 도입해 처음 금융시스템을 구축한 이후, 지속적으로 차세대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면서 현재 우리나라는 일본을 능가하는 첨단 IT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실시간 금융거래가 가능하고, 전국적인 지점망에서 ATM기를 통해 현금을 입출금할 수 있는 국가는 별로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핀테크라는 최근의 현상에 비추어 봤을 때에는 우리나라는 후진국이라는 평가를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과도한 정부규제에서 찾는다. 즉 그간 금융당국이 전자결제 등의 부문에 있어 과도한 규제장치들을 둠으로써 ICT 기업들이 금융부문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되어 왔고, 그것이 결국 소비자들의 불편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지급결제부분의 경우, 얼마 전까지 문제가 된「전자금융거래법」상 공인인증서 강제 외에도,「전자금융거래법」상 전자금융업에의 진입 요건,「여신전문금융업법」에 의한 사용자 본인인증 권한의 금융기관에의 독점적 귀속,「신용카드 가맹점 표준약관」에 의한 PG(Payment Gateway)사들에 대한 신용정보 보유 제한,「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상 신용정보업자에 대한 자격제한,「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투자자문업 또는 일임업자에 대한 제한 등 ICT 기업들의 전자결제시장 진입을 억제하는 규제 이슈들은 무수히 많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 쟁점이 되는 규제의 이면을 살펴보면 두 가지의 중요한 맥락을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기존 공인인증서를 중심으로 한 구조화된 거버넌스이고, 두 번째는 이를 기초로 기존 금융업계 내에 형성된 일종의 기득권이다.
1997년「전자서명법」이 발효된 이후 공인인증서의 사용이 모든 전자금융거래에 있어 강제화되고, 공인인증기관들을 정부가 허가제 방식으로 지정․운영해 왔다. 그 결과 국내 공인인증서 시장은 몇몇 공인인증기관들에게 독점적 이익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국내 금융기관들 역시 이러한 규제환경 속에서 법상 최소한의 요건만을 충족시키면, 보안상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도 면책의 혜택을 받게 됨으로써 추가적인 혁신의 유인을 잃어버리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기존 지급결제시장에 참여해 온 몇몇 대형 보안회사, PG사들과 금융회사들 간의 이해관계가 금융회사 중심으로 공고해지는 결과 또한 초래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규제 거버넌스는 2010년도에 설치된 (기존 공인인증기관과 금융기관 중심의) 인증방법평가위원회의 형식적 운영, (외부 PG사들과의) 신용정보 공유 등에 있어 카드사들의 보수적인 태도를 초래하는 구조적인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결국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점은 정부의 과도한 법적 규제였지만, 그러한 규제로 인해 발생한 공인인증기관과 금융기관 중심의 규제 거버넌스는 이러한 문제점을 더욱 고착화시키는 요인이 되어 온 것이다.
4. 최근 금융위원회의 규제개선 노력과 우려되는 점
작년 3월에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처음 ‘천송이 코트’ 문제가 대통령의 입을 통해 언급된 이후 금융위원회는 그 다음 달인 4월부터 그간 업계에서 문제로 제기해 온 규제들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지난 1월 27일에는 기존의 단편적인 규제개선에서 벗어나, ① 사전규제 최소화, ② 기술중립성 원칙 구현, ③ 책임부담 명확화와 같은 보다 체계적인 규제개선 방향들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의 이러한 발표내용에 대해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발표 내용들이 주로 그간 문제가 되어온 외면적인 법적 규제를 부분적으로 제거하는 것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인증방법평가제도와 공인인증서의 사용의무 폐지 등의 조치가 환영할 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외 공인인증서를 중심으로 굳어진 기존의 결제시스템, 그리고 그와 결부되어 있는 공인인증기관과 금융기관 중심의 규제거버넌스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예상해 볼 수 있는 내용은 발표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금 번 발표내용과 함께 2015년도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자료에서는, ① 사전 보안성 심의제도가 폐지되는 대신, 금융감독원이 정기 사후감사를 강화하고, ② 금융감독원의 금융회사들에 대한 보안 취약성에 대한 보완지시권한이 법령상 명시되며, ③ (기존 공인인증서 중심의 시장구조 하에서 독점적 이익을 누려옴으로써 그간 새로운 인증방법의 도입에 소극적이었던) 금융결제원과 금융보안연구원 등이 주축이 된 금융보안전담기구(일명 ‘금융보안원’)를 설립, 동 기관이 새로운 보안인증방법에 대한 평가와 함께 금융회사들의 IT 취약점 분석평가에 있어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 예정되어 있다. 또한 동 업무보고자료에서는 핀테크산업 활성화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빅데이터 이용 이용과 관련해 별도의 신용정보 집중기관을 설립할 것을 명시해 놓고 있으나, 최근의 기류로는 은행연합회가 신용정보집중기관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즉 이러한 정황으로부터 향후에도 기존의 공인인증서가 겉모습만 바뀌어 다시 시장의 지배적인 인증방법으로 고착되고, 신용정보를 둘러싼 기존 금융업계의 이해관계가 신용정보시장에서 다시 관철됨으로써 핀테크 활성화라는 본래의 취지가 퇴색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는 것이다.
5. 관점의 전환을 기대하며
변화한 모바일 중심의 거래환경 속에서 핀테크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적 현상이다. 글로벌 경쟁업체들이 대체적인 서비스를 가지고 국내 시장에 진입하는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선택은 결국 보다 간편하면서도 안전하다고 느끼는 해외 서비스로 집중될 것이고, 이는 기존의 제도적 시스템 속에 안주해 온 기존 보안기관들과 금융기관들에게 위기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환경 속에 안주해 적극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을 경우 이는 결국 우리 금융산업 전반의 위기로 확산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금융산업을 위주로 형성되어 온 기존의 규제 거버넌스는 우리가 지닌 가장 큰 약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약점은 단순히 규제 몇 가지를 제거하는 방식으로는 제거할 수 없다. 진정 핀테크산업의 활성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간 핀테크 산업의 성장을 저해해 온 기존 금융시스템 내의 먹이사슬 구조가 새로운 규제환경 속에서 재현되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핀테크의 핵심은 소비자와 기술의 융합적 상호작용이다. 기술은 유동적이고 빠르게 변화하며, 소비자들은 이러한 기술의 변화에 신속히 호응하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낸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핀테크 현상은 특정 기관이나 업계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창조한 고정된 규제의 틀로 가둬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향후 정치권이나 언론, 그리고 규제당국이 향후 규제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 짓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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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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