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 무역분쟁과 차세대 IT 패권전쟁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분쟁이 해를 넘겨서도 계속되고 있다. 분쟁의 시작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내놓은 ‘중국 경제침략을 겨냥한 대통령 각서’였다. 취임 첫 해를 조용하게 넘긴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들어 중국에 대한 고율관세 준비를 지시하면서 양국간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 명령을 근거로 500억 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25%, 2000억 달러 규모 제품에 대해서는 10%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중국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미국 조치에 맞서서 곧바로 보복 조치를 취하면서 총 1100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했다.
올 들어서도 이런 긴장관계는 계속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수시로 강공을 예고하면서 중국 뿐 아니라 세계 경제를 긴장시켰다. 중국 역시 미국의 압박에 강공으로 맞섰다. 하지만 물밑에선 합의점을 찾기 위한 협상도 계속됐다. 결국 미국은 3월1일로 예정됐던 2000억 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적용될 예정이던 25% 관세율 적용 시한을 연장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1, 2주 내에 파격적인 소식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기대감을 부추겼다.
미국은 왜 중국과 무역전쟁을 하나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경제의 최대 고민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무역적자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적자 비중은 4% 수준에 이른다. 그 중 최대 고민거리는 역시 대중 무역적자다. 중국과 상품 교역 비중은 2017년 미국 전체 교역의 16.4%까지 늘어났다. 전체 무역적자 중 대 중국 무역적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47.1%로 전체의 절반 수준에 육박한다.
물론 이런 상황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 갑작스럽게 악화된 건 아니다. 수 년 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악화된 것이다. 실제로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는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꾸준히 증가해 왔다. 부시와 오바마 두 대통령이 16년 재임하는 동안 4,000건 가량의 조치가 추가됐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무역 공세는 이전 정부들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비시장국가(Non-Market Economy)’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을 기반으로 중국산 제품들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미국과 중국간의 무역분쟁은 크게 세 가지 이슈로 구성되어 있다(장윤종, 2018). 분쟁의 발단은 앞에서 지적한 미국의 무역적자다. 여기에다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주장해 온 중국시장 개방 문제 역시 중요한 쟁점이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공정과 상호주의를 내걸면서 중국 시장 개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쟁점은 신기술 보호와 경쟁이다.
이 중 IT 산업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신기술 보호와 경쟁이다. 앞의 두 가지 이슈가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세 번째 쟁점은 신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적 고려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 미국의 중국 통신업체 견제다. 미국은 최근 들어 ZTE, 화웨이 같은 중국 통신사업자들을 계속 압박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주타깃이 된 곳은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다. 런정페이가 이끄는 화웨이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을 제치고 점유율 2위로 뛰어오를 정도로 강자다. 특히 화웨이는 차세대 통신으로 꼽히는 5G 장비 분야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해부터 화웨이를 집중 견제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미국-중국 무역분쟁의 핵심은 ‘5G 전쟁’
화웨이로 대표되는 중국 통신장비업체들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상상을 초월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공공연하게 미국 통신사들에게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다. 2월 초엔 월스트리트저널이 트럼프 대통령이 화웨이 장비수입 금지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보도해 관심을 모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MWC19 개막 직전에 서명할 것이란 구체적인 전망까지 제시했다. 보도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 장비 도입금지 명령에 서명하진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미국 국내 기업들에게 끊임없이 중국 통신장비 경계령을 발령하고 있다.
미국이 자국 기업들에게만 이런 호소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동맹국들에게 화웨이 장비 도입 자제를 요청했다. 미국이 이런 요청의 근거로 내세운 것이 ‘국가 안보 위협’이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미국의 의도대로 진행되진 않았다. 영국, 프랑스 등 동맹국들은 미국의 ‘반 화웨이 동맹’에 선뜻 가담하려들지 않았다. 특히 영국 국가사이버보안센터(NCSC)는 화웨이 5G 장비를 사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보안 위협은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면서 미국의 요청을 일축했다.
