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망 이용대가 소송’ 1심 패소의 의미
국내 OTT 시장을 석권하면서 이용자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인터넷망에 대량의 트래픽을 발생시키고 있는 넷플릭스에 대해 SK브로드밴드가 망 이용대가를 요구했다. 그러나 협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자 넷플릭스는 서울중앙지법에 “망 사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며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소송(2020가합533643)을 냈고 2021년 6월 2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재판장 김형석 부장판사)는 “협상 의무 부존재 확인 부분은 각하하고,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본 1심 판결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ISP와 CP 간 망 이용료 갈등에 법적인 판단을 한 최초의 사례로서 ISP와 CP 간 책임 범위의 기준을 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넷플릭스가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한 상황이지만 본 판결에서 쟁점, 당사자들의 주장, 법원의 판단을 살펴보는 것은 국내 통신정책, ICT 생태계 설계에 있어 상당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1심 판결의 핵심 내용은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의 인터넷망에 ‘접속’하고 있거나, 적어도 ‘연결’이라는 유상(有償) 역무를 제공받고 있다. 따라서 연결 대가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넷플릭스는 여러 이유를 들어 망 이용대가를 납부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출했다.1
첫째, 인터넷의 기본원칙 상 접속과 전송은 구분되며 접속은 유료이지만, 전송은 무료인데,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와 전송만 하고 있기 때문에 망 이용대가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도쿄와 홍콩 캐시서버(OCA)2 에 미리 업로드해 둔 콘텐츠는 일본·홍콩과 한국 사이 해저케이블과 SK브로드밴드의 국제 망 전용회선을 거쳐 SK브로드밴드 국내 망을 통해 최종이용자에게 도달한다. 단순화하면 ‘넷플릭스→일본 통신사→SK브로드밴드→최종이용자’ 경로인데, 넷플릭스는 일본 통신사에 접속료(OCA 유지비용 등)를 지불하므로 SK브로드밴드엔 콘텐츠 전송 비용을 따로 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SK브로드밴드는 미국 연방 규정집이나 유럽연합(EU) 규정 어디에도 ‘접속’과 ‘전송’의 개념을 별도 규정하거나 ‘전송은 무상’이라는 취지의 규정은 없으며, 한국도 ‘상호접속’ 개념에 따라 망 상호 이용에 따른 대가를 정산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접속과 전송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사이에 별도의 ISP가 존재하지 않아 직접 연결된 사실엔 당사자들의 다툼이 없다”며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 인터넷망에 접속하고 있거나 적어도 연결 및 연결 상태 유지라는 유상의 역무를 제공받고 있다고 봐야 하므로 대가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둘째, 전 세계적인 연결성을 보장하는 경우에만 망 이용대가를 낼 수 있는데, 이 건은 그런 경우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즉,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와 직접 연결돼 피고의 이용자에게 한정해 콘텐츠를 전송할 뿐 SK브로드밴드로부터 전 세계적인 연결성을 제공받고 있지는 않음으로 위와 같은 연결은 유상성이 인정되는 인터넷 접속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법원은 이에 대해 ”피고는 전 세계 여러 ISP와의 상호접속을 통해 원고들에게 전 세계적인 연결성을 제공할 수 있고, 넷플릭스 원하는 경우 얼마든지 원고들의 데이터를 전 세계에 송․수신할 수 있음에도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으로 피고를 통해 전 세계 각 종단으로 트래픽을 송신하지 않고 있을 뿐이므로, 피고가 원고들에게 원고들이 주장하는 전 세계적인 연결성이 보장된 인터넷 접속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설령, 피고가 원고들의 주장과 같은 연결성을 제공하지 않았더라도, 원고들은 자신들의 콘텐츠가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전송될 수 있도록 피고와 직접 연결되어 있고, 특히 피고의 국제선 망에는 원고들의 트래픽만이 소통한다는 점에서 원고들은 피고로부터 일반적인 CP와는 구별되는 독점적 지위를 부여받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연결성 제공과 그와 같은 상태의 유지만으로도 원고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할 때 자신의 고객들에게 보다 양질의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전송할 수 있는 이익을 향유하게 되므로, 피고가 원고들에게 경제적 가치가 있는 역무를 제공하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셋째, 망 중립성 원칙 상 망 이용대가를 지급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SK브로드밴드는 망 중립성이 망 이용대가 지급 여부와 무관하다고 반박하면서 망 중립성은 ISP가 무상으로 트래픽을 전송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밝혔다. 의료인이 환자를 차별해서 안 되는 법적 의무가 있다고 해서 의료서비스가 무상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비유를 들기도 했다. 법원은 통신사가 자사 망에 흐르는 합법적 트래픽을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인 망 중립성에 관한 논의와는 본 건 망 이용대가와 직접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
넷째, 해외에서도 ISP에게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넷플릭스 콘텐츠 전송 부문 부사장인 켄 플로랜스가 2014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제출한 확인서를 근거로 넷플릭스가 ISP인 컴캐스트와 AT&T, 버라이즌, TWV에 ‘착신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넷플릭스는 다른 ISP를 거치지 않고 OCA와 컴캐스트 망을 직접 연결해 이용자에게 콘텐츠를 전송했다”며 “이런 과정은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와 연결해 콘텐츠를 전송하는 것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다”고 밝혔다.
한편 법원이 양면시장(two-sided market)의 원리를 인정한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양면시장이론이란 다른 두 타입의 이용자 집단이 플랫폼을 통해 상호작용을 하며, 이때 창출되는 가치는 간접적 네트워크 외부성의 영향을 받는 시장을 말한다. 플랫폼을 제공하는 사업자는 양측 또는 어느 한쪽에 플랫폼 이용료를 부과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한다. 본 판결은 플랫폼 사업자 등이 서비스의 제공자와 이용자 모두로부터 이용대가를 수령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법원은 “신용카드회사가 신용카드 회원인 소비자로부터 연회비를 수취하고, 가맹점으로부터도 결제 수수료를 지급받는 등 동일한 서비스에 관해 양 당사자로부터 이용대가를 수령하는 형태의 다면적인 법률관계는 현대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원고들이 넷플릭스 서비스 가입자에 대한 콘텐츠 제공과정에서 발생하는 콘텐츠의 전송은 명백히 원고들의 적극적 행위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피고가 인터넷망을 제공하고 관리하는 것이 자신의 인터넷 서비스 가입자에 대한 계약상 의무에 해당한다고 하여 그 인터넷망을 통한 콘텐츠의 전송을 두고 피고가 서비스 가입자에 대하여 행하는 의무의 이행에 불과할 뿐 원고들의 인터넷망 이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고, 그와 같은 사정이 원고들과 피고 사이의 법률관계가 유상인지 여부에 관하여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아직 1심 판결에 불과하지만, 국내 OTT 시장 등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앞둔 글로벌 CP들도 동일한 이슈가 있음으로 향후에도 망 사용료를 둘러싼 갈등이 있는 경우 이 판결이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7월 15일 넷플릭스는 대가 지급 의무를 인정하는 계약·법령 등 법적 근거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 망 이용대가가 망 중립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 등을 이유로 항소를 제기했고, SK브로드밴드는 항소에 따른 법정 대응에 이어 망 이용대가를 청구하는 반소를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혀 향후 2심의 판단도 주목된다.