미국의 이런 공세를 펼치는 근거는 중국이 2017년 제정한 국가정보법이다. 이 법은 통신장비업체들에게 정부의 정보활동을 지원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정보기관들은 정보 수집을 위해 통신장비 등에 도청장치나 감시시설을 설치하거나 압수수색할 권한까지 부여받게 됐다. 미국이 화웨이 장비에 첩보 활동을 위한 백도어가 심어져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주장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불과하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중국과의 ‘5G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야심이 강하게 작용했다. 5G는 최대 전송속도 20Gbps로 현재 사용되고 있는 4G LTE 기술에 비해 20배 이상 빠르다. 전송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연속도다. 5G의 지연속도는 1밀리초(ms)로 LTE 기술의 100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장점 덕분에 5G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같은 것들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기술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의 경험을 극대화하거나, 원격 의료 같은 첨단 기술 역시 5G 통신망의 뒷받침을 받아야만 한다.
5G는 그 동안 우리가 경험했던 4G LTE 까지의 구세대 통신기술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대한 정보를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특히 5G 통신망을 갖고 있을 경우엔 마음먹기에 따라선 망을 오가는 정보를 완전히 장악할 수도 있다.
문제는 차세대 통신으로 꼽히는 5G 장비 시장에서 미국의 위세는 미약하기 그지없다는 점이다. 반면 화웨이는 세계 통신장비시장 점유율 30%에 이르는 최강 기업이다. 최근 들어 존재감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에릭슨, 노키아를 비롯한 경쟁업체들에 한 발 앞서 있다.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은 2019년 들어 5G 통신망 구축 작업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들어 미국이 ‘반 화웨이 전선’ 구축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는 것 역시 5G 주도권 경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세계 2대 강국의 차세대 힘겨루기 어떻게 될까
중국은 ‘제조 2025’를 통해 산업 고도화의 기치를 내걸었다. 2015년 리커창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발표한 ‘중국 제조 2025’는 제조업 기반 육성과 기술 혁신, 녹색 성장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국 경제 모델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바꾸겠다는 전략이다. 이 전략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이 IT, 로봇, 항공우주, 신에너지, 친환경 전력, 신소재, 바이오 같은 기술들이다.
미국이 지난 해 중국을 상대로 한 관세 공격 때는 주로 ‘제조 2025’ 신기술 쪽에 초점을 맞췄다. 관세부과 대상품목의 70%가 ‘제조 2025’ 대상 기술일 정도였다. 그만큼 중국의 제조업 혁신 전략은 미국에선 위협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의 이런 전략엔 또 다른 고려도 숨어 있다. 대부분이 B2B 제품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직접 피해가 가지는 않는 품목들이란 점이다. 신기술 경쟁이란 거창한 목표와 함께 미국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적은 기술들을 집중 공격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미국과 중국 간의 힘겨루기는 수치상으로 드러난 무역적자 외에 차세대 IT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전략적 고려가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앞으로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추가 관세 공격을 펼칠 경우엔 미국 소비자들이 직접 타격을 받게 된다. 그건 중국도 마찬가지다. 대미 무역흑자 대부분을 해외국적 기업들이 올리고 있는 상황인 만큼 지나치게 강한 공세를 펼칠 경우엔 오히려 그들이 다른 나라로 떠나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 모두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의미다.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공방이 2019년 들어 소강상태로 바뀔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건 이런 상황 때문이다.
한 치 양보 없이 힘겨루기를 하긴 했지만, 이젠 두 나라가 적당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내외적인 조건 자체가 극한투쟁으로 치닫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세대 통신기술인 5G 주도권 경쟁은 쉽게 마무리되긴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AI와 VR 같은 신기술이 지배할 미래 시장의 패권 다툼이 시작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부분을 어떻게 마무리느냐는 부분이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의 남은 관전 포인트라고 해도 크게 그르진 않을 것 같다.
<참고문헌>
고동환(2018), 미·중 무역분쟁의 배경과 그 영향, <<KISDI 프리미엄 리포트>>,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장윤종(2018), 미중 무역분쟁과 세계경제의 대변화, 한국 산업에 위기인가·기회인가?, <<KIET 산업경제>>, 산업